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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사인가 - 한 역사가의 치열한 삶과 사상을 들여다보며
거다 러너 지음, 강정하 옮김 / 푸른역사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왜 여성사인가 Why History Matters>는 여성사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역사가 거다 러너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이 책은 <다수파가 자신들의 과거를 발견하다: 여성을 역사 속에 위치시키기>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한 에세이집으로 1980년부터 1990년대까지 연구한 결과물을 담은 것이다. 우선 저자에 대해 소개하자면 거다 러너는 192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유태인으로 유태계 가정에서 자라나긴 했어도 문화적으로는 전형적인 독일어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1938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고 공포정치를 실시하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어려움과 여러 경험은 ‘유태인’, ‘여성’이라는 타자성을 깊이 느끼게 해주었고 여기에서 역사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고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좋은 문학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늦은 나이에 어쩔 수 없이 외국어를 배워야 했음에도 오히려 그 어려움을 딛고 작가가 되기를 희망했다는 것은 먼 훗날 여성사를 개척할 때 보여준 거다 러너의 개척정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20여년 동안 작가로서의 길을 걸으며 소설을 쓰고 뮤지컬 시나리오를 쓰면서 사회 정의와 여성 평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문학을 통해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여성의 역사에 대한 탐구와 연구기술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러너는 1959년 마흔 살을 앞두고 다시 학교를 찾게 된다. 늦은 나이에 역사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여성사라는 분야가 존재하지 않았고 당연히 그에 대한 명칭도 없었다. 기존의 역사학에서 여성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고 그 배경에는 여러 측면에서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매우 열악했다. 하지만 거다 러너는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나아갔다. 러너는 학부생 신분임에도 학장에게 여성사 강의를 맡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1963년 봄 ‘미국사에서 위대한 여성들’이라는 여성사 강좌를 개설할 수 있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고 당시 이에 대해 주목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겠지만 이것은 ‘여성사’의 등장을 알리는 혁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1968년 새러 로런스 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이때부터 러너는 자신이 품고 있던 꿈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역사에서 여성들에게 그에 걸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었다. 이에 관련된 거다 러너의 노력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자신의 여성사 연구로써 다수의 논문, 에세이, 저서, 자료집의 출간과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여성사 사료를 정리하는 프로젝트 등이고 두 번째는 외부적인 활동으로 여러 역사학회에서 여성사가 역사의 한분야로 인정받을 수 있게끔 관련 조직을 만들고 여성사 연구 프로그램을 설립한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사의 연구가 좀더 원활해지고 여성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체계적인 과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할 수 있게 되었다.
러너는 60년대 말부터 활발히 저술활동을 시작하는데 <왜 여성사인가>는 1997년에 발표한 것으로 이 책에는 연설문, 연구 논문, 에세이 등 12편의 글이 실려있다. 각 글을 쓴 시기에 시간차가 꽤 나는 경우도 있고 글을 쓴 배경이나 상황이 제각기 다르지만 저자의 관점이나 사상에 있어서는 일관되게 드러나 있다. 이 책의 초반은 거다 러너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어린시절부터 역사가가 되기까지의 삶의 여정을 들려주고 있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유태인으로서 남들과 다르다는 의식은 그녀에게 역사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으며 여러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그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속에는 거다 러너의 역사관이 깃들어 있으며 그것이 싹트게 된 배경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책 중반 이후부터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있었던 여성의 역사와 그동안 알려졌던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앞으로 역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세상을 바꾸어나갈 지에 대해 희망찬 기대도 드러나 있다. 