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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온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2
알베르토 푸겟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예전에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바쁜 게 얼마나 나쁘냐면 소중한 게 성가셔져.‘ 지금 나에게 너무 해당되는 말이다. 정신없이 바빠져버리니 차 한 잔의 시간, 여유로운 독서, 초저녁의 산책 같은 일상의 소중한 것들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나는 인생에 야망도 없고 부귀영화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먹고사는 것만 해결되면 그만인데, 왜 세상은 열심히 살아야만 톱니바퀴가 굴러가도록 되어있을까. 대체 무슨 직업을 가져야 ‘적당히‘ 하면서 살 수 있는 걸까. 정말 인생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공부 중인 요즘이다. 이런 나의 심정과 비슷해 보이는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은 ‘답답하다, 짜증난다‘는 뜻의 스페인어이다. 이 한 권을 완독하는데 20일이나 걸렸다니, 진짜 짜증난다잉.
1980년대 칠레는 연령 불문하고 술과 마약에 빠져있고 클럽에 들락날락하는 데다 성적으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이다. 도덕과 윤리가 무너진 이 나라는 거리마다 황폐한 기운이 가득했다. 또한 피노체트 정권의 선거기간이라 바깥은 시끌시끌했다. 이제 막 브라질 수학여행을 다녀온 칠레 소년은 모든 것이 싫었다. 자유로운 브라질에 비하면 이 꽉 막힌 칠레 사회는 숨 막혀 질식사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자기 빼고 모두는 현 정권의 방침에 잘만 적응해서 지낸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만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염증을 느낀 주인공은 모든 것이 짜증스러웠다. 그래서 남들과 여러 번 부딪히다가 결국 가출하고 답답함에서 해방되려 한다. 그러나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은 주인공은, 이 거친 세상에 부딪혀 보기로 한다.
온통 불평불만투성이의 내용뿐이라 꽤나 당황했다. 이런 게 호불호가 확 나뉠 작품이지 싶다. 별 내용도 없는 책을 내가 왜 읽고 있는 거며, 이 책은 어째서 고전문학으로 분류돼있는 거며, 이 책이 주는 진리와 깨달음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아무튼 만사에 짜증 나는 주인공이 그래도 이해는 되는 게 나 또한 최근에 엉망진창이어서 자존감이 바닥을 마구마구 쳐댔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짜증의 원인이 딱히 안 보여서 뭔가를 빠뜨리고 지나가는 느낌을 내내 받았는데, 알고 보니 불의한 지배 사회에 반기를 드는 주인공의 성장기였던 것이다. 그것을 알고 나니 안 보이던 작품의 메시지와 교훈들이 차례차례 보인다. 단순히 스토리로만 접근하면 참 볼품없지만, 칠레 사회의 배경에 초점을 맞춘다면 읽을 맛이 날 듯하니 안 읽은 독자분들은 참고하시도록. 그렇다 해도 글맛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칠레에 문외한인 나님은 이해 안 되는 내용투성이라 역자 해설은 필수였다헤.
친구들은 돌아가면서 변해버린 주인공에게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권에 휘둘려 폐쇄적인 소통 방식을 갖고, 외래문화에 길들여져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등 칠레인의 삶은 다양하게 훼손되고 있었다. 기존의 질서가 뒤집어지는 것이 두려웠던 사람들은 열렬히 피노체트 권력을 지지하였다. 그렇게 국민들은 권력에 길들여지길 원하였고, 불의와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를 스스로 유지해나가고자 했다. 반대로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고 제 삶을 지키려는 주인공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모두와 점점 멀어졌고 거리를 둔 것이다. 해설에 따르면 칠레는 자유의 욕망을 포기하고 권력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죽음의 땅이었다. 자유의 땅 브라질을 보고 왔으니 칠레의 폭력적인 악취는 더욱 진동했던 거였다. 역시 해설을 읽으니 주인공의 짜증이 이해가 확 되는군.
이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오마주한 책이다. 본문에서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여러 번 언급하는데다 닮은 구석도 많은 듯한데, 아쉽게도 그 책을 읽지 않아서 어림짐작으로 이해하고 넘기곤 했다. 보시다시피 주인공은 자기 세계가 뚜렷하고 그것을 꺾을 생각이 전혀 없다. 이 거지 같은 세상 속에서 좌로 가든 우로 가든 다 거기서 거기인데, 왜 남들은 내가 가는 곳마다 틀렸다는 듯이 떠드는 걸까.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계속 자신만의 질서를 세상에 끼워 넣으려고 행동했다. 너 혼자 반대해서 뭐 어쩔 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뚝심에 적잖은 감명을 받았다. 생각의 틀에 갇혀 논리적 판단을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올곧게 자신의 방식을 고집했던 마티아스. 그를 통해서 황폐한 세상과 소통을 시도한 작가에게도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