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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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독서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내 작품을 많이 읽는 거고 하나는 유명한 작품에 도전하는 것이다. 나의 청개구리 기질로 인해 남들이 다 읽는 책은 일부러 안 읽었는데, 그래도 회자되었던 작품들은 읽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읽은 책도 남녀노소 다 읽었던 김훈 작가의 대표작이다. 그의 명성은 질리도록 들었다. 일본에 하루키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훈이 있다면서. 그러면 더더욱 내 스타일은 아닐 터. 나는 필력보다 스토리텔링을 더 중시하거든. 의무적으로 읽긴 했지만 충무공의 칼이 부르는 노래를 이제라도 들어서 다행이었다. 이 책은 젊은 친구들이 넘기엔 버거운 허들이다. 산전수전을 겪지 않은 독자가 그의 생애를 과연 흡수할 수나 있을까. 이 작품의 리뷰를 이순신과의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옮겨본다.


* 해군으로써 먼 조상 수병님을 뵈어 영광입니다.
- 수군의 몸은 내 몸이며 내 몸은 수군의 몸이니 나 역시 자네에게 영광이다.


* 이 책은 ‘칼의 노래‘라는 충무공 일대기 입니다. 충무공이 직접 기록한 것처럼 쓰였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신을 기리며 적은 것이니 이견은 없다. 다만 신을 얌전한 고양이처럼 적었던데 본디 나의 성정은 점잖지 않다. 말투도 저서와 전혀 다르다.


* 똑같은 말투십니다. 충무공을 성웅이라 부르는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먼저 신은 충무가 아니다. 책을 살피면 알 것이다. 후세대가 떠받들 만큼 내 공로는 크지 않다. 신을 신격화하지 말라.


* 책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셨는데 정녕 임금을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 장수를 따르지 않는 부하가 없듯 임금을 거스르는 무인이 없다. 사정이 무엇이든 명령 불복종은 임금을 기만한 죄이니 형벌은 마땅하다. 이 몸의 고통으로 병사들의 목숨을 보전했으니 그거면 되었다.


* 출옥 후의 상황을 들려주십시오.
- 히데요시가 온다는 풍문으로 임금의 죽음을 면사 받은 몸이었다. 무인에게는 치욕이었으나 사지를 고를 수 있었으니 부름에 답하였다. 임금의 관심은 오로지 죽인 적의 머릿수였다. 수군에게 육군과 합류하라는 알 수 없는 명을 내렸고, 혼란 중에도 권위를 더 찾았다. 조선의 존망은 전쟁보다 군 내의 부조리에 있었고, 신의 적은 바다 건너에만 있지 않았다. 나는 적에게도 적이요, 나라를 갉아먹는 자들에게도 적이었다.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나의 칼은 울부짖었다. 아무리 적을 베어도 칼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 작품의 제목이 심정을 잘 대변하는 듯합니다. 전쟁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 적들과 내통하는 백성, 부하를 팽개친 탈영 장수, 부녀자를 겁탈하는 군인. 전쟁은 질서를 파괴했고 조선의 성곽은 안팎으로 무너져내렸다. 해상에서 적을 베면 육상에서 피난민들이 죽었다. 적에게 죽느니 나의 칼로 죽여달라며 애곡하는 백성도 보았다. 적은 백성을 포로 삼아 조선의 정보를 훔쳤고, 포로들을 적선의 격군으로 세워 야습해왔다. 포로 된 백성은 제 손으로 본국을 쳐야 했고, 나는 적선에 있는 백성까지 멸해야 했다. 죽음은 끝이 없었다. 적을 베는 나의 칼이 죽음까지 벨 수 없음에 통탄했다. 


* 충무공의 진짜 고뇌는 무엇이었습니까.
- 출옥 후 신은 더 이상 충신이 아니었다. 임금은 여전한 욕망으로 신을 주시했다. 그러나 명을 따르면 적에게 죽고 명을 어기면 임금에게 죽을 것이었다. 무사가 되어 임금의 칼에 죽을 수 없었다. 전쟁과 조정의 부조리함에 칼은 여전히 울었고 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민족을 구하려면 내가 죽어선 안되었다. 승리보다 백성의 안위를 위해 칼을 들었다. 군인에게 불필요한 연민이 버팀목이었다. 칼에 새긴 글자처럼 바다 위를 적의 시체와 피로 염했지만 다음날이면 바다는 흔적을 지워 태초로 돌아갔다. 적도 죽고 부하도 죽고 민족도 죽었다. 거듭된 승리가 허망함을 밀어내지 못했다. 위관들처럼 신도 헛것을 쫓았는지 모른다.


* 마지막 전투에 대해서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 죽음을 예견했더라면 진즉 진린을 베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적선의 침투도 없었을 것이고 무수한 죽음도 막았을 터. 바다에서 자연사를 맞았으니 사지로는 썩 나쁘지 않았다. 다만 신의 죽음으로 장졸들이 동요되어선 안되었다. 나의 말이 지켜졌는지는 알 수 없다. 백성에게 된장을 나눠주고 온 게 다행이었다.


* 끝으로 이제라도 유언을 남기신다면.
- 이미 신의 일기로 적었으니 유언은 됐다. 다시 말하지만 신을 성웅이라 일컫지 말라. 왜군과 싸우다 죽은 수군의 하나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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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1-02-11 08:16   좋아요 2 | URL
물감님의 올해 독서 목표의 첫번째 과녁이었군요. 명성은 익히 들어보았으나 아직 안 읽어본 책입니다. 쓰신 리뷰를 보니 제 취향은 아닐 듯하네요.^^; 한 사람의 일대기 형식으로 캐릭터에 집중한 책일 듯은 하지만 총 만큼은 아니라도 피 질질 전쟁은 냄새부터 영~~ㅎㅎ 그나마 감질나는 독서 중에서 필이 꽂히지 않으면 유명한 작품이래도 손이 잘 안가더라구요.

평전 형식의 책은 저자의 관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크다는 점이 위험한 매력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 깊이가 있는 독자라면 자신의 생각과 저자의 것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느낄 텐데요,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오류가 있는 각인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으니까요. 물감님께서도 그런 점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버거울 수 있다고 우려하신 거겠죠? 네가 그냥 커피라면 산전수전러는 티오피?ㅋㅋㅋ

예나 지금이나 내부의 적이 더 무섭네요. 리뷰에 쓰신 내용만으로도 이순신의 강한 성정, 신념, 당시 상황이 그려집니다. 명령 불복종 어쩌구와 된장 얘기를 보니 테스형이 떠오르네요.ㅎㅎ 그런데 말입니다ㅋ ‘전사‘도 ‘자연사‘라 말할 수 있는 건지요?^^;;

물감 2021-02-11 08:41   좋아요 3 | URL
저도 제 스타일은 아닌 책이었는데요, 초중반까지는 이순신의 고백록처럼 진행되다가 갈수록 특파원의 생중계처럼 공기가 변합니다. 처음처럼 분위기를 유지했다면 별5개가 아깝지 않았을건데요ㅎㅎ

한국사에 문외한인 저에게도 눈에 거슬리는 설정이 보이더라고요. 작품을 위해서 그런것이려니 하다가도, 말씀하신대로 각인될 수 있겠더군요. 그리고 평탄하게 살아온 독자가 이순신의 고뇌를 알면 얼마나 알까 싶어요. 저도 마찬가지죠^^

자연사는 작중 이순신이 직접 한 말입니다. 책을 읽어야만 공감하는 대목이죠. 된장도 그렇고요ㅎㅎ 그나저나 김훈 작가도 필력이 대단하네요. 순수하게 글맛이 당겨서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