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꽃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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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화상을 입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뜨거운 것을 잠시 만진 얕은 화상의 경우에는 그냥 두어도 저절로 낫는다. 불에 직접 데이거나 고온의 물이나 끓는 것에 오래 담겨져 있을 경우 대부분 물로 구성되어 있는 사람의 몸이라 할지라도 단백질로 구성된 피부는 익어 버리고 그로 인해 근육이 수축된다. 고기를 한번이라도 구워서 먹어본 사람이라면, 그 변화과정을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그와 비슷한 과정이 피부에서 진행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여기 얼굴에 화상을 입은 한 소녀가 있다. 자신이 잘못해서 다친 상처가 아니다. 그저 여느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뿐인데 그리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가 구해주어서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일본에 살고 있었던 조선사람이라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다. 아니 받았다 하더라도 더이상 크게 나아질거라는 기대를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때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해였다.

 

위안부 합의 문제로 일본과의 사이가 그리 썩 매끄럽지는 않은 형편이다. 그들은 돈을 주겠으니 이제 더이상 얘기하지 말자고 하고 우리는 진정한 사과를 원한다. 서로간에 잘못된 방향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고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인들 그리고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게도 해를 끼쳤다.

 

그런 일본의 미친 짓을 막기 위해서 미국은 원자폭탄을 이용했지만 그 피해는 그곳에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던 조선인 즉 우리나라 사람이 당해버렸다. 미국의 의도는 성공해서 전쟁은 종식되었을지 몰라도 엄한 우리 국민들은 그로 인한 피해를 계속 자자손손 대대로 남기고 있는 셈이다. 그들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해줄 것인가.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녀 본 적이 거의 없다. '합천'이라는 지명도 들어본 적이 있을 뿐 어디에 위치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본문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사투리로 미루어 볼때 경상도 사투리라는 것을 알 뿐 그곳에 원폭피해를 당하신 분들이 그리 많은줄도 전혀 모르고 살고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다 그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들끼리의 문제일뿐 그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문제였던 것이다.

 

원폭피해는 상당하다. 일차적으로 본인들에게 피해를 남길 뿐 아니라 그들이 낳은 아이들까지도 죽거나 또는 장애가 남은 사람으로 존재해 버리며 그 피해가 이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무서운 일이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듣는 나도 무서운데 직접적으로 당한 그들은 어떠할까. 아마도 더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 자리에 직접적으로 있었던 1세대들은 잠을 자도 편하지 않고 악몽을 꾼다고 한다. 전쟁통과 다를바 없는 삶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들을 구제해줄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인가. 그래도 그들을 위한 쉼터가 지어졌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들의 2세를 비롯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소명하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공허한 메이라와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 민족, 우리 백성, 우리 나라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이 아닌가. 일본 뿐 아니라 그렇게 밖에 할수 없었던 미국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조속하고 합당한 보속조치가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던 내용이 한 권의 소설을 통해서 세상으로 드러났다. 이 행보가 단지 한발에 그치지 않기를, 앞으로 힘겹게 내디딘 한걸음이 계속적으로 전진힐 수 있도록 우리가 그들의 길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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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올빼미 농장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9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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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큰 택배박스 하나를 받았다. 당연히 주소는 동호수가 크게 적혀져 있으니 확인을 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오픈을 했었다. 일단 주문은 한 것이 없었고 년말이니 만큼 한해동안 고마웠던 누군가가 선물을 보낸거라 생각하고 의심도 해보지 않았다.

 

며칠후 걸려온 인터폰, 그 택배박스를 찾는 거였다. 알고보니 쇼핑몰에서 주소를 잘못 쓴 거였다. 그제서야 이름을 확인해보니 우리 이름이 아니었다. 워낙 택배가 집에 많이 오니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식의 일들은 자주 일어나는 법이다.

 

여기 이와 비슷한 사건이 하나 더 있다. 분명 자신의 집으로 제대로 배달되어온 한통의 편지. 아무 생각없이 읽고 났더니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소는 맞지만 자신에게 온 편지가 아닌 것. 이럴때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그냥 버리던가 아니면 반송함에 넣을 것이다. 여기 이 편지를 잘못받은 주인공은 반송함에 넣는 대신 자신이 편지를 모아두는 박스에 던져 두었다.

 

자신의 일을 하며 시간이 흘렀다. 또 한통의 편지가 날아온다. 지난번 편지가 동생이 형에게 쓴 편지라면 이번에는 그 엄마가 쓴 편지였다. 궁금증이 생긴 나는 동생이 보낸 편지속에서 언급된 농장이름을 기억하고 [올빼미 농장]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기로 결심한다. 가깝지도 않은 강원도 고성. 달랑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 하나만으로 찾을수 있을까?

