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누나 속편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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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생과 나는 한살 차이가 난다. 연년생이다. 개월수로 따지면 한 15-6개월 정도 차이가 난다. 둘다 학교를 일찍 들어가서 또래들보다는 한살씩 어린 편이다. 동생은 반수를 해서 또래 나이로 맞췄지만 나는 그냥 그대로 졸업을 했다. 물론 내가 누나다.

 

한때 같이 산 적이 있었다. 말그래도 둘이서만 . 내가 먼저 한국을 떠났고 동생은 제대를 하자마자 합류해서 부모님도 없이 둘이서만 살았던 적이 있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달랑 둘이어서 그랬을까 서로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고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 방에서 같이 공부하고 생각하고 밥해먹고 살았던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지하루와 준페이처럼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들이나 새로 사귄 친구들 얘기, 부모님 얘기, 공부 얘기 등. 아무래도 같이 산다는 것은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만큼 더 가까워질 계기를 만들어 준다. 아마도 지하루와 준페이도 같이 살게 되면서 더 가까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지하루는 책에서 소개하다시피 '사이다' 같은 여자다. 남자앞에서는 약간 내숭도 떨어주고 맘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말을 붙여 볼 계기도 일부러 만드는 등 나름 계획적이고 치밀한 여자이면서 집에 와서 동생인 준페이 앞에서는 시원하게 모든 말을 다 하는 성격이다. 그런 누나를 보면서 동생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여자들은 무섭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조금은 있다. 왜 꼭 여자는 이래야만 하고 남자는 저래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다. 위의 컷처럼 '신호등에 파란불이 되었을 때 곧바로 걷기 시작하는 남자가 아니면 싫다.'라는 말은 어디에서 공감을 해야 할지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다. '곧바로'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어서 바로바로 실행하는 남자가 좋다라는 뜻으로 이해하긴 했지만 모호한 구석이 없잖아 있기는 하다.

 

'다시 태어나도 너와 형제가 되고 싶다.'라는 누나의 말에 동생은 제발 자신이 '오빠'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내가 키도 훨씬 더 크고 해서 분명 누나로 보였는데 동생이 먼저 결혼하고 아이도 둘이나 있고 따로 나가 살고 있어서 동생이 더 오빠 같을때가 많다. 누나 입장에서 보면 한없이 동생으로만 보이지만 말이다. 아무리 한살차이라도.

 

지하루와 준페이의 부모님이 돌아온신다. '내누나'는 여기서 계속 되지않을지도 모르지만 지하루가 결혼을 하고 준페이가 매형이 생겨서 또 새로운 누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누나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떨지 또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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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목욕탕
나카노 료타 지음, 소은선 옮김 / 엔케이컨텐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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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가운데 높다랗게 솟은 굴뚝. 그곳에서 연기가 솔솔나는 것을 보며 목욕합니다 라고 밖에 내놓은 간판을 보고 들어가 돈을 내밀면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란색 종이조각을 준다. 그것을 들고 들어가 통에 넣고 옷을 벗고 문을 열고 탕에 들어간다. 옷을 벗는 순간은 늘 추웠고 가능하면 빨리 안개구름처럼 몽실한 수증기가 가득한 탕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목욕탕에 갈 때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체중계에 올라가기. 커다랗고 동그란 머리가 달린 체중계. 올라면 바늘이 휙휙 돌아가던 그 체중계는 요즘은 보기도 힘들어졌다. 아프다며 징징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 뒤로  탕에 들어가서 몸을 불리라는 엄마들의 메마른 목소리가 뒤섞여나온다.

 

무어 그리 나올거라고 힘을 주어가면 빡빡 밀어댔는지 하나같이 목욕탕에서 나오면 너무 밀어서 새빨개진 몸뚱이를 자랑하곤 했었고 락커 앞에 있는 넓은 평상에 앉아 베지밀이나 바나나 우유 같은 것을 하나씩 먹으며 옷을 입었다. 추운 겨울 새벽 집에 돌아오면 머리카락이 다 얼어 고드름이 되어 있었고 조심스레 목도리를 뒤집어 쓰고 왔던 기억이 아직도 머리속에는 선명하다.

