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나벨 최후의 자손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최욱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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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읽은 책의 장단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 건강한 독서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어디가 어떻게 좋았는지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무엇이 왜 별로였는지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대다수 독자들의 아웃풋에는 장점만 있고 단점은 빠져있다. 물론 장점만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어떤 디테일도 없이 그저 좋아요, 별 5개밖에 모르는 앵무새들은, 자신을 속이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지는 않나 되돌아보자. 나한테 별로라고 해서 남들도 그럴 거라는 법은 없으나, 습관처럼 쓴 호평은 글에서 다 티가 난단다. 가령 인터넷으로 옷을 샀다고 하자. 분명히 좋다는 구매평 뿐이었는데 막상 보니까 싸구려 재질에다 색상도 화면과 다르다면 기분이 어떨까. 이건 판매자보다도 구매자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걸? 단점을 왜 아무도 말 안 하나 싶을 거고.. 나는 이런 배신감을 타인의 서평 속에서 자주 느낀다. 특히 이렇게 평범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을, 문학상 받았다는 이유로 마구마구 빨아대는 앵무새들에게 느끼는 배신감이란...


먼저 이 책은 3단 액자식 구성이다. 첨단 기술이 날로 발전해가는 어느 미래 시점, 한 소설가가 기자에게 비밀을 들려준다. 그는 오래전 외조부에게 물려받은 회중시계를 고치러 찾아간 시계 장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국내외에 좀비가 창궐했던 몇십 년 전, 노인은 생계문제로 시계공을 때려치우고 군에 자원입대하여 좀비들을 제거한다. 그러나 역병은 수도까지 집어삼켰고 더는 가망이 없다고 느낄 때쯤, 도심 한복판에 세워지는 피라미드 건물. 그곳에서 좀비의 진실을 듣게 된 노인은 토악질 장인이 된다. 우에ㅔㅔㅔㅔ엑.


이 책이 요즘에 나왔대도 수상작이 될 수 있었을까? 좀비 사태를 국가의 음모론으로 확장시킨 작가의 상상력은 좋았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성공했던 건, 조선과 좀비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재의 만남을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그니까 뻔한 장르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만한 각색이 필요한데 이 책은 어떠한가. 전형적인 좀비물의 절차를 따라밟는다. 좀비 창궐, 계엄령, 시민 폭동, 군대 진압. 여기까지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전개라 치자. 이후에도 위험지역에 가서 백신 들고 컴백한다는 흔한 내용이다. 이것저것 시도는 많이 했는데 내공이 부족하다 보니 표현이나 연출 면에서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 단편으로 시작했다가 살을 붙여서 장편으로 만든 거라 미흡할 수밖에 없었겠다.


장르소설의 차별화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독특한 소재나 배경을 활용하는 것. 둘째는 사건 중심을 인물 중심으로 옮기는 것. 전자는 드라마 ‘킹덤‘을, 후자는 정유정 소설 ‘28‘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 작품은 후자를 시도했는데 애석하게도 효과는 미미했다. 먼저 노인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평범했다. 떳떳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전제로 한 내용이므로 근사한 액션이나 강철 마인드 따위는 빠지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짊어진 책임감에 비해 멘탈과 비위가 약해서 이야기를 끌고 가지 못한다. 시계공 시절엔 표현 한번 못하고 짝사랑녀를 친구에게 뺏겼고, 군 생활 동안 친구가 만든 시계를 붙들고 자책하며 살아왔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한다. 피라미드의 등장으로 주변 공기가 싹 바뀌었으나 우리의 유리멘탈 주인공은 여전히 우웨ㅔㅔㅔ엑... 진짜 적당히 좀 해라.


피라미드는 백신 연구소였고, 이곳의 주인은 노인의 옛 친구였다. 그는 좀비들의 지능과 번식을 알아내어 그들 위에 군림할 계획이었으나, 갑자기 피라미드를 공격하는 좀비들에게 먹혀버린다. 노인은 완성된 백신과, 좀비화된 친구의 아내를 데리고 군에 복귀를 마치며 시점은 현재로 넘어온다. 도시를 점령한 대기업에 시위하는 자들과 그들을 내려다보는 회장이 나오는데, 흡사 좀비들과 노인의 친구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나마 결말부의 연출이 죽어가던 작품을 살렸다. 좀비물이 언제부턴가 현실을 반영하고 점검하는 하나의 상징처럼 되었는데, 주제의식이 다 비슷하기 때문에 내용 또한 중복일 때가 많다. 이건 장르 소설가들의 평생 숙제일 듯. 아직도 차기작이 없는 듯한데, 열심히 내공 쌓아서 멋진 작품으로 돌아와 주시길 바라바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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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1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 2021-01-21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퍼갑니다!!

물감 2021-01-21 08:45   좋아요 1 | URL
네? 음... 무엇을요..?

미미 2021-01-21 08:50   좋아요 3 | URL
이 글이요ㅋㅋㅋㅋ
첫번째 문단이 좋아서요! 그냥 더 읽어보겠단 의미예요^^

물감 2021-01-21 09:05   좋아요 2 | URL
아 네네ㅎㅎ고맙습니다.
건강한 독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