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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 상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여행은 하고 있는 거니까. (50p)
분위기가 달라졌다. 에쿠니 가오리만의 그 말할 수 없는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등장인물이라던가 이야기의 전개가 달라졌다. 하기야 십대의 소녀들 두 명을 데리고 불륜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이전의 느낌들이 해가 지고 나서 완벽한 어둠을 나나내고 있는 듯했다면 이 책의 느낌은 해가 뜨고 난 이후 아침의 청량함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
십대 소녀 두 명, 사촌 언니와 동생이 집을 떠났다면 그것은 여행일까 가출일까. 그들은 자신들이 여행을 하겠다고 쪽지를 남겼지만 어디로 가겠다는 말도, 언제 돌아오겠다는 말도 없이 떠났다. 보통의 부모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그들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자발적으로 여행을 떠난 아이들을 무슨 명목으로 잡아 오겠는가. 단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길 원한다면 카드를 정지시키라는 친절한 팁을 알려줄 수 밖에.
그들의 부모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마음껏 여행을 하도록 그냥 두었다. 걱정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걱정은 한다. 아이들이 어디쯤 있는지 잠은 어디서 자고 무얼 먹고 있는지 주위에 나쁜 사람들은 없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걱정이다. 그녀들은 가끔 엽서를 보내서 자신들의 안부를 전한다. 여행지를 밝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전화도 한다. 아주 가끔이다.
언니인 이츠카와 동생인 레이나. 그들은 극과 극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아무에게나 잘 어울리는 외향적인 성격의 레이나와 근심과 걱정을 혼자 다 하고 있는 이츠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여행은 전적으로 이츠카가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갈지를 물어보고 같이 정하는 것은 맞지만 언니라는 입장이 주는 그런 압박감이 있을 것이다. 동생을 보호하고 이 여행을 안전하게 마쳐야 한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레이나는 그저 언니만 따라 다니면 되니 훨씬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이런 일이 몇 번씩 있었다. 크리스가 일본어를 이해한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 (183p)
이츠카는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보내졌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이렇게 여행을 떠난 것이다.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레이나는 어느 정도 영어를 능숙하게 하고 이츠카는 일본어를 더 많이 쓰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소통의 부재도 이츠카를 더 막아 버리는 것일수도 있지만 말이라는 것은 꼭 언어로만 전다달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맞는 친구가 있다면 어떤 말로 해도 다 알아듣게 된다. 크리스가 그런 친구였다.
요컨대 이츠카에게는 '바람'이라는 것이 없었다. 바라지 않는 것만 잔뜩 있다. 자신이 무얼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건 몰라도 '싫은 것'만큼은 확실히 안다. (20p)
원래 성격상 no라는 답이 더 편하고 그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아이였다. 이츠카는. 내가 비슷한 아이여서 그럴까. 나는 이츠카에게 훨씬 더 몰입해서 본다. 레이나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저녁 약속을 잡아 버렸을 때는 그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그러냐며 이츠카처럼 걱정도 하고 레이나가 새벽까지 돌아오지 않았을 때는 안절부절하기도 한다.
나는 이 아이들처럼 십대에 여행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가족기리 간 여행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두 명의 소녀가 버스를 타고, 히치하이크를 하고, 호텔을 잡고 여행지를 결정하는 그런 모든 일들이 부러움으로 보인다. 내게 십대 시절이 다시 한번 주어진다면 나도 그녀들처럼 정해놓은 목적지없이 그때마다 다음 목적지를 정해가면서 긴 기간동안 제대로 된 여행이라는 것을 하고 싶어진다.
이츠카와 레이나가 왜 이런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앗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단지 그녀들이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걱정은 하지만 그 아이들을 찾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런 것으로 보아 가정불화로 인한 가출은 아닌 것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무엇이 그녀들로 하여금 그렇게 긴 기간동안 자신들을 돌봐주는 보호자도 없이 여행을 떠나게 만들었는지 말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날씨가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다. 제목처럼 '집 떠난 뒤에 맑음'이라면 일단은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으로 되었다. 어떤 제지도 없이 여행을 하던 아이들에게 제동이 걸렸다. 이제 그녀들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감정을 드러내 보이거나 하지 않아." (20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