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 삼국지 원전 최신 완역판 1 : 도원 편
나관중 지음,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장현주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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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시 하늘에 말한다. 우리 여기 있는 세 사람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바라건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159p)

 

예전에, 아마도 대학생 쯤이라고 생각되는데 내 동생은 삼국지라는 게임을 하루 종일 했었다. 다행히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매번 컴을 붙들고 있었고 뭘 하는가 보면 그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같이 하자고 했지만 삼국지를 읽지도 않았었고 전략을 세우는 것도 복잡하해 보이고 어려워서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삼국지를 읽었었다. 그것도 원서를 그대로 번역한 정역본으로 말이다. 꽤 러프하게 작업이 된 작품이어서 흡사 해적판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이었다. 초반부터 야심차게 도전했지만 5권이 지나가면서 너무나도 많은 그야말로 인해전술에 두손을 들었다. 포기하지는 않았다. 끝까지는 읽었지만 그 뒷부분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이번에 도전하는 삼국지는 조금 다르다. 요시카와 에이지 평역이라는 부분이다. 저자가 중국사람이고 그것을 우리나라 사람이 번역을 했으면 끝인데 이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궁금증이 들어 찾아본다. 평역의 정확한 의미는 재해석해서 번역함이라는 뜻이다. 즉 번역자가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원본을 고쳐서 번역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번역을 잘한다 하더라도 번역이라는 것  자체가 번역자의 생각이 어느 정도는 반영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잘 익히지 않는 문장을 읽을 때 원서는 어떻게 적혀져 있었을까를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평역되었다는 것은 원서를 번역자가 읽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더한 것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기본 골격은 그대로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작가들도 자신만의 삼국지를 많이 내기도 했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아마도 이문열의 삼국지일 것이다. 그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아서 이 책과 비교를 할 수가 없는 것이 유감이지만 한국 작가와 일본작가의 차이가 어떻게 있는지 기회가 닿으면 비교해 보아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요시카와 에이지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조조를 매력적으로 그려낸 삼국지로 인기를 얻었고 문화훈장까지 수상했다고 하니 믿을만한 평역본이 될 것 같아서 읽기 전 기대감부터 들기 시작한다.

 

문장이 복잡하게 끊어지지 않는다. 단순하고 간결하며 이야기의 흐름이 지지부진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휙휙 읽힌다. 더더군다나 초반부가 아닌가. 장비와 관우가 유비를 찾아오고 도원결의를 맺는 과정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누구라도 다 아는 부분이라서 더 빨리 지나가는 느낌도 든다. 나라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사병조직으로 황건적과의 전쟁에 참여하는 그들만의 군대를 조직한 유비와 관우 그리고 장비다.

 

백전백승은 아니다. 뛰어난 활약을 했을지라도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한 다음이다. 그것도 관직이라고 끊임없는 압박이 들어온다.  몸을 피한 그들은 이제 은거하면서 때를 기다리게 된다. 한편 이야기는 황제가 죽고 그 자리를 탐하는 권력들의 다툼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제부터 동탁과 여포 그리고 조조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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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단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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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무른 납과 같아서, 구부려서 원하는 대로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7p)

 

미키할러가 돌아왔다. 해리를 기다린 사람에게는 조금은 김 빠진 소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마이클 코넬리의 미키 시리즈는 해리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져다 주는 장르물이기에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형사인 해리와는 다르게 미키는 변호사다. 교집합으로 이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해리와는 다른 영역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소리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제목에서 벌써 특정지어지는 단어들이 보인다. 링컨차와 변호사가 그것이다. 사무실을 만들어 놓고 비서를 데리고 사건을 의뢰받는 일반적인 변호사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말 그대로 미키는 차가 사무실이고 필요한 인력들을 모아서 게릴라회의를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큰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 이후로도 그는 이 생활을 계속 유지중이다.

 

그에게 의뢰가 들어온다. 살인 사건이다. 가장 강력한 범죄인 살인은 변호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진짜 범인이라면 뭐 더이상의 할말은 필요가 없을 것이고 설사 원죄라 하더라도 그것이 교묘하게 짜맞추어져 있다면 뒤집어 엎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 미키의 의뢰인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살인사건. 여자가 죽었다. 남자를 접대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예약을 받고 호텔로 갔지만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의 홈페이지 및 약속을 관리해주는 남자는 그녀가 현찰로 돈을 받고 자신에게 일부를 나누어 주지 않으려고 거짓말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목을 졸랐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절대 죽이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몇시간 지나지 않아 그녀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경우에 경찰이 누구를 용의자로 볼 지는 너무나도 자명한 원칙 아니던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그. 그녀에게 상해를 입힌 그. 그녀를 죽일 동기가 있었던 그. 그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용의자도 생각할 수가 없다. 결국 그는 살인죄로 잡혔다. 그리고 이제 미키에게 의뢰를 한 것이다. 모든 것은 다 맞고 사실이지만 단 한가지 그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연 미키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8년 전엔 내가 조종을 당했어. 사건을 맡아 조치를 취하면서 그것들을 다 계획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게 하진 않을 거야. (209p)

