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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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게 밝고 싹싹한 직장 후배와 식사 자리를 가졌다. 애써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긴 그냥 이게 편해서 어쩔 수가 없단다. 자기주장이 강한 친구들만 보다가 이런 유형의 친구들을 만나면 기특하면서도 참 안쓰럽다. 남들 배려하는 건 좋은데 일단 나부터 돌봐야지, 저러다 멘탈 나가면 결국 본인만 손해거든. 선한 이들의 단점은 똑똑함과 별개로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융통성 부족이란 말도 자주 듣는다. 이들은 어떤 변수라도 생기면 곧잘 사고가 멈춰버린다. 이렇게 제 감정 표현도 못하고 의사결정도 미루는 후배들에게 나는 지혜의 중요성을 꼭 강조한다. 그래야 감정 낭비 없이 오래 버틸 수 있거든. 그러려면 일단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남들이 다 짜장면 시킨다고 나까지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모두가 예 할 때 혼자만 아니오 하기는 어렵지. 튀는 게 싫은 한국인의 고질병을 왜 모르겠어. 그래도 아니다 싶은 건 아니라고 자꾸 말해 버릇 해야 된다. 그 예로, 이번에 읽은 <내 동생의 무덤>도 다들 좋다고 난리지만 나에게는 진짜 좀 아니었거든? 그럼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어디 신랄하게 까 보겠다.


동생의 실종사건으로 온 마을에 난리가 난다. 출소한 범죄자의 짓으로 밝혀졌지만 동생의 시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범인이 잡혔는데도 언니는 영 석연치가 않았다. 어찐지 황급하게 사건을 종결했다는 느낌이다. 수년 후 고향 땅 어딘가에서 동생의 뼈가 발견되면서 20년 전의 사건이 재조명을 받는다. 형사가 된 트레이시는 사건을 맡았던 관계자들을 찾아가지만 하나같이 뭔가를 감추고서 시원하게 입을 열지 않는다. 이로써 과거의 재판은 조작된 것이었고, 범인은 희생양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제 트레이시는 변호사 친구와 함께 범인을 의뢰인으로 세워 20년 전의 오심에 대한 재판을 열기로 한다.


가장 심각한 점은 매우 흔하고도 진부한 설정과 전개 방식이다. 진실을 찾기 위해 형사가 된 것, 옛 사건의 조작, 함구하는 주변인. 타 범죄소설들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어 중복이다 못해 뒷북치는 느낌마저 준다. 이 시리즈가 법정 스릴러물인데 주인공이 형사라는 건, 두 분야를 결합하여 새 장르를 보여주겠다는 뜻일 거다. 근데 결합은커녕 어느 한쪽도 제대로 못 살린 지못미가 되어버렸다. 주인공이 머리도 좋고 사격도 잘한다길래 멋진 액션씬이 나오려나 싶었는데 내내 조용하기만 했고, 재판 장면에서는 극적인 연출 하나 없이 잔잔하기만 해서 전혀 흥분이 안된다. 스릴이 전혀 없는데 억지로 분위기만 조성하려는 게 아주 그냥 괘씸하더라니까.


사실 사건이 그저 그렇더래도 인물만 잘 뽑으면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데에 별문제가 없다. 그런데 트레이시에게는 입체적인 매력과 개성이 전혀 없다. 이제 겨우 1편이라 해도 말이다. 하나의 캐릭터가 완성되기까지는 성장 배경, 성격, 신념, 약점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이런 조건들을 얼마나 변주하느냐가 관건인데, 이 작품은 뭐 하나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이 없다. 앞서 말한 억지 분위기 조성 중에 하나가 트레이시의 트라우마이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동생의 죽음이 내 탓이라는 평생의 죄책감이고, 그 아픔을 20년 동안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실종된 동생의 시신도 찾았고, 사건의 진실도 알아냈고, 조작된 오류들도 다 바로잡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리즈 1편 만에 트라우마도 해결되고 형사가 된 목적도 달성한 셈이다. 시리즈를 장기전으로 끌고 갈 요소가 벌써 다 사라졌는데, 안 그래도 재미없는 작품을 계속 봐야 하나 싶다.


이제 막 1편인데 러브라인까지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럴 짬이 있으면 사건과 인물 설정에나 좀 더 신경 써주시지. 동생 일로 결혼 준비하던 애인과 헤어지자마자, 변호사로 등장한 친구와 눈이 맞는다는 이런 설정은 누가 봐도 무리수 아입니까? 그리고 조작이다, 재판이다, 뭐다 해서 바쁜 와중에 하트 뿅뿅 거리며 연애질할 여유가 어디 있어 대체. 스토리가 딸리니까 이딴 걸로 분량을 채운다는 게 작가로써 글러먹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은 뭐고 진범은 누구인지 궁금해하지 않아도 된다. 워낙 스트레이트한 플롯이라 궁금하지도 않을뿐더러 알아서 다 알려준다. 출판사에서는 뭘 믿고 이 작품을 모중석 스릴러클럽에 추가한 건지 모르겠다. 내가 책 추천은 몰라도 비추천은 자신 있는데 이 작품은 정말 비추한다. 아무튼 잘들 봤지? 자기주장은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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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7-17 22:34   좋아요 3 | URL
내가 책 추천은 몰라도 비추천은 자신 있다 ㅋㅋㅋㅋㅋ 명심하고 이 책은 거르도록 하겠습니다~^^

물감 2022-07-18 00:04   좋아요 4 | URL
소중한 1표, 감사합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