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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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그녀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아임소리 마마]. 첫인상은 별로 그닥 내 취향은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잊을 줄 알았다. 그렇게 잊혀질 줄 알았고 그 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인연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지만 책과 인간의 관계도 그러할지 모른다. [물의 잠 재의 꿈]이라는 다른 책으로 다시 한번 작가의 책을 마주한다. 첫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여성탐정 무라노 미로시리즈는 [얼굴에 흩날리는 비]로 시작하여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 물의잠 재의 꿈] 그리고 이 책 [다크]로 이어지고 그 후 [로즈가든]까지 연속된다. 아무런 정보없이 집어든 [물의잠 재의 꿈]은 이 책이 시리즈라는 것을 모르고 읽어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히는 작품이었고 그로 인해 이 작가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 이름을 확인하고 내가 읽었던 첫작품과 연관시키기기까지 오래 거렸다. 작가의 약력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관계. 그렇게 작가의 작품과의 인연은 끊이지 않고 오히려 첫인상보다도 더욱 깊고 짙은 이상을 남긴채 머리속에 강하게 각인되어버렸다.

전작 이후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제목답게 끊임없이 우울하다. 주인공인 미로는 신분을 변경하면서까지 끈질기게 살아내려고 노력을 한다. 이해하지 못할 행동도 보인다. 남의 죽음을 보고서도 달려가 도울진대 정작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도 꼼짝도 하지 않은 점이다. 아니 오히려 약을 뺏어가면서까지 아버지의 죽음을 방조한 것이다. 

물론 친아버지는 아니다. 혈연관계도 없다. 하지만 평생을 같이 살아오고 아버지와 같이 같은일을 하고 있는 그녀가 왜 그랬는지 처음에 단박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이후의 행동을, 돌아가는 사정을 확인하고서야 약간은 어느정도는 이해할 뿐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것이 책의 등장인물이라고 해서 다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작가가 한국사람인가 하고 착각을 할만큼 자세한 한국이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방관한 그녀. 아버지와 함께 있던 자신과 동갑인 동거녀와 그 아버지의 동료는 그녀를 쫓는다. 복수를 하겠다는 것일까. 결국 좇기다 못해 우연히 만난 진호에게 부탁해 한국으로 가게 되는 미로.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진호와는 또 어떤 관계가 될까. 

모조품을 팔던 진호는 미로를 이용해서 사업을 확장할 생각을 한다. 재일동포로 변장한 미로는 이 일에 딱 적합한 여자가 아니었까. 그렇게 그들간의 삶이 다시 한국에서 시작된다. 일본에서도 그랬지만 한국에서의 삶도 만만치 않다. 진호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남자였지만 미로는 개의치 않았다. 미로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가. 돈? 남자? 안식처? 

여러명을 죽이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단 한명을 죽인댓가로는 너무 다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한다. 실제상황이어도 그렇고 가상세계에서도 그렇다. 경찰과 야쿠자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쫓기는 몸이 된 미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든 초점을 한 곳으로 모으면 그곳은 불이 붙고 타버리고 만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돋보기를 듣고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또는 화살을 한 곳으로 모아서 쏘듯이 모든 것은 미로를 향해서 쏟아지고 있다. 표적이 된 그녀는 어떻게 이 난관을 이겨낼 수 있을까.

[다크]는 끊임없이 어둡다. 다크라는 제목하에서 밝음을 기대한다면 그것 또한 모순이겠지만 이야기는 제목보다도 훨씬 더 다크함을 드러내고 있다. 매우 어두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어두움. 영어적인 표현에서는 비교급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dark, 다크의 비교급은 darker이다. 하지만 이는 그보다 더 어둡다는 꾸밈이 필요할 것 같다. 

much darker, 이것으로 충분한가. 아니 미로의 삶은 이보다는 차라리 최상급이 낫겠다. the darkest. 더이상은 없을 것 같은 끝없는 어두움, 그것이  미로의 삶이다. 애벌레로 친다면 번데기를 거쳐서 이제 막 탈피를 한 상태의 미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미로의 모습은 화사한 나비일까 아니면 여전히 다크한 나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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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같은 사람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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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지원이 필요한 곳에 혼자 좀 가지말란 말이지. 꼭 괜찮을 거 같아요 해 놓고는 사건이 벌어진단 말이지. 왜 그리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냔 말이지. 언젠가 유행했던 호러영화의 법칙에서도 나오잖아. 단독으로 움직이다간 가장 먼저 죽음을 맞게 된다고 말야. 형사가 괜히 2인1조가 아니란 말이지. 물론 프로파일러에겐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긴 하지만.

