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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타자기 ㅣ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희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평점 :
아무리 행복한 상상도 오늘의 내가 없다면 상상 속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375p)
당신이 이 세상에 싸지른 똥 씀.
만약 발신자가 이렇게 쓰여진 편지를 받는다면 당신은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이 세상에 싸지른 똥이라 너무나도 직접적이면서 너무나도 대 놓고 해학적이면서도 또한 더러운 표현이 아니던가. 자기 자신이 싼 똥은 자기가 치우자. 이것이 아마도 지하라는 친구가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어디선가 나타나는 한 사람. 그 사람은 이 위험에서 한사람씩 사람들을 데리고 나간다. 그야말로 수퍼맨이 따로없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가진 초능력을 이용했다.
어디선가 아무도 모르게 나타나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가지고 다시 사라진다. 그 필요한 것은 때로는 음식일 수도 있고 때로는 물건일 수도 있고 때로는 돈일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슬며시 나타나서 슬며시 가지고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이 사라진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가진 초능력을 이용했다.
그녀가 가진 초능력은 순간이동이었다. 어디로든 마음속으로 한 장소를 생각만 하면 그곳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동네는 물론이거니와 지역을 넘어 나라 간에도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은 능력이 있을까싶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인해서 남의 나라를 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수도 있고 영웅으로 만들수도 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지하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와 더불어 서영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도 교차편집되어 있다. 그녀는 한 가정의 엄마이고 며느리이며 아내이기는 하지만 온전히 제 자신의 자리는 아무데도 없다. 자식들은 다 이집을 떠나서 엄마의 자리는 잃었고 그녀보다 젊은 여자가 이 집에 와서 안방에 들어가 있으니 이미 아내로서의 자리도 잃었다. 함께 사는 시부모는 그녀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니 며느리 자리는 애시당초 처음부터 글렀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이곳에 이집에 살고 있는 것일까.
처음부터 잘못된 출발이었다. 팔려가다시피 한 결혼이었다. 친정에서는 시집에서 받아낼 돈을 목표로 그녀를 결혼시켰고 시집에서는 돈은 주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니 폭력으로 그녀에게 되갚아 주었다. 그렇게 양쪽에서 치여버린 그녀의 인생이었다.
답답하다. 저렇게 살 수밖에 없는 그녀의 삶이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딸이었던 지하는 자신이 싼 똥은 자신이 치우라고 그렇게 편지를 쓰고 집을 나가버린 것일까.
묘하게 교차 편집된 이야기가, 묘하게 판타지와 현실을 섞어 놓은 그 경계가 순간이동을 하는 지하처럼 서서히 사라졌다 서서히 나타난다. 작가의 책을 이미 읽어왔던 터라서 어떤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대단함이라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