 

'목욕탕'이라는 이름은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다. 대신 찜질방이라는 이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짬잘방에는 목욕탕도 있지만 목욕만 따로 하는 곳은 잘 없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 사정은 그런데 일본의 사정은 어떨까. 일본은 몇번 갔었어도 동네 목욕탕은 가본 적이 없다.

 

온천은 가 본적이 있고 호텔에서 운영하는 온천도 가 보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목욕탕이리라. 샤워보다는 몸을 덥히는 용도로 사용되곤 하는 욕조 목욕을 즐겨하는 일본인들이니까 아직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 한 동네목욕탕이 있다. 행복목욕탕. 후지산이 그려진 그림을 바탕으로 한 목욕탕. 매일같이 굴뚝에서 솟아나는 연기를 보며 행복을 다짐하던 후타바. 보일러로 물을 덥혀서 내놓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나무를 이용해서 물을 덥힌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물이 훨씬 더 부드럽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가. 나무로 물을 덥히면 그 물이 더 따스할까. 페목재를 이용한다고 해도 삼림자원이 점점 줄어가는 이 세대에 너무 사치스러운 것은 아닐까, 다른 대처 방안이라도 마련은 해둔 것일까 하고 온갖 걱정을 다하고 있다. 남의 일이야 하면서도 말이다.

 

항상 연기가 올라오던 목욕탕은 주인이 사라졌다는 것을 계기로 일년째 연기가 올라오지 않고 있다. 아예 폐업은 아닌 것 같고 무슨 사연이 이 목욕탕에는 있는 것일까.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엄마와 아빠 그리고 딸 하나. 단란했던 가족이었다. 아빠가 그렇게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렇게 나가서 찾을 수 없는 그는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느라고 일년째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매일 아침 엄마가 안고 깨워서 밥을 먹여서 학교 보내는 아이. 처음에 아이를 깨우고 머리모양을 매일 다르게 묶어주고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초등학생일거라고 생가했다. 요즘은 중학생만 되도 아무도 자신의 머리를 엄마에게 맡기지 않으니 말이다. 알고보니 고등학생 딸.

 

우리나라 고등학생중에 아침마다 가만히 앉아서 엄마가 묶어주는 머리모양을 하고 학교에 가는 아이가 있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거기다 스포츠브라라니. 작가는 딸의 나이를 너무 높게 잡았거나 아니면 딸이 왕따를 당할 수 밖에 없는 형태를 만들어놓앗았다. 아무리 착한 딸이고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는 딸이라 해도 말이다.

 

그런 점을 그냥 넘겨버린다면 충분히 감동적이고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행복하며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생각보다 막장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은 이미 신문에 났었던 영화 리뷰 기사로 접했다. 그래서 어떤 요소들이 숨어 있는지 궁금했다.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연결될지도 알고 싶었고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인연은 어디서 올지 모르는 것이 아닌가. 때로는 그런 인연들이 모여서 더 큰 사회를 만들어 가기도 하는 법고. 여러 관계들이 모여서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이 또 새로운 생활을 만들어 간다. 이 행복목욕탕이 아직도 존재했으면 하고 바라본다. 그들의 행복이 이 목욕탕을 통해서 영원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목욕탕으로 인해서 그 마을 자체가 모두 행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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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지음 / 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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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어감이 참으로 귀엽다. 입속에서 계속 되감아 가며 말해보게 된다. 보노보노보노보노. 무언가 동그란 물건을 나타날때 쓰는 말 같기도 하다. 솔직히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보노보노가 무엇인지 몰랐다는 것을 먼저 말하자. 작가가 그렇게도 좋아하고 감동받았던 만화 보노보노를 난 전혀 몰랐다. 토토로는 알았어도 말이다.

