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6.12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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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정리하는 달은 누구에게나 다 정신없고 바쁘다. 어른들은 말할것도 없고 아이들마저도 그러하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험도 있고 여러가지 결산이라던가 정리해야 할 일 투성이다. 해는 어제도 떴고 오늘도 떴으며 내일도 뜰 것이다. 한 해가 저문다고 해서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뜨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이 지구의 주기를 보고 편의상 임의대로 나누어 '날'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 뿐이다. 만약 이런 개념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그저 하루하루 무의미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특별한 달답게 샘터에서도 특집 기사를 한 해를 정리하는 것으로 정해두었다. 올 한해 최고의 선물. 이런 제목을 가지고 사람들은 어떠한 이야기를 남겼을까. 누군가는 자신이 갔던 여행을 떠올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가족의 사랑을 떠올리기도 했다. 올 한해 나에게 최고의 선물은 그저 평범할 뿐이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잘 보낸 것, 그게 가장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고 선물일 것이다.

 

또한 아직도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할 일이다. 두번의 여행을 다녀온 것도 지친 생활에 활력을 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한 권의 잡지를 통해서 나 자신의 한해를 돌아볼수 있는 기회가 되어 더욱 고마웠다.

 

[이 여자가 사는 법] 코너에서는 보디빌더 정미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흔히 볼수 없는 사람이기에 더욱 궁금했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 보디빌더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일까 하고 말이다. 남들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짙은 화장을 한 그녀는 언뜻 보면 굉장히 이국적이고 이쁘게 생겼다라고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팔뚝을 보면 그런 소리는 쏙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웬만한 남자보다 더 두꺼운 근육의 소유자. 어마어마했다.

 

근육이라고는 0%에 가까운 내 몸이 초라해지는 순간이다. 내년에는 조금이라도 근력운동을 해서 어느 정도의 근육을 가지고 있어야겠다. 나이 들면서 근력은 더욱 약해지니 조금씩이라도 근력을 키울 필요는 충분히 있다.

 

가장 인상적인 기사는 [관계의 정석]이라는 코너였다. '관계에도 연말정산이 필요해!'라는 제목이 붙은 글은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한해의 인연을 고마운 분, 새로 만난 분, 미안한 분의 세분야로 나누어 새겨보았다고 했다. 나 또한 그렇게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새로 만난 분 - 북카페를 통해서 몇명의 새로운 인연들을 알게 되게 되었다. 친구로 대해주는 그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또한 여행을 통해서 새로 만난 인연들도 있으며 일 관계로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새로 만난 인연들은 늘 소중하다. 그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물론 있다.

 

고마운 분은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계셔주셔서 가장 고맙고 감사하다. 미안한 분은 나를 통해서 상처를 받은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게 미안하다. 내 마음을 그들이 알 수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나로 인해서 힘들었다면, 그래서 상처를 받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보상을 해드리고 싶고 사과의 말씀을 남기고 싶지만 그들은 아마도 모를 것같다. 한해가 지나가면서 모두들 한번쯤은 이런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내년에는 또 더 많은 좋은 인연들과 함께 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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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5 - 뭐야뭐야? 그게 뭐야?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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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다. 우리의 콩알이 팥알이~ 그런데 그닥 달라진 것이 없어보인다. 다행이다 싶다.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고양이는 매우 빨리 자라는 편이다. 전에 일주일에 두번씩 고박꼬박 보곤 했던 고양이가 있다. 분명 처음 봤을땐 콩알이만큼 귀여운 회색 새끼고양이였는데 어느틈엔가 모르게 자이언트 베이비가 되어 있었다. 귀엽다는 느낌보다는 무섭다는 느낌이 들만큼 말이다. 그래서 이녀석들의 몸집이 그닥 달라지지 않아서 더욱 반가웠다. 그 느낌 그대로 귀여울 수 있기 때문이다.

 

4권에서 합류하게 된 두식이와 함께 살아가는 콩알이네. 반려동물들이 아주 많다. '콩알이들'을 비롯해서 '두식이'와 할아버지께서 애모하시는 '닭'에다가 오라버니가 키우는 '거북이'. 거기다 3권에서부터 합류한 '비둘기네'까지. 이쯤되면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있는게 이상할 노릇이다. 반려동물들은 아이와 똑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어딘가에서 사고를 저지르고 있는 그런 아이들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편에서도 콩알이와 팥알이의 장난은 여전하다. '내복씨'라 불리는 할아버지의 가발을 가지고 마구잡이로 흩뜨려놓기도 하고 여기에 한술 더 떠 두식이까지 사고뭉치에 합류한다. '안경남'인 오빠의 애지중지하는 컬렉션들을 땅이 묻어 버리는 만행이라닛. 그 오빠의 마음이 어땠는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만약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그래서 읽을때도 소중히 하고 새책처럼 보관하는 책들을 콩알이들이 와서 다 찢어놓는다면 아무리 귀여운 동물들이라 하더라도 도저히 참고 넘길수는 없을 듯 하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엄마도 이제는 녀석들의 귀여움에 빠지신 듯 하다. 겉으로는 여전히 시크하게 보일지라도 말이다. 특히나 오빠가 녀석들의 사진을 찍을 때 공감을 했다. 어떻게든지 이쁜 모습을 찍기 위해서 배를 깔고 바닥에 누워서 순간 포착을 하려 애쓰는 모습. 내가 조카들 사진을 찍을때와 어찌나 똑같으신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작 오빠의 목적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반려동물 콘테스트에 녀석들의 사진을 올려서 상금을 받으려는 것이었다. 과연 오빠가 사진 찍기에 성공해서 원하는 상금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반려동물들이 많은 이 집에서 오빠의 선택을 받은 반려동물을 무엇이었을까?

