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α]내겐 너무 소중한 그것

‘캐스트 어웨이’의 척과 배구공 윌슨의 관계
오랜만에 서랍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음료수 캔 하나. 많이도 좋아하던 그 애에게서 여름날의 체육시간 건네받았던 것. 그러니까, 저것이 나와 함께 한지도 6년쯤 됐겠다. 라이너스가 칭칭 감은 담요를 덮고 위안 받았다면 내게는 저 알루미늄조각이 담요였지. 어느 날 두 눈 질끈 감고 버린다면 그런대로 또 살아가겠지만, 저것은 일종의 부적과 같다. 답답해지는 어느 날 ‘안녕, 잘 살았니’ 말 걸고, ‘다 괜찮아질 거야’ 위로받는, 원시신앙같이 묘한 믿음을 주는 것. 살다보면 그런 앙증맞은 집착을 하게 된다.
그래서 ‘캐스트 어웨이’의 척(톰 행크스)은 윌슨은 만들어 냈고, ‘레옹’의 킬러는 화분을 들고 다니며 ‘시티즌 독’의 진은 내용도 모르는 하얀 책에 집착하고 ‘돈 컴 노킹’의 스카이는 어머니의 유골단지를 들고 다닌다. 그런 물품들은 하나같이 벌거숭이 임금님이 입은 존재하지 않는 옷과 같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리석고 터무니없고 우습겠지만 그것을 진짜라고 믿는 임금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것이 되는 것처럼, 물질적 가치로는 불가해한 의미가 깃든다. 척에게 배구공 윌슨은 스스로가 인간임을 확인케 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밥을 먹을 때도 윌슨 몫은 남겨두고 과묵하다며 화를 내기도 하고, 무인도를 탈출할 때도 뗏목의 제일 좋은 자리를 내준다.
하지만 우리는 위안을 주던 그것에서 벗어나야 할 때를 맞는다.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하얀 책의 정체가 포르노소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진이나 거친 파도에 떠내려가는 윌슨을 바라보며 목 놓아 울던 척처럼 아주 아픈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벽돌 속에서 아멜리에가 발견한 할아버지의 장난감 상자처럼, 문득 흘러간 유년의 보물을 다시 만나게 될 일이 있으리라. 아마도 세상에는 ‘회귀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 같으니. 그리하여 돌아온 그것을 맞을 때는 ‘하하’ 웃어줘야지. 나를 떠난 것이 배구공이든, 사람이든 그것들은 모두 ‘내겐 너무 소중한 존재’들이니 그들의 귀환을 반길 수밖에.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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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5-3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윌슨과 헤어질때 울었었죠

뿅뿅 2006-06-01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이 영화 못 봤는데 조만간에 보려구요. 하늘바람님의 말씀을 들으니 괜시리 저도 더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