[섬,짓하다]의 김성호 프로파일러를 주인공으로 한 후속편이 다시 등장했다. [조선탐정 정약용]에서 약간 주춤했던 기세를 보였던 작가의 역량은 다시금 불타올랐다. '그래, 바로 이 맛이 김재희 작가지'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오게 만든다. '작가님, 이 책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걸 기다렸어요.'

김성호 프로파일러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는다. 등장을 하는 것도 한참 후의 일이다. 대신 다른 형사들이 교대로 나오면서 사건을 이끌어간다. 사건이 터지고 가장 먼저 불려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과학수사대. 그들은 철저하게 증거를 모으고 모으고 또 모은다. 하나도 빠짐없이 싸그리 끌어 모은 후에야 시신을 옮기고 현장을 떠난다. 그 이후로는 발로 뛰는 형사들의 몫이다. 

생각보다 과학수사대의 역할이 많이 드러나있어서 그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우리가 익히 알아왔던 미국드라마를 보는 듯한 생생한 표현도 실제감을 더해준다. 읽히는 속도감은 별개로 따질수가 없다. 시동을 걸고 일초에 300키로를 달리는 성능 좋은 차처럼 손에 집어든 그 순간 어느새 저만치 달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1층에 새로 이사온 그녀. 이사 오면서 냉장고를 팔기로 한다. 그녀가 판 냉장고는 어떻게 사용될까. 2층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그저 층간소음이 시끄럽다고 천장을 지팡이로 치는 줄로만 알았는데 남들이 모르는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3층에 살고 있는 부부. 아들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2층 할아버지와 끊임없이 소음으로 분쟁을 한다. 아이도 없는데 무에 그리 시끄럽겠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저 단순히 한 아파트에서 이웃들간에 벌어지는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팔려간 냉장고에서 사체가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전작에서 보였던 이야기도 간간히 등장을 해서 읽지 못했던 독자들이라면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 책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나게 읽힐테지만 전작을 읽은 사람이들이라면 충분히 그 연관성을 살피면서 더욱 흥미를 느끼는 요소가 될 것이다. 

김성호 프로파일러는 원래부터 착하기만 했던 인물이 아니다. 그로 인해서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되돌아 보고 자기자신을 의심하는 캐릭터다. 그런 그가 이 사건을 맡게 되면서 어떤 파일링을 하게 될까. 한 구의 시체로 인해서 줄줄이 달려나오는 이야기들은 고구마 줄기를 연상케 하며 나아가서 단순한 학교폭력의 사태가 어디까지 그 마수를 뻗치는지를 아주 잘 증명해준다. 

싹을 끊는 것이 다는 아니다. 때로는 뜯어내기보다는 방향을 바꿔야 할 필요성도 있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작가가 만들어 낸 저 절대악적인 존재가 마음에 걸린다. 치밀한 계획속에서 자신의 존재는 감춘다. 분명 한번으로 등장하고 말아버릴 존재가 아니다. 김성호 프로파일러의 이야기가 계속된다면 언제고 어디서고 다시 마주칠 캐릭터. 다음 이야기를 읽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요소가 하나 더 생겨버렸다. 작가는 역시 나의 기대에 배신을 하지 않았다. 더욱 큰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솜사탕처럼 부풀어오는 기대감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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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맨
슈테판 보너.안네 바이스 지음, 함미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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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났다. 5년 동안이나 만나왔던 사람이었다. 한때는 함께 미래를 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14년동안이나 대학생으로 살아오는 남자. 행정이 바뀐 탓이라고는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오는 인생. 거기다 맞지않는 성격까지. 두번 다시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내 연애는 끝이다.


연애는 연애로 잊혀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같이 사는 룸메이트는 소개팅앱을 사용해라, 댄스교실을 나가라는 등 끊임없이 남자를 주선해준다. 결과는 말짱 꽝 꽝 . 어디서 희한한 남자들만 몽땅 모아놓은 냥 내 연애는 왜 이런거냐고 소리지르고 싶다. 일때문에 갔던 도서전에서 우연히 만났던 이상형은 오해로 인해서 멀어져버리기만 하고. 


