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 지음, 문승준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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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사랑하고 네 여동생은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다 옛날이야기였다. (48p)

 

동창회에 갔다. 그녀가 왔다.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왔다. 아니다. 그녀가 아니다. 저 모습은 그녀를 닮았지만 그녀일 수가 없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다. 아니 지금도 사랑하는 그녀다. 그러니 나는 그녀를 절대 다른 사람과 헷갈릴 수 없다. 저 사람은 그녀의 여동생이다.

 

언니의 죽음을 알리려고 언니의 동창회에 참석했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언니로 알아보는 사람에 정작 할 말은 하지 못하고 언니 행세를 하고 앞에 나가서 말도 하고 그곳에 앉아 있었던 그녀는 자신이 좋아했던 선배가 나가는 것을 보고 같이 나온다. 그렇게 연락처가 교환되었다.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때와 반대인가. 이번에는 네가 메신저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편지를 써야 할까. (132p)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아날로그적이다. 그래서일까 읽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몽글몽글해짐을 피할수가 없게 된다. 거기다가 지금은 아닐지라도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더욱 그러한 마음은 뭉게뭉게 피어오르게 된다. 파랗고 맑은 하늘에 하얀 그야말로 희디 흰 뭉게구름 하나가 점점 크게 피어 오르듯이 말이다.

 

러브레터의 감독으로 알고 있는 이와이 슌지다. 그 감성을 잊을수가 없다. 아마 그 당시에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그 감성 그대로 종이에 옮겨두었다.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잊지 못할 첫사랑이 있다면 더욱 공감하며 읽을 것이고 이 잘못된 편지의 행방이 어떤 결말르 가져다 줄지 추측해 가면서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세상에 찌든 마음을 조금은 달래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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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타자기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희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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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행복한 상상도 오늘의 내가 없다면 상상 속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375p)

 

당신이 이 세상에 싸지른 똥 씀.

 

만약 발신자가 이렇게 쓰여진 편지를 받는다면 당신은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이 세상에 싸지른 똥이라 너무나도 직접적이면서 너무나도 대 놓고 해학적이면서도 또한 더러운 표현이 아니던가. 자기 자신이 싼  똥은 자기가 치우자. 이것이 아마도 지하라는 친구가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어디선가 나타나는 한 사람. 그 사람은 이 위험에서 한사람씩 사람들을 데리고 나간다. 그야말로 수퍼맨이 따로없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가진 초능력을 이용했다.

 

어디선가 아무도 모르게 나타나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가지고 다시 사라진다. 그 필요한 것은 때로는 음식일 수도 있고 때로는 물건일 수도 있고 때로는 돈일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슬며시 나타나서 슬며시 가지고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이 사라진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가진 초능력을 이용했다.

 

그녀가 가진 초능력은 순간이동이었다. 어디로든 마음속으로 한 장소를 생각만 하면 그곳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동네는 물론이거니와 지역을 넘어 나라 간에도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은 능력이 있을까싶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인해서 남의 나라를 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수도 있고 영웅으로 만들수도 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지하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와 더불어 서영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도 교차편집되어 있다. 그녀는 한 가정의 엄마이고 며느리이며 아내이기는 하지만 온전히 제 자신의 자리는 아무데도 없다. 자식들은 다 이집을 떠나서 엄마의 자리는 잃었고 그녀보다 젊은 여자가 이 집에 와서 안방에 들어가 있으니 이미 아내로서의 자리도 잃었다. 함께 사는 시부모는 그녀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니 며느리 자리는 애시당초 처음부터 글렀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이곳에 이집에 살고 있는 것일까.

 

처음부터 잘못된 출발이었다. 팔려가다시피 한 결혼이었다. 친정에서는 시집에서 받아낼 돈을 목표로 그녀를 결혼시켰고 시집에서는 돈은 주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니 폭력으로 그녀에게 되갚아 주었다. 그렇게 양쪽에서 치여버린 그녀의 인생이었다.

 

답답하다. 저렇게 살 수밖에 없는 그녀의 삶이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딸이었던 지하는 자신이 싼 똥은 자신이 치우라고 그렇게 편지를 쓰고 집을 나가버린 것일까.

