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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8
도쿠나가 케이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비채의 책을 한번이라도 본 독자라면 책등 제일 위에 붙어있는 깃털표시에 Black White 라고 적힌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채에서 나오는 이 시리즈는 블랙 즉 어두운 소설과 화이트, 밝은 소설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그래서 더욱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시리즈다. 개인적으로는 범죄소설이나 경찰소설, 스릴러 및 추리, 호러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블랙편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간간히 읽어주는 화이트 소설들로 말미암아 기분좋게 웃고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책이라 하더라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좋다.
3월에 읽을 책으로 블랙시리즈인 [후회와 진실의 빛]을 앞두고 이번에 새로 나온 화이트 시리즈의 [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를 읽었다. 이 책 정말 화이트스럽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고 간간히 피식거려지기도 하고 마음이 찡해지기도 하는 것을 반복하며 읽어내려간다. 복잡한 이야기들이 아니라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천천히 읽는 사람이라면 한편씩 끊어 읽어도 충분하다. 하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그 주류점에 대체 무슨일이 어떻게 연결되었나 싶어 계속 읽어보고 싶어지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보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루 백엔 보관가게]가 생각났다. 무엇이든 하루에 백엔만 내면 보관해주는 가게. 그 가게에서의 사물들이 화자가 되어서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해주던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그 가게가 물건을 보관해주는 곳이라면 이 가게는 무엇이든 배달해주는 곳이다.
주류점이지만 선대의 뜻을 이어받아 무엇이든 배달해주는 곳, 얼핏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을 생각나게도 한다. 겉으로는 잡화점이지만 속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런 곳 말이다. 주류점이니 당연히 술은 판다. 술을 배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반면 의뢰인들로부터 물건을 받아서 직접 그 사람을 찾아서 배달해주는 일도 그의 임무다. 부업이라고 하지만 왠지 부업이 주업인듯한 느낌이 든다.
배달을 하기 위해 맡겨지는 물품은 다양하다. 살아있는 거북이로부터 작은 편지까지.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 물건을 의뢰하는 것일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물건들로 인해서 이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물건들과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는 모리사와 아키오의 최근작 [미코의 보물상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여러 물건들에 얽힌 사연들을 풀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본 소설의 한 주류인 일상미스터리 소설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비블리아 고서당]보다는 더욱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보다는 더욱 사실적이며 실제의 이야기에 가깝다. 스릴러처럼 빠른 속도를 요하는 작품이 아니다. 한장한장 차분히 천천히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마지막장에 도달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어느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도 편하게 그리고 즐겁게 또한 재미나게 볼 수 있는 그런 작품.
제목에 반해 언뜻 넘겨본 재미에 반해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이 작가. 전에 [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라는 길고 독특한 제목의 작가였다는 것을 말이다. 생애 첫 장편소설이었다는 그 작품이 약간은 풋풋한 사과같은 또는 톡톡 튀는 칩들이 박혀있는 아이스크림 같은 맛이었다면 두번째 책인 이 작품은 그야말로 훨씬 깊이가 있어짐을 알 수 있다. 단 두 작품만에 이런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히 부러워졌다.
깊이가 있어졌을 뿐 아니라 약간은 설익은듯한 유머러스러함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덜커덩거리면서 가던 글 자체가 부드러워졌다. 고속철도를 타고 날아가는 느낌은 아니어도 고급세단을 타고 고속도로를 가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준다. 물론 재미는 당연하다.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련됨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 작가, 다음에는 또 어떠한 재미를 줄까. 첫 작품을 읽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을 들고 나와 나에게 깜짝 선물을 안겨준 작가. 이제는 더욱 기대를 하고 볼 것만 같은 느낌이다. 기대만큼 더욱 근사한 작품을 들고 돌아와 주길.
p.s: "그래. 사람의 기분은 본인한테 듣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상대가 부모건, 친구건, 직장 상사건."(283p)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기부을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지 못한다. 그냥 추측으로만 그렇겠다라는 생각을 주관적으로 하고 넘길 뿐 그것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수도 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편이 좋다. 그것은 상대방에게도 또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