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줄리언 웰즈의 죄

줄리언 웰즈의 죄 ㅣ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소설가 줄리언 웰즈가 자살했다. 그의 친구인 필립이 추도사를 맡게 되어 멘트 준비를 위해 줄리언 소설들을 정독하다가 첫 작품의 헌정사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한다. ‘내가 지은 죄의 유일한 목격자인 필립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그는 무슨 죄를 지었으며 주인공은 무엇을 목격했다는 것일까.


줄리언이 죽기 전까지 마리솔을 찾으러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아르헨티나 관광 가이드였는데 관광 마지막 날에 갑자기 사라졌었다. 그녀를 찾으러 아르헨티나로 간 주인공이 알게 된 사실. 알고 보니 그녀는 거물급 스파이였으며, 자신들은 위험한 일에 연루될 뻔했다는 것. 정녕 이것이 자신이 목격한 줄리언의 죄란 말인가. 만나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그가 엄청난 배신을 당한 얼굴이었다고 말한다. 그토록 신뢰하던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힘겨워했다는 건데 아니, 대체 그녀가 뭐길래? 


나는 줄리언의 소설가 삶이 쿡의 삶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토머스 쿡도 세상 여기저기 다니며 방랑자처럼 때론 현자처럼 그렇게 작가의 생애를 살고 있지는 않은지. 프로필 사진만 보면 연못에서 금도끼 들고 출몰하는 산신령에 가까운 비주얼인데. 여하튼 이번에는 좀처럼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작품은 별다른 지식이나 정보 없이도 술술 읽히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많은 데이터와 전문지식이 필수이기도 하다. 이 책은 후자인데 작가가 여러 나라의 전쟁과 정치와 스파이 역사 및 많은 지명들, 들어본 적 없는 작가의 이름들과 문학 속 사건 및 인물들을 줄기차게 인용하여 나처럼 텅 빈 머리로는 전부 이해하고 넘어가려는 게 시간 낭비가 될 뿐이었다.


주인공이 줄리언의 소설들을 어떤 장르로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나 역시도 이 책이 무슨 장르인지 잘 모르겠다. RHK에서는 모던 스릴러라고는 하지만 뭔가 위인전, 역사탐방,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 EBS 지식채널을 섞어놓은 느낌이다. 전에 읽었던 ‘밤의 기억들‘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소설가가 등장하는 쿡의 작품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1차로 작가가 들려주는 스토리가 있고, 2차로 주인공이 들려주는 소설 속 스토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을 소개하여, 이 내용이 현재진행형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한다. 아쉬운 점은 줄리언의 소설을 통해 밝혀진 사실보다는 챕터마다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줄리언 소설의 장면들이 별 영양가가 없어 보여 분량만 차지한 게 아닌가 싶었고 무엇보다도 마지막까지 이거다! 싶은 클라이맥스가 안 나온다. 기승전결로 말하면 기승승승이라 할까.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하다 볼 수 있는데 이상하게 꾸역꾸역 읽는 느낌은 안 들어 신기하다.


줄리언은 철들지 않는 것이 일종의 죄라고 여겼다. 전쟁, 테러, 스파이, 학살 같은 악행들이 철들지 않는 애들 장난이며 누군가를 속이는 게 죄라고 여긴 그가 친구를 위해 자신의 슬픔을 숨기고 속였던 것이다. ‘소년에게는 영웅이 있어야 한다.‘ 줄리언이 책 초반에 말한 이 문장을 반드시 기억하시길. 나름의 반전은 있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