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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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상을 받은 작품에 누구보다도 의심과 불신이 많은 사람이다. 기대감을 안고 읽는 타 독자들과 달리 나는 레이더망을 켜고 매의 눈으로 읽게 된다. 원래부터 이러지는 않았는데 수상작에 하도 실망해서 그게 그렇게 됐다. 이번에 읽은 퓰리처 수상작인 <올리브 키터리지>도 읽기는 잘 읽었지만 수상에 납득까지는 어려웠다. 퓰리처상은 해외 기준이니까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지만.


사전 정보도 없이 입소문만 듣고 책을 고르는 건 역시 고쳐야 할 습관이다. 당연히 장편인 줄 알았는데 내가 싫어하는 단편집이었고 그중 절반은 주인공인 올리브의, 절반은 지역주민들의 에피소드였다. 전반적으로 연민과 동정을 갖게 하는 내용들이고, 올리브가 나오든 안 나오든 분위기는 다 비슷비슷하다. 올리브가 다정다감하고 정 많은 캐릭터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활화산 불도저 같은 여인이어서 살짝 충격받았다. 단지 예상을 깨서 충격인 게 아니라, 차분하고 감성적인 공간과 성깔 있는 인물의 조합이 영 와닿지가 않아서다. 마치 스타벅스 매장에서 조용히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큰소리로 떠드는 빌런을 본 기분이랄까.


인생의 어디쯤엔가 다다르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더는 힘든 상황을 노력으로 이겨낼 수 없고, 세월을 악으로 거스를 수가 없을 때. 또 그것을 원치 않아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만 한다는 걸 인식하게 될 때에 인간은 한차례 허물을 벗고 성숙해진다. 그래서 배움에는 끝이 없고, 성장은 멈추는 법이 없는 건가 보다. 전해지지 않은 마음은 서로를 멀게 하고, 일방적인 헌신은 한쪽을 지치게 하고, 갑작스러운 부재는 남은 평생을 공허하게 한다.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아픔으로 적막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 아픔과 감정들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또는 언젠가 겪게 될 것들이어서 보는 내가 힘들다기보다 결국 삶이 다 그런 거겠지라는 심정을 갖게 한다. 이렇게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감정이 스며들 때마다 인류는 어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있다고 믿게 된다.


독자들, 특히 여성분들이 올리브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 건지 알겠다.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걸크러쉬 마인드인 올리브는 겉바속촉의 워너비 아이콘에 가깝다. 서양 버전의 욕쟁이 할머니 같은 올리브의 진짜 매력은 노인이 되고부터다. 원래도 그런 성격이었지마는 나이가 들면 더더욱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어지기 마련이고, 그래서 올리브는 보란 듯이 마이웨이를 외친다. 그러나 자신의 모난 성품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고, 그것이 삶에 이런저런 불균형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는 있기에 남모를 속앓이를 하게 되고, 그 같은 장면들에서 독자들은 이 철면피 여사에게 인간미를 느끼는 것이다. 내가 분석한 바로는 그러한데 뭐 아님 말고.


이 작품이 미국인들의 심금을 어떻게 울렸을지 대강 느낌이 오지만 그래도 수상 타이틀은 잘 모르겠다. 그보다 각 에피소드가 전부 올리브의 이야기였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퓰리처상 말고도 이것저것 수상한 작가라고 하니 좀 더 알아봐야겠다. 어쩐지 치킨 땡기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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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12-17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다시,올리브> 읽으려고 요즘 이 책 다시 읽고 있는데 2년전 읽었을 때는 안울었거든요. 근데 이번엔 조금 울었습니다.

올리브 정말 현실에서 제 주변에 있다면 싫어했을 아니 피했을 여자인데요.
소설이 좋은 점이 이런 비호감인 사람들 이해하게 해준다는 거에요.
물감님 말씀대로 제가 여자라 -나이 먹어가는 중년여자라 😭-더 공감이 가는거 같아요.
겉은 무뚝뚝하고 입만벌리면 독설을 내뿜지만 그래도 마음은 따뜻하다? 이래서 공감을 하는게 아니라 저렇게 살 수밖에 없는, 그냥 저렇게 태어나서 자신이 겪는 모든 외로움이 자업자득인 그런 사람을 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할까요? 올리브 보면서 뭐랄까 저 자신의 모습도 보이고 못된 인간의 가여움도 느끼게 되더라구요.

물감 2021-12-17 10:25   좋아요 2 | URL
저는 범상치 않은 사람을 볼 때마다 대 자연을 생각해요. 다양한 동물들이 섞여있어야 생태계가 잘 돌아가듯이 인간사회도 그렇지 않나 하거든요. 저도 올리브 같은 타입은 친하게 지내고 싶진 않지만 이런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봐요 ㅎㅎ 표현에 서툴러서 오해를 달고 사는 사람들을 자주 봐와 그런지, 올리브가 막 밉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나봐요. 근데 제가 아들 크리스토퍼 였으면 또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저도 <다시, 올리브>를 읽고 싶어서 이 책 먼저 읽었어요. 속편이 그렇게 좋담서요? 조금은 성정이 누그러진 올리브가 궁금해지네요^^

coolcat329 2021-12-17 10:17   좋아요 2 | URL
네 속편이 더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얼른 구입했죠 ㅎㅎ
HBO드라마도 네 편으로 있으니 추천합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 연기가 참 훌륭하더라구요.

물감 2021-12-17 10:20   좋아요 2 | URL
ㅎㅎㅎ 기회되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oolcat329 2021-12-17 0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여자들이 훨씬 좋아할 책 맞는거 같아요~☺

물감 2021-12-17 10:16   좋아요 2 | URL
본인이 올리브랑 닮아서 공감 가거나, 아님 올리브처럼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요 ㅋㅋ

다락방 2021-12-21 07: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올리브가 다정다감하고 정 많은 캐릭터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활화산 불도저 같은 여인이어서 살짝 충격받았다.‘ 에서 완전 빵터졌네요. 활화산 불도저같은..

그렇지만 이 책을 좋아하는 게 올리브랑 닮아서 공감 가거나, 올리브처럼 되고 싶어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에 쿨캣님도 말씀하셨고 다른 분들도 오히려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피하고 싶다, 안친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잖아요. 그보다는 이런 인물이 소설 속에서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볼 수 있어서 그 지점에 끌리는 것 같아요. 그 외에 올리브를 둘러싼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 삶까지도요.

물감 님 이 소설 읽겠다 하셨을 때 제가 분명 물감님은 안좋아하실 것 같다고 했었습니다... 하하.

물감 2021-12-21 09:30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이 미리 그렇게 말해주셔서 오히려 잘 읽었어요, 별점과는 별개로요 ㅎㅎ 저도 가끔은 이렇게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감수성이 당기곤 해요!

저도 외골수에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어서 사람들과 관계맺는 게 썩 쉽지않거든요. 그래서 올리브가 살아가는 방식이 나와 그렇게 다르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처럼 올리브도 상처받지 않으려 미리 차단하는구나, 늘 곁에 있는 외로움과 싸우고 있구나 싶어서 전 그게 가장 인상깊었네요~ 그래서 속편도 읽을거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