분명 소설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안네와 슈태판의 입장에서 교차로 쓰여지는 이야기는 어? 라는 소리와 함께 저자에 관한 설명을 다시 읽어보게 만든다. 등장인물과 같은 이름 그리고 같은 직업. 이것은 소설인 척 소설이 아닌 하이퍼 리얼리즘이 끝판왕이라고 적힌 책 표지의 문구가 딱 들어맞는 이야기다.


이야기속에서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등장인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웃기지만 그들의 삶을 좇아가다 보면 이보다 더 웃길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아니 그냥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충분히 일어날만한 이야기인데 요런 맛을 제대로 살린 것은 번역자의 역할도 단단히 한몫 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전혀 다른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들의 연애 이야기가 아니다. 각기 다른 그들이 일로 인해서 맞부딪히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려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공감을 하게 되는지. 독일 사람들이라고 특별히 우리네와 살아가는 것이 다르지는 않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지는 않다. 어디서나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사는 곳은 다 비슷한 법이다. 


특히 중간중간 삽입된 문구들은 더욱 공감을 자아낸다. 반려자와 함께 하는 남자들은 혼자살 때보다 가사노동을 덜하고 반대로 여성들은 혼자 살 때보다 더한다.(354p)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유럽 남자들이라고 별다를 것은 없는 법인가 보다.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인해서 곧 아빠가 되려는 슈테판. 그는 아버지 없이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서 남자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모른다. 아는 바가 없다. 이제 자신이 아들의 아빠가 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 보통의 남자들보다는 섬세한 편이고 여자에 대한 이해도는 빠르나 남자들의 세계는 공감하기 어렵다.


오래된 연애를 끝내고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는 안네. 룸메이트는 애인과 함께 나갈 것이고 이제 그는 새로운 동거인을 맞이할 판이다. 그것도 남자. 그녀는 어떤 인생을 꾸리게 될까. 여자라고 해서 못하는게 없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혼자서 척척 해내는 알파걸 안네. 그녀가 생각하는 남자는 어떠한 존재인가.


분명해진 것은 내가 원래 찾고 싶은 타입은 알파맨이면서도 함께 어울려 뒹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134p) 


그는 잘 생겼을 뿐 아니라, 재치도 있다. 믿을수 없다. 내가 내내 꿈꿔온 남자가 바로 이런 남자였다. 나를 웃게 만들고,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남자.(279p)

안네가 생각하는 이상형은 딱히 이상하지 않다. 분명 어떤 여자라도 꿈꾸는 그런 이상형일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바라던 이상형과 연애를 하기도 한다. 단 그를 알기전까지만 그랬을 뿐이다. 같이 살다보면, 알아가다 보면 그도 다른 남자들과 별다를 것 없다는 것이 보이며 단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이다.


알파걸인 한 여자와 미워할수 없는 베타맨이 같이 일을 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들. 그들의 삶을 엿보면서 같이 공감하고 같이 웃을수 있는 이야기들. 극히 사실적이어서 공감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이야기들. 소설보다도 더 재미난 그들의 삶은 "동감!!!!" 이라는 말을 저절로 외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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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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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줄을 놓았다. 말 그대로 미친것이다. 

나는 사랑이라고 믿었다. 나만 그랬나보다.


선생이면서 이웃었던 그는, 아니 그 놈은 중학생인 나를 철저히 유린했다. 누군가는 그럴수도 있겠다. 왜 그런 관계를 유지했느냐고, 너도 좋으니까 그런 것 아니었냐고. 안 가면 될 것을 왜 자꾸 갔느냐고. 나도 모르겠다. 


아직 '자아'라는 것이 성립되기도 전 중학생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저 그놈의 물건이 입안으로 들어왔을 때 반항했어야 했고 그렇게 했지만 내 입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나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그는 나를 애인인 것처럼 다루었다.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내 의지대로 행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알려야했다. 부모는 무엇을 했는가. 오히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 인덕 높은 선생이라고 생각했고 그에게 나를 맡겼다. 전시회니 공부니 뭐니 하는 핑계로 그는 나를 데리고 다녔고 그때마다 우리는 모텔에 갔다. 대체 부모들은 자식을 믿는 것인가, 이웃을 믿는 것인가. 단 한번이라도 어떤 낌새도 못 느낀 것이란 말이냐. 


