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정신줄을 놓았다. 말 그대로 미친것이다. 

나는 사랑이라고 믿었다. 나만 그랬나보다.


선생이면서 이웃었던 그는, 아니 그 놈은 중학생인 나를 철저히 유린했다. 누군가는 그럴수도 있겠다. 왜 그런 관계를 유지했느냐고, 너도 좋으니까 그런 것 아니었냐고. 안 가면 될 것을 왜 자꾸 갔느냐고. 나도 모르겠다. 


아직 '자아'라는 것이 성립되기도 전 중학생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저 그놈의 물건이 입안으로 들어왔을 때 반항했어야 했고 그렇게 했지만 내 입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나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그는 나를 애인인 것처럼 다루었다.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내 의지대로 행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알려야했다. 부모는 무엇을 했는가. 오히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 인덕 높은 선생이라고 생각했고 그에게 나를 맡겼다. 전시회니 공부니 뭐니 하는 핑계로 그는 나를 데리고 다녔고 그때마다 우리는 모텔에 갔다. 대체 부모들은 자식을 믿는 것인가, 이웃을 믿는 것인가. 단 한번이라도 어떤 낌새도 못 느낀 것이란 말이냐. 


나는 엄마에게 운을 뗐다. 우리집은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말한 내게 엄마는 무어라 말했던가. 성교육은 성이 필요한 사람한테나 하는 거야,(95p) 무식한 엄마야. 성교육은 성을 가진 모든 사람이 다 받아야 하는 교육이었다.


가장 친한 샴쌍둥이처럼 여겨지던 친구는 무엇을 했는가. 중학교때부터 붙어다니던 사이였다. 고등학교때 둘만 따로 나와 살 수 있었던 것도 부모들이 친구가 있다는 것을 믿어서일수도 있겠다. 말하려고 했다. 아니 말했다. 그녀는 뭐라고 했던가. 


오히려 나를 욕했다. 서른일곱살이나 많은 남자를 사랑하다니 말이냐 되냐면서 나를 비난했다. 결혼도 했고 부인도 있고 아이도 있는 그를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자신도 똑같이 선생님을 좋아한다면서 왜 너만 사랑해야 되느냐고 오히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다. 답답했다. 내가 원했던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닌데 나는 어느틈엔가 사랑을 그런 행위들로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친구와 나를 아껴주던 동네 언니에게 말하려고 했다. 그 언니는 무언가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몇번 운도 떼봤다. 언니는 무언가 낌새는 차린 것 같았다.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말을 할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정작 자신의 문제에 갇혀 버린 언니는 더이상 내 문제에 신경을 쓰않았다. 결국 나는 또다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시작은 좋았을수도 있다. 동네 언니와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그런 아이들을 귀여워한 국어 선생이 과외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그래, 시작은 충분히 좋았을 수도 있다. 그 선생이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안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는 아이들을 같이 부르지 않았다.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따로 따로 불렀고 그렇게 따로 불려간 아이 중 한명인 나는 그에게 짓밟혔다. 


아직 성숙되지도 않은 아이였을텐데 선생은 아이들만 좋아하는 로리타 신드롭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놀아난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계속 성장을 하고 아이들만 좋아하는 그가 계속해서 다른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학원에서 점찍기만 하면 아이들은 그저 줄줄이 들어왔다. 


하아. 이토록 무지할수가 있을까. 아니 어떻게 그 누구도 모른단 말인가. 아니 알아차리면 뭐하는가. 알아서 신고를 하고 고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상납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 누구도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답답하기만 하다. 인과응보라고 했던가. 정신줄을 놓고 이 세상을 버린 아이가 있다면 당연히 누군가는 그렇게 만든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적어도 그렇게라도 해야 속은 시원해질 것이 아닌가. 


아니었다. 나에게 그토록 비참한 인생을 가져다 준 그는 여전히 이웃들과 시시덕거리고 있었고 여전히 자신의 가족들과 잘 지내고 있었다. 이런 결론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런 놈들은 응분의 댓가를 치르고 두번 다시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성범죄자의 인격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다 까발려야 한다. 그래야 두번 다시 같은 일은 반복되지 않읋것이다. 그놈 또한 딸을이 있다. 자신의 딸이 자신보다 많은 나이의 남자의 물건을 입에 넣고 빨고 그놈을 위해서 다리를 벌리고 아파트까지 차려놓고 들락거리고 있다면 그는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그래, 그것도 사랑이니 계속 그러라고 응원해 줄 것인가. 아빠도 충분히 너를 이해한다고 동조해 줄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딸만을 그러지 않기를 바랄 것인가. 이중적인 잣대, 이중적인 인격, 이중적인 세상. 나는 결국 정신줄을 놓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안타깝고 불운하게도. 나는 무엇을 잘못했던가.


열세살 아무것도 모를 나이때부터 시작되어서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그 긴 기간동안 '선생'이라는 놈의 손에서 놀아나던 나는 결국 일기장을 남긴 채 정신줄을 놓고 만다. 일기를 찾은 친구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게 되지만 되돌리기는 이미 늦었다. 나는 세상과 작별하기로 마음 먹었고 그 결과 이런 상태가 되어 버렸으므로.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야기. 결국은 이야기속의 나보다 더한 선택을 해버린 작가이기에 더욱 마음이 아리다.