 

묘하게 교차 편집된 이야기가, 묘하게  판타지와 현실을 섞어 놓은 그 경계가 순간이동을 하는 지하처럼 서서히 사라졌다 서서히 나타난다. 작가의 책을 이미 읽어왔던 터라서 어떤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대단함이라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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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의 죽음 - 을지문덕 탐정록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명섭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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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는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쓴다. 그래서인지 작가와 작품을 한번에 연결시키기가 어려운 작가였다. [상해임지정부]가 그랬고 [유품정리사]가 그랬다. 단지 이야기가 재미나 보여서 읽었던 작품이었다. 뒤늦게야 작가가 정명섭이라는 것을 알고 내가 알고 있던 작가가 아닌데? 하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만큼 딱 어떤 틀에 규정지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인상깊었던 것은 특히나 역사물에 강하다는 것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팩션이라면, 그것이 정명섭 작가의 글이라면 조금은 믿고 읽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남는다.

 

이번 작품 역시도 역사물이라는 것때문에 선택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작가 이름을 보았다. 그리고 기대했다. 을지문덕 탐정록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을 말이다. 솔직히 전작인 [온달장군 살인사건]을 읽지 않아서 조금의 걱정은 남아 있었다. 연작으로 이루어진 경우 아무리 사건이 연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작을 읽고 읽는 것이 조금은 더 재미나게 읽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나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요네스뵈의 해리가 그러하다. 같은 주인공이 나오고 사건은 달라지기 때문에 따로 보아도 무방하지만 처음부터 읽어 온 경우라면 주인공이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일대기를 알기 때문에 재미가 더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이 이야기에서는 조금 접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가. 전작을 읽지 않아서도 전혀 무방하다는 소리다. 전작에서 제목으로 미루어보다 온달장군이 죽었다면 이번에[는 그의 무덤을 둘러 싼 이야기다.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전작을 읽으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해도 전혀 지장이 없다는 소리다.

 

죽은 온달장군을 무덤 속에 두었다. 이제 그 곳에 벽화를 그리고자 한다. 그때 당시의 사람들은 벽화로 사신을 그렸다고 했다. 죽은 자가 온전히 저세상에 가도록 도와주는 존재 들일수도 있고 죽은 자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존재일수도 있다.

 

그 벽화를 그리던 화공이 죽었다. 붓을 입으로  빨던 그는 독살을 당해서 죽은 것이다. 그곳에 남아있던 것은 오직 한명 , 그 뿐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사전작업을 해두었음이 틀림없다. 모든 의혹은 물감을 준비한 화공의 제자에게로 쏠린다. 그중에서도 잔심부름을 도와주는 담징에게로 쏠리게 된다.

 

그는 즉시 잡혀가게 되는데 억울함을 주장하며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그것이 바로 을지문덕이다. 그를 데려와 달라고, 그라면 자신의 의혹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담징. 과연 을지문덕은 이곳에 오게 될 것인가. 와서 이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인가. 그렇다면 실제로 그를 죽인 사람은 왜 무엇때문에 그를 죽인 것일까.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던 일이기에 더욱 흥미롭다. 더군다나 다른 작품에서 잘 사용되지 않았던 그런 인물과 시대라면 더욱 그 흥미가 동하게 된다. 적절하게 잘 배치된 이야기들 그리고 드러나는 요소들, 마지막까지 감춰진 요소들을 찾아내는 재미들까지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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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 검은 그림자의 진실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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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의 그녀, 한쪽에는 또아리를 튼 검은 뱀. 뱀은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서 혀를 빼물었다. 뱀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성경 상에서 뱀은 유혹을 의미하고 죄를 의미하며 사탄을 의미한다. 책에서의 이미지도 그와 같을까.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으로부터 유혹을 당하고 무엇으로부터 죄를 짓게 되는 것일까.

 

사고로 딸을 잃고 그 여파로 아내와도 헤어지고 직장까지도 잃어버린 전직형사 호진. 그는 몇년째 술로 밥을 대신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에게는 아내와 딸이 전부였을까. 딸을 잃었다고 힘들수는 있다. 더군다나 자신이 같이 놀러가기로 한 날 그렇게 사고를 당한 것이기에 죄책감도 분명 클 수는 있다.

 

아내와는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사랑으로 산다고 하지만 다들 어느 정도는 아이 때문에 살아가는 부부들도 있지 아니한가. 그들 사이에서 딸은 전부였을 것이다. 그런 전부를 잃었으니 헤어짐이 이해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들 그렇게 넋놓고 살았어야 했을까.

 

그런 그에게 어느날 누군가 찾아온다. 자신이 몸담았던 경찰서의 상관이다. 그는 자기 선에서 해결해도 될 일을 굳이 호진에게 가져온다. 그것은 누군가의 입을 염려했음이리라. 누군가의 귀를 의식했음이리라. 자신의 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딸을 찾아줄 것을 의뢰한다. 분명 경찰들에게 연락하면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임에도 말이다.

