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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런틴 ㅣ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4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비일상의 일상.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첫 느낌은 그것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나는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나노 로봇에 의한 자기 통제 '모드'였다. 머리 끝까지 해부해버린 과학이라... 사립 탐정 닉의 죽은 아내 카렌이 그의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충성' 모드를 통해 자신은 결코 의도하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앙상블'이라는 가상의 존재에게 충성을 하고, 'P1'부터 'P6'에 이르는 다양한 모드를 통해 자신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통제한다라...
인간은 '희노애락'과 '오욕칠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이것은 인간의 본성일 것이며 결코 변하지 않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쿼런틴에서 작가는 이를 완전히 배제해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두렵다.
대다수의 독자들이 양자역학의 난해함으로 인해 '모드'를 기반으로 하는 닉의 사고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은 듯 했다. 물론 버블이라는 상황을 통해 그렉 이건은 글 속에서 수축과 확장이라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실재하는 것은 무수한 가능성들의 확장을 통해서 발생한 수억개의 개체 중에 수축하는 단 하나이며, 또한 인간은 인식하는 그 순간에 우주의 모든 개체들을 수천년동안 소멸시켜 왔다라고 하는 파격적인 설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류에 의한 소멸을 막기 위해 외계인이 지구를 '격리' 시켰으며 그 외계인이 바로 '로라'라고 하는 것은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결론까지. - 솔직히 그 설정은 정말 황당했다. -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들보다는 글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보이는 '모드'에게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닉처럼,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이길수 없을 것 같아, 혹은 필요에 따라 절대적으로 냉정할 수 있는 '모드'를 24시간, 365일, 그로 그의 일평생동안 유지한다면? 아직까지는 먼 미래의 일이 되겠지만, 만약 나노 과학이 그 정도로까지 발전해서 인간들이 뇌 세포와 신경 조직에 그런 조작을 가하고, 스스로의 머리속에서 컴퓨터에 버금갈 정도의 방대한 정보를 저장하고 읽고 분석한다면... 아마도 필연적으로 인간은 ... 그것은 더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개체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SF를 읽을 때마다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상상하는 것을 멈추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