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에 맞게 하브루타 하라! - 내 아이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처럼 키우고 싶다면‥‥‥?
홍광수 지음 / 브레멘플러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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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교육방식 하브루타에는 힘이 있다. 유대인들을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전 세계를 이끄는 힘을 가진 민족이다. 그 힘은 바로 사고력이라고 생각한다. 유대인의 생각하는 힘은 바로 부모의 하브루타 교육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대화를 통해,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어떠한 생각도 존중된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DISC 방식을 통해 아이들의 기질을 파악하고 그 기질에 따라 아이들에게 사고력 훈련을 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DISC 방식은 TV에서도 소개된 바가 있는 인간의 타고난 기질을 분류하는 방식으로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같은 약을 먹고 낫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가 있음을 보고 그 원인을 연구하다가 인간의 성격과 건강을 좌우하는 4가지 체액에 관한 이론을 정리했다. 바로 담즙질, 다혈질, 점액질, 우울질의 4가지 유형으로 기질을 설명한다.

이를 기초로 1920년대 컬럼비아 대학의 윌리엄 마스턴 교수가 인간의 성격 유형을 분석하여 DISC이론을 만들어냈다. 사람의 기질을 주도형(Dominance), 사교형(Influence), 안정형(Steadiness), 신중형(Conscientiousness)의 4가지 기본 유형으로 구분한 것이다.

 

 

 

 

 

 

일하면서 창의력을 개발하는 아이들 (D형)

놀면서 스스로 질문하고 다른 놀이를 개발하는 아이들 (I형)

게으름때문에 쉽고 편하게 사는 도구를 만드는 아이들 (S형)

순수한 통찰력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더 깊은 학문적 경험을 만들어가는 아이들 (C형)

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브루타를 적용하면 된다.

하브루타 코치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법을 익혀야 한다. 첫째는 경청이다. 경청 없는 질문은 물을 얻기 위해 사막에서 도시에 온 사람이 수도 꼭지만 갖고 돌아가는 것과 같다. 훌륭한 경청은 훌륭한 질문을 낳고, 깊은 경청은 깊은 질문을 낳는다. 공감어린 경청은 마음을 치료하고, 존재를 경청하는 코치는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둘째는 질문이다. 질문은 아이 스스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대답 속에서 아이의 꿈을 듣고, 탁월성을 찾아낼 수 있으며, 아이는 질문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경청과 질문은 동전의 양면과 같고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안된다. / 79

아이들의 모든 것을 경청해야 한다. 귀에만 국한하지 않고 몸으로도 경청하는 것이다. 훌륭한 코치는 아이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정확히 읽고 대응할 수 있다. 그리고 좋은 대화의 비율은 8:2가 가장 좋다. 아이가 8번 말하게 하고, 코치는 2번 말하는 것이다. 효과적 경청과 질문 사용은 코치가 가져야 할 핵심 태도이다.

특히 아이들의 기질을 염두에 두고 질문과 경청을 해야 하브루타가 재미있게 뿌리내릴 수 있다. (81쪽 참고)

아이에게 질문은 관계 형성을 위해 공감 경청을 하고, 눈은 아이를 응시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하브루타를 시작한다.

하브루타 시간을 따로 가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아이에게

오늘 우리가 하브루타를 시작하는 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좋겠니?

오늘 하브루타 시간에 네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 어떨까?

요즘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고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니?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는 것이 새롭다.


