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 프랑스 음악의 한 정신 음악의 글 4
클로드 드뷔시 지음, 이세진 옮김 / 포노(PHONO)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클로드 드뷔시는 음악 뿐 아니라 문학, 미술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어쩌면 그는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가 열어놓은 가능성의 공간을 환희에 찬 채로 열심히 돌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그의 이런 경향을 단박에 방증한다. 물론, 이 책의 제목인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씨>도 스테판 말라르메와 친밀한 사이였던 폴 발레리가 그의 단편소설들에서 불러온 가상의 인물 '테스트씨(Monsieur Teste)'를 오마주한 것이다.


여기에 실린 글은 학술적인 차원의 엄격한 음악 비평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언론 지면에 실린 음악 평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글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을 막힘없이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을 가졌으며, 그것이 떠받치고 있는 그의 진실을 말하고자 용기 덕분이다. 글이 인정사정 보지 않고 한없이 신랄할 때, 그것은 마치 철학자 조르주 캉길렘(Georges Canguilhem,1904-1995)의 발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시대를 달리한 다른 분야의 두 사람이 유사한 태도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 임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시대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이유가 아마도 존재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닌 음악 이해능력, 혹은 섬세하게 벼려진 취향을 다음처럼 증명한다.(95~96쪽)


그[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현대 독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독창적인 음악가다.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기술로 보자면 그 놀라운 비르투오시타가 리스트를 방불케 하고, 문학으로 음악을 떠받치려는 자세는 우리나라의 베를리오즈를 닮았다. 이 점은 <돈키호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같은 그의 교향시 제목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확실히 R. 슈트라우스의 기법이 늘 그렇게까지 분방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색감 있는 이미지들로써 사유하고 오케스트라를 수단 삼아 작품의 윤곽선을 그리는 것 같다. 그러한 작법은 평범하지 않거니와 아주 드물게만 쓰인다. 게다가 R. 슈트라우스가 작품을 전개하는 방식 또한 완전히 개인적이다. 그 방식은 바흐나 베토벤의 엄격한 건축적 설계가 아니라 리드미컬한 색채들의 전개다. 그는 말도 안 되게 동떨어진 음들이라도 그의 요구대로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주기만 한다면 '듣기 싫은 소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없이 냉철하고 자신만만하게 겹쳐 놓는다.


또한, 그는 자신이 유럽 음악인에 국한되지 않는, 좋은 음악을 향한 개방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러준다.(151~152쪽)


무엇보다도, '딜레탕트 잡아끌기'에 불과한 체계들을 삼가자.

문명이 몰고 온 무질서에도 불과하고 과거에는, 아니 아직도, 숨 쉬는 법을 배우듯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우는 매혹적인 사람들이 있다. 바다의 영원한 리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정성스레 귀 기울여 듣는 오만 가지 미세한 소리들, 이것이 그들의 음악학교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논문 따위를 들여다보는 일이 없다. 그들의 전통은 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오래된 노래들에만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전통에 조금씩 자기 몫을 보탰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 음악이 준수하는 대위법은 팔레스트리나의 대위법이 애들 장난처럼 보이는 수준이다. 유럽인의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매혹적인 '타악'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의 타악은 상스러운 장터 여흥거리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런 '안티 딜레탕트' 드뷔시를 통해 당대 음악장을 논쟁, 주제, 인물 등을 통해 속속들이 활보해 보는 건 무척이나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신께서 호의를 베푸는 일요일에는 음악을 일절 듣지 않습니다. 선생께는 미안한 얘기지만요...... 정말이지, 부디 ‘인상(impression)‘이라는 단어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쓸데엇이 들러붙는 미학으로부터 내 감정의 자유를 지켜주니까요. - P25

음악은 흩어진 힘들의 총합입니다. 그런 힘들로 사변적인 노래를 만드는 거죠! 나는 이집트 목동이 피리로 불어대는 음들이 더 좋습니다. 그는 풍경에 협력하고 당신들의 평론에서 다루지 않는 화음들을 듣습니다...... 음악가들은 교묘한 손으로 쓴 음악에만 귀를 기울이고 자연에 아로새겨진 음악은 들을 줄 모릅니다. - P27

나는 과감하게 로마대상이 어떤 부류들에게 미신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그 제도가 맹위를 떨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로마대상을 받았는가 못 받았는가로 그 사람이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종결난다. 아주 확실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편리한 방법이기는 하다. 여론에 작성하기 편리한 장부를 마련해준다고 할까. - P32

로마대상은 일종의 게임입니다. 차라리 국민스포츠라고 해야 할걸요. 이 게임의 규칙을 가르치는 곳을 음악원, 예술학교, 기타 등등으로 부릅니다. - P33

바흐 음악에서 감동을 낳는 것은 멜로디의 성격이 아니라 멜로디가 진행하면서 그려내는 선이다. 실제로는 동시에 진행되는 여러 선율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연으로든, 의도적으로든, 그 선들의 만남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문양 중심의 구상에 힘입어 음악은 거의 기계처럼 틀림없이 청중에게 특정한 인상을 자아내고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 P56

일부 예술가는 이 무관심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들도 한때는 싸울 줄 알았다. 시장에서 한자리 얻기 위해 필요했던 바로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싸웠다. 하지만 일단 장사가 자리 잡히면 그들은 무섭게 퇴보한다. 마치 대중에게 자기네들을 받아들이느라 수고했다고 사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젊은 날에 결연히 등을 돌리고 성공 속에 웅크리고 눌러앉는다. 그들은 복된 영광의 경지에 결고 오르지 못한다. 그러한 경지는 언제나 새로워지는 감각과 형식의 세계를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자들에게만 허락된다. - P62

이 위대한 거장[베토벤]의 작품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훨씬 더 심오하게 표현한 다른 대목들이 있다. 그 대목들이 한결 심오한 이유는 단지 풍경을 직접적으로 모사하지 않고 자연 속의 ‘보이지 않는 것‘을 감정적으로 옮겨냈기 때문이다. - P85

음악은 자연을 다소간 정확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 상상의 신비로운 상응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아마 그 어떤 분야보다도 자유가 풍부한 예술일 것이다. - P1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뒤라스의 말 - 중단된 열정,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마르그리트 뒤라스 외 지음, 장소미 옮김 / 마음산책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스에 있을 때 이 책을 구입해두고 있었다. Romane Fostier의 전기와 함께.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관련된 상대적으로 최신의 대담집과 평전이었기에 그 기획의 참신성과 진전된 측면을 내심 기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책 모두 문고본으로 가격 또한 저렴했다. <뒤라스의 말>은 87-89년에 파리 생브느와 거리에 있는 뒤라스의 자택에서 이뤄진 인터뷰로, 그의 삶과 예술을 연대기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뒤라스가 남긴 여느 인터뷰와 달리 전체의 상을 제공한다. 이런 특징이 이탈리어 인터뷰집(1989)이 다소 뒤늦은 2013년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이유일 거라고 책의 역자 역시 분석하고 있다.


본 대담집은 뒤라스의 기존 인터뷰들의 불가피한 한계로 여겨질 수 있는 전문영역에 대한 인터뷰를 넘어서서 뒤라스에 대한 