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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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가수 이효리가 후배 가수와 코인노래방에서 노래한 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은 이슈가 있었다. 하필 그때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하냐 마냐 할 때라 전 국민의 예민함이 최고조였었다. 그날로 이효리는 대역죄인이 되어 대중의 돌팔매질을 맞아야만 했다. 근데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 게 그녀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만한 범죄라도 저질렀나? 그게 다 같이 물고 뜯을만한 일이었냐는 얘기다. 물론 나도 이효리의 행동이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똑같은 잘못이라도 남들보다 더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란 게 안타깝기는 했다. 내가 보기에 그 사건은 잘못이라기보다 실수에 가까웠다. 잘못을 했으면 질책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실수한 걸 가지고 똑같이 그러는 건 절대 성숙한 행동이라 볼 수 없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연예인만큼이나 꾸준히 욕먹는 대상이 바로 엄마들이다. 우리 사회가 바라는 오늘날의 엄마는 조건이 엄청 까다롭다. 맞벌이도 해야 하고, 내조도 잘해야 하고, 애들 교육도 신경 써야 하고, 똑똑하면서 조신해야 하고, 외모 관리에 자기개발까지 해야 한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도마 위의 생선이 되어 난도질당하는 걸 보면 요즘 엄마들이 얼마나 극한직업인지 알 수 있다. 욕먹어도 싼 맘충들이야 그렇다 쳐도 멀쩡한 엄마들은 좀 너그러이 봐주자. 암튼 이번 책은 잠깐의 일탈로 전 국민의 마녀사냥을 받게 된 철부지 엄마들의 이야기이다. 육아에 지친 맘 카페 회원들이 기분전환을 위해 술집 모임을 가진다. 실컷 즐기고 있는데 한 싱글맘의 아기가 없어져 난리가 난다. 이 사건은 매스컴을 타고 미국 전역에 퍼졌으며, 회원들은 엄마 자격 미달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수치심보다도 싱글맘에 대한 죄책감이 더 컸던 엄마들은 무능한 경찰을 대신해 직접 아기를 찾아 나선다.


재미도 없었지만 다 떠나서 너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아기 엄마들만이 느끼는 감정과 걱정들이 작품의 베이스를 이루어서 전 연령층이 즐길만한 작품은 아닌듯하다. 엄마가 아닌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한다는 말이 아니다. 독특하게도 사건 중심이 아닌 감정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독자가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허용치를 넘겨서 짜증 유발과 반쯤 포기 상태를 가져다준다. 가장 실망한 점은 잃어버린 아기를 향한 엄마의 애절함보다도 각자의 개인사에서 오는 패닉의 감정들로 분량을 잡아먹은 것. 발 동동 구르는 엄마들의 심란함이 처음엔 확 와닿았으나, 가도 가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과 캐릭터들한테 확 질려버렸다. 책 뒤표지의 소개 글에는 아기의 납치 사건과 자격 없는 엄마들에 대한 내용으로 나와있다. 근데 막상 읽어보면 사건 수사에 대한 내용도 부실하고, 자격 없는 엄마들에 대한 비난 장면도 별로 없다. 결국 ‘퍼펙트 마더‘는 평범한 엄마들의 사건 수사력을 말한 게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휘청이던 엄마들이 마침내 중심 잡고 일어선다는 걸 의미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스릴러보다 성장소설로 분류되어야 했다.


어떤 장르의 소설이든 메인 사건의 내용이 뼈대를 이루어야 한다. 서브 사건이 더 부각되거나 인물 위주로 흘러가면 어쩔 수 없이 골다공증이 생기게 된다. 이 책은 사건이 터졌는데도 엄마들의 일상과 고충에 대한 장면만 돌아가며 나온다. 세 엄마는 각자의 개인사와 가정사에 육아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지옥을 체험 중이다. 언론에서는 아기를 버려두고 술집에 놀러 간 자신들을 매일같이 저격해대서 편안할 날이 없다. 이번 일로 직장과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받고, 생계와 사회생활에도 타격을 입는다. 제대로 꼬여버린 일상은 회복이 불가했으나 아기를 생각하며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철없던 엄마들은 아기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을 깨닫고 배우면서 성숙해져간다. 결과만 보면 감동적이지만 과정은 감동 파괴 그 자체다. 누구 하나 멀쩡한 사람이 없는 말 그대로 미친 라인업이다. 읽다가 피 말려서 돌아가실 뻔했다. 여하튼 아기 실종 사건과 연관도 없는 엄마들의 개인사가 분량을 다 잡아먹고 있는데, 누가 봐도 배꼽이 더 큰 상황 아입니까? 광고에 낚였다고 생각되는 건 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읽으면서 가장 의아했던 건 싱글맘의 비중이 이상하리만큼 적다는 거였다. 직접 뛰어다니는 장면도 없고, 언론의 주목을 받아 힘들어하는 장면도 잠깐뿐이다. 가장 비중 있어야 할 인물인데 작가는 그녀를 드러내지 않고 계속 감춰두고만 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아기를 찾고 싶어 하지 않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게 느껴졌다. 아기를 잃고도 차분하기만 한 그녀의 독백에서도 수상함을 느꼈는데, 역시나 여기에 작가가 반전을 심어놓았더군. 근데 솔직히 반전이라기보다 페이크에 가까웠다. 독자가 방심하고 있을 때 짠! 하고 카드를 꺼내서 상황을 뒤집는 게 보통인데, 이 책의 반전은 ‘짜잔!‘이 없다. 조용히 카드를 꺼내기 때문에 상황이 역전되었다는 기분이 안 든다. 겨우 김빠진 콜라를 먹이려고 정성껏 공들인 작가님을 어떤 식으로도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이 작품이 ‘걸 온 더 트레인‘, ‘나를 찾아줘‘와 함께 삼대 도시 여성 스릴러라고 하더군. 어쩌다 보니 세 권 다 읽었는데 전부 별로였다. 내 취향도 참 한결같구나. 여튼 올챙이 시절 기억 못 하는 개구리들은 반성 좀 하자. 다들 얼마나 완벽하길래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상처 주는 거지? 남의 약점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게 그렇게들 좋은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생명을 끊기도 한단 말이다. 소설에서는 사건 중심으로 진행되는 게 맞지만, 현실에서는 인간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게 정답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도 제대로 낚이고 말았는데, 언제쯤이면 작품 선별하는 안목이 생기려나. 테스형,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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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11 1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에 동의.
2문단에도 동의. 엄마가 슈퍼우먼인 줄 알아요. 그래서 엄마들 중 괜한 죄의식을 가진 이들이 많아요.
4문단의 이 문장에 빵터짐. - ˝읽다가 피 말려서 돌아가실 뻔했다.˝
끝문단의 이 문장. - 내 취향도 참 한결같구나.
재밌는 표현이라 웃었어요. 한결같으니 취향인 거죠.

님의 글을 읽으니 저는 오히려 이 책을 읽고 싶어지네요. (이건 또 무슨 반전인지...)하하~~
재밌게 읽고 갑니다. 지루한 곳이 한 군데도 없는 리뷰입니다.

물감 2020-11-11 13:38   좋아요 2 | URL
지루한곳 없는 리뷰라니, 과찬이십니다ㅎㅎㅎ
이책의 엄마들은 잘못과 실수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라 무조건 너그럽게 봐주자 하긴 애매한데요, 작가가 너무 극단적으로 마녀사냥을 연출한 느낌이 없잖아있네요. 저만 별로일뿐 다른분들은 다 잘읽으셨으니 읽어보셔도 될 것 같아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