이 책을 통해 각자가 가진 기질을 존중하고 아이의 특성에 맞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케미’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과는 조그만 일에도 즐겁고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떤 사람이랑은 정말 안 맞고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같은 말에도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 우리다. 하물며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기질에 따라 아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모두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다르다는 점은 자녀를 양육할 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아이의 기질에 따라 대화의 내용도, 지향하는 주제도 다르고 그에 따른 반응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화를 나눌 때 깊은 대화, 진정성이 있고 하브루타 방식의 대화가 가능하려면 아이의 기질에 맞는 질문과 대화 방식을 파악하고 아이의 기질에 맞게 하브루타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은 하브루타 방식의 심화편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이미 하브루타라는 방식에 어느정도 익숙하나, 아이의 기질과 나의 기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부모가 보면 딱 좋을 듯하다. 기질별 추천하는 질문, 자녀의 반응에 대한 대응 방식이 모두 기질별로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어 ‘기질별 하브루타’ 책의 교과서라고 봐도 좋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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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7블레싱 - 복음의 능력과 축복
하용조 지음 / 두란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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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복음을 위해 전도자, 설교자의 삶을 살다 병 투병을 하고 하나님 품으로 가신 하용조 목사님이 그립다. 2007년 처음 온누리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 따뜻했던 느낌을 잊지 못한다. 갈급한 마음으로 유명하다고 하는 온누리교회에 나 혼자 찾아갔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서빙고 온누리교회까지 혼자 찾아갔던 일이 생각난다.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 따뜻한 손길이 나의 몸과 마음에 닿는 듯한,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눈물이 났고, 마치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안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감동이 가득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말씀과 행함이 잘 조화되시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 살아가셨던 하용조 목사님의 성품과 신앙이 교회의 곳곳에 묻어나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그 분이 떠나셨지만 책을 통해서라도 그 분의 정신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책은 하용조 목사님께서 살아계실 때 집필하신 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의 능력과 축복에 대한 책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을 때 우리 삶에 주시는 하나님의 7가지 축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녀됨의 축복이다. 복음을 믿으면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둘째, 죄사함의 축복이다. 복음을 믿으면 이미 모든 죄에서 구속함을 받았다.

셋째, 해방됨의 축복이다. 복음을 믿으면 이미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

넷째, 치유됨의 축복이다. 복음을 믿으면 이미 모든 아픔에서 치유되었다

다섯째, 의롭다 하심의 축복이다. 복음을 믿으면 이미 의인이 되었다

여섯째, 기도 응답의 축복이다. 복음을 믿으면 이미 우리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일곱째, 성령 세례의 축복이다. 복음을 믿으면 이미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

이 모든 축복은 '과거형'이다. 영적 능력은 앞으로 올 것, 우리가 획득할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지 않거나 무시하고 있는 것이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이 예수님의 7가지 축복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선포하면 실제로 발견하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이미 작정하셨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말이다.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를 받아들이기만하면 우리는 삶에서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그것이 믿는 자의 능력이고 복음의 힘이다.

축복은 이미 주어졌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에서 주었다는 'gave' 즉, 과거형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믿으면 된다. 그런데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을 의미한다. 합리적인 내 사고방식, 이성적이고 자연적, 역사적, 지적인 내 생각이 아니라 믿음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다. (20쪽 참고)

성경적 믿음은 과학적 논리적 증거를 근거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히:12:2)이다. 하나님의 기적, 치유, 부활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믿음은 선물이며, 내가 내 스스로 힘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믿음의 선물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고, 그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21쪽 참고)

이 책은 말한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예수님을 환영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쉽지는 않다고. 그 믿음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믿음의 실체이신 예수님께 계속 접근해가고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그분을 바라보는 믿음이 내 안에 쑥 들어온다. 내 이성의 세계를 뚫고,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내 경험의 세계를 뚫고, 내 육체적인 사고의 세계를 뚫고, 견고한 모든 틀을 뚫고 복음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다. (22쪽)

믿음이라는 것은 쉽고 단순한 것 같지만, 어렵기도 하다. 단순히 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밑도 끝도 없이 믿고 받아들이라고? 이성적이고 따지기 좋아하는 현대인들은 그래서 어렵다. 뭘 보고? 그래서 어렵다. 점점 더 어려워진다. 기독교인들 조차 예수님을 믿지 않고 복음의 능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믿음. 그것이 모든 축복의 선물을 받는 비결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을 목격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자기 눈으로 부활을 봤음에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봤는데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이성이다. 그 이성의 문을 뚫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이 무조건 감정적이고, 논리도 없으며, 주먹구구식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오히려 믿음의 세계는 이성의 세계가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의 이성을 뚫는 또 다른 영적인 차원인 것이다. (24쪽 참고)

