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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파 - 조선의 마지막 소리
김해숙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2월
평점 :
표지의 그림에 눈길이 간다. 그냥 이쁘다. 아니 이쁘다기 보다는 요염해 보인다. 눈이 강조되어 보이는 얼굴. 전형적인 한국 사람같으면서도 또 어딘가 모르게 묘한 느낌을 주는 그런 얼굴. 뒤로 쪽지어 틀어 올린 머리가 그 속에 꽂힌 나비떨잠이 더욱 눈길을 잡아끈다. 그녀는 책의 제목인 금파다.
먼저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상에는 제한이 있다. 고창이라는 지역의 역사나 자연, 지리나 인물 등을 소재로 삼고 배경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제한이 있으면 어떻게 보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더 쉬울 것 같이 보이지만 오히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속에 녹이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심사평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은 그런 작품들이 보였다고 말이다. 그만큼 녹녹한 일은 아니라는 소리다.
이 책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금파는 허금파다. 김천 출생으로 판소리를 하기 위해서 고창에 왔다고 한다. 남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실존인물이었고 고창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니 이보다 더 적합한 인물은 없는 셈이다. 더구나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소리를 했노라고 작가의 말에 밝히고 있다. 그야말로 최고의 조합인 셈이다. 그래서 작가는 아버지와 자신과 허금파가 함께 작품을 쓰는 동안 그 길을 걸었다고 했구나.
소리는 소리뿐만 아니라 인생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98p
금파는 자신이 소리를 배우겠다는 신념으로 이곳 동리정사에 왔다. 그녀는 김세종 선생을 찾아서 자신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자신을 제자로 삼아달라고 자신에게 소리를 가르쳐 달라고 하지만 선생은 매정하다. 목소리는 고왔지만 기교는 심한 그런 금파였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포기하기를 기대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녀 또한 만만치는 않았다. 그녀는 그곳에 눌러앉았다. 봉동댁을 엄마라 부르면서 언젠가는 자신의 소리를 들어봐주길 바랐다.
한때 오디션 열풍이 불었더랬다. 자신의 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지원자들의 노래를 그리고 춤을 평가했다. 그때 그들이 했던 말 중에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편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좋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라면 가르치기가 쉽다는 것이다. 어디서 잘못된 기교를 배우거나 겉멋이 들면 그런 것은 습관이 되어 버리고 고정되어 버리기에 오히려 더 고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금파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려서부터 소리에 자질이 있었지만 제대로 소리를 배우기 전에 자신만의 멋이 들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작은 고을에서 나쁜 소문이 나면 소리하는 데도 문제가 생겼다. 자꾸만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몸을 달라는 사람이 생겼다. 29p
양반들은 소리를 듣고 싶네 하면서 그녀를 희롱한다.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지 자신의 몸을 팔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 남자들은 여자의 몸에만 집착하는 것일까. 권력이 있고 돈이 있으면 그것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생각이 이런 배경 속에서는 늘 드러나는 편이라 불편하다. 하기야 요즘이라고 어디 그런 사람이 없을까마는.
허금파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진다. 그때 당시에는 영상을 남길 수가 없었다. 사진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녀의 모습을 담은 그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그녀를 통해서 나오는 그 소리는 얼마나 대단했을까. 본문 속 구절구절 나오는 소리들에 그녀의 목소리를 얹어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