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후계자
장 미셸 트뤼옹 지음, 장진영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의 주제가 무엇인가? 작가가 과연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한눈에 파악하기는 너무 어렵다. 솔직히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라면, 이 소설은 본격적인 얘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서두, 혹은 길닦기 정도라고 파악하고 싶다. 장황한 얘기의 끝을 보자면 말이다.

웹을 매개로한 '인간 사회의 단절'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한 작가의 얘기는 중국-미국의 갈등이라는 현재의 문제와 고대로부터 이어진 교황의 유물찾기와 맞물려 주인공인 칼뱅의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그의 어머니인 아다의 또 다른 자식인 '노플러그'와 함께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다.

이름난 해커인 주인공 칼뱅은 사실상 그 자신도 모르게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해왔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숨기면서 칼뱅과의 고리를 유지해왔다. 그것은 그가 스스로 자신의 캡슐로 이동한 이후부터 쭉 그래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캡슐 파괴자(가상의 살인자)가 그의 어머니인 아다를 살해함과 동시에 지금까지 쭉 안전하고 완전무결하며, 영원히 지속되리라 여겨왔던 웹 사회가 결국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칼뱅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캡슐 밖의 노플러그인 타슈가 칼뱅의 생명을 구하면서 칼뱅은 인식의 극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노플러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그들의 지도자, 즉 새로운 메시야인 것이며, 결국 칼뱅은 캡슐을 벗어남과 동시에 그에게 예견된 또 하나의 운명을 걷게 된다는 결말이다.

이 내용이 이 소설의 겉이라면 안쪽에는 또 다른 내용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크레아튀르'라고 하는 존재에 관한 내용이다. 웹 상을 흐르며 대감호(전염병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었지만) 이후 인간들을 지배해온 존재. 인간을 통로로 자신의 영원을 이끌어줄 매개체를 끊임없이 찾고 있다는 존재에 대해 두 가지의 상반된 의견이 흐른다.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니치와 그 존재를 이겨내야 한다는 아다. 그 속에서 칼뱅은 갈등한다.

이 글에서 최종적으로 칼뱅이 크레아튀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결말은 없다. 캡슐을 탈출한 칼뱅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내용도 없다.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서두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작가는 이후의 모든 내용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 듯 하다. 가상의 사회에서 단지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혜택이라고 주장하는 '앵뷔'족에 수감된 칼뱅의 여자친구인 '모'와의 재회가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도 역시 미지수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모든 것을 단지 '가능성'에 남겨두었다.

그래서 굉장히 혁신적이면서도 공감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은 미완성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웹'의 마지막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수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근원적으로 인간 사회의 해체를 읽을 수 있었다. '웹'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지금도 인간 사회는 굉장히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가족간의 단절'이라는 현상은 이 모든 일들의 서두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실상 이 소설이 말하고 싶은 것을 한마디도 정의하기는 너무 어렵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닥칠 미래의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를 아주 통렬하게 예시하고 비판하는 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가치있는 글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은 단지 읽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소설을 쓴 작가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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