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절 - 어떤 역사 로맨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임신중절. 낙태라는 한자어로 쓰이기도 하는 이 단어는 아이를 가졌지만 어떠한 이유로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아이를 지우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볼 것이냐에 따라 이 임신중절에 관한 문제는 살인과도 연결이 되어지는데 그런 이유로 나라별로 임신중절에 관한 법이 저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으로 되어 있으며 정당한 이유가 있을때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임신중절'이라는 책은 단순히 이 행위보다는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에 슬며시 끼어들어서 그가 어떻게 이런 행위를 하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러므로 인해서 이 행위 자체만으로 책의 전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소재도 독특하고 배경도 독특한 작가만의 독특함이 살아있는 책이다.

 

도서관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이곳이 좋다. 도서관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24시간내내 언제든, 사람들이 원고를 가지고 오면 받아서 보관을 하는, 출간되지 못한 원고들의 보관소이다. 나이에 구분없이 어떤 책이라도 자신이 쓴 글을 가져오면 이름과 제목을 적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다 두면 그것으로 끝이다.

 

궁금해진다. 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왜 이런 것을 모으는지 말이다. 이 도서관에 관한 설명은 그것 뿐 어떤 다른 이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도서관은 책들이 넘치는 것을 대비해 지하저장공간이 따로 있다. 그곳을 관리하는 포스터는 가끔씩 나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어느날 밤 자신이 쓴 책을 가져온 바이다를 만난다.

 

자신의 몸에 관한 책을 썼다는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날부터 친해지게 되고 나의 여자친구가 된다. 이쯤 되면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된다. 그렇다. 바이다는 아이를 가졌고 아직 어리고 준비가 되지않은 그들은 임신중절을 하기로 계획하고 포스터에게 도움을 구한다.

 

'바이다'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그녀는 어딜 가나 남자들의 주목을 받는 몸을 가졌다. 남자들은 한번만 봐도 그녀에게 홀리기 일쑤이며 그것은 나이가 많던 적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를 보고 지나가다 사고를 내는 것은 예사로 있는 일이며 어떤 예쁜 여자가 있더라도 바이다 옆에만 가면 흔한 말로 '오징어'로 변한다.

 

그녀가 얼마나 이쁘길래 그럴까. 이쁘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몸매를 부각시킨다. 그녀는 그것을 싫어하고 신경을 쓴다. 나는 그녀가 아주 좋은 몸을 가졌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렇게 크게 개의치는 않는 듯 하다. 작가는 바이다를 왜 이런 존재로 만들었을까. 그냥 평범한 여자가 아닌 뛰어난 여자로 만든 이유는 평범한 '나'라는 존재에 상응하는 존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책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영원의 페이지를 날아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78p)고 한 나의 이야기는 어쩌면 도서관에 갇혀 버린 나의 인생을 나타내는 것일수도 있다. 포스터가 주장하듯이 말이다. 나는 도서관에서 돈도 받지 않고 일절 밖에 나오지도 않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오직 그 곳에서만 박혀서 살아왔다. 그것도 삼년동안 말이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것일까? 나라는 존재는. 아무리 언제 누가 원고를 가지고 올지 모른다고 해도 가끔씩은 나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일까? 사람들이 매일같이 줄을 지어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분명 시간은 아주 많았을텐데 그 나머지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지낸걸까. 혹시 거기 있는 책들을 읽었으려나.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온 원고들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닐까. 한참을 책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는 현실이고 시간이 몇년씩이나 지나버렸다는 그런 이야기가 비단 이야기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중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은 도서관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에서 행복함을 추구하던 나. 여자친구의 수술로 인해서 삼년만에 밖에 나오게 된 나. 그리고 하루동안의 일탈이 불러온 바뀌어 버린 나의 생활. 나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임신중절을 계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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