그 어떤 복잡하고 멋진 설교보다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단순한 설교가 가장 장력한 것 같다. 하용조 목사님의 나긋한 목소리로 설교를 듣는 듯한 이 책은 복음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처음 복음의 능력, 믿음의 능력, 기적과도 같은 일이 내 삶에 일어났을 때의 그 기분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기독교인이지만 내가 왜 교회를 다니고 있는지, 복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에 대해 회의감이 들거나, 교회를 가도 감동이 없고 미지근한 느낌이 들때, 예수님을 믿는 감동을 회복하고 싶은 사람, 내 안에 어떠한 하나님의 축복이 숨어있는지 발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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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일은 무엇인가
제임스 해밀턴 지음, 이대은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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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욜로'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You Live Only Once의 첫 글자만 따서 만든 신조어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즐기라는 말이다.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물론 계획 없이 소비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행태를 꼬집는 뜻도 있겠으나, 이 말은 마치 '왜 일을 해? 왜 수고롭게 살아? 너 자신의 행복만을 생각해'라며 '일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의미하는 것 같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를 비웃는 베짱이의 대사와도 같은 말이다. '일'을 열심히, 성실히 하는 것이 구시대적이고 바보 같은 행위로 느껴지게 만드는 말인 것 같다.

그리스도인에게 조차 고되고, 피하고 싶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일이라는 것은 아무리 봐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통과 수고 중의 하나인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엇에서 일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 단순히 일을 통해 번 돈으로 먹고 사는 욕구를 충족하면 그만일까? 일을 통해 자아실현하고 야망을 이루면 그만일까? 성경적으로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이 책에서는 창조 때 하나님께서 처음 계획하신 일의 의미, 그리고 타락으로 인해 고된 노동이 되어 버린 일, 구속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자유롭게 하신 일의 의미, 그리고 회복을 통해 마침내 온전히 기쁨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 총 네 파트로 일의 의미를 바라본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올바른 '일'에 대한 가치관을 알려주는 책이다.

 

노방 전도를 하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4영리'의 논리와 닮아있다. 인간에게 적용되는 구원과 회복의 약속이 바로 우리가 하는 '일'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시편 128편은 일하는 자에게 헌정된 노래인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란 사람이 자신의 일을 한 결과, 즉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 일의 결과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의 기자는 분명히 일을 즐거워하고 있고 하나님이 복 주신 자는 우리의 손이 한 수고를 통해 먹게 되고 복되고 형통하리라고 말한다. 성경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축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이 능력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장면은 하나님이 이 천지 만물을 디자인하시고 기획하시고 생산해 내시는 장면이다. 창의성과 기획력, 계획과 효율성이 필요한 업무를 통해 성과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회사에서 일하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 잘하는 김차장님, 이 부장님, 박 상무님과 업무 영역이 다르지 않으신, 하지만 너무도 완벽하고 아름답게 천지만물 창조라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시고 흡족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고하고 소통하는 고된 일을 통해 성취를 이루는, 그런 종류의 지식 노동(knowledge work)을 일로 인정한다. (하나님이 천지창조에서 발휘하신 창의력은 지식 노동이라는 점) 하나님은 그분 스스로 숙련된 일꾼으로서 비할 데 없는 탁월함과 창조성으로 자신의 과업을 이루신다. 일은 고상한 것이다. 하나님을 닮은 활동이다. 일은 형벌이 아니다. 저지를 받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고된 작업이 아니다 / 21쪽

 

성경 내내 멈추지 않고 흐르는 주요한 개념은 하나님은 계속 일하시며 인도하시고 지지하시며 사랑하시며 심판하시며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적이고 능력이 있으며 효율적이고 섬세한 일꾼이시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일은 다른 이를 부양하고, 복을 주고, 필요를 공급하고, 생명을 준다. / 22쪽

 

