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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 하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그 애들은 둘이서 여행을 떠난 거야.(14p)
뜻밖이었다. 십대 소녀 두명이 여행을 떠났고 그들이 가진 돈은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물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가진 부모의 카드 덕분이 아니었을까? 딸이 유급하게 되자 아버지는 결단을 내린다. 그것은 바로 카드를 정지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돈이 없고 카드 없이는 어디로도 갈 수 없으니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경찰에 신고했을 때 그들이 가르쳐 준 팁이기도 하다. 그렇게 아이들의 여행은 끝날 줄 알았다. 당황한 그들이 자신들이 계획한 것을 포기하고 돌아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이츠카와 레이나는 그들이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고 자신들이 가고 싶었던 곳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물론 이츠카만이다. 레이나는 아직 어리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자신들이 무슨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유롭게 일을 할 수도 없으니 아는 사람에게 소개 받아서 하는 일이여야 하고 서빙을 하는 등의 단순한 일이다. 처음 생각에는 영어실력도 조금 모자라고 사람들에게 나서거나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리는 조금은 내성적인 이츠카가 그런 일을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역시도 나의 편견이었다.
이츠카는 열심히 일했다. 저녁부터 밤에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 낮에도 일을 한다. 낮에 식당에서 일하고 남은 음식을 가져와서 레이나와 함께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는 밤에 또 일을 하러 간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레이나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레이나를 굶기지 않고 같이 계획했던 여행을 마지막까지 해야 겠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처음부터 어디서 끝을 내겠다고, 어디까지 가겠다고, 어디를 가겠다고 작정한 바는 없기 때문에 그들의 계획은 늘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한 것은 분명히 그곳까지는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기 위한 돈을 모으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부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레이나의 아빠는 카드를 정지시켜도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답을 알 수 없는 몇 가지 의문 즉 왜 이렇게 됐는지, 그 애들은 어쩔 작정인 건지 자신이 뭘 어쨌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곱씹어 본다. 사실 그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해서 그녀들이 집을 떠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끝까지 읽어도 그녀들의 여행이 왜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가 곰곰히 생각해보는 그런 장면이야말로 딸을 가진 부모들에게 더 공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십대들이고 아직 운전면허가 없어 그들의 이동수단은 다양하지 못하다. 버스나 히치하이크이다. 요즘 세상에 히치하이크로 여행이 가능할까. 모든 사람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범죄의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혹시라도 이 책을 보고 이 소녀들을 동경해서 같은 방법으로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만큼은 말리고 싶다. 솔직히 소설이니까 그렇지 현실속의 히치하이크는 정말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서도 이츠카와 레이나가 약간 위험한 상황에 놓일 뻔 하기도 한다. 그들이 단지 차를 태워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성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이용하는 것은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선의는 그냥 선의로 베풀어지면 안되는 것일까.
부지런히 벌어서 여행을 계속하지만 모든 곳을 다 가기에는 부족한 경비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가고 싶었던 모든 곳을 다 가지는 못하지만 만족스러운 여행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야기 속에서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이후의 이야기는 그려지지 않는다. 단지 가족들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이후에 이랬을 것을 그들은 모른다는 식으로 에둘러 말하고 있다. 그런 절제된 표현이 세련되어 보인다. 구태의연하지 않다.
몇달간의 여행이 무에 그리 대수일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이 두사람에게는 큰 일이었다.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여행으로 인해서 각자의 가족에게도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자신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일종의 나비효과라고 할까. 여행을 떠나보지 않고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마주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안주해서는 찾지 못하는 그런 경험들이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라고 하는 것일까.
집 떠난 뒤 맑음이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도 있고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라는 속담도 있다. 집을 떠난 뒤 늘 맑음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맑음을 기대하면서 떠나볼 수 있지 않을까. 흐림 뒤에 나오는 맑음이 더 소중하듯이 말이다. 원서의 제목은 이와는 달리 그녀들의 모임같은 그런 의미이지만 이 은유적인 표현이 왠지 더 마음에 들어서 종종 머리속에 떠올릴 것 같다. 집 떠난 뒤 맑음! 오늘도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