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벤트로드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2
로리 로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실리어는 이제 그 꼭대기 근처에서는 차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마주 오는 트럭을 제때 보지 못했을 때는 갓길로 차를 뺄 줄도 알았다.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아서와 트럭이 먼저 언덕을 넘어가 보이지 않을 때는 어느 쪽으로 차를 돌려야 할지도 알았다.(392p)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작가 로리로이의 데뷔작 [벤트로드]이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42번째라는 것만 보아도 이미 장르소설을 표방하고 있고 그로 인한 기대감을 주게 만들지만 정작 작가는 '장르를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는다'고 한다. 단지 '캐릭터와 배경 그리고 플롯을 아름답게 직조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소설을 쓸 뿐'이라고 한다.
읽는 사람이 밤을 새워 읽고 싶게끔 하는 이야기를 어느 작가나 다 쓰고 싶어할 것이다. 설마 독자가 자신의 책을 들었다가 몇 페이지도 넘기지 않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팽겨쳐 놓는 작품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아름답게 이야기를 짜 넣느냐가 관건이다. 이 작가가 주목받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저 잔잔한 이야기같으면서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끔 지속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본문속에서 굴러다니는 텀블위드처럼 이야기는 정처없이 흐르는 듯 보이지만 꾸준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제목과는 달리 어디 한군데 구부러진 벤트로드없이 말이다.
작가가 쓴 책에서는 공통적으로 특징이 있다. 모두 1960년대의 지방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가족을 비극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 또한 그 당시 상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의 빠른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리듬을 잠시 멈추어 두고 이 느긋한 지방도시의 옛시간의 빠름에 속도를 맞춰서 읽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디트로이트에서 캔자스로 이사오고 있는 아서 가족. 도시속에서 별문제 없이 살았다. 딸 둘과 아들 하나로 이루어진 이 가정은 어느날 창이 박살나고 흑인이 딸아이를 찾는 전화가 왔다는 것을 계기로 한번도 가지 않았던 시골로 돌아가게 된다. 결혼후 한번도 가본적 그곳, 아서의 누나였던 이브가 어린 시절 죽음을 맞이한 곳이었고 그 기억은 아서에게 충격이 되었는지 결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또 어떠한 삶을 꾸려가게 될까.
분명 모중석 스릴러 클럽에 속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잔잔한 시골 이야기들만 가득해서 장르를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코가 짜여져서 꼼짝 달싹 할수 없는 직조틀 속에서 갇혀버린 느낌. 돌아간 고향에서는 한 아이가 실종된다. 막내딸 또래의 금발 여자아이. 사람들은 아이를 찾으려고 조직을 구성해서 여기저기 동네 모든 곳을 다 찾아봉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보통 이런 사건이 생기면 동네마다 또래의 아이가 있는 집들은 조심을 하고 걱정을 하기 마련인데 이 동네는 그렇지 않다. 물론 아이들을 조심은 시키지만 학교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등 일상생활이 그저 이어질 뿐이다. 사라진 아이는 어디에 간 것이고 그 아이와 같은 금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에비는 무사할까.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벌써 에비가 실종되거나 없어지거나 무언가 일을 당해야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느린듯이 흘러가지만 끊임없이 속도를 내고 있는 작품. 아서의 가족은 벤트로드에서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떠나 조금은 여우로와 보이는 한가한 시골생활에 리듬을 맞춰보자. 물론 그 속에 숨어 있는 여러가지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이 이야기에 빠져버린 당신이 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