 

뒷편 책날개에 붙어있는 등장인물 소개를 먼저 읽어본다. 주인공인 보노보노를 비롯해서 그의 아빠. 그리고 자주 지내는 친구들 포로리와 너부리등 중요 인물 아니 동물들이 간략한 설명과 더불어 소개되어 있다. 나처럼 모르는 사람이라면 먼저 이 설명을 통해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보노보노를 보면서 느꼈던 점을 자신의 일상에 비추어 담담하게 적어 내려 간 글은 보노보노를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하며 읽을 것이고 모르는 사람이라면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짧은 컷들의 만화를 통해서 그 책이 어떤 것인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재미있게 놀지 않아도 괜찮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괜찮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길에 어느새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면 그게 진짜 친구 아닌가. 단, 진짜 친구라면 두 사람 모두 비슷하게 편안한 얼굴을 할 수 있어야 겠지.(37p) 

 

그들은 관계를 향해 전력 질주하기보다는 천천히 걸어가는 걸 즐긴다. 섬광 같은 매력보다 같이 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을 선호한다. 마치 보노보노와 친구들처럼.(31p) 

친구와 자주 만나는 편이 아니다. 가장 친한 친구조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서 자주 만나지 못한다. 저녁에 한시간 있는 있는 일로 인해서 주말 하루를 통으로 날려 버리는 셈이라 그럴 바에는 다음에 만나자면 미루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는 언제 보아도 어제 본 듯이 편하다.

 

헤어질 때면 보노보노의 아빠와 친구 아저씨처럼 편안한 얼굴을 하고 헤어진다. 그 친구의 얼굴까지 추적해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 친구도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전력질주하기보다는 편안하게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친구다. 보노보노와 친구들처럼. 우리는 진짜 친구다.

 

작가의 잘난 척을 더는 봐 줄 수가 없었다. 잘난 척이 심한 책은 도무지 읽기가 힘들다. 특히 왜 잘난 척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이 잘난 척 할때는 더 그렇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더욱 공공연하게 잘난 척할 필요가 있어 책을 쓴 건 알겠는데, 이 평화로운 밤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잘난 척까지 듣고 싶지는 않았다. 맞다. 나는 배배  꼬인 독자다.(311p)

약간 느슨하게 읽고 있던 마음에 깊이 공감을 남겨준 글이다. 작가는 작가이면서 또한 독자다. 독자의 입장에서 다른 작가를 이리도 시원하게 깔(?) 수 있을가. 그녀가 읽는 글이 무엇일까. 심히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 친하다면 찾아가서 몰래 물어보고 싶어질 지경이다. 작가님 그 잘난 척 하던 책이 도대체 우엇이었나요? 하고 말이다.

 

나 또한 작가가 잘난 척을 대놓고 해 놓은 책은 읽기가 싫다. 니만 잘났냐, 나도 잘났다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랄까. 물론 잘났기에 책도 쓰겠지.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꼬인 독자라고 했나. 나도 그리 만만하게 대충 보는 독자는 아니다.

 

하지만 실제 내 성격을 드러내면 일과 인간관계 모두 엉망이 될 것 같아 적당히 숨기고 사는 거뿐이다. 숨기고 살아온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가끔은 그 성격이 진짜 내 성격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나조차 나를 속이며 사는 셈이다.(231p) 

너무너무너무 공감했다. 나도 내 성격을 다 드러내고 사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나도 내 성격을 숨기고 살아왔을 것이다. 적어도 밖으로 드러난 것은 말이다. 그러므로 인해서 사람들이 본 나와 가족들이 보는 나는 확연히 모습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좋게만 대해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일까.

 

내 친구는 나의 어떤 모습을 알고 있을까. 적어도 친구들 앞에서는 나의 본모습이 보여지는 것이길. 오래된 시간 만큼 서로의 본모습을 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로의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지 않았기에 우정이 오래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서로간에 적당한 거리조절은 필요한 법이다. 친구든 가족이든 하다못해 연인이라 하더라도.

