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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자들 ㅣ 메두사 컬렉션 2
제프리 디버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내 사랑 제프리 디버의 작품으로 2019년을 장식하려 했는데 벌써 해가 바뀌어버렸네. 이제는 책도 잘 못 읽고 글 쓰는 것도 줄어서 리뷰 쓰는 게 어려워진다. 잘 쓸려고 하면 어려운 게 당연하지만, 나는 잘 쓰려고 하지도 않는데 어려워하는 걸 보면 점점 머리가 굳어지는 게 실감이 난다. 최근에는 리뷰 쓰기가 막막한 작품이 엄청 쏟아져 나오는데, 고차원 작가들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님은 그냥 이런 대중소설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이 작가는 ‘링컨 라임 시리즈‘로 이름 날렸지만 스탠드 얼론도 여러 권 발표했는데, 이번 작품은 솔직히 ‘빅 재미‘ 타입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재미 오브 재미‘ 타입이랄까. 다른 작가의 책이라면 대박이라고 느꼈을 텐데, 제프리 디버가 썼다고 하니 평범하게만 느껴지는군. 맨날 자극적인 것만 먹다 보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더 맛있고 그런 거지 뭐. 나 지금 무슨 말하고 있는 거니. 진짜 뇌가 안 돌아가네. 퇴화한 게 확실함.
인적 없는 호숫가의 별장에서 두 킬러에게 부부가 살해된다. 그곳을 방문한 여경찰 브린은 킬러들의 다음 타겟이 된다. 차도 고장 나고, 휴대폰도 잃어버리고, 무기마저 없어 곤란한 상황. 여기에 피해자 친구까지 보호해야 한다. 주인공은 산악 지형을 이용해 킬러들을 속이고 따돌리지만 철없는 동행인 때문에 사태가 점점 악화된다. 한편 연락 두절된 아내를 구하러 별장으로 달려가는 남편과 경찰들. 그리고 이들 외에도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또 다른 감시자가 있다. 숨 막히는 추격전과 함께 드러나는 흑막의 실체. 과연 브린은 죽음의 그림자를 끊어내고 무사할 수 있을까.
단순한 소재에 평범한 플롯이라서인지 주목받지 못할만하다. 그런 조건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라니, 박수받아 마땅하다. 일단 스릴감은 충만하나 임팩트가 약한 것은 산속에서 써먹을만한 무대 장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면 별 자극 없는 밋밋한 전개가 되는데, 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작가가 캐릭터 설정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정말 캐릭터만 잘 잡아도 웬만큼 스토리가 산다는 걸 증명한 작품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전체 줄거리를 먼저 구상하고 나서 캐릭터를 만드는데, 디버는 반대로 캐릭터를 먼저 만들고 나중에 줄거리를 짠다. 근데 이렇게 되면 스토리보다 개인의 성장에 더 비중이 커져버린다.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캐릭터는 3D의 느낌이지만, 스토리는 2D의 느낌이라서 양쪽이 섞이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구간이 꼭 생긴다. 그러나 디버는 어느 지점에서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모든 작품에 위화감이 없고 작위적인 기분도 들지 않는다. 증말 인간미 없는 알파고 같으니.
주인공 브린은 완벽한 모범 경찰이었지만, 가정에서는 온통 불안함 투성이였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이혼의 아픔을 겪었고, 재혼한 남자는 딴 여자와 바람난 상태다. 게다가 문제만 일으키는 아들 소식으로 정신이 없다. 그녀가 남편의 외도와 아들의 잘못을 보고도 바로잡지 않는 이유는 집안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감정에 솔직하고 싶어도, 나만 참고 희생하면 모두가 편해지는 걸 알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아, 이거 너무 공감되는데? 살면서 총대를 메야 하는 때가 왜 그리도 많은 건지 참. 암튼 일이나 훈련에는 그렇게 적극적이면서 개인의 문제는 상황을 회피하기 바쁜 그녀는 전형적인 외강내유 컨셉이다. 이랬던 그녀가 킬러들과의 생존게임을 통하여 약점을 극복해내는 모습으로 성장한다. 이렇듯 진짜 액기스는 따로 있으니 너무 액션 쪽만 보지 마시고 인물의 불안함 쪽에 더 주목하시길.
내가 자주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쉴 때는 걱정하지 말고 그냥 쉬라는 말이었다. 내 성격상 처리할게 생기면 잠들면서도 내내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 나는 할 땐 하고 놀 땐 노는 게 잘 안된다.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왜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방지턱도 많고, 유턴 구간도 많고, 기름도 자주 바닥나는 걸까라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방지턱이야 살살 넘으면 되고, 길을 잘못 들면 돌아가면 되는 거고, 기름이 없으면 채우면 된다는 것을 작가가 상기시켜주었다. 긁어 부스럼이 싫다고 피하기만 하는 것은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마주하고 부딪혀서 결론을 내야만 얽매임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러니 주인공 브린처럼, 애써 모른 척 중인 미처리 건이 있다면 새해에 다 풀고 해결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