 

당연히 그는 처음에는 귀찮아 하면서 거절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실수를 하고 이 일에 더욱 집착을 하게 된다. 그가 뛰어든 이상 이 사건은 반드시 풀릴 것이다. 다만 어디서 그 아이가 발견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사항이 될 것이다.

 

작가의 전작을 읽었다. 조금은 가벼운 느낌으로 쓰여진 낙원남녀였다. 자신의 사건을 계기로 삼아서 만나게 된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들은 자신들의 아파트를 주변으로 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했었다. 그 전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가벼운 느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둡고 묵직하다. 정통사회파 하드보일드다. 지금 우리네 사건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 소설은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던가. 지금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 흉악하고 더럽고 징그러울 정도로 잔인하다. 그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이야기. 이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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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밥상
박중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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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도시인들은 스스로 자초한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자연주의 밥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밥상에 자연적 요소를 최대한 정성껏 불러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때 '혼돈의 밥상'이 '질서의 밥상'으로 전환돼 건강이 되찾아질 수 있다. (221p)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후유증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많이 심각하다면 채식주의자가 될 지도 모르겠고 거기에 조금 더 심각하게 접근하자면 거식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 그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종말의 밥상]이라는 제목이 주는 그 느낌이 그대로 딱 들어맞는다.

 

사료를 먹여서 그저 단지 고기만을 위해서 키워지는 돼지, 닭, 소들의 현실을 그려놓은 글을 읽고 있자니 내가 지금껏 무엇을 먹어왔던 것인가에 관한 회의감이 들고 링거를 맞아가면서 키워지고 있는 식물들을 알고 나니 내가 이제부터 무엇을 먹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그만큼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먹거리들을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에코시스템은 일직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순환되는 사이클의 개념이다. 풀을 비롯한 식물들이 있고 그 식물을 먹고 사는 초식동물, 그 초식동물을 먹는 육식동물, 그 위에 인간. 그러나 인간  또한 죽고 나면 흙으로 돌아가서 식물들의 영양분이 되어 주는 그런 순환시스템이 아닌가. 그 어느 것 하나가 잘못 된다 할지라도 모든 것에 영향을 주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의 도축 시스템을 그린 다큐를 본 누군가가 그 이후로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우리가 먹고 있는 육류들이 도살되는 것은 차치하고 그렇게 키워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암컷이 아니라는 이유로 땅바닥에 팽겨쳐서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오직 고기만을 위하여 길러져야 하기 때문에 남성을 상징하는 기관을 잘라버리기도 한다.

 

모두가 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인간이 먹고 살고자 동물들을 그렇게 취급한 것이다. 그 결과로 인간은 무엇을 얻었는가. 마블링 훌륭한 좋은 육질의 고기를 얻었는가. 맛이 좋은 살코기만을 얻었는가. 동물도 살아있는 유기체로 그들도 감정이 있고 그들도 좋은 대접을 받고 자랄 필요가 있다. 물론 동물농장처럼 동물이 주인이 되는 그런 시스템은 만들기 어렵겠지만 그들을 위해주는 것이 결국은 우리를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들에게 가해지는 해가 결국엔 우리에게 좋지 않은 먹을거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던가 말이다.

 

돈이 많이 든다고 ,비싸다고, 단가가 맞지 않는다고 지금의 시스템을 고집하다가는 동물도 죽고 사람도 죽을 것이다. 비단 육류뿐이던가 생선도 마찬기지이고 풀들도 마찬가지다. 좋은 땅에서 쭉쭉 뿌리를 내려가면서 살아가야 할 식물들이 영양제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사람도 여러가지를 먹고 튼튼해져야 면역력이 높아지는게 아닌가. 아플 때 찾아가는 곳이 병원이고 아플 때 수액으로 보충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식물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그렇게 키워지고 있다니, 그런 현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드는 사람이 변해야 한다. 기르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그럴려면 그것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변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재료들을 가져다 놓는다 하더라도 단지 비싸다는 이유로 외면해 버린다면 그것은 재료를 공급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은 다시금 악순환을 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싸다고 우리 몸에 음식을 쑤셔넣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종말의 밥상'을 '희망의 밥상'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모든 동식물들이 행복하게 살다 죽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모든 악순환의 연결이 끊어지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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