 

보노보노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중간중간 삽입된 일러스트를 보며서 그 친구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궁금해졋다. 보노보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작가는 보노보노처럼 살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토록 작가가 믿는데는 분명 무언가 있기 마련이다. 궁금해졌다. 작가의 책 덕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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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푸른빛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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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머리 위로 별이 다시 보였지만 나는 태양에 미쳐 있었다. 웃고 싶었다. 내일이면 작고 또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하늘의 섬광을 조금도 약화시키지 못할 비행기가 시끄러운 한 마리 곤충처럼 내게 나타날 것이다. (158 p)

[눈이야기]로 작가의 전작을 읽은 바 같은 맥락으로 읽어가면 조금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만의 선입견이고 편견이고 오만이고 도전이었다. 에로티슴 문학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던 눈이야기. 질펀한 장면들과 상상하기 조차 힘들었던 청춘들의 방황을 그린 작품이 눈 이야기였다면 같은 에로티슴이라 하더라도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조르주 바타유가 굉장한 작가였구나 하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너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와 '인간'을 나타내는 영어단어가 합해져 만들어진 이름 트로프만. 주인공 이름이자 여자 셋을 사랑한 한 남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차지연의 의해 쓰여진 해제에 따르면 이 주인공은 '잉여인간'이나 또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저자의 말대로 슬집과 사창가를 드나들며 간간히 글을 쓰는 주인공은 작가의 젊은 시절을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즉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주인공에게 투영시켜 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허구적인 작품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그 때 당시 유럽의 정치적 상황이 고스런히 깔린 작품. 눈이야기보다 이 책이 나오기 더 힘들었던 것은 외설적인 묘사보다도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지도 모른다.

 

이 책에 부제를 붙인다면 '트로프만과 세여자'가 아닐까. 아내 에디트가 있으면서도 디르티, 라자르 그리고 크세니까지 세명의 여자와 관계를 맺게 되는 트로프만. 첫번째 여자인 디르티. 독특한 이름의 그녀는 영어로는 DIRTY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가 그러한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도로테아라는 원래의 이름보다도 '디르티'라는 이름이 왠지 모르게 더욱 어울리는 그녀. 이름은 더러울지 몰라도 그녀를 통해서 트로프만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고귀함을 느끼게 된다.

 

디르티라는 여자가 그에게 반어적인 의미로 연관되어 있다면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여자 '라자르'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투사의 모습을 보이는 그녀. 바로셀로나에서 투쟁을 준비하는 그녀를 대하는 트로프만의 태도는 공산주의를 지지하면서도 동조할 수 없었던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눈이야기에서 나란 존재에 시몬과 마르셀이란 두 명의 여자가 삼각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마르셀'과 같은 존재가 이 책에서는 '크세니'라고 할 수 있다. 주된 캐릭터는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전적으로 주인공만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그녀. 아내 에디트는 없고 장모와 함께 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아픈 그를 간호해 주는 크세니. 이 어찌 헌신적이지 않으랴.

 

눈이야기의 마르셀 또한 그랬다. 나는 시몬과 먼저 정을 통하지만 그것으로는 모자란 면이 있었을까. 결국 순수한 마르셀까지 동참시켜서 관계를 하게 된다. 시몬이 주된 가지라면 마르셀은 그에 달린 곁가지다. 곁가지 또한 없다면 밍숭맹숭한 나무가 될 수 있으니 꼭 필요한 존재일터. 크세니도 그러한 존재이다.

 

도로테아가 오고 있는 가운데 크세니가 먼저 도착한다. 그러나 먼저 도착한 크세니는 트로프만의 환대를 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지게 된다. 결국 트로프만은 도로테아만을 위해 기다렸던 것이다. 이처럼 무시당할 줄 알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그만 바라보는 크세니의  모습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누구라도 말이다.

