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아방가르드한 복수혈전
|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도쿄방랑자(Tokyo Drifter, 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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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한 클럽에서의 잔혹한 총격전으로 끝난다.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화려한 조명과 세트로 이뤄진 럭셔리 클럽에 모인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고 그 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는다. ‘달콤한 인생’의 라스트 신은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도쿄방랑자’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아버지로 모시는 조직 보스로부터 배신 당한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담을 쫓아가는 이 영화는 여러모로 ‘달콤한 인생’의 선친 격인 영화다. 이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살부 의식이 영화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의 고용감독으로 철저한 오락영화를 만들었던 스즈키 세이준은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독창적인 비전을 선보인 개성적인 연출자였다. ‘살인의 낙인’과 함께 세이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도쿄방랑자’의 마지막 장면은 ‘세이준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준다. 터무니없이 애잔한 엔카 음악에 맞춰 순백의 뮤직홀로 진입한 주인공 데츠는 사랑하는 밤무대 여가수 앞에서 통렬한 복수극을 펼친다. 이 장면의 연출이 돋보이는 이유는 스즈키 세이준 특유의 전위적 실험 영상의 정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피아노와 조명 하나, 몇 개의 기둥으로 이뤄진 극도로 미니멀한 세트는 수시로 색을 갈아입는다. 테츠야가 진입했을 때 흰색이던 공간은 노란색 등이 켜지고 여가수와의 로맨틱한 만남으로 넘어가자 노란색으로, 적들과의 총격 액션이 시작되자 빨간 색으로 변한다. 합을 맞춘 스펙터클한 액션이라기보다 음악에 맞춘 안무처럼 연출된 총격전은 앤디 워홀의 팝 아트를 떠올릴 만큼 파격적인 형식미를 선보인다.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들은 연속성과 통일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간 연출의 정석을 깡그리 무시한 채 생경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평면적인 2차원 캔버스에 화려한 그림을 그리듯 스즈키 세이준은 리드미컬하게 인물들의 움직임과 편집의 호흡을 조절한다. 공간과 세트는 리얼리티와는 완전히 담을 쌓은 채 프레임 안 세계로만 존재하며, 의도적인 조명에 의해 아방가르드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미술감독 기무라 다케오와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황당무계한 상상력이 빚어낸 이 기괴한 세트의 미학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독특한 영화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도쿄방랑자’의 공간은 흡사 유화물감으로 덧칠한 총천연색 캔버스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사실 이런 류의 세트와 조명을 설계하는데 그리 많은 돈과 시간이 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발상 자체가 신선한 것이지, 그것을 실현시키는 데는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속성 제작이라는 제작의 조건을 자신만의 독창적 스타일로 변화시킨 스즈키 세이준의 서명. ‘도쿄 방랑자’는 그 천재적인 가난의 미학을 웅변하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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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영 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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