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2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박승후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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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입문하는 경우 무협/판타지소설 아니면 미스터리/추리소설이 가장 많을 텐데, 후자 쪽이면 다들 일본 문학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누가 일본 소설부터 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리된다. 그렇게 일본 소설만 주구장창 읽다 보면 갑자기 확 물리는 때가 오는데 이유인즉슨 재미를 떠나 글이 너무 가볍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내 소설을 읽자니 끌리는 게 없고, 서양 소설은 좀 부담스러웠던 그런 때가 있었다. 일본의 다른 장르를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다처럼 고요하고 잔잔했다. 그 때문에 괜찮은 작품도 점수 주기는 애매할 때가 많았다. 그나마 만족스러운 건 일본 작가들의 사회소설이다. 아무래도 민감한 사안을 다루다 보니 글이 가벼울 수가 없고, 주제의식과 메시지 전달을 위해 독자와의 소통도 자주 시도한다. 그래서 다른 건 안 봐도 사회소설은 즐겨본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별 다섯 개 플러스알파다. 


유키노는 애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그의 집을 찾아가 방화 사건을 일으킨다. 이 일로 남자의 아내와 두 딸이 죽었고, 유키노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 변명도 저항도 없이 죄를 인정하는 그녀를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드는 교도관. 어째서 사형은 살인죄에 해당되지 않는 걸까. 그리고 유키노는 어째서 사형 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화두가 뚜렷한 기존의 사회소설과는 다른 종류의 작품이었다. 하나하나 진실이 밝혀질수록 사형수를 옹호해야 할 것만 같은데, 그렇다고 저지른 범죄가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당사자가 사형 받기를 원한다. 정녕 그녀는 이대로 죽어야만 할까. 재판장은 그녀의 인생사가 적힌 사형 판결문으로 사형수가 죽어마땅함을 공포한다. 하나같이 전부 왜곡된 사실뿐이었으나, 재판장이 그렇다 하면 거짓도 진실이 되었다. 이제 판결문의 내용이 작품의 목차가 되어 각 사건과 연관된 인물들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무죄의 죄를 짊어지게 되었는지도.


그녀의 죄목은 부모로부터 시작되었다. 세상은 호스티스가 무책임하게 그녀를 낳은 것부터가 죄의 신호탄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죄송하다던 그녀였지만, 호스티스의 딸로 태어난 건 결코 그녀의 죄가 아니었다. 유키노를 낙태하려던 엄마를 갑자기 거절한 산부인과 의사의 변심이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재판장은 양부의 학대도 언급했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어 미쳐버린 새아빠는 술 먹고 유키노를 손찌검한다. 그 단 한 번의 만행이 유키노가 줄곧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자라온 배경으로 둔갑해있었다. 또한 중학시절, 일진들과 어울리며 강도 사건을 벌인 것도 사형의 이유였다. 사실은 절친을 위해 일진들과 맞서다 강제로 엮였던 것이고, 절친의 강도죄를 대신 뒤집어썼던 거였다. 사건의 내막들이 온통 왜곡되고 부풀려져서 억울할 법도 한데도 해명하지 않는 유키노. 이렇게 진실을 알게 될수록 독자는 동정심보다 그 일관된 태도에 더 관심이 생긴다. 미끼가 제법 맛있네요, 작가님.


성인이 된 유키노는 한 남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늘 버림받고 살아온 그녀는, 그가 온갖 쓰레기 짓을 해도 자신을 받아줬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나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유키노가 방화로 복수했다는 것이 메인 사건의 전말이다. 이로써 남자는 여자한테 잘못 걸린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 유일하게 남자의 만행을 알고 있던 친구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어쨌거나 유키노는 무고한 사람을 해쳤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왜곡된 내막이 있다는 의심이 들지만 독자는 작가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건 목격자들도 있고, 본인도 제 잘못이라고 하니까. 이렇게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작가의 내공에 다 같이 물개박수를.


작가의 밀당은 계속된다. 유키노가 매스컴을 타고부터 소꿉친구 두 남자가 등장한다. A는 변호사가 되어 가진 능력으로 수감 중인 유키노를 꺼내고자 한다. 그러나 친구의 제안과 설득을 깡무시하는 그녀. 반면 유키노처럼 풍파 속에 루저로 살아온 B는 그녀의 일기장에서 힌트를 얻는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싶었던 유키노의 마음을 모르는 A의 설득이 실패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B는 유키노가 단순한 인과관계로 사형을 원한 게 아니라,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게 이유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B도 그 입장이었다가 겨우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으므로. 그제서야 법정에서 그녀가 B에게 보인 미소의 의미를 알겠더군. 자신이 누명을 쓸 수 있게 해줘서,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일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는 인사가 아니었을까.


등장인물이 온통 강자와 약자의 수직관계로 되어 있다. 약자는 매번 강자에게 짓눌리고 휘둘렸으며, 그 약자도 강자가 되면 똑같아지곤 했다. 그런 식으로 유키노를 아꼈던 사람들이 전부 그녀의 위기를 보고도 방관했었고, 이제 와서 자책하며 후회 중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녀의 삶을 망쳐버렸단 사실이 가장 아이러니하다. 정작 그녀를 괴롭혔던 인물들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다. 여튼 결말은 이변 없는 새드 엔딩이다. 유키노의 죽음이 방관자들 때문만은 아니니까. 오히려 해피엔딩이었으면 몰입이 다 깨지고 여운도 안 남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녀가 웃어준 단 한 사람, B를 통해서 A의 할아버지인 산부인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 사람에게라도 큰 사랑을 받는다면 그 아이는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이 말이 작품을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더럽게 꼬여버린 인생에도 후회한 점 없었던 건, 늦게라도 참된 사랑을 받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그래도 괜찮은 삶이었다고 여긴 게 아닐까 한다. 진짜 이 책은 독자 스스로 문제 만들고 답을 찾게 하는 뭔가가 있음. 이러다 체하겄습니다요.


