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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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시리즈는 분량도 길지 않은 데다 가독성도 좋아서 읽기가 좋다. 다만 머리 식힐 겸 읽을 용도라면 비추한다. 한 권 한 권이 하나같이 묵직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요즘 같은 휴가철에 읽기엔 맞지 않을 듯하다. 물론 독서가 생활인 분들은 제외하고. 이번 책도 인간이란 무엇이며, 산다는 건 무엇인지 자꾸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제목만 봐도 가족에 관한 내용인데,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치고 멀쩡한 집안의 이야기가 없듯이 이번에도 그러하다. 가족 소설은 보통 남자들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폭력적인 가장, 사고 치는 아들 같은 집안의 문제적 남자들이 주된 내용인데 이 책에서는 남자들이 전부 부재중이다. 구성원이 여자들만 있는 상황과 배경 가운데, 어떤 고난이 와도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면 작가가 말하는 딸과 엄마에 대해 들어보자.



요양원에서 봉사하는 엄마는 어려운 집안을 혼자 책임지느라 언제나 근심 걱정뿐이다. 다 쓰러져가는 2층 건물의 주인이지만 경제사정으로 방을 전세 놔야 할 판이다. 어느 날 시간 강사로 일하는 삼십 대 딸이 돈 문제로 엄마 집에 얹혀살게 된다. 문제는 딸이 7년이나 같이 살아온 여자를 데려온 것이다. 동성애자에다 제대로 된 벌이도 못하고 여자 애인까지 데려와서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딸이 점점 미워지는 엄마. 안 그래도 담당 환자의 치매 증상으로 머리 아픈데, 동성애 문제로 해고된 딸이 시위를 하다가 크게 다친다. 부당한 일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엄마와 끝까지 저항하는 딸. 물러날 생각이 없는 두 모녀는 끝까지 마음 문을 닫은 채로 지낼 것인가.



어후. 뭐부터 풀어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하다. 보면 볼수록 이 시리즈는 과제를 산더미같이 내주는 악덕 교수님 같다. 일단 리뷰를 자주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중립을 지키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솔직히 딸보단 엄마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딸이 다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간섭이 과잉보호라는 생각은 안 든다. 혹여나 아들들은 절대 이해 못 할 거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말 그대로 나는 남자라서 딸들의 속 사정은 모릅니다만, 내 자식이 이 책의 딸처럼 동성애자에다 사서 고생하며 산다면 나 또한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 엄마 눈에는 딸의 모든 것이 불만이었고 이해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남자를 만나도 부족할 시기에 여자랑 가족을 만들질 않나, 실컷 공부시켜줬건만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불안정한 일을 하고, 사소한 문제도 크게 키워야만 속이 시원한 건지, 왜 그렇게 귀중한 시간들을 쓸데없는 일들로 낭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그 찬란한 시간들을 아까워하지 않는 딸이 너무나 야속했다.



딸은 성인이 된 후로 유학도 독립도 부모 동의 없이 홀라당 진행해버렸다. 그렇게 강단 있고 독립심 강한 애가 어째서 멀쩡하게 살려고 하지 않을까, 머리도 좋은 애가 왜 저렇게 이상한 길만을 고집할까. 책임도 본인에게 있고 바로잡을 사람도 본인뿐이라 생각하는 엄마와, 자신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엄마를 상종도 하기 싫은 딸. 그런 딸의 엄마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자신도 싫고, 자식을 부정하게 만드는 딸도 미웠지만 딸과 함께 온 여자애가 더 미웠다. 나 대신 딸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그 애가, 나보다 딸을 더 잘 알고 이해한다는 그 애가 더 싫었다. 그래서 엄마는 딸에 대한 화를 그 애에게 표출했다. 그런 엄마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덤덤히 제 할 일을 하며 오히려 엄마를 챙겨주었던 딸의 애인. 설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자신을 친딸보다 더 챙겨주는 그 애를 보며 엄마는 수용과 체념 사이에서 긴긴 방황을 한다. 딸은 엄마를 밀어내기만 했으나, 그 애는 딸 편이면서도 속상해하는 엄마를 이해해주었다. 고충을 털어놓을 곳도, 들어주는 이도 없는 엄마에게 있어 그 애는 어쩌면 유일한 구원이었을 것이다.