 

어쩌다가 이 집에 오게 된 두식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빠가 가장 크다. 그럴지라도 강아지 방이 따로 있을만큼 정말 좋은 주인이 나타났다. 이제 두식이를 보내야 한다. 아이들을 입양하기 전에 맡아주는 위탁부모의 마음이 이러할까. 아빠는 두식이를 쉽사리 보내지 못할 것이다. 두식이와 콩알이, 팥알이는 지금처럼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놀고 다정하게 지낼 수 있을까.

 

반려동물들을 키우면 흔히들 경험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한 책. 동물을 키우면 키우는대로 자신들의 동물과 비교해가며 재미나게 볼 수 있고 동물을 좋아하지만 사정이 있어 키우지 못한다면 대리만족이라도 충분히 할 수 있겠고 그저 동물이 무서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책들을 즐거움으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이야기에도 콩알이들의 몸집이 자라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작가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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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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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오래된 책 냄새, 강렬하고도 건조한 향기가 밀려왔다.(43p)

 

그저 평범한 드라마일거라고 생각했다. 별 기대감없이 책을 펼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몰입해서 읽어버렸다. 마거릿이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버렸다고 했던가. 나 또한 작가의 책을 미친듯이 읽어내려갔다. 그냥 평범한 이야기가 아닌 드라마와 스릴러 호러와 고딕 장르까지 모든 장르가 총망라되어 있었다. 또한 번번히 언급되는 고전들의 제목을 보는 것은 더욱 큰 즐거움이었으며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에어]들을 읽어봐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지 못한 책들의 제목이 나열될때면 적어두고  그 책들을 읽어본 이후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헌책방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마거릿은 아빠의 일을 좋아했다. 아니 책을 좋아했다. 엄마는 그녀에 대한 별 관심이 없었고 책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그녀는 온전히 그곳에서 모든 일을 맡아하고 아빠의 일을 도와주면서 자연스레 그곳이 집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그냥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책들을 단지 읽는 것 정도가 아니었다.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식욕은 줄어든 반면 책에 대한 갈증은 잦아들 줄 몰랐다. 내 직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29p)

 

그렇게 책을 먹어 치운 그녀가 작가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는 픽션을 쓰는 소설작가는 아니었다. 전기작가. 그것이 그녀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었다. 종이를 준비하고 연필을 깍으면서 글을 써내려가는 그녀는 죽은 사람들의 전기를 쓴다. 그런 그녀에게 유명한 작가 비다 윈터의 편지가 한통 도착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 살아있는 사람의 전기를 쓰지 않는 마거릿이었지만 정성스레 한글자씩 눌러쓴 그녀가 궁금해서 직접 방문을 해보기로 한다.

 

비다 윈터. 인터뷰를 할때마다 달라지는 그녀의 인생은 어느것이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마거릿조차도 그녀의 전기를 쓰는 것을 꺼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다는 이제 솔직하게 말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그녀의 인생은 담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리도 복잡할수 있을까 싶을만큼 이야기는 여기저기 꼬임을 만들어 놓았고 그것만 보아도 그녀의 삶이 결코 평탄치 않았음을 알려준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쌍둥이로 태어났던 그녀. 자신을 낳아준 엄마는 자신들을 돌보아주지 않았고 가정부의 손에서 자랐다고 했다. 애덜린과 에멀린. 아마도 똑같이 생겼을 쌍둥이 자매. 그녀들은 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일을 만들어 내는 사고뭉치였다. 적어도 가정교사인 헤스터가 나타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가정교사가 온 후 그녀들의 삶은 조금씩 바뀌었다.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고 '규범'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며 조금씩 적응하는 듯이 보였지만 헤스터가 그녀들을 데리고 소위 말하는 '실험'이라는 걸 하면서 그녀들은 조금씩 이상해져만 갔다.'애덜린이 안개 속의 아이를 억압하는 게 에멀린 때문일까요?'(266p)