지금도 나는 유키노가 죽어야 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유를 발견하신 분은 댓글을 부탁드린다. 요즘 화제인 정인이 양부모나 조두순을 사형하라는 네티즌의 청원이 뜨겁다. 그게 이뤄지든 아니든 반대할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통해 사형 또한 살인이요, 부추기거나 방관하는 입장도 같은 행위란 걸 알게 되었다. 사회소설이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들을 알게 해줘서 좋기는 한데, 워낙 후유증이 커서 연달아 읽을만한 장르는 못된다. 그래서 다음은 개운하게 스릴러나 한편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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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1-02-03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으로 읽었던 소설이 뭐였더라.. 잘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50권 한 질로 된 동화책을 사주셨는데 몇 번씩이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무협이나 판타지는 읽어본 적이 없고 추리소설은 루팡이나 셜록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일본 문학은 제게는 여전히 생소한 장르입니다. 글의 적절한 무게라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무거워도 거부감이 들고 너무 가벼워도 허탈감이 들어버리니 말이죠.
사회소설은 부담감에 쉽게 손이 가지 않지만 <댓글부대>에 몰입해서 빠져들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사형 제도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지금은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건 막상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게 된다 해도 이런 입장을 견지할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 떨어진 시각에서 판단한다면,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죽이는 데 100%의 정당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곡된 사실로 이루어진 진실이라는 문구를 보니 <인간짐승>의 재판 장면이 떠오르네요. 결론을 정해놓고 짜맞추어가는 거짓의 퍼즐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잖아요. 오히려 진실이란 게 너무도 허술해보이구요. 인간이란 존재는 원래 모순투성이라 그런 걸까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싶었다는 말이 마음아프네요. 스스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없었던 주인공의 마음은 얼마나 황량했을까요.
한 사람에게라도 사랑을 받았다면 적어도 그녀가 스스로를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생명존중교육을 받으면 많은 강사들이 경험담으로 하는 말이거든요. 생명의 전화를 받으면서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을 막았던 경험담을 얘기해주면서 한 사람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거든요. 세상에 사람들이 얼마나 넘쳐나는데 나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눌 단 한 사람을 찾지 못한다는 게 이리도 어려운 걸까요.

저는 여주인공이 죽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죽고 싶었던 이유만 있었던 거라고. 죽음에 이유를 붙일 수 있는 이는 당사자 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생각이 많아지는 밤입니다.

물감 2021-02-03 22:38   좋아요 1 | URL
어릴때 읽은 동화책은 제외입니다. 저도 많이 읽어서 ㅎㅎㅎ 일본소설의 가벼움은 글만이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도 포함입니다. 잔잔한 바다로 표현한 것은 텐션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책이 많았어요. 순문학 같은 경우라면 모를까, 그런 성격이 아닌 장르들도 좀 그래요. 같이 읽었던 ‘모래 그릇‘의 마쓰모토 세이초는 어떠셨나요? 저는 저음 구간에서만 노래부르는 가수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반대로 일본에서는 한국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지네요^^

내가 피해자라고 가정해보면 사형제도를 절사반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나를 죽도록 괴롭게 한 가해자가 와서 용서를 구한다면 난 용서 못할거 같거든요. 근데 사형을 생각하면 죄수보다도 집행자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 때문에 사형제도를 반대하게 되었어요.

여주인공은 전장에 나가는 마음으로 죽음을 원했던 게 아닐까요.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니 독자가 생각해볼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여튼 너무 무거운 작품이었지만 지극히 제 취향이었습니다^^

나비종 2021-02-03 23:26   좋아요 1 | URL
동화책, 가볍게 까인 건가요?ㅋㅋ 생각해보니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일본소설을 몇 권 읽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제목도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가볍긴 가벼웠나 봅니다.ㅎㅎ
헉! 여기서 <모래그릇>이! 꾸역꾸역 읽느라 체할 것 같았는데 스르르 빠져나간 모래 글처럼 막상 모래알갱이 몇 개의 꿉꿉한 존재감만 남았던 그 소설이요?ㅋㅋ
그러게요. 일본에서 바라본 한국 문학의 빛깔이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그러네요. 제가 피해 당사자라면 더더욱 그렇겠습니다.
집행자의 입장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물감님의 이유에 공감이 가네요.

여주인공이 죽음을 원했던 이유는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의견을 말하기가 어렵네요.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하시니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상황인가 봅니다. 무거운 작품일 것 같아서 나중에라도 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읽어보지도 않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말한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러워 물감님의 공간에서 주로 함께 읽은 책에 관해서만 댓글을 적으려고 했는데요, 어쩌다 이 리뷰를 몰입해서 끝까지 읽어버리는 바람에^^;
무슨 글이든 일단 읽었으면 저의 생각을 적기로 했거든요. 정성껏 리뷰를 써서 생각거리를 제공해주신 분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현으로 한 줄이라도 소감을 남겨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 ㅋㅋ

대대댓글은 네버엔딩스토리로 이어질까 자제하는 편인데요, 적어주신 대댓글의 첫 단락에서 물음표를 보는 바람에 그게 또 직업병이라 질문이 들어오면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줘야 마음이 편안해져서요, 쩝. ‘답변: 그지 같았습니다.‘ 이 한 마디가 저토록 길어졌네요^^;;

*가래떡 댓글의 튕김으로 인한 빡침을 방지하는 법
: 일단 댓글저장을 하기 전에 블록설정을 하여 복사를 해놓습니다. 나물 모임의 댓글에서는 항상 이런 방법을 쓰지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