 

에로티슴 소설이라고 해서 외설적으로만 보여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작가는 에로티슴을 통해서 죽음을 설명하려 했고 그 둘을 연결하려 했다. 트로프만을 통해서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닮은 주인공을 내세운 것은 보다 주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보다 깊은 의미의 고찰이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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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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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나는 인간이나 짐승의 불알이 달걀 모양이며, 그 외관도 안구의 그것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31p)

내 마음대로 '눈알시리즈'라고 이름 붙인 두권의 책이 있다. [눈알사냥꾼]과 [눈알수집가]. 제목의 강렬함에 반해 기억하고 있을 뿐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눈이야기]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한순간에 바로 그 시리즈를 생각해냈다. '눈'은 여기서 어떤 소재로  쓰이고 있는가.


눈알, 불알, 닭알. 동그랗고 조그마한 그 소재들은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들이다. 작가가 드러내 놓고 '눈이야기'라고 제목을 붙일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 그것들. 상징적인 의미로, 비유적인 의미로 또 다르게는 직접적인 의미로 쓰이는 그 소재들은 각기 저마다의 존재를 구석구석에서 발휘하고 있다. 작고 동그란것. 충분히 에로틱하다.


작가인 조르주 바티유는 성직자를 꿈꾸기도 했지만 평생을 사서로 일했다. 성직자의 꿈을 꾸기도 한만큼 종교철학에 관한 글들도 많이 썼고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글들을 써왔다. 하지만 그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사드의 적자'라 불릴만큼 매음굴을 전전하며 써내려간 에로티슴 소설을 빼놓을 수 없겠다. 특히 죽음과 에로티슴을 다룬  소설이 바로 이 책인데 첫장면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기에 충분히 매혹적이다.


해변에서 또래의 여자아이 시몬을 만나게 되는 날. 서로를 알게 되고 사흘 후 단 둘만 남게 되었을때 시몬이 두르고 있는 앞치마 밑으로는 완전히 발가벗고 있기를 바랄만큼 내가 느끼는 불안감을 그녀도 역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 이후 나와 시몬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하게 될까. 지극히 당연한 일대일의 관계는 배제된다.


두명으로는 약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작가는 여기서 마르셀이라는 여자아이를 더하여 스리섬의 외관을 취한다. 흔히 알고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닌 조금은 다른 형태의 관계를 추구하는 그들 세명. 열여섯이 될 무렵 만났던 그들. 한창 성에 눈뜨고 궁금해 할 때임에 틀림은 없지만 이 관계들은 어떻게 보면 어른들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치닫게 된다. 결국 마르셀은 어른들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고 마는데 이렇게 그들의 삼각관계는 끝나게 될까 아니면 그들은 또 다른 만남을 추구하게 될까.


본문은 나와 마르셀 그리고 시몬의 이야기를 쓴 1부 이야기편에 이어 '일치들'이라는 2부를 연달아서 적고 있다. 2부의 분위기는 1부와는 사뭇 다르다. 작가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쓴 글이 몇가지 일치를 가지는 것이 놀랐으며 그 일치가 의미를 드러내주는 것 같아 묘사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고 한다. 짧지만 중요한 이 일치들을 읽으면 앞의 이야기 편에서 조금은 모호했던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작업이 역겹고, 모호하고, 접근하기 힘든 것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짧게 정리하면 작가는 요구되지 않는, 혹은 요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 (159p)

역겹고 모호하고 접근하기 힘든 것이 작가의 일이라면 그런 점에 대해서는 이 작품은 거의 만점이라 할수 있겠다. 문화평론가인 수잔 손택이 이 작품에 대해여 쓴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이라는 글을 보면 그러하다. 이 평론가는 그런 점을 지적하며 현대예술가는 광기의 중계인, 즉 작가의 광기를 독자에게 전달해준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을 듯 하다.


도무지 현실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특히나 더욱 그러하다. 현실적이지 않은 에로티슴이기에 더욱 궁금하고 더욱 모호한 이야기. 독자들은 과연 작가의 광기를 얼마나 이해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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