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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박완서라는 작가는 내게는 유난히 더 특별하다. 어려서부터 작가의 책을 많이 보아왔고 그래서 눈에 익은 이름이고 그래서 낯설지 않은 작가이고 그 덕분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책을 읽었으며 우리말의 정겨움을 조곤조곤 펼쳐지는 소설과 에세이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전부 박완서 작가를 유난히 좋아한 엄마 덕분이기도 하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작가의 책들은 엄마가 산 책도, 선물받은 책도, 내가 엄마한테 선물한 책도 있고 그리고 내가 받은 책도 있다. 그렇게 여러 책들이 여러 시간을 거쳐서 모아졌다. 90년대 책부터 최근 2019년에 나온 책까지 저마다 다른 책이지만 단 하나 같은 작가의 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박완서라는 작가의 작품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박완서 짧은 소설>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 그야말로 진짜 짧은 글들의 대향연이다. 단편보다도 더 짧은 글들. 작가는 이것을 '콩트'라는 장르로 말하고 있다. 기업에서 만드는 사보에 들어가는 문예물. 문예지에 실리는 이야기인만큼 길이는 짧고 내용은 재미나다. 작가의 기존의 작품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 이런 글도 썼구나 하고 놀랄수도 있겠다.
처음부터 무슨 말일지 모를 때는 그래도 괜찮은데 아주 쉬운 말을 내가 이해한 뜻과 전혀 다른 뜻으로 쓰고 있는 걸 들을 때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중 고등학교 정도의 또래들이 저희들끼리 찧고 까불면서 조잘대는 은어 속어 따위를 들을 때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262p)
분명 7-80년대에 쓰여진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은 소재들도 눈에 뜨인다. <외래어 노이로제>라는 제목의 글도 그런 경우인데 작가는 손자또래의 아이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뜻이 궁금해져서 물어보게 되고 그것이 로봇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이런 혼동스러움은 지금도 별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통에 이제는 할머니가 아닌 세대들조차도 따로 배우지 않으면 알수 없는 한글 아닌 한글 단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얼마나 이질감이 없는지 작가가 지금 살아있다면 지금도 역히 마찬가지라고 말을 해주고 싶어진다.
후남이는 혼자서 결혼 일주일 전, 기철이와 함께 철모르는 기쁨에 들떠 철없이 축배를 들던 스카이라운지로 갔다. 그때와 같은 빛깔 고운 술을 시켰지만 혼자 드는 술은 고배였다. (100p)
후남이라는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 아들을 바라면서, 딸이 그만이기를 바라면서 지은 이름이다. 그런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지만 그 당시의 일반적인 여자들과는 다르게 공부도 했고 직업도 가지고 있다.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여자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 되어 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배운 여성임을 나타내듯이 부부 중 한 사람의 전근을 요청하고 기분 좋게 결혼을 했고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속초와 전주로의 발령이다. 졸지에 남편을 서울본사에서 지방으로 끌어내린 여자가 되어 버린 셈이다. 둘이서 기분 좋게 축배를 들었던 곳에서 혼자서 고배를 마시고 있는 그녀.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여자의 가문은 지체로 보나 재력으로 보나 훌륭했고 남자의 집안은 가난하고 보잘것 없었다.(309p)
딱 이 문장을 보면서 바로 이번주 끝난 드라마를 생각하게 된다. 이혼녀이며 위자료로 호텔을 받아서 자신이 대표로 있는 여자와 그 호텔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남자. 그들은 서로를 모르는 채로 다른 곳에서 우연하게 만난 관계이다. 그런 자유로왔던 관계는 사원과 대표라는 관계로 묶여버리게 된다. 거기에 그들을 둘러 싼 가족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까지 둘의 관계는 둘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론은 해피하게 끝났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 드라마처럼 해피하게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작가는 21세기에도 이런 진부한 설정으로 드라마가 방송되고 그것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미리 짐작이라도 했었을까.
나 때만 해도 이렇게 휘뚜루 사모님을 써먹진 않았건만..... 윤여사는 사모님에 넌더리를 내면서 이렇게 자기가 장사하던 때를 회상했다. (362p)
예전 예능프로그램에서 우리말을 배우는 퀴즈를 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단어들 중의 하나가 '휘뚜루'라는 단어였다. 예시로는 '휘뚜루 마뚜루'라는 단어로 기억하고 있는데 작가의 글에서 그 단어를 발견하고 역시 우리말을 사랑했던 작가라는 생각에 감탄을 한다. 제대로 된 우리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느끼고 있음이다.
짧은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짧은 만큼 후다닥 읽어버려도 좋고 한 꼭지씩 따로 떼어서 느긋하게 읽어도 좋겠다. 글이나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재미난 소재와 현실에서 있음직한 이야기들로 말미암아 조금은 끌리게 된다.
조금 맛만 보아야지 하고 열었다가 참지 못하고 한꺼번에 다 먹어버린 과자처럼 이 첫 이야기를 읽는순간 알아차린다. 멈출수가 없음을 말이다. 역시 작가의 저력은 작가가 존재하지 않은 이 시대에도 여전하다. 강력하면서도 부드러움을 가지며 유머감각을 유지하고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그 속에 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