 

그래도 '농장'이라고하니 어느정도 규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주위에 가서 물어보면 다들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가 의심으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기대감. 생각보다 농장을 찾는 일은 어려웠다. 주위의 사람들이 모를뿐만 아니라 그나마 찾아간 읍사무소에서도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단지 주소를 바탕으로 약도를 그려줬을 뿐. 나는 차를 주차해두고 걸어서 그곳을 찾아가보기로 결심한다. 내가 그곳에서 찾은 것은 기대했던 그 농장이 맞을까.

 

다른 책에 비해 얇고 작은 책은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효율성을 높였다. 학교 다닐때 들고 다니면서 보던 문고판을 연상시킨다. 가방 어디에 넣어도 거부감없이 들어갈 포켓사이즈이기도 하다. 자극적인 이야기 없이 흘러가지만 충분히 호기심은 발동한다. 제대로 된 소재를 선택해서 읽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시킨 덕분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우리는 작가가 의도한대로 올빼미 농장을 찾아서 전진할 것이며 그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작사를 하는 주인공이 쓴 가사를 읽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를 주는 덤과 같은 존재이다. 끊임없이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그 자장가의 가사마저도 그러하다. 실제로 그 자장가가 어떠했는지 그가 가사를 주었던 여고생 신인가수 해아리의 목소리로 듣고 싶어졌다. 가냘픈듯 몇시간을 노래해도 끄덕없다던 그 아이의 목소리로 말이다.

 

나와 함께 끝없이 동행하던 "인형"의 존재에 대해서는 읽는 사람들마다 더욱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어진다. 이 책을 독서토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꼭 한번쯤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존재가 바로 이 '인형'일 것이다. 주인공과 인형, 나와 인형은 어떤 관계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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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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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코뿔소를 위한 변명],[코뿔소를 위하여]. 코뿔소 삼중주가 흘러나오지만 이 책에서는 절대 코뿔소라는 것을 찾을 수는 없다. 계속되는 코뿔소에 의한 이야기만 계속될 뿐. 그러므로 코뿔소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적으로 나오는 코뿔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그것은 온전히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두식. 형사다. 리어카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경찰에 쫓기다 못해 결국은 우리도 좀 살자면서 시위현장에 나가서 곤봉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직접 본 당사자이다. 그런 일을 당한만큼 평탄하게 쉽게 인생을 살아오지는 않았다.

 

준혁. 검사다. 친가집, 외갓집을 떠돌면서 온갖 구박을 당하고 살아왔다. 아버지는 정치를 한다고 여기저기 다녔지만 결국은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어 실족사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경찰에 고발한 누명을 쓰고 자신의 누명을 벗기라도 하듯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이 역시도 만만한 인생은 아니다.

 

수연. 범죄심리학자이다. 오로지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 선배였던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경찰에 쫓기던 그를 영영 만나지 못하는 운명이 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 혼자 남겨진 그의 어머니를 매해 찾아가 뵈었다. 원치않는 솔로가 되어 버렸다.

 

저마다 단 한 사람도 평범하게 살아오지 않은 인생들이다. 그 인생들은 저마다 서로의 삶에서 얽혀있지는 않지만 이토록 힘들게 살아온 인생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를 이해하기에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서로의 관심사가 다르고 서로의 생각이 다른지라 좀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나의 실종사건 앞에서  두식과 수연은 마주한다. 솔직히 말해 두식은 그녀의 침입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라진 사람이 중요하다. 전직 검사이며 지금은 변호사로써 활동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아마도 전관예우에 따른 것일테지만 여기서부터 그리 썩 마음에 드는 설정은 아니다. 그런 그가 사라졌다.

 

경찰쪽에서는 당연히 발칵 뒤집혀서 그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사무실에서는 그가 며칠전부터 불안한 증세를 보엿다고 한다. 며칠전 받았다는 택배. 그것은 지은이를 알 수 없는 한권이 논문같은데 이것을 단서로 잡아서 그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것이 납치사건이라면 돈을 요구하는 협박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이 건은 조금은 이상하다. 협박은 커녕 자신을 잡아보기라도 하라는 듯 계속되는 정보를 흘린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보내진 것은 동영상. 과연 이들은 전직 검사 출신의 변호사의 행방을 쫓아서 그를 구해낼 수 있을까.

