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소녀가 있었다. 언니가 둘 있고, 기센 엄마와 존재감 없는 아빠랑 살고 있었다. 소녀의 스무 살 생일날에 아버지는 실종되었고 빚만 가득 짊어진 집안은 그렇게 풍비박산이 난다. 여차여차해서 세 자매는 뿔뿔이 흩어졌고 막내는 20대를 가난에 허덕이다 작품 속 서술자를 만난다. 서술자는 그녀의 사연을 듣고 인맥을 동원하여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낸다. 여기서부터 이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진행된다. 아버지는 살아있었고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며, 서해 해안선에서 소금창고를 운영 중이었다. 왜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을 떠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요즘은 색안경을 벗기 위해 이 작가 저 작가 가리지 않고 섭렵 중이다. 이름만 들었던 박범신 작가도 이번이 처음인데, 역시나 시작부터 내가 기피하는 전형적인 국내 문학 스멜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좋아, 돌파해보자 싶은 심정으로 350쪽 밖에 안되는 이 책을 열흘 넘게 붙들다 이제야 완독했다. 역시 국내 문학은 아직 나에겐 버겁다. ​우리 나라 작가들은 희망을 노래하기보다 지나간 설움과 한을 되새김질하는 데에 더 재능이 많지 않나 싶다. 책 제목의 소금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폭력성을 가리키고 있으며, 부제를 넣자면 ‘아버지들의 자화상‘쯤 될 것 같다. 소금은 사실 여러 가지의 맛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짠맛 하나밖에 기억하지 않는다. 아버지들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어도 자식들에게는 묵묵히 돈 벌어오는 이미지 하나뿐인 것이다. ‘아버지‘가 되는 순간부터 ‘나‘​라는 존재는 버려지고 가족의 생계만이 전부인 아버지들의 인생. 이 책의 주인공도 가족에게 열심히 헌신했으나 자본의 쾌락을 맛본 가족들은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에 전혀 자족할 줄 몰랐고 그렇게 아버지를 세상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후반에 아버지가 가족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은 속 사정이 드러났을 때 나도 모르게 끄덕거리고 말았다. 도저히 나아질 수가 없는 가정. 자신을 묶고 있는 사슬에서, 자신을 가둬두는 독방에서 벗어날 기회를 붙잡은 그가 무책임한 못난 애비라고 비난할 수가 없었다. 빚만 남기고 죽었던 아버지라고 모두가 그렇게 욕했으나 그 빚들은 전부 가족들이 만들고 쌓아올린 더러운 쓰레기 탑이었다. 결국 친가족을 떠나서 모르는 사람들과 가족이 되었어도 아버지는 자신을 돈 버는 기계나 공기 취급하는 피 섞인 딸들보다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이해하는 피 안 섞인 딸들이 더 사랑스러웠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짊어진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반대로 ‘아버지‘니까 얼마든지 희생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은 곳을 찾은 주인공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었다.


어떤 분은 아버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여성들을 폭력적으로 묘사했다고 하는데, 그런 여성들이 모여있는 가정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어째서 가정폭력은 남편이 아내에게, 자식에게만 휘두른다고 생각하지? 아내에게 잡혀사는 남편들도 많이 봐서 그런지 주인공이 전혀 답답해 보이지 않던데. 여튼 이 책을 읽고 다들 본인의 아버지를 떠올렸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아버지를 좋아한다. 날 존중해주시고 이해도 잘 해주시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높고,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지금도 자문을 구하러 가곤 한다. 자녀가 독립해서 잘 살고 있어도 부모님들은 자신의 삶을 즐기질 못하신다. 자식 키우고 집안만 돌보느라 어떻게 즐기는지 잊어버리신 거다. 같이 뭘 좀 해보려 해도 체력이 안 따라주니 할 만한 것도 없다. 그래서 해드릴만한 건 자주 연락하고 대화하는 것뿐이다. 아이고, 자꾸 딴 길로 빠지네. 이 책은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지만 박범신 스타일은 나랑 안 맞군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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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4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가들이 왜 물감님 스탈을 못 맞춰주나요 ㅎㅎㅋㅋ

물감 2018-10-04 12:43   좋아요 1 | URL
그것은! 제가 문학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ㅎㅎㅎ해설을 들어야만 이해되는 글은 그닥 안좋아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