집에서는 딸 때문에 괴롭고 요양원에서는 담당 환자 때문에 괴롭다. 그럼에도 환자를 가족처럼 돌보는 엄마한테 예산이 부족하니 적당히 간호하라며 나무라는 병원. 일을 더 크게 키우느니, 침묵을 지키는 게 나은 걸까. 틀린 답도 다수가 맞다고 하면 정답이 되는 걸까. 병원 입장은 알겠지만 엄마는 감정 없는 기계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어르신을 상의도 없이 내쫓은 인간미 없는 병원에게 참았던 울분을 터뜨리면서, 부당한 일에 참지 않았던 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딸은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외치는 반항 기질 때문에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자신이 믿고 정한 선택과 길이 부정당할 때 이기든 지든 맞서 싸울 뿐이었던 것이다. 매번 져주기만 하던 엄마가 부당함에 소리쳤을 때 그제야 비로소 딸을 알아가기 시작하고 기나긴 방황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딸을 향하던 손가락질이 나에게 하던 것이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정녕 엄마와 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을 의외로 쉽게 찾았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성향을 타고난 거였다. 그걸 눈치채고도 애써 외면하는 엄마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내가 낳은 자식이 나와 전혀 다른 성정을 가졌다는 게 불만이었을 것이다. 어째 엄마만 편 드는 거 같기도 한데, 내 아이가 부모를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면 당연히 속상하지 않을까. 아 물론 콩가루 집안에서 자라나 ‘난 절대 엄마 아빠처럼 안 살 거야‘하는 친구들은 예외다. 아무튼 이건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거나 그 사람을 바꿔줄 수 있는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마치 사자가 풀 좀 씹는다고 초식동물이 될 수 없고, 곰이 수영 좀 한다고 수중동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너는 너 나는 나 하고 싶어도 엄마니까 딸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던 거다. 딸이 7년이나 같이 산 애인을 진짜 가족이라 하니 엄마는 당연히 기가 차지. 그러나 자신이 매일매일 돌보는 환자가 병원을 떠났을 때 엄마는 간호인으로써가 아닌 가족으로써의 책임감을 느꼈고, 어르신을 집으로 모시면서 그 애의 말처럼 피를 나누지 않고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사람 간에 이해관계를 이렇게 풀어내다니, 이 책, 진짜 젊은 작가가 쓴 거 맞음?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지 않고서야 이런 내공은 도저히 불가능한데. 



자녀가 성인이 되고 독립까지 하면 부모의 도움은 점점 필요 없어진다. 요즘 세대는 그 시기가 더 빨리 찾아오고 마음만 먹으면 부모보다 더 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적어도 한두 가지쯤은 부모님보다 못한 상태로 나를 내버려 둔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언제나 나보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으로, 어머니는 언제나 요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드린다. 부모로서 더 이상 자식에게 해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만큼 서운한 게 없을 것만 같아서. 인생의 반도 못 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리 아껴 써도 낭비되는 게 시간이다. 20대의 시간은 20km로, 30대의 시간은 30km 속도로 간다더니 과연 그 말이 진짜더라. 아 갑자기 우울해지네. 이 책은 리뷰 쓰는 게 뭐 이리 힘드냐. 처음으로 글 쓰다 탈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서로 생긴 갈증은 무엇으로 해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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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9-07-30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가족, 평범한 일상‘이란 말들을 많이 하잖아요. 그 평.범.이란 게 얼마나 안간힘을 써야 얻어질 수 있는 건지 종종 생각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평.범.이 정말 어려운 것 같거든요.

딸이 동성애자라면 막상 엄마의 입장에서 어떨지 지금으로서는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평소 동성애를 바라보는 제 시각은 거부감이 없거든요. 여자로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여자‘인 거니까요. 사랑이 느껴지는 건 성별을 뛰어넘는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당한 일 앞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던 엄마가 지고 있었을 삶의 무게를 상상해보았습니다. 딸의 인생도 스스로 선택한 삶이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딸도, 그 딸의 모습을 속상해하는 엄마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딸의 애인은 그런 면에서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군요. 딸의 입장을 혹은 엄마의 입장에 더 공감이 갈 독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독자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으니까요.

얼마전 본 드라마 <검블유>에서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사람들이 그런 입장에 서면 포털이 정치적이 된다고 주인공을 말리니, 주인공이 말을 해요. ˝정의를 지키는 일에 정치적 입장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그 말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딸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한 엄마의 상황을 보니 이 장면이 생각나네요.

˝사자가 풀 좀 씹는다고˝에서 빵터졌습니다.ㅎㅎ 대체 이런 표현은 어디서 나오시는 건지 감탄하면서요.

부모님에 대한 물감님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부모로서 더 이상 자식에게 해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서운해하실 것이라는 부분이요. 그래서 저는 무척 기뻐하면서 일단 마구 마구 받습니다. 나중에 용돈을 더욱 듬뿍 드리면 되니까요. 결국 제가 드린 돈이 부모님을 거져 제게 다시 오는 것이지만, 그게 엄청난 차이이거든요.ㅎㅎ

50대의 시간은...음...아자!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독서로 생긴 갈증은 공감하는 댓글로 해소!ㅎㅎㅎ

물감 2019-07-30 14:4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어떤 리뷰에 썼는데요, 평범하다는게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축복인지 다들 잘 모릅니다. 이런 책을 읽으면 나는 정상 범위안에 속해있는지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저는 동성애에 대한 생각은 깊게 해보질 않아서 잘 모르지만, 이 책의 엄마 입장에서 과몰입되다보니 썩 찬성하기가 어렵네요. 남이야 그러던지 말던지 하겠지만 내 가족이라고 생각해보면... 음...

말씀하신 드라마 대사도 꽤 파격적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입장은 현실엔 없다는 생각에 암담하네요. 비록 실천은 못하더라도 자각은 할 수 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하하하...

생각보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서먹한 분들이 많더라고요. 살다보면 점점 더 그렇게 되가구요. 아쉬운 맘에 쓴 글을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열정만 간직하시면 어떤 나이에도 청춘입니다! 덕분에 갈증해소 많이되었어요! 나비종님 짱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