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스트셀러만큼이나 실망의 빈도수가 높은 것이 바로 문학 수상작이다. 여러 번 낚이고 보니 이제는 수상작 타이틀이 평범하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매번 기대하며 다시 찾게 되는 걸 보면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듯. 이번 책도 반신반의 심정으로 골랐는데 다행히도 중박 이상이었다. 요즘 날도 덥고 해서 짧고 굵게 읽을만한 책을 찾고 있었는데 때마침 딱 좋은 작품을 만났다. 어그로성 짙은 제목에 비해 내용은 의외로 순한 맛이다. 더우니까 리뷰도 짧고 굵게 쓰겠다.


노인은 백수 남녀 두 명을 데려다 개천에 있는 오리 사진을 찍어오게 한다. 저들 중 한 마리가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를 잡아먹었댄다. 황당한 지시와 달리 진지한 노인은 꼬박꼬박 일당을 챙겨주었다. 뜨거운 땡볕 아래 날마다 오리 사진을 찍는 두 남녀는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누가 봐도 미친 짓인데 돈은 필요하고, 성과도 없이 돈만 받아 가는 것 같아 양심이 찔린다. 그냥 노인을 속여서라도 이 미친 짓을 그만두고 싶은데 눈치 빠른 노인은 절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과연 고용주와 고용인 중 누가 더 미친 사람일까. 그리고 빌어먹을 오리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모든 직업이 그렇듯 작가에도 끼가 타고난 재능형과, 훈련으로 다져진 노력형이 있다. 자유분방한 전자의 글은 기발하고 통통 튀는 맛이 있고, 철저히 계산된 후자의 글은 스타일리시한 맛이 있다. 둘 다 좋지만 나는 후자 쪽을 더 선호한다. 솔직히 말하면 재능형들의 글은 참 쉽게 쉽게 쓴다는 인상을 줄 때가 많았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치열하게 쓰는 노력형들에 비하면 비교가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 경험과 데이터로 볼 때 김근우 작가는 전자 같은 후자였다. 먼저 작품의 특징을 보면 등장인물도 적고, 배경과 무대도 좁고, 주목할만한 사건이 발생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제한된 조건에서 재미를 끌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데 작가는 그것을 해냈다. 이런 하이브리드형 작가가 많으면 참 좋을 텐데.


이 간단명료한 서사의 작품은 보기보다 건드릴 게 거의 없다. 일단 두 남녀가 그냥 백수가 아니라 인생의 쓴맛을 본 루저라는 설정이 아주 좋았다. 이들이 만약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에 사로잡혀있었다면 흔한 전재가 되었을 것이다. 돈이 궁한 두 사람은 오리 사진을 찍는 일이 비정상인 줄 알면서도 다단계에 빠진 사람처럼 멈출 수가 없다. 뭔가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이 짓을 계속했으면 하는 두 마음의 대립이 작품의 포인트라 하겠다. 노인은 눈앞에서 자신의 고양이를 잡아먹었다는 오리에 대한 증오가 대단했다. 노망난 할배의 헛소리라 하기엔 너무도 강경한 노인의 태도는 복잡한 가정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내가 위독하자 노인은 사업을 아들에게 위임하였으나 아들은 제 욕심으로 사업을 말아먹었다. 노인은 아내와의 사별 뒤 아들 가족과 절연하였지만 아들은 노인의 재산을 노리며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찾아온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있을만한 사연인데 뜬금없이 고양이를 먹은 오리는 뭔가 싶은 두 남녀. 어쩌면 노인은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한 게 아니었나 하는 결론에 다다르자 더욱 난관에 부딪힌다.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타겟으로 삼은 것은 쉽게 말해 사건을 종결할 마음이 없다는 의미였다. 더군다나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방치 중인 노인의 집은 조만간 폐가로 될 것이었다. 일당만 받아 가면 그만이었던 고용인들은 슬슬 빡치기 시작하더니 시키지도 않은 집안일을 하기 시작한다. 가만두라는 고용주에게 대들면서까지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고용인들과, 그들에게 가족의 정을 느끼고 마음 문을 열게 된 노인.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사람만이 치유해준다는 흔한 교훈이지만 좋으면 그만이지 뭐.


허상을 쫓는 것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다,라는 것을 심어준 참 괜찮았던 소설이다. 처음 보는 작가라서 이력을 찾아보니 주로 다크 판타지물을 쓰신 분이네? 그런 사람이 이렇게 말랑말랑한 글을 썼다는 것도 놀라운데 수상까지 했다니 정말 능력자이다. 진짜 하이브리드형 작가가 맞다니깐.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여러분, 저 엊그제 백신 맞고 지금 골골대면서 글 쓴 거라 평소보다 허술해도 이해해주십셔. 여파가 어마어마합니다요. 털썩.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붕붕툐툐 2021-06-13 00:30   좋아요 3 | URL
아이쿵~ 백신 후유증 중이시군요! 얼른 가뜬해지시길!! 저도 수상작품은 실망할 때가 많은데도 수상작?하며 눈길 한번 더 가게돼요~ 그래서 작가라면 다들 수상하고 싶은 거겠죠?ㅎㅎ그러구보니, 저도 상 받고 싶네요~ㅎㅎㅎㅎ

물감 2021-06-13 00:56   좋아요 3 | URL
다행히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ㅎㅎ
사실 수상했든 못했든 고생한 작가들은 잘못이 없죠. 출판사와 심사자들의 과도한 찬사가 문제니까요😅 붕붕툐툐님은 알라딘에서 리뷰상 많이많이 받으실거에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