마지막 부분은 보다 심도있는 내용의 논문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여성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에 대한 모형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성, 계급, 인종의 개념이 상호작용하여 ‘타자’의 범주를 만들고 구축하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조되고 있다. 20세기 여성사의 발전에 있어 거다 러너의 공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81년 미국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이래 1983년에는 새러 로런스 대학에서 ‘거다 러너 연구 기금’이 만들어졌고, 1991년 미국사연구회는 ‘거다 러너 앤 피러 스콧 상’을 제정하였다. 거다 러너가 대학원에 입학했을 무렵 그녀 자신도 나이와 당시 학계 분위기를 보았을 때 여성사를 위한 공간을 개척하고 여성사가 번성하는 모습을 보고자 했던 목표가 과연 이루어질지 의문을 가졌었다고 한다. 하지만 거다 러너는 이 황무지를 개척했고 수확을 얻고 있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책은 12편의 독립적인 글이 수록되어 있다. 1부 기억으로서의 역사는 거다 러너의 삶과 역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장 <역사가 형성한 내 삶>은 저자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 보며 역사가 왜 문제가 되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오스트리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살았지만 어느덧 갑자기 ‘타자’로 규정됐고 자신이 마음 속에 품고있던 자기규정이 무시되는 상황을 맞게 된 경험은 ‘역사를 다루는 일’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함을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2장 <카타르파의 계단에서 : 민족 말살의 의미>는 저자가 강연을 위해 독일을 방문했을 때와 프랑스 여행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소개하고 있다. 베를린의 시내를 돌아보면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유태인과 시청사 지하식당에서 어떤 남자와의 대화들을 들려주면서 마치 카타르파의 모습처럼 민족말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한 것이다. 의도적으로 역사를 지워버리고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 잘못된 역사교육의 위험성을 말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왜곡된 역사교육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다. 3장 <번역 속에서 살아가기>은 저자가 모국어를 상실하면서 겪은 문제에 대해 볼 수 있는데 망명자의 삶의 아픔을 언어를 통해 치유하는 과정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모국어의 상실로 잃어버린 기억을 완전히 되찾을 수 없으며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언어는 단어나 문장의 의미 이상의 것을 갖고 있다. 4장 <역사와 기억에 대하여>는 거다 러너가 케테 라이히터라는 여성을 기리는 상을 수상하면서 한 연설이다. 그녀의 삶을 이야기 하면서 선택적 기억의 오류, 타자화의 위험을 경계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차이의 인정과 전체적인 세계관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짧은 글이지만 거다 러너의 역사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 개인적으로는 1939년 이래 처음으로 독일어로 쓴 글로도 의미가 있다.
2부 역사: 이론과 실천은 저자의 연구 결과물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5장 <비폭력 저항이라는 이념의 역사>은 거다 러너가 19세기 초의 여성운동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들려주고 있다. 흔히 비폭력 저항의 기원을 간디와 톨스토이로부터 찾고 있지만 이미 그 이전에 미국의 노예제 폐지운동에서 여성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성공적으로 비폭력 저항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6장 <미국적 가치들>은 미국적 사고의 모순된 측면을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여러 대립적인 가치관을 소개하면서 어떤 가치가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인가를 묻고 있다. 7장 <20세기: 여성들이 맞은 하나의 분수령>은 여성에 관한 갖가지 통계를 살펴보며 여성의 진보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비록 그 속도가 더디긴 하지만 그 변화가 세계적이고 장기적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바탕으로 여성의 해방이 인류의 생존에 큰 역할을 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8장 <21세기를 내다보며>는 7장과 연관해서 볼 수도 있는 글인데 페미니즘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논의하고 있다. 페미니즘 혁명은 전복이 아닌 변혁으로 포용과 인도적인 과정을 통해 인간다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9장 <역사의 필요성>은 미국사연구회장 취임사로 역사학의 위기 속에서 역사 만들기가 사회적 필연임을 말하면서 역사 만들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의 역사적 경험을 예로 들면서 역사가의 의무에 대해 다시한번 강조하며 사기를 불어넣고 있다.