 

그것은 전부 헤스터와 의사의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학문적인 관심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쌍둥이들을 나눠놓았고 그러므로 인해서 그녀들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떨어진 쌍둥이가 잘 살 수 있을가? 쌍둥이들은 무언가 모를 연결점이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아주 어렸을때 헤어진 쌍둥이가 오랜시간이 지난후 만나게 되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비다 윈터의 어린시절을 쫓아가며 계속 생각한다. 애덜린과 에멀린. 비다 윈터는 어느 쪽 쌍둥이였을까 하고 말이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들이 저질러져 있고 자신이 놓아둔 곳에서 물건이 제대로 있지 않고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눈길을 느낄때 사람들이 흔히 귀신이 있나보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을 끊임없이 쳐다보는 눈길. 그것은 정말 귀신일까 아니면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이 있는 것일까.

 

비다 윈터의 추억을 더듬어 가는 여행은 지금의 마거릿의 행동과 겹쳐져서 일어난다. 윈터 여사가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그것을 정리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나타나면 확인을 하러 간다. 윈터여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녀가 마거릿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아서 코난 도일 소설집> '셜록 홈즈 시리즈' 하루에 두번, 열 페이지씩,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447p)

비다 윈터의 어린시절을 쫓아가던 마거릿이 잠시동안 아팠을 떄 그녀를 돌봐준 의사가 내린 처방.

이런 처방이라면 조금 과용해도 좋다 싶을만큼 환영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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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델핀 드 비강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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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그려내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노숙자 소녀와 천재소녀의 우정을 그린 [길위의 소녀]에 이어서 그녀의 세번째 작품을 읽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라는 제목의 이 책은 언뜩 보면 진짜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이고 이름이 작가 이름과 같아서 더 그럴수도 있겠다. 이런 구성을 한국작품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작품과 비교했을때 이 작품은 얼마나 다를까.

 

그저 평범해 보이는 두 여자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라 생각했다. 큰 착각이고 오산이었다. 이야기가 전개되어감에 따라 약간은 '미저리'적인 분위기를 자아냄과 동시에 무언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듯도 보이고 마지막 40페이지를 남겨 놓은 지점에 이르러서는 내가 이때까지 읽은 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멍하니 있게 되었다. 분명 같은 작가의 세 작품을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느낌이 너무나도 달라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 델핀. 그녀는 우연히 L이라는 존재를 만나서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다 컸고 남자친구는 따로 있으며 딱히 자신이 꼭 챙겨줘야 할 일이 없는 그녀는 책을 써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기가 힘들어진다. 펜을 잡을 수 없을 뿐더러 컴퓨터의 자판조차도 치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 사실은 단지 그녀와 L 만이 알 뿐. L은 그녀의 일을 대신 처리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쓸 일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작게는 메일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작가라면 더욱 많은 쓸 일들이 있을 것이다. 대필작가인 L은 아무런 조건 없이 델핀을 도와주게 되는데 그녀가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 즉 픽션을 쓰는 델핀에게 L은 실제적인 이야기를 쓰라고 조언한다. 소설은 단지 만들어 낸 이야기임에 틀림없는데 그녀는 왜 이토록 현실성을 고집하는 것일까. 현실적인 것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은 이야기는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게 사실성을 주장하는 그녀는 델핀의 문학세계를 이해하기는 한 것일까.

 

책에 나오는 인생이 진짜인지 아닌지,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래, 중요해. 그게 사실인 게 중요해.(88p)

 

소설가들이 이야기를 구상할 때 어떤 식으로 할까. 주위에서 어떤 소재를 채택하거나 에피소드들을 발견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허구적인 이야기를 덧붙여 낼까 아니면 머리속에서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하게 될까. 아무리 허구적인 이야기라 할지라도 이야기를 쓰다보면 한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상상력에는 제한이 있으므로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들어갈 것이고 자신을 비롯한 친구들이나 가족들 조차도 등장인물이 되기도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몰라도 당사자들은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네 인물들은 인생과 관계가 있어야 해.(117p) L이 주장하는 것처럼 극중의 인물들은 작가의 인생과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그것은 아마도 현실이 훨씬 더 멀리 갈 배짱이 있기 때이겠지.(301p) 라고 이야기했던 누군가의 말을 빌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사실이다.

 

다리를 다치게 된 델핀. 그 자리에 우연히 있었던 L. 그녀는 움직이기 어려운 델핀을 돌봐주기로 하고 그녀들은 델핀의 남자친구 집으로 이동을 해서 그곳에서 살아가게 된다. 델핀은 L이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글을 쓸수가 없는 그녀는 핸드폰을 이용해서 지신이 들었던 그녀의 이야기들을 녹음을 한다.