하나님도 반드시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분은 처음부터 일을 하시고,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이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당신의 업무를 위임하신다. 이 천지창조의 모습 속에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하나님 당신의 일을 위임하시는 장면에서 하나님께서 본래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을 때의 의도를 꺠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실 때 우주적 성전을 지으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성전에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두셨다. 자신의 형상과 모양에 복을 주시고 책임을 맡기셨다. 그들이 맡은 일은 하나님이 좋게 만드신 세상을 모든 동물과 식물에게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류는 하나님의 성품과 창조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세상을 경작해야 했다, 즉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과 권위와 통치를 눈에 보이도록 나타내기 위해 창조되고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과업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에게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일은 처음부터 창조 질서 안에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과 땅 위의 모든 생명을 관리하는 청지기직을 주셨다. 모든 직업은 이 위대한 과업과 연결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지적으로 영적으로 번성하도록 돕는 것은 사람이 땅과 피조물을 잘 다스리도록 돕는 일이다. / 26쪽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의로운 업무는 땅을 정복하고 만물에 지배권을 행사하는 일과의 관계에서 파악된다.

이런 일은 이 일을 하는 모든 이에게 살아계시고 참되신 한 분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기회를 준다. / 27

 

한 사람이 자기 일을 하는 방식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사람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 자신만의 목적의식은 그가 자기 일을 하는 방식에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 세상을 에덴동산과 같이 하나님이 본래 지으신 목적에 맞도록 회복시키는 행위, 하나님이 지으신 땅과 땅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점을 배우게 된다.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일을 함으로써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으로 인해 우리 인간이 하는 일에도 저주가 임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주권을 행사하라는 임무를 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일하도록 창조하셨으나, 사람이 죄를 짓고, 그 결과 하나님은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심판의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동시에 하나님의 여자의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이는 정의가 만족되고 저주가 사라지면 일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족을 받아 죄로 인한 방해와 제약에서 벗어날 날을 예고한다. / 55쪽

 

우리가 타락함으로 인해 우리가 하는 일도 타락한 것이다. 죄로 인해 일이 어렵고 복잡하고 힘들어졌다. 그리고 모든 일이 무익하고, 무의미하고 공허해졌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기 원하시는지, 그리고 우리의 일의 결실을 어떻게 다루기를 원하시는 지를 알 수 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도서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이야기한다. 지혜도 헛되고, 해 아래 행하는 모든 일이 헛되다고 말한다. 더 슬픈 것은 우리가 수고한 결과를 다른 이들이 누린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자는 전도서에서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자기 일을 즐기는 것보다 선한(더 좋은) 일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선물이라고도 말한다.

 

즉, 사람이 죄를 짓기 전 심히 좋던 곳에서 하나님은 선한 음식, 일, 배우자와 누리는 교제를 주셨으나 죄가 세상에 사망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음식과 일과 교제라는 선한 선물을 누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이다. 우리의 죄로 인해 심판인 사망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삶을 즐기는 것이 허락된 것이다.

 