 

어떻게 보면 간단한 것 같지만 절대 간단하지 않은 사건이 된다. 기본적으로 놓여있는 하나의 선에 다른 하나의 선이 턱하고 발을 걸쳐 놓는다. 그것은 지금의 사건도 아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그런가 하면 더 오래전의 사건이 일어나서 또 다른 손을 하나 걸쳐 놓는다. 그렇게 이 하나의 선은 점점 지경을 넓혀가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간다. 이것을 다시 원래의 하나의 선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바로 이 주인공이 할 일이며 이 사건을 읽는 독자가 할 일이다.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뢰인의 편이 되어야 한다. 그 누구라도 자신이 의뢰인으로 삼은 이상은 그들의 편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의뢰인이 살인자라 할지라도 사기꾼이라 하더라도 폭력범이라 하더라도 변호사는 의뢰인의 입장이 되어 그들을 대신해서 변호를 해야 한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도 그러지 않았던가. 변호사는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해서 그들이 감추고 있는 사실을 폭로하고 그들의 범죄를 입증했다.

 

그렇지만 그 변호사보다 오랜 연륜을 가지고 있던 변호사는 그녀에게 말을 했었다. '당신은 검사가 아니라 변호사'라고 말이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범죄를 밝혀내는 것이 자신의 임무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 자신이 의뢰를 맡은 이상은 그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그로 인한 욕을 먹더라도 말이다.

 

세상은 회색이고 자기 아버지가 그 회색지대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될 날이 꼭 올 거라고 믿었다. (117p)

여기 미키가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사람들은 그를 욕한다. 범죄자의 편을 들어준다고 말이다. 그래서 미키가 더 이 일에 열정적으로 뛰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로 인해서  멀어졌던 딸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싶었던 개인적인 바람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미키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이 일을 깨끗이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미키의 다섯번째 이야기. 전작인 [파기환송]과 [다섯번째 증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뤄두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미키의 이야기를 읽은 김에 새로운 이야기의 첫장을 펴서 시작해야 겠다. 미키는 왜 딸과 거리가 멀어졌는지, 왜 두번째 이혼을 했는지, 왜 전처와 함께 일을 하는지 궁금한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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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 - 차별화된 기획을 위한 편집자들의 책 관찰법
박보영.김효선 지음 / 예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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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을 할 때 대원칙이 있다. 첫째 예의를 지킬 것, 둘째 소비자로서 정확하게 평가할 것, 이다.(165p)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의 책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쓰는 것도 좋겠지만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내는 기쁨도 좋다. 물론 이것은 상상으로 할 때만 좋다. 실제로 이것이 일이 되면 그야말로 피튀기지 않는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어차피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전쟁 아니던가. 책을 읽는 독자들의 수는 줄어가고 있는 마당에 이 책을 읽히기 위해서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케팅이 아닌가 생각하지 말라. 마케팅도 근사한 물건이 있을 때 잘 팔 수 있는 법이다. 결국은  편집자가 하는 일은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야 하는 창조주같은 역할인 것이다.

 

실제 지금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두명의 저자의 공저라서 사실 조금의 기대를 가지고 책을 기다렸는데 생각보다는 얇고 작은 책에 조금 시무룩해졌고 편집자의 이야기보다는 저자에 포커스를 많이 맞춘 것 같아서 조금은 더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읽을수록 요기조기서 팁이 되어줄 말이 많아서 그 시무룩함은 곧 잊혀졌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보아도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그런 몬텐츠들이 많으며 앞으로 자신의 글을 써서 책을 내보고 싶다는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한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자신의 글이 채택이 되지 않는다고 우울해 하는 사람이라면 원고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기획이 참신하고 전반적인 책의 구조가 탄탄하며 저자의 개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편집자들은 책을 출간할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15p) 이런 부분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편집자들은 책을 읽기보다는 목적에 맞게, 어쩌면 '영리하게 살펴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9 p)

 

서점을 하거나 출판사에 다니면 책을 많이 읽을 것으로 기대하는가. 정반대다.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야 할 물건으로 여기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어떻게 더 잘 만들어 낼까에 몰두하지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하지만 많이 본다. 정말 많이 본다. 다른 사람들이 일년에 볼 책들을 한달안에도 다 볼 정도로 많이 본다. '본다'와 '읽는다'의 개념이 다르고 자신이 만들어야 할 책과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다를 뿐이다.

