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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피리 - 동화 속 범죄사건 추리 파일
찬호께이 지음, 문현선 옮김 / 검은숲 / 2021년 9월
평점 :
찬호께이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망내인]이나 [13.67]같은 정통 사회파적인 작품들이었다. 묵직하고 무겁고 두껍고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들이었다.그런 느낌을 좋아해서 이번에도 역시나 작가의 이름만으로 선택한 작품이었다. 표지가 색다르다. 기존의 찬호께이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동화적인 캐릭터가 묘사되어 있어서 왠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느낌도 든다.
꽤 긴 작가의 후기가 편집되어 있다. 이렇게 긴 후기는 낯설다. 작가는 자신이 작품 속에서 어떤 동화를 차용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원작이 어떤 동화였는지도 밝혀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 이야기는 직접 그 장소를 자신이 가보고서야 작품을 완성했다니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관심 정도를 파악할 수가 있겠다. 작품에 대한 정보를 미리 보고 싶지 않다면 나중에 읽어도 좋겠지만 나는 이런 정보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읽었기에 오히려 작가가 언급한 부분이 어디였나를 찾아보면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민중의 마음. 특히 교육받지 못한 백성들의 마음은 한두 마디 말에 흔들리기 쉽네. 그들은 어떤 관념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인 뒤에는 철썩같이 믿어. 이건 양날의 검과 같거든. 잘 사용하면 자네 의견에 쉽게 동의하도록 만들 수 있지. (293p)
총 세 개의 이야기다. 작가인 호프만 선생과 그의 하인인 한스가 주인공이다. 호프만 선생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작품의 소재를 얻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워낙 기이한 일들을 경험해 왔기에 한스도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잭과 콩나무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콩나무 맞다. 그 이야기가 그대로 현실에서 재현된다. 그리고 그렇게 나무를 찍어서 거인을 죽인 아이는 이제 체포되어서 재판을 앞두고 있다. 살인죄로 말이다. 아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호프만 박사다.
첫번째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지막 하멜른의 이야기가 언급된다. 시간 상으로 역순인 것이다. 마술 피리 사건을 해결한 박사라는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분명하다. 그렇다면 마술 피리 사건을 제일 앞에 편집하는 것이 시간 순대로 읽기에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의문은 마지막 이야기를 읽으면서 해결되어서 상당히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숨가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처음 시작 부분이 아니라 이렇게 마지막에 놓여야 맞는 것이었다 하는 생각을 한다. 작가나 편집자의 편집센스가 돋보이는 배치였다. 다 계획이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잭과 콩나무 사건을 해결한 호프만 박사는 <푸른 수염의 밀실>이라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갑작스럽게 그들 앞에 나타난 한 여자로 인해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세 개의 동화는 이미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어떻게 그 동화들을 미스터리한 사건에 녹여 내는가가 궁금했다. 작가도 이미 언급했듯이 푸른수염이야기에서는 이미 살인사건이 전제되어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 마술 피리까지 각 이야기 속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동화들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다른 동화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이 이야기를 읽는 다른 재미다.
바그너 씨는 고집이 대단해서 베저강이 피로 변하고 우박이 쏟아지며 메뚜기가 덮치거나. 마을 모든 집의 장자가 해를 입지 않는 한 타협하지 않을 겁니다. (394p)
모든 것이 동화만 들어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마지막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성경구절까지 인용하고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는 애굽에 열 가지의 재앙을 내렸다. 그런 출애굽기의 내용을 인용해서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상황이 어떠한지 그 잘 느낄 수 있도록 해두었다. 천재적인 표현방법이다. 역시 작가들의 능력은 놀랍다. 책은 읽을수록 일고 싶은 책이 늘어난다고 말들 한다. 그것은 이 책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나온 모든 동화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어린 시절에 단지 이야기만 이해하고 넘어갔던 그 내용들을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으로 읽힐지가 궁금해진 것이다. 찬호께이는 또 다른 동화 속의 범죄사건 추리파일을 기획하고 있을까? 아직 아니라면 좀 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부탁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