나는 엄마에게 운을 뗐다. 우리집은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말한 내게 엄마는 무어라 말했던가. 성교육은 성이 필요한 사람한테나 하는 거야,(95p) 무식한 엄마야. 성교육은 성을 가진 모든 사람이 다 받아야 하는 교육이었다.


가장 친한 샴쌍둥이처럼 여겨지던 친구는 무엇을 했는가. 중학교때부터 붙어다니던 사이였다. 고등학교때 둘만 따로 나와 살 수 있었던 것도 부모들이 친구가 있다는 것을 믿어서일수도 있겠다. 말하려고 했다. 아니 말했다. 그녀는 뭐라고 했던가. 


오히려 나를 욕했다. 서른일곱살이나 많은 남자를 사랑하다니 말이냐 되냐면서 나를 비난했다. 결혼도 했고 부인도 있고 아이도 있는 그를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자신도 똑같이 선생님을 좋아한다면서 왜 너만 사랑해야 되느냐고 오히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다. 답답했다. 내가 원했던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닌데 나는 어느틈엔가 사랑을 그런 행위들로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친구와 나를 아껴주던 동네 언니에게 말하려고 했다. 그 언니는 무언가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몇번 운도 떼봤다. 언니는 무언가 낌새는 차린 것 같았다.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말을 할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정작 자신의 문제에 갇혀 버린 언니는 더이상 내 문제에 신경을 쓰않았다. 결국 나는 또다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시작은 좋았을수도 있다. 동네 언니와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그런 아이들을 귀여워한 국어 선생이 과외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그래, 시작은 충분히 좋았을 수도 있다. 그 선생이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안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는 아이들을 같이 부르지 않았다.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따로 따로 불렀고 그렇게 따로 불려간 아이 중 한명인 나는 그에게 짓밟혔다. 


아직 성숙되지도 않은 아이였을텐데 선생은 아이들만 좋아하는 로리타 신드롭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놀아난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계속 성장을 하고 아이들만 좋아하는 그가 계속해서 다른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학원에서 점찍기만 하면 아이들은 그저 줄줄이 들어왔다. 


하아. 이토록 무지할수가 있을까. 아니 어떻게 그 누구도 모른단 말인가. 아니 알아차리면 뭐하는가. 알아서 신고를 하고 고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상납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 누구도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답답하기만 하다. 인과응보라고 했던가. 정신줄을 놓고 이 세상을 버린 아이가 있다면 당연히 누군가는 그렇게 만든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적어도 그렇게라도 해야 속은 시원해질 것이 아닌가. 


아니었다. 나에게 그토록 비참한 인생을 가져다 준 그는 여전히 이웃들과 시시덕거리고 있었고 여전히 자신의 가족들과 잘 지내고 있었다. 이런 결론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런 놈들은 응분의 댓가를 치르고 두번 다시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성범죄자의 인격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다 까발려야 한다. 그래야 두번 다시 같은 일은 반복되지 않읋것이다. 그놈 또한 딸을이 있다. 자신의 딸이 자신보다 많은 나이의 남자의 물건을 입에 넣고 빨고 그놈을 위해서 다리를 벌리고 아파트까지 차려놓고 들락거리고 있다면 그는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그래, 그것도 사랑이니 계속 그러라고 응원해 줄 것인가. 아빠도 충분히 너를 이해한다고 동조해 줄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딸만을 그러지 않기를 바랄 것인가. 이중적인 잣대, 이중적인 인격, 이중적인 세상. 나는 결국 정신줄을 놓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안타깝고 불운하게도. 나는 무엇을 잘못했던가.


열세살 아무것도 모를 나이때부터 시작되어서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그 긴 기간동안 '선생'이라는 놈의 손에서 놀아나던 나는 결국 일기장을 남긴 채 정신줄을 놓고 만다. 일기를 찾은 친구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게 되지만 되돌리기는 이미 늦었다. 나는 세상과 작별하기로 마음 먹었고 그 결과 이런 상태가 되어 버렸으므로.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야기. 결국은 이야기속의 나보다 더한 선택을 해버린 작가이기에 더욱 마음이 아리다.