 

대개 '기획의도, 저자 소개, 차별점, 홍보 방안, 목차, 원고(전체 또는 일부)' 등 여섯 가지가 기획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174p)

 

요런 요소들은 정말 큰 팁이다. 기획서를 출판사에 제출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자신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때도 필요하지만 편집자가 자신이 발굴한 원고를 제시할 때도 필요하다. 어떤 원고를 채택해서 책으로 만들어 낼 것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은가.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읽기 어렵고 불편한 책은 분명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세가지의 예를 들어 주고 있다. 두꺼워서 읽기전부터 한숨부터 나오는 책.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도서.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 주는 책. ( 208p) 나에게 있어서 두꺼운 책은 오케이다. 그것이 소설인 경우에만 그렇다. 저자가 예를 든 [서양철학사]의 경우에는 나도 가지고 있지만 대학 때 교재로 사용했을 뿐 끝까지 읽어보지는 못했다. 역시 한숨은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경우 즉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도서가 가장 어려운 책이 된다. 아니 싫은 책이 된다. 소설의 경우를 예로 들면 번역서의 경우에는 철학적 요소를 담은 책들이 그러하고 특히 한국 작가의 책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 더욱 답답하다. 분명 한글이고 읽을 수 있는데도 무슨 말이야 하고 한참을 생각해도 이해불가일 때는 이 글을 쓴 사람을 찾아가서 직접 물어보고 싶다. 내가 이상한 거냐고 무슨 뜻인지 알려달라고 말이다.

 

저자는 정독, 다독, 속독, 통독, 음독, 묵독, 적독(197p) 의 여섯가지 책 읽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 한 가지만 선택해서 책을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대부분 두세가지의 방법을 병행해서 읽을 것이라 생각되어 진다. 내 경우는 많이 읽는 다독과 빨리 읽는 속독 그리고 눈으로만 읽는 묵독의 세가지 방법으로 소설을 읽는다. 그러니 많이 빨리 조용히 읽는 것이 나의 스타일이다.

 

어떻게 하면 문장력과 구성력을 잘 갖출 수 있을까? 왕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는 게 답이다.  (124p)

 

비단 이 책 뿐 아니라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면 반드시 나오는 문장이 이 문장이 아닐까. 부지런히 열심히 쓰고 읽으라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 아니냐고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나 편집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여,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쓰자. 언젠가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책을 위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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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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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후미는 마치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토오루는 가끔 생각한다. 그 방은 있기에 너무 편해서 , 자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117p)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들은 따뜻하다. 불륜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사랑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말이다.

 

열아홉과 스물. 딱 한살차이. 무엇이 다른가. 스물아홉과 서른, 서른아홉과 마흔, 마흔아홉과 쉰.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나이일까 아니면 크게 변화가 있는 나이일까. 변화가 있다고 해도 십대에서 이십대로 바뀌는 것 만큼 감정적으로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인정받는 그런 나이다. 무엇을 해도 다 자신의 책임이 따르는 나이. 자유가 주어지지만 그만큼 책임도 느는 그런 나이라는 것이다.

 

고교시절의 친구는 -그리 친하지 않았던 녀석도 포함하여-대학에 들어와서 만난 친구와 명백히 다르다고 코우지는 생각한다. 지금 같으면 보여주지 않아도 될 일을, 끝내 감추지 못했던 것 같은. 좋아하든 말든 매일 함께 있었던 것 같은. (144-145p)

 

토오루와 코우지. 고등학교 동창. 코우지에게는 유리라는 여자 친구가 있다. 토오루에게는 자신보다 스무살 이상이나 많은 그녀, 시후미가 있고 코우지에는 열다섯살이나 많은 그녀, 키미코가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녀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단지 육체적인 관계만은 아닐 것이다. 또래 여자들의 설익고 풋풋한 그런 느낌보다 농익은 맛을 선호해서 그녀들을 선택했다면 딱 그 선에서 멈춰야 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보면 그런 것만을 추구하는 관계는 또 아니다. 특히 토오루와 시후미의 관계가 그러하다.