 

단 한 건의 사건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두건 이상의 사건이 엮이면 분명 그 사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는 법이다. 두식과 후배들이 계속되는 헛발질을 하는 사이 검사 또한 투입이 된다.  이 일을 배후에는 누가 있는 것이며 그들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은 나를 추억속으로 데려다 놓았다. 신촌거리를 지날때면 늘 매캐하게 깔려있 던 최루탄 냄새. 힘들게 대학 들어가서 비싼 등록금 내고 저들은 왜 공부를 하지 않고 이런 데모를 벌이는가 어린마음에 궁금했었다. 그때 당시는 이해하지 못했고 대학을 들어가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는 이미 '시위'라는 문화는 거의 소멸되었으므로.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시국이 이러했기 때문에 저들이, 조금이라도 더 배웠다는 저들이 행동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었음을. 그럼으로 인해서 애매한 사람들이 곤경을 겪기도 했지만 그럴수밖에 없었던 역사였음을 조금은 인식하게 된다.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 한국 추리소설계에 돌풍을 몰고 온 작가라고 했다. 그 책을 읽어봐야할 것 같다. 이 작가. 심히 궁금해지려고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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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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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일단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을 읽었나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분명 미니북으로 가지고 있지만 기억속에 남아 있지 않아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하기 전에 다른 작품보다 유달리 두꺼운 이 책. 번역자가 이정서 작가이다. 카뮈의 [이방인]의 번역을 하나하나 오류를 설명하던 책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작가이다. 그렇다면 이 책 또한 그러하다.

 

고전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번역본들이 존재한다.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많이 팔린다는 번역과 가장 원본에 충실하다는 번역을 자신이 번역한 것과 비교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비난의 여지가 있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니 이제라도 바로 잡아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읽을때는 아무래도 작가의 영향을 많이 받게된다. 한국인의 모국어인 한글로 적혀진 글을 읽을때는 상관없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외국어로 쓰여진 작품을 읽으려면 반드시 번역자의 손을 거쳐야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번역자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의역이 필요한 부분도 있고 여러가지 단어들 중에서 가장 이 이야기에 적합한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책을 볼 때면 번역자가 누구인지 보는 편이다. 내가 이미 읽어왔던 작가거나 인정하는 작가라면 믿고 보는 편이지만 처음 보는 작가인 경우 의심을 가지고 보기 마련이다. 어떻게 이야기를 번역을 했는지 두려움과 기대를 느끼면서 말이다. 원서를 몇권 거지고 있다. 원서로 본 책들도 있다. 해리포터는 전권을 원서로 읽었고 다빈치코드도 원서로 읽었다.

 

그 중 해리포터 1권과 다빈치코드는 호기심에 번역본과 비교해서 읽어본 적이 있다. 해리포터는 내가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읽은 것이고 다빈치코드는 정말 하나하나 대조해가면서 보았다. 원서에는 분명 존재하는 문장이지만 번역본에는 빠져 있는 문장도 눈에 띄었다. 왜 빠뜨린 것인지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직접적으로 물어볼 생각은 못했다. 만약 내가 번역을 한다면 어떤식으로 번역을 할까 하는 생각은 해본 적 있다. 상당히 어렵고 고된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67군데의 오역을 지적한 '역자노트'는 다른 책과가 이 책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가령 paralyzed라는 단어는 '마비된'이라는 뜻으로 대부분의 단어책에서 나오고 나 또한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본문에서의 쓰임은 다르다.' 술에 취한 상태'를 뜻하는 용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이 책의 이야기나 흐름을 파악해야지만 알수 있는 장면임에 틀림없다.(305p)

 

번역에는 크게 '직역'과 '의역'의 두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문장 그대로 쓰여진 그대로를 옮겨놓는 것이 직역이라면 의역은 그 문장을 읽은 번역자의 의도대로 약간은 돌려 말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의역이 되면 그것도 곤란한다. 원작의이 의미를 훼손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미니북의 번역은 어쩌면 조금은 심한 의역이 아닐까 할 정도로 많이 지적당하고 있다. 적어도 이 작가에 의하면 말이다. 그런데 그 증거가 명확하니 반발할 수 없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번역본만 읽는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 원서와 비교했을 때 문제가 되기도 한다. 번역본은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품이 아니다. 엄연히 원서가 존재하고 그 원서에 바탕을 둔 채로 옮겨야 하는 것인데 원서에서는 적혀져 있지 도 않은 문장을 쓴다거나 아예 다른 뜻으로 바뀌어 버리면 곤란하다. 읽는 사람들이 모를 것이라고 해서 그런 식으로 번역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저 잘 읽히는 문장이 아닌 원작가가 의도가 그대로 남아있는 번역서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모든 부분이 작가의 말이 다 맞다는 것은 아니다. Mr. Mumble을 다른 번역자들은 '멈블씨'라는 단어를 쓰고 있으나 작가는 '아무개씨'라고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다른 번역들이 '머리를 염색하셨네요.' 라고 쓴 표현을 굳이 '머리를 물들였군요.' 라는 표현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원서에서는 'dyed your hair'라고 쓰고 있고 우리가 흔히 말할때도 '나 머리 염색했어.'라는 말을 쓰지 '머리 둘들였어.'라는 표현을 잘 쓰지는 않는다. 여러가지 지적들 중에서 유일하게 공감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었다.(331p)