우리는 죄로 인해 타락한 이 세상에서 요셉, 다니엘, 느헤미야, 룻처럼 살고 일해야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보기 위해 노력하며 일해야 한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그 분을 의지해야 한다.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성경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을 할 때도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 성경 말씀에 따라 일을 해야할 것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4:11-12 말씀의 '조용히 하라(남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갈등을 일으키지 마라), 자기 일을 하라(불필요하게 다른 이의 일에 참견하지 마라),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나태하지 마라), 외인에 대해 단정히 행하라(기독교가 좋은 평판을 얻도록 행하라)'는 현대인인 우리에게도 분명히 적용되는 말씀이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회복을 약속하신다. 예수님이 오셔서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이고 죄를 없애시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창조 못적에 맞게 우리를 회복하시고 우리가 하기로 계획하셨던 그 일을 하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 일은 무엇인가. 일이라고 하면 고되고 힘든 것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인간은 원래부터 이 일이라는 것을 싫어하고 피하려고 하지 않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본래의 일의 의미,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죄성으로 인해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그 일을 하는 기쁨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 역시 일을 할 때 구원과 회복을 약속하신 주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지적인 느헤미아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주변을 연구하며 이루려는 일(성벽 재건)에 필요한 지혜를 얻는 태도를 벤치마킹해야겠다. 느헤미야는 단순히 공부만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며 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의지하며 일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헌신하며 끊임없이 성실하게 일한다. 일하면서 공의와 정의에도 헌신한다. 그리고 계획을 완수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당장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심판에서 평가받고, 그 때 상급이나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느헤미야를 보며 많은 것을 깨닫는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때로는 누군가가 나의 노력과 성과를 가로채는 일이 있더라도 분해하며 세상의 방법으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알고 계시며 언젠가 주님의 때에 평가와 심판이 있을 것을 기억하며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기로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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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만 헤어져요 - 이혼 변호사 최변 일기
최유나 지음, 김현원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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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전문 변호사인 최유나씨가 쓴 책이다. 이혼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변호하며 그가 보고 듣고 느낀 바들을 웹툰으로 재밌게 엮은 책이다. 어찌나 공감되는 포인트가 많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면이 많은지 책을 펼친 후 닫을 수가 없어 단 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TV속의 변호사는 냉정하고 냉철해서 찔러도 눈물한 방울 안나올 것 같은 캐릭터로 많이 묘사된다. 물론 현실에는 그런 변호사들도 많다. 하지만 저자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람이다. 의뢰인의 선택이 어떠한 것이든, 의뢰인의 삶을 응원하는 그런 사람이다. 의뢰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가 더 나은 삶을 찾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재판에 출석하여 판사 앞에서 변론을 하기도 하고, 저자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의뢰인들을 직접 만나 울고 웃으며 그들을 변호하는 삶을 사는 저자의 삶은 회사에서 사익을 위해 일하는 나와 같은 사람의 삶과는 달라 평소 궁금했던 로펌 변호사의 삶을 엿볼 수 있기도 했고

저자가 변호사가 된 계기로 상담을 좋아하는 성격,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런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이 변호사라며 저자에게 힘을 주셨던 아버지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지금의 직업을 추천해 주신 분이 친정 아버지시다)

 

저자가 폭력에 노출되는 경험을 한 후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무력화시키는 지를 깨닫고 의뢰인의 공포에 대해 더욱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사건들을 표면적으로 다루기가 쉽다. 그런데 직접 자신이 경험해 본 후 가정 폭력에 갇혀 있는 분들을 더욱 진심으로 돕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자신을 도왔던 사장님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데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며 그들로부터 배운다고 고백한다.

"결혼 생활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툼보다 행복이 더 큰 결혼생활이라면

서로가 큰 희생과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 115쪽 

 

누군가와 싸울 때 지금 이 문제가 '상대와 나의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발생한 일인지, 아니면 정말 상대나 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이 있어서인지' 따져보면 답이 나온다.

전자의 경우, 서로의 마음을 번갈아 짚어주면서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면 감정의 앙금이 눈녹듯 사라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먹고사느라 바빠서 내가 누구랑 먹고살고 싶었는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부부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 206쪽

 

 

결혼 생활은 상대방의 노력과 희생이 없이는 유지되기 힘든 것 같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배경에서 30년을 넘게 산 사람들이 한 순간 한 공간에서 가족으로 묶여버린다는 사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아닌 내가 되기를 강요 받는 것은 어떻게 보면 '끔찍'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나의 기존의 누리던 권리들, 내 모습들을 포기하지 않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 평생 함께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 원수로 돌변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원수 같이 느껴지던 미움이 눈 녹듯 녹아내릴 수 있는 것도 부부 관계인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너무도 달라지는 것이 부부 생활인 듯하다.

결혼에 대해, 부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떠올라 화가 나기도 하고, 또 감사하기도 하고... 첵에서 소개된 일화가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라는 점이 안타깝기도 했다.

"결혼도, 이혼도 결국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고

생활에 잠식되는 우리의 감정을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작은 사치라도 부릴 수 있는 나날들이길.