 

토오루와 시후미는 책을 좋아한다. 서로 좋아하는 책을 권해주고 그것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그녀가 권해주는 경우가 더 많다. 더 많이 살아온만큼 그만큼의 경험을 더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권해주는 책들을 그는 읽는다. 이들의 관계에서 그녀는 절대 우위를 점하지 않는다. 자신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가르치지 않는다. 첫관계를 맺을때부터 그랬다. 서투른 것이 당연한 그, 하지만 그녀는 그를 가르치고 자신이 리드를 해서 이끌어가기 보다는 그에게 맞춰주고 그가 하자는 대로 따라간다. 그것이 그가 그녀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빠져버린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토오루에게는 그녀가 첫사랑이 아닐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그들의 관계도 끝까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아름다운 도쿄타워처럼 그에게 그녀는 멀리서 바라보아야 하는 도쿄타워같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타워의 아름다움은 멀리 있을 때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에펠탑을 싫어한 한 남자는 매일 그곳에 있는 레스토랑에 찾아가서 식사를 했다. 바로 그곳이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단 하나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그런것처럼 바로 그 자리에 가서는 정작 타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토오루와 시후미와의 관계도 그럴지도 모른다. 더욱더 가까이 하고픈 그런 존재.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감정은 식어버릴지도 모른다. 관계를 아름답게 유지하려면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모른 채 나방이 불을 향해 날아가듯 무작정 그녀에게로 다가가려고만 하는 토오루. 이제 엄마의 둥지를 떠나서 그녀의 품으로 날아가려고 퍼득이고 있다. 엄마는 그런 것을 알기에 그곳에 가려면 집을 나가라고 한다. 정말 나가라는 의미가 아닌, 가지 말라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명히 나갈 것이다. 나방이 불을 겁내하는 것을 보았는가. 자신이 타죽을 것을 알면서도 뛰어든다. 토오루가 그와 같다. 자신이 홀라당 다 탈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그녀의 곁으로 날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도쿄타워 밑에 가서야 타워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알듯이 가까이 간 이후에야 그들의 관계가 이상적이지 못함을 알지 않을까. 그들의 관계는 일장춘몽이려나. 젊은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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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환야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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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과 [용의자 엑스의 헌신]의 계보를 이을 작품. 맹목적인 사랑을 적나라 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 한 남자가 한 여자에 대해서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를 더없이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그러한 종교같은 하나의 신념.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그녀에 대한  한 남자의 집착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그런 것도 아니라면 이단 종파에서 말도 안되는 사람을 교주로 따르듯이 그녀를 그런 교주로 모시는 종교라고 보아야 하는 것인가. 

 

그런 미친 사랑의 계보. 작가는 이런 일련의 작품을 통하여서 무엇을 드러내고자 했을까. 여자가 독을 품으면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을까. 여자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것이 비단 여자에게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의 행복이라는 것이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대규모의 지진을 통해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어디 그들  뿐일까. 이 지역의 모든 사람들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자연 재해로 인한 것이라서 누구에게 탓을 할 수도 없다. 그저 단지 그러려니 할 뿐. 죽은 사람도 많으니 그나마 살아남은 것이라도 감사해야 할 뿐.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동네를 떠난다. 그렇게 대도시인 이 나라의 수도 도쿄로 향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누구를 이용해서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얻고 싶은 것은 얻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 캐릭터가 과연 바람직할까. 절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 자체가 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인들의 인간성에  따르자면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을 배우며 자라지 않던가. 그러니 그 사람이 저지르는 모든 행동들은 악으로 규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또 어떻게 보면  딱히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드러나는 것만 보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사람이 된다. 법 안에서 생활하고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나서서 모든 권력과 부를 얻은 그런 사람이 된다. 그러니 정죄할 수가 없다. 그 누구보다도 악한 존재지만 그 누구도 죄를 물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런 증거도 증인도 없기에. 아니 증인은 있으나 그것을 뒷받침할 그 무엇도 없기에 그 모든 것은 다 더 높은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서 묻혀버리게 되고 만다. 마치 원죄처럼 말이다.  

 

바이러스 하나만으로 묻혀 있던 비리권력집단이 드러났다. 종교의 가면을 쓰고 부와 권력을 쟁취하려고 했던 그였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심리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배를 두둑히 채워갔을 것이다. 아니 또 모른다. 그 자리에 왕처럼 앉아있는 그는 허수아비이고 그를 잡고 흔드는 실세는 따로 있는지도 말이다.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그런 자리의 그. 이제 바이러스에 의해서 파헤쳐 졌고 무너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 속에서 부와 권력을 잡은 저 자를 심판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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