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계곡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0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0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름을 좋아하진 않지만 스릴러소설을 읽기에 이만한 계절도 없다. 요즘같이 축 처지는 날씨엔 속도감 있는 작품을 읽어줘야만 한다. 오랜만에 코넬리옹의 <해리 보슈 시리즈>를 꺼내들었다. 독서 슬럼프를 이겨낼 때 써먹으려고 아껴두고는 있는데 너무 읽는 텀이 길다 보니 앞뒤 내용들이 잘 생각이 안 난다. 근데 생각해보니 웃긴 게 읽으려고 샀으면서 읽기 아깝다고 모셔두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이제는 무조건 맛있는 반찬부터 골라 먹어야겠다. 전 세계 독자들이 찬사를 보내는 코넬리옹 작품이라지만 그 안에는 분명 중박도 있고 쪽박도 있다. 다 그러려니 하겠는데 점점 글에서 독기가 빠지는 걸 보면 확실히 작가가 나이 들긴 했다. 여튼 이번 편은 중박이었지만 읽는 재미는 충분했으므로 사소한 것들은 그냥 눈 감고 넘어가 주겠다.


LA 경찰을 은퇴하고 사립탐정이 된 해리 보슈. 그는 은퇴한 FBI 프로파일러의 죽음에 의혹을 느껴 사건을 수사한다. 피해자는 은퇴 후에도 오랫동안 어느 사건에 매달렸던 것으로 밝혀졌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한편 죽은 줄 알았던 범죄자 ‘시인‘이 귀환하여 FBI에 초비상이 걸린다. 시인의 살인 흔적과 단서를 쫓는 FBI, 죽은 프로파일러의 수사기록을 쫓는 해리 보슈. 양측은 상대편을 교묘히 이용하여 범인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정말 간만에 푹 빠져읽었던 작품이다. 먼저 작가의 스탠드얼론인 <시인>과 <블러드 워크>를 읽어야만 이번 작품의 깊이를 이해할 수가 있다. 사실 과거에 죽었던 악당을 다시 불러다 쓴다는 건 참 김빠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울궈먹기를 택했다는 건 작가 나름의 자신이 있었다는 말인데 다 읽고 보니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그 증거로 이 두꺼운 분량에서 범인의 등장씬은 10분의 1도 안된다. 그럼 나머지는 뭐냐. 해리와 FBI가 범인을 프로파일링하고 와리가리 하며 개고생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머리 쓰지 말고 그냥 읽으면 된다. 기대가 없어야 그나마 재미있으니 참고하시길. 앞서 말했듯 이번 편은 대체로 싱거웠지만 앙숙 관계인 FBI와 경찰이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먼저 경찰은 힘이 약하지만 수사가 비교적 자유롭고 행동력이 있다. 반면 FBI는 즉각 대처가 늦지만 강한 수사력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장단점이 명확한 양쪽이 각자의 입맛대로 상호보완을 해주므로 다소 질질 끄는 전개에도 속도와 텐션을 유지한다. 재미가 약하면 연출로 승부하는 참 대단한 작가이다. 


떠돌이 코요테였던 해리에게 딸이 생기고부터 그는 상남자의 허물을 벗고 아버지다운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딸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면서 생겨난 다양한 감정들이 수사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군도 적군도 인간적으로 바라보고 대하게 된 그였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사사로운 감정들은 경찰에게 있어 불리하게 작용하므로 마이너스 요인이 아닐까 싶겠지만, 사실 이 시리즈는 형사 해리의 투쟁보다 인간 해리의 방황에서 더 재미를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별거하는 아내와의 줄다리기나, 복직을 권유하는 후배와의 전화통화나, 은퇴 후 인생 2라운드를 보내는 동료들과의 만남 등등 사건보다도 사람을 대할 때에 그의 존재가 빛을 발한다. 하지만 자신의 복잡한 과거는 청산되지 않았고 현재의 처지도 바뀔 수가 없는지라 고독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해리를 따라다닐 예정이다. 극복을 한 건지 아니면 받아들이고 사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예전만큼 힘겨워하지는 않는 걸 보니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사건에 대한 리뷰는 없고 계속 딴 얘기만 하는 건 그만큼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앞으로의 시리즈 방향을 잡기 위해서 쓴 징검다리 같은 작품이다. 이번 편은 해리가 다시 복직을 해야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그가 형사로 살아갈 운명임을 강조하고 있다. 어서 공권력을 되찾고 예전처럼 슈퍼액션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면서 이만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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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6-01 2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그런 책 있어요~ 아껴두고 싶은 책. 독서슬럼프 직효약이라니 궁금하네요!ㅎㅎ

물감 2021-06-01 21:27   좋아요 1 | URL
ㅋㅋㅋ그런데 아끼다가 똥되겠어요. 이제는 그냥 다 읽으려고요😀 아마 알라디너들은 슬럼프일때 찾는 작가들이 다 있을거 같은데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