-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겠니?(43p)

- 왜 할 줄 모른다고 했을까? 왜 싫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안된다고 하지 않았을까?(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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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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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모든 것이 딱 들어맞는다. 체인으로 연결된 팔찌에서 딱 한 고리가 빠졌었는데 그 고리를 찾은 것이다. 이제 그 고리를 제자리에 연결하고 앞뒤로 연결해주면 완벽한 팔찌가 되듯이 요네스뵈의 해리 시리즈 또한 이제 완전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모든 시리즈를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이 작품만큼은 제발 차례를 지켜서 읽어달라고 말하고 싶다. [데빌스스타]를 먼저, 그리고 [리디머], 이후에 [스노우맨]을 읽으라고 말이다. 이 책 한권만으로도 요네스뵈의 해리는 충분히 재미나고 옴팡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전작을 읽고 나면 해리의 상태가 지금 어떠한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를 알게 되고 연결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는 드라마의 다음 시즌의 에피소드를 보는 것처럼 더욱 큰 재미를 누릴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작가의 [스노우맨] 또한 마찬가지다. 그 책 한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추구할수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다시 책을 읽게 되면 처음에 단독으로 읽었을때 이해하지 못했던 해리의 생각이라던가 행동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훨씬 더 잘 이해가 된다. 역시 이런 장면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이다. 


[리디머]에서의 해리는 다른 어떤 이야기 속에서보다 명료한 의식을 내보이고 있다. 술에 찌들지도 않았고 어디가 아프지도 않으며 몸에 어디 한 곳 상처 난 곳도 없다. 단지 전작에서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그와의 관계때문에 조금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 


그의 독단적인 성격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자신을 인정해주던 상사가 물러나고 새로운 상사가 등장을 한다. 약간은 삐걱거리는 듯이 보이는 그들 사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화해갈지는 이미 후속작을 읽은 사람들만 알수 있는 특권이다. 


오직 한명 좋아했던 여자 라켈과 그의 아들 올레그와의 관계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상태이다. 라켈은 벌써 다른 사람인 의사와 사랑에 빠진듯 하고 올레그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듯이 보인다. 그들과의 관계는 마치 이혼한 전 부인과 같은 느낌이다. 아이는 아빠를 그리워하고 부인은 남편을 멀리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까. 


올레그에게 해리가 아빠가 되어 주었다면 이후에 생길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 위험한 남자인 해리를 가까이 할수 없음이 백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결론이 어떠하던지 말이다.


단 한번,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총을 들었다. 그리고 총을 당겼다. 자신이 원했던 표적물이 쓰러졌고 그는 유유히 사건현장을 떴다. 모든 것이 생각한 대로였다. 나와서 총을 버리고 그대로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면 되는 일이었다. 사건은 저질렀는데 총을 버려야 하는 쓰레기통에는 보는 눈이 있어서 총을 못 버린 것이 첫번째 실수였고 공항으로 갔지만 눈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한 것이 두번째 실수였다. 


이 두 번의 실수 아닌 실수는 치명적으로 그에게 다가오게 되는데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건을 저질렀지만 노르웨이 말을 할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그는 어떻게 이 사건을 대처할 수 있을까. 그를 찾아오는 형사들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말도 통하지 않는 오슬로 땅에서 갇혀버린 그는 무사히 탈출해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수 있을까.


요네스뵈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재미는 있지만 약간은 어렵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그것은 [레드브레스트]나 [레오파드]에 있어서 더욱 심했는데 이번 [리디머]를 읽는 사람들이라면 그 말은 절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철저히 사건 하나에 주목해서 집중하게 만들어 재미와 흥미를 추구했다. 


범인이 어떻게 이런 일을 시작했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이 나오지만 길지 않은 이야기로 인해서 절대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진정한 '페이지 터너'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려고 작정이라도 하듯이 쉽고 빠르게, 그러면서 절대 속도감을 줄이지 않는다.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려본 적 있는가. 속도제한도, 톨게이트도, 신호등도 없는 도로다. 당신은 [리디머]라는 성능 좋은 차에 타고 묘네스뵈의 해리시리즈라는 멋진 도로를 그저 달리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멋지고 행복한 시간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속도감있는 질주를 원한다면 바로 이 한 권, 리디머를 권해줄 것이다. 틀림없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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