3부 역사 다시 보기는 3편의 글이 있는데 이 책에서 가장 이론적이며 분석적인 글이 수록되어 있다. 여성사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으로써 통합된 전체론적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10장 <여성들 사이의 차이>는 여성사를 다루는데 있어 ‘여성’을 단일한 범주로 취급할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인종, 계급, 민족, 젠더 등 여러 범주를 분석의 도구로 사용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설명하는데 복잡한 점이 많고 무엇보다도 공통적인 핵심을 놓치는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렇듯 ‘차이’를 다루기 위해서는 각 범주간의 상호 연관성과 상호 의존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성, 계급, 인종은 어느 하나의 이득이 다른 쪽의 손해에 대해 소홀히 하게 함으로써 서로 밀착되게 한다는 것이다. 11장 <패러다임 다시 생각하기>는 10장의 내용을 더 분석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성, 계급, 인종을 다양한 측면에서 해부하고 많은 사례들을 소개함으로써 세 개의 범주 모두를 하나의 동일한 체제의 여러 측면으로 개념화한 하나의 개념 모형을 완성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첫 번째로 계급이 역사적으로 처음 구성되어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유재산과 젠더화된 관계들과 연관되어 있으면서 결혼, 상속 등의 형태를 통해 권리와 의무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인 인종은 과학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범주이며 어떤 집단을 열등자로 지정하여 분류하려는 목적에서 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피억압 집단을 구별하여 지배를 위한 도구로 쓰여지게 된다. 따라서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계급 착취는 지배의 연동체제로써 상호 연관성을 갖기 때문에 따로 떼어놓고 분석할 수 없다. 그보다는 서로 구성요소가 된다고 보는 편이 이해하기 쉬워진다. 이런 체제들이 타자화에 이용되어 ‘일탈적인 외집단’을 창조하고 지배를 정당화하게 된다. 새로운 분석모형은 억압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변혁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힘이 된다고 거다 러너는 바라보고 있다. 12장 <왜 역사가 문제인가>는 저자가 35년간 진행한 연구가 왜 열정적이고 만족스러웠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당시 역사학은 다양한 이들에게 도전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역사를 지배 엘리트와 권력을 정당화하는 매개체라고 주장하거나 실재를 상징에 종속시키려는 해체주의 사상이 퍼지는 등 좁고 왜곡된 역사관이 문제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억압받고 주변화된 집단들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위협받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 상황에서 역사가들은 자신의 연구가 지닌 의미를 재확인하고 밝힐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의 ‘역사 만들기’는 비록 작은 일처럼 보여도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더 나아가 성장하게 만든다. 그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닫힌 사고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추상을 가능하게 하며 실현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역사도 악용될 수 있다. 선택적 기억과 왜곡은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 그리고 미국의 패권주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뿐더러 주변화된 집단을 억압하는 데 이용된다. 또한 앞서 이야기된 것처럼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역사를 망각하며 그들을 차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여성사가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여성사의 연구는 그동안 한쪽만을 중요시했던 기록된 역사의 균형을 맞출 수 있게 하며 그것은 사람들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차별없이 사람들이 쌓아온 모든 노력과 업적을 반영하는 전체론적 세계관은 ‘선택적 망각’이 가져오는 해악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렇게 재구성한 형태를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치고 구체화시킨다. 결국 역사는 과거에서 살아나 현재의 일부가 되며 미래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가 문제가 되는 이유이다.
이 책은 다양한 종류의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지만 결코 가볍게 읽어버릴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책 속에는 그동안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거대하고 무겁게 자리잡고 있었던 여성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반이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여성이 해온 일이 그동안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여성의 역사는 차별받고 어둠 속에 묻혀있어 아직도 정확한 모습을 다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전한 여성의 역사도 전체를 따져본다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성사의 연구가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고 그 선두에 거다 러너가 있었다. 이 책은 주로 러너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녀의 역사 연구와 사상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다양한 글 속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러너의 역사관은 적어도 여성사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 지에 대해서는 알려준다. 게다가 파란만장했던 거다 러너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사에 대해 가슴 속 깊이 공감하게 하고 다가가게 만든다. 유태인이면서 여성인 거다 러너의 인생은 ‘타자성’에 대해 그만큼 남들보다 민감하게 느낄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여성사에 대한 열정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또한 여성사를 연구하면서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면 12장의 내용처럼 역사가 개인의 성장과 치유라는 중요한 역할이 있음을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다 러너의 역사관의 주요한 특징은 역사의 효용성을 중요시하고 미래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여성사의 발전 자체가 부당하게 차별받은 여성의 역사를 되살려서 균형적인 역사를 만드려는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적 기억, 선택적 망각같은 왜곡이나 편견을 제거하는 일이 중요하고 가능한 모든 측면을 고려하는 전체사를 추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역사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사회의 모순을 개선하려는 방향으로 이용된다. 러너의 연구가 페미니즘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볼 수 있다. 결국 역사로부터의 교훈과 경험은 미래의 세대에 영향을 주어 그들의 사고방식을 결정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한다면 여성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에 있어서 거다 러너의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여성사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여성사라고 하면 남자 못지않은 업적을 남긴 여성들을 부각시키는 것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는 여성의 역사를 이 책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러너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여성의 역사를 발굴하는 것은 물론 여성의 역사적 경험과 여성사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세계를 변혁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것을 촉구하는 개혁적인 발전방향까지도 제시했다. 이것 자체로도 여성사를 확산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왜 역사가 사람들에게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도 다시금 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유태인이자 여성으로 남모를 고통과 아픔을 겪었음에도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분야를 개척한 거다 러너는 여성사의 권위자이자 훌륭한 교육자이며 인생의 승리자로서 찬사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