 

하나씩 녹음을 하다보니 쪽지가 필요해지고 그것을 계기로 한동안 쓰지 못했던 그녀의 손이 움직이고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기뻐라하며 L에게 알리기보다는 숨긴다. 그녀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을 허락을 받지 않아서일까, 그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껄끄러워서였을까. 그녀가 이 모든 이야기를 숨기는 것은 언제까지일까.

 

따스하게만 보이던 두 여자간의 우정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미나토 가나에의 [경우]를 생각나게 했다. 질투로 얽힌 친구사이.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중에서 가장 약하게 느껴지는 책이었지만 묘하게도 두 여자가 등장하는 책 표지 또한 비슷한 느낌이다. 델핀을 대신해서 강연까지 갔다온 그녀가 델핀에게 바라는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현실을 주장하던 그녀의 속내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L의 말을 듣고 현실과 겨루기(293p)를 시작한 델핀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그녀들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면서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크로우걸]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감정 아니었던가. 델핀과 L. 그녀들은 어떤 존재이였던 것이지?

 

때때로 혹시 누가 당신 몸을 차지하고 들어앉은 게 아닐까 자문할 때가 있어.(2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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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절 - 어떤 역사 로맨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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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절. 낙태라는 한자어로 쓰이기도 하는 이 단어는 아이를 가졌지만 어떠한 이유로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아이를 지우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볼 것이냐에 따라 이 임신중절에 관한 문제는 살인과도 연결이 되어지는데 그런 이유로 나라별로 임신중절에 관한 법이 저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으로 되어 있으며 정당한 이유가 있을때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임신중절'이라는 책은 단순히 이 행위보다는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에 슬며시 끼어들어서 그가 어떻게 이런 행위를 하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러므로 인해서 이 행위 자체만으로 책의 전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소재도 독특하고 배경도 독특한 작가만의 독특함이 살아있는 책이다.

 

도서관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이곳이 좋다. 도서관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24시간내내 언제든, 사람들이 원고를 가지고 오면 받아서 보관을 하는, 출간되지 못한 원고들의 보관소이다. 나이에 구분없이 어떤 책이라도 자신이 쓴 글을 가져오면 이름과 제목을 적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다 두면 그것으로 끝이다.

 

궁금해진다. 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왜 이런 것을 모으는지 말이다. 이 도서관에 관한 설명은 그것 뿐 어떤 다른 이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도서관은 책들이 넘치는 것을 대비해 지하저장공간이 따로 있다. 그곳을 관리하는 포스터는 가끔씩 나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어느날 밤 자신이 쓴 책을 가져온 바이다를 만난다.

 

자신의 몸에 관한 책을 썼다는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날부터 친해지게 되고 나의 여자친구가 된다. 이쯤 되면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된다. 그렇다. 바이다는 아이를 가졌고 아직 어리고 준비가 되지않은 그들은 임신중절을 하기로 계획하고 포스터에게 도움을 구한다.

 

'바이다'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그녀는 어딜 가나 남자들의 주목을 받는 몸을 가졌다. 남자들은 한번만 봐도 그녀에게 홀리기 일쑤이며 그것은 나이가 많던 적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를 보고 지나가다 사고를 내는 것은 예사로 있는 일이며 어떤 예쁜 여자가 있더라도 바이다 옆에만 가면 흔한 말로 '오징어'로 변한다.

 

그녀가 얼마나 이쁘길래 그럴까. 이쁘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몸매를 부각시킨다. 그녀는 그것을 싫어하고 신경을 쓴다. 나는 그녀가 아주 좋은 몸을 가졌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렇게 크게 개의치는 않는 듯 하다. 작가는 바이다를 왜 이런 존재로 만들었을까. 그냥 평범한 여자가 아닌 뛰어난 여자로 만든 이유는 평범한 '나'라는 존재에 상응하는 존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책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영원의 페이지를 날아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78p)고 한 나의 이야기는 어쩌면 도서관에 갇혀 버린 나의 인생을 나타내는 것일수도 있다. 포스터가 주장하듯이 말이다. 나는 도서관에서 돈도 받지 않고 일절 밖에 나오지도 않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오직 그 곳에서만 박혀서 살아왔다. 그것도 삼년동안 말이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것일까? 나라는 존재는. 아무리 언제 누가 원고를 가지고 올지 모른다고 해도 가끔씩은 나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일까? 사람들이 매일같이 줄을 지어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분명 시간은 아주 많았을텐데 그 나머지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지낸걸까. 혹시 거기 있는 책들을 읽었으려나.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온 원고들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닐까. 한참을 책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는 현실이고 시간이 몇년씩이나 지나버렸다는 그런 이야기가 비단 이야기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중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은 도서관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에서 행복함을 추구하던 나. 여자친구의 수술로 인해서 삼년만에 밖에 나오게 된 나. 그리고 하루동안의 일탈이 불러온 바뀌어 버린 나의 생활. 나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임신중절을 계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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