저도, 그리고 여러분도." / 101쪽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산다. 결혼도 행복하기 위해 내가 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지쳐, 소중한 나날들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내 감정을 돌 볼 새도 없이 매일의 일상에 '잠식'되어버리고 만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나'다. 나의 감정과 자아를 묵인하고 '희생'하는 삶은 결국 지치게 만들고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여러 부부의 사연들 속에서 나도 울고 웃으며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결혼은 누구도 아닌 '나'의 행복을 위해 내가 선택했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내가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한다는 점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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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뭘 기대한 걸까 - 누구도 나에게 배려를 부탁하지 않았다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이은혜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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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해주고 상처 받는 배려쟁이들을 위한 책이다. 일본 대인관계 전문 심리상담사인 저자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지나쳐 결국 상처를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상처받지 않고 꿋꿋해질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책이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일본인을 대상으로 쓴 글이지만 대한민국의 세심한 배려쟁이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는 배려가 문화인 일본이랑 다르기는 하다. 해외 특히 북미나 일본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것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앞서간 사람이 뒷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준다던가, 운전하면서 급한 사람에게 양보한다던가 하는 매너가 부족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자신과 관계 없는 제3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내외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도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들, 즉 지인, 연인, 동료, 가족 간에는 배려나 희생을 하는 것을 기대하기도 하고,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내 사람에게는 잘 해주고, 희생하는 것'이 미덕인 문화인 것은 맞다. 이렇게 배려, 희생을 하다가 상처받고 자신의 존재의 근원이 흔들리기까지 하면 그건 문제가 있다.

저자는 그런 배려쟁이들에게 말한다 "입으로 소리 내서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절대 알지 못한다"라고. 무신경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 노력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배려하는 행동이 상대를 위해 한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리라고 말한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상대방에게 세심하게 배려하는 행동의 이면에는 '인정욕구'가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칭찬받은 경험이 적은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한 배려 뒤에는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기대'심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대는 쉽게 무너지게 되어 있으니, 인정 욕구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고, 결국 '이런 능력 따위는 필요 없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 따위 없는 편이 나아!'같은 생각으로 귀결된다.

나는 이런 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기대란 내려놓으라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상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자.

기대하는 마음은 남의 기준에만 맞추는 습관과 낮은 자기긍정감에서 비롯된다. / 28-29쪽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은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음에도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상대에게 휘둘려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자기 기준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

남의 기준에 따라 발휘할 때는 이 모든 것이 단점으로 변한다. / 68쪽

우리 마음 속에는 상대도 기뻐해줬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존재한다. 그래서 상대가 확연히 드러나게 기뻐하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느낀다. 화가나고 후회(자기혐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경우는 '거래'다. '선물을 주었으니 기뻐해줘'라며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아가 실은 하고 싶지 않지만 안하면 미움받을 것 같아서 하는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하는 희생으로까지 이어진다. / 70쪽

저자는 이런 배려쟁이들에게 기대를 내려놓고 '자기 기준'으로 사는 방법을 알려준다.

"나는 나, 너는 너"라고 소리내어 말하기,

"민폐 좀 끼치면 어때"라고 말하기, 그렇게 생각하기.

감정이 메마른 사람, 냉정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흉내내보기.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 300개 찾아보기. '자기기준'에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진다.

'표현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 기억하기.

'자신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훈련 해보기.

'나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적어 목록을 만들고 메뉴판처럼 사용하기.

'미움 받아도 괜찮다'는 말 매일 의식적으로 30~50회씩 반복하기.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고, 상대가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상처받거나 마음이 지치게 된다. 선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오히려 나에게 해가된다. 나의 장점이 단점으로 바뀐다.

 

 

그런 마음의 '인정 욕구'가 숨어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뭘 기대한걸까? 바로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칭찬, 똑같은 배려를 되돌려 받고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기대는 내려놓으라고 있는 것이다. "베푸는 행동은 사랑에서 우러나는 행위다. 배려는 친절한 당신의 장점인데 그로 인해 고통 받을 정도라면 잠시 접어두자."는 것을 기억하자.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던 삶을 '자기 기준'에 따른 삶으로 바꿔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불편하고 싫으면 하지 말자. 오바하지 말자.

 

아무리 편한 사람,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상대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인해 실망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줄어든다면 인간관계가 훨씬 편해지고 인생이 즐거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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