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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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개인 정보 피해를 입고 민원을 거는 고객 전화를 받곤 한다. 가장 많은 민원은 명의 도용으로 회원가입이 되었다는 것, 두 번째는 아이디가 해킹되어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런 고객들은 하나같이 본인은 잘못없다고 하는데 분명히 어딘가에서 개인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피해자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알다시피 나 혼자 운전을 잘해봤자 소용없다는 사실. 여러 온라인의 피해사례 중 가장 큰 이슈라면 자살 사건이 아닐까. 몇 년 전, SNS 계정에 본인의 노출 사진을 올리던 아이돌 가수가 악플들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악플러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거 보통 심각한 게 아님을 느꼈었다. 이 같은 온라인 문제들과 위험성에 대해 스릴러소설로 경고하는 제프리 디버의 작품을 읽었다. 지금까지 읽은 디버 작품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스타일리시했다. 증말 팬심을 제외하고 리뷰를 쓰기가 불가한 그레이트 작가다.


도로변에 십자가가 생길 때마다 발생하는 살인 미수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게임 중독인 남학생의 행방불명. CBI 요원 캐트린 댄스는 한 파워블로그를 통해 소년이 용의자가 된 경위를 파악한다. 자신을 마녀사냥한 블로그 회원들을 노리는 소년의 계획을 알고 다급해진 댄스 요원. 한편 1편에서 환자의 안락사를 도운 게 간호사인 댄스의 모친으로 밝혀져 대중의 비난을 받는 댄스와 가족들. 소년을 찾기도 바쁜데 가족도 보호해야 하고 오해도 풀어야 하는 초난감한 상황. 여태껏 국가와 시민에 헌신해온 그녀는 이대로 모두의 숙적이 되고 마는가.


이번 편의 주 무대는 가상세계, 즉 인터넷이다. 카페, 블로그, SNS, 이메일, 메신저 등등. 모든 온라인 활동 기록이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고 위협하는 화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삶의 질이 엄청나게 향상되었지만, 반대로 입을 수 있는 피해의 크기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 책은 온라인의 여러 가지 위험성 중에서 마녀사냥 문제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악플러들이 그럴싸한 거짓 정보를 올려놓으면 음지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들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그러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것이고, 더 이상 진실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중요한 걸까.


보이지 않는 온라인 상대 앞에서 댄스의 동작학은 무용지물이었다. 거기에 모친의 일까지 겹쳐서 하는 일마다 브레이크가 걸렸다. 소년의 범죄를 멈추기 위해 댄스는 블로그의 중단을 요청했으나 블로거는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협조를 거절했다. 악플러들이 피해자를 양산하는데도 자유를 들먹인다면 소년의 이유 있는 살인도 타당한 범죄가 된다. 책임지지도 못할 행동에 무슨 자유가 있고 권리를 외친단 말인가. 블로그가 주는 권력에 취한 블로거는 위급 상황 중에도 자신의 목숨보다 블로그에 올릴 안내문 생각부터 한다. 정신 나간 사람 같겠지만 현실은 이것보다 더하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야 당연한 건데, 이 블로거처럼 뭐가 우선인지 분간도 못한다면 그야말로 인터넷의 폐해일 것이다.


작가는 가상세계의 범죄를 현실로 연결하여 개인의 부주의하고 무책임한 행동이 대중의 폭력을 낳고, 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을 지적했다. 그것이 현대에는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보니 다들 무감각해져있다. 그래서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이 작품을 쓴 게 아닐까. 근데 사실 이런 건 디버의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껏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룬 적은 많았어도 그것을 사회적 이슈로 주제 삼지는 않던 디버였는데 이번에는 정치/사회의 색이 짙은 편이다. 기존의 디버 스타일을 원했던 팬들에게는 다소 어색하고 낯설고 시큰둥할 수도 있겠는데 내게는 작가의 새로운 매력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믿어야 할 사람을 의심하고 엉뚱한 사람을 믿어버린 결과 댄스의 모녀관계는 금이 가고 피해자는 속출했다. 그렇게 반복된 실수와 후회 속에서 자신을 넘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 깨닫고 중심 잡는 법을 터득한 댄스. 전편에 비해서 활약이 대폭 줄었지만 수사관으로서, 또 개인으로서 급성장을 보여준 작품이다. 스릴러소설에서 사건과 상황이 바퀴 역할이라면, 인물의 갈등과 심경 변화는 엔진 역할을 하는데 제프리 디버는 이 균형을 기가 막히게 잘 잡는다. 난장판인 사건과 난도질된 심정 가운데 피어나는 감정의 교차...


인간의 악을 연구하는 정유정 작가는 인간의 심연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빛이 들지 않는 숲이 있는데, 그곳의 야수들이 어떤 계기로 봉인해제가 될 때 인간의 폭력성이 깨어난다고. 그 계기는 타인에 대한 시기나 질투일 수도 있고, 자기방어에서 나올 수도 있다. 아직도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범죄자가 되는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1차원적인 논리대로라면 프로게이머는 죄다 잠재적 범죄자란 말인가. 정유정 작가의 말대로 폭력적이게 된 계기를 살펴야 한다. 소년은 온/오프라인에서 마녀사냥을 하지 않았나. 그렇게 소년을 향한 대중의 화살은 고스란히 대중에게 돌아와 모두를 떨게 했다. 소년의 두려움이 대중의 몫으로 된 것은 결국 인과응보였음을 잊지 말자. 인간을 죽이는 괴물과 그것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 중 누가 더 잘못했을까. 잘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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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1-02-03 0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에 글을 올리다 보면 묘해질 때가 있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을 경계로 두 개의 세상에 접속해있는 기분이랄까요. 인터넷은 손끝으로 자신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세상인 거죠.
글을 올릴 때마다 종종 생각해요. 인터넷으로 만들어내는 세상이 실제와 얼마나 가까울까. 이게 진짜 나인가. 내가 바라는 모습의 나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걸까. 진실인 듯하지만 진실이 아니기도 한 공간. 그 이중성과 몇 번의 클릭만으로 삭제가 가능하는 점에서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기분이 들어요.

마녀사냥 역시 불안정한 정보로 둘러싸인 외곽에서 출발해서 몇 번의 재가공을 거치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최초로 재가공한 이의 잘못일까, 도미노로 조금씩 툭툭 던지는 의견들로 힘을 보탠 사람들의 잘못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불안정한 성곽 자체를 지은 이의 잘못일까요. 쓰러지기 직전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사람만의 잘못은 아닐테니까 사실 콕 집어내기가 애매하거든요.

정유정 작가는 성악설의 입장이군요. 숲속 야수의 봉인해제로 비유한 내용에 공감이 갑니다. 소설에서 말씀하신 소년의 본성보다 계기에 무게를 두어야한다는 입장이군요. 대중의 화살이나 프랑켄슈타인의 창조 행위도 마찬가지 맥락이구요.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누구도 내 기준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요.^^

물감 2021-02-03 21:52   좋아요 1 | URL
방금전까지 댓글 길게 썼는데 튕겨서 날라갔어요ㅜㅜ 어우 스트레스...

독서활동은 남한테 잘보이려는 의도땜시 온전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고픈말 다 하는 저역시도 그렇고요ㅋㅋ

나비종님도 악에 관심이 참 많으셔요^^ 계기에 대한 관점이 신선해서 적어봤어요. 남을 판단하지 말것,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반대로 남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는 말도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