-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겠니?(43p)

- 왜 할 줄 모른다고 했을까? 왜 싫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안된다고 하지 않았을까?(4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모든 것이 딱 들어맞는다. 체인으로 연결된 팔찌에서 딱 한 고리가 빠졌었는데 그 고리를 찾은 것이다. 이제 그 고리를 제자리에 연결하고 앞뒤로 연결해주면 완벽한 팔찌가 되듯이 요네스뵈의 해리 시리즈 또한 이제 완전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모든 시리즈를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이 작품만큼은 제발 차례를 지켜서 읽어달라고 말하고 싶다. [데빌스스타]를 먼저, 그리고 [리디머], 이후에 [스노우맨]을 읽으라고 말이다. 이 책 한권만으로도 요네스뵈의 해리는 충분히 재미나고 옴팡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전작을 읽고 나면 해리의 상태가 지금 어떠한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를 알게 되고 연결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는 드라마의 다음 시즌의 에피소드를 보는 것처럼 더욱 큰 재미를 누릴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작가의 [스노우맨] 또한 마찬가지다. 그 책 한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추구할수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다시 책을 읽게 되면 처음에 단독으로 읽었을때 이해하지 못했던 해리의 생각이라던가 행동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훨씬 더 잘 이해가 된다. 역시 이런 장면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이다. 


[리디머]에서의 해리는 다른 어떤 이야기 속에서보다 명료한 의식을 내보이고 있다. 술에 찌들지도 않았고 어디가 아프지도 않으며 몸에 어디 한 곳 상처 난 곳도 없다. 단지 전작에서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그와의 관계때문에 조금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 


그의 독단적인 성격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자신을 인정해주던 상사가 물러나고 새로운 상사가 등장을 한다. 약간은 삐걱거리는 듯이 보이는 그들 사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화해갈지는 이미 후속작을 읽은 사람들만 알수 있는 특권이다. 


오직 한명 좋아했던 여자 라켈과 그의 아들 올레그와의 관계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상태이다. 라켈은 벌써 다른 사람인 의사와 사랑에 빠진듯 하고 올레그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듯이 보인다. 그들과의 관계는 마치 이혼한 전 부인과 같은 느낌이다. 아이는 아빠를 그리워하고 부인은 남편을 멀리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까. 


올레그에게 해리가 아빠가 되어 주었다면 이후에 생길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 위험한 남자인 해리를 가까이 할수 없음이 백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결론이 어떠하던지 말이다.


단 한번,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총을 들었다. 그리고 총을 당겼다. 자신이 원했던 표적물이 쓰러졌고 그는 유유히 사건현장을 떴다. 모든 것이 생각한 대로였다. 나와서 총을 버리고 그대로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면 되는 일이었다. 사건은 저질렀는데 총을 버려야 하는 쓰레기통에는 보는 눈이 있어서 총을 못 버린 것이 첫번째 실수였고 공항으로 갔지만 눈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한 것이 두번째 실수였다. 


이 두 번의 실수 아닌 실수는 치명적으로 그에게 다가오게 되는데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건을 저질렀지만 노르웨이 말을 할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그는 어떻게 이 사건을 대처할 수 있을까. 그를 찾아오는 형사들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말도 통하지 않는 오슬로 땅에서 갇혀버린 그는 무사히 탈출해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수 있을까.


요네스뵈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재미는 있지만 약간은 어렵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그것은 [레드브레스트]나 [레오파드]에 있어서 더욱 심했는데 이번 [리디머]를 읽는 사람들이라면 그 말은 절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철저히 사건 하나에 주목해서 집중하게 만들어 재미와 흥미를 추구했다. 


범인이 어떻게 이런 일을 시작했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이 나오지만 길지 않은 이야기로 인해서 절대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진정한 '페이지 터너'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려고 작정이라도 하듯이 쉽고 빠르게, 그러면서 절대 속도감을 줄이지 않는다.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려본 적 있는가. 속도제한도, 톨게이트도, 신호등도 없는 도로다. 당신은 [리디머]라는 성능 좋은 차에 타고 묘네스뵈의 해리시리즈라는 멋진 도로를 그저 달리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멋지고 행복한 시간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속도감있는 질주를 원한다면 바로 이 한 권, 리디머를 권해줄 것이다. 틀림없이 나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스무살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는가? 작가는 자신의 스무살 생일을 너무나도 잘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보낸 그. 바꾸고 싶어도 바꿔줄 사람이 없었기에 그날 하루를 온종일 일만 하느라고 다 보냈다고 했다. 당신의 스무살 생일은 어떠했는가. 


솔직히 말하지만 내 생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추운 겨울날이 생일인 나는 아마도 그날 누구를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친구를 보러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족들의 축하가 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겠지만 아마도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미역국과 함께 보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여기 또 한명의 소녀가 스무살 생일을 맞이했다. 이제는 소녀가 아닌 성인으로 맞이하게 되는 첫 생일인 스무살 생일. 원래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금요일. 그녀는 친구의 부탁들을 받고서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열이 펄펄 끓어 전화한 친구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을 것서이다. 