 

번역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주인공들이 말하는 의도나 그들의 관계, 말하는 투, 반말인지 존대말인지 여부, 두가지 이상을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일 경우 의미의 선택, 전체적인 맥락. 아에 새로 쓰는것이 더 나을정도로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푸줏간 소년]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마침표 하나 없이 그저 단어와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던 책. 원서가 어떠했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원서도 그와 똑같이 마침표도 하나 없었다. 원사와 같은 맥락으로 같이 번역되어 온 책. 그 작가님의 책을 믿고 읽게 된다.

 

독자들은 번역자들은 믿고 책을 읽는다. 그만큼 번역자들의 역할은 막중하다. 한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쓰고 있겠지만 더 좋은 작품을 내어주길 바라 마지 않는다. 쓰다보니 역자노트에 치중한 서평이 되고 말았다.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내용은 각자가 이해하는 것으로 하면 되겠다. 주인공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궁금하지 않은가.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어볼 기회다. 원서에 충실한 번역 말이다. '번역이 반역'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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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로드 모중석 스릴러 클럽 42
로리 로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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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어는 이제 그 꼭대기 근처에서는 차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마주 오는 트럭을 제때 보지 못했을  때는 갓길로 차를 뺄 줄도 알았다.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아서와 트럭이 먼저 언덕을 넘어가 보이지 않을 때는 어느 쪽으로 차를 돌려야 할지도 알았다.(392p)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작가 로리로이의 데뷔작 [벤트로드]이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42번째라는 것만 보아도 이미 장르소설을 표방하고 있고 그로 인한 기대감을 주게 만들지만 정작 작가는 '장르를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는다'고 한다. 단지 '캐릭터와 배경 그리고 플롯을 아름답게 직조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소설을 쓸 뿐'이라고 한다.

 

읽는 사람이 밤을 새워 읽고 싶게끔 하는 이야기를 어느 작가나 다 쓰고 싶어할 것이다. 설마 독자가 자신의 책을 들었다가 몇 페이지도 넘기지 않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팽겨쳐 놓는 작품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아름답게 이야기를 짜 넣느냐가 관건이다. 이 작가가 주목받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저 잔잔한 이야기같으면서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끔 지속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본문속에서 굴러다니는 텀블위드처럼 이야기는 정처없이 흐르는 듯 보이지만 꾸준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제목과는 달리 어디 한군데 구부러진 벤트로드없이 말이다.

 

작가가 쓴 책에서는 공통적으로 특징이 있다. 모두 1960년대의 지방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가족을 비극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 또한 그 당시 상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의 빠른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리듬을 잠시 멈추어 두고 이 느긋한 지방도시의 옛시간의 빠름에 속도를 맞춰서 읽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디트로이트에서 캔자스로 이사오고 있는 아서 가족. 도시속에서 별문제 없이 살았다. 딸 둘과 아들 하나로 이루어진 이 가정은 어느날 창이 박살나고 흑인이 딸아이를 찾는 전화가 왔다는 것을 계기로 한번도 가지 않았던 시골로 돌아가게 된다. 결혼후 한번도 가본적 그곳, 아서의 누나였던 이브가 어린 시절 죽음을 맞이한 곳이었고 그 기억은 아서에게 충격이 되었는지  결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또 어떠한 삶을 꾸려가게 될까.

 

분명 모중석 스릴러 클럽에 속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잔잔한 시골 이야기들만 가득해서 장르를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코가 짜여져서 꼼짝 달싹 할수 없는 직조틀 속에서 갇혀버린 느낌. 돌아간 고향에서는 한 아이가 실종된다. 막내딸 또래의 금발 여자아이. 사람들은 아이를 찾으려고 조직을 구성해서 여기저기 동네 모든 곳을 다 찾아봉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보통 이런 사건이 생기면 동네마다 또래의 아이가 있는 집들은 조심을 하고 걱정을 하기 마련인데 이 동네는 그렇지 않다. 물론 아이들을 조심은 시키지만 학교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등 일상생활이 그저 이어질 뿐이다. 사라진 아이는 어디에 간 것이고 그 아이와 같은 금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에비는 무사할까.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벌써 에비가 실종되거나 없어지거나 무언가 일을 당해야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느린듯이 흘러가지만 끊임없이 속도를 내고 있는 작품. 아서의 가족은 벤트로드에서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떠나 조금은 여우로와 보이는 한가한 시골생활에 리듬을 맞춰보자. 물론 그 속에 숨어 있는 여러가지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이 이야기에 빠져버린 당신이 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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