그녀의 약한 마음이, 남을 배려할줄 아는 마음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 생각했다면 분명 나는 오늘 생일이고 약속이 있어서 안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할수 있었을텐데 그녀는 생일이 뭐 별거냐며 흔쾌히 응해주고 만다. 


일년에 단 한번뿐인 생일. 남이 요리해주고 남이 서브해주는 음식을 먹고 싶어지는 그런 날 그녀는 남에게 서비스를 한다. 최선을 다해서 웃음을 보이고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 주고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데 불편함이 없게끔 한다. 그것이 바로 성인으로 가는 첫 생일날 그녀가 한 것이다. 그날 하,루 그녀에게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까.


생일은 누구에게나 단 하루 일년에 하루 뿐이다. 나는 음력으로도 양력으로도 주민등록상으로도 모두 생일이 다르다고 할 사람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실제로 챙기는 생일은 단 하루뿐일 것이다. 누구도 두번 태어나는 사람으은 없고 두번 생일을 챙겨먹는 사람도 없다. 그런 생일을 당신은 어떻게 보냈는가, 그리고 어떻게 보내길 원하는가.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을 잘 챙기지 않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도 초대하고 선물도 받고 캐잌에 꽂힌 촛불도 불고 하면서 근사하게 파티를 하지만 그것은 어렸을 때일뿐 나이가 드는 것도 서러운데 생일이 대수냐 하면서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작가는 생일과 한편이라고 한다. 그날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기념을 하고 축하를 하고 자신만의 위한 하루의 사치를 부리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쪽인가. 그냥 넘어가는 편? 아니면 작가처럼 당신을 위한 하루만의 호사를 누리는 편? 어느 편이라도 좋다. 생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단 하루 주어지므로. 생일날 다른때와 다름없이 일을 하게 된 그녀의 하루에 응원을 보내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나오는 하루키. 단편문학의 재미에 빠져들게 할 책. 표지마저도 아름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라
김지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엄마와 딸의 관계는 생각보다 팽팽하다. 서로 애처롭지만 또 못마땅하다 왜 저러고 사는지 짜증이 난다. 서로 불만은 많은데 또 서로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엄청난 동지가 되었다가도 서로를 가장 서운하게 하는 사람이 된다. 서로를 잘 안다고 믿지만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엄마와 딸은 제대로 사귄 적이 없는지 모른다. 같이 산다고 사귀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둘 사이에 이야기가 있어야 사귐은 성사된다.(91p)

말하고

사람이 다른 존재들과  가장 다른 점은 아마도 말을 한다는 것이다. 다른 존재들도 의사소통을 하지만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말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도 하고 공감을 하기도 한다. 말이라는 것은 너무 많아도 탈, 너무 적어도 탈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말 때문에 후회를 한 적도 있을 것이고 말 때문에 상처를 받은 적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잘 벼려진 칼과 같은 말.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것일까.


챕터1 - 사랑은 언어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얼마나 말을 하고 있는가. 연애를 시작하던 처음에 여자들은 말을 하고 남자들은 들어준다. 모든 것이 다 이뻐보이던 시절이다. 시간이 지나가고 서로에 익숙해질수록 말은 사라지고 만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스킨십을 할때, 혹은 더 깊은 관계를 가질 때도 말이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 


눈빛만 보면 알수 있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말이라는 매개체가 있는데 왜 하지를 못하는가. 사이가 깊어지고 더 깊은 스킨십이 이루어질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말하고 또 말해야 하는 것이다. 좋아? 좋아. 단답식으로 끝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슬퍼하고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도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겠지만 사람처럼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특히 저자는 슬퍼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챕터2 - 슬픔을 말해야 당신이 산다. 사람들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숨겨놓으려고만 한다. 드러내지 않으려고한다. 자신이 작게 보인다는 생각일까 또 하찮게 보인다는 생각일까. 


슬픔을 표현한다는 것은 세상살이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일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을 말해야 한다. 자신이 살고 싶다면 슬픔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속에 묵은 감정을 떨어버릴수가 있을 것이다.


사랑하라

결국은 돌고 돌아 사랑이다. 말을 하는 이유도, 슬픔을 드러내어야 하는 이유도 결국은 사랑인 것이다. 저자가 하려는 말도 결국은 사랑이라는 감정 아닐까. 슬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누군가를 또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함인 것이다. 나머지 3개의 챕터를 모두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채울 정도로 저자는 사랑을 강조한다.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의 구분법과 마침내는 결혼이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사랑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혼이 마침표나 마지막 골인지점은 아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하면서도 결혼을 하지 않을수도 있고 결혼을 했지만 다시 혼자가 될수도 있으며 결혼을 했다고 모든 사랑이 다 이루어진 것도 아닐테니 말이다. 


사람은 결국 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는 존재인 것이다.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것은 자명한 일이 아닐까. 지금 이 시간에도 사랑으로 힘들어 하는 당신, 충분히 말하고 충분히 슬퍼하고 그리고 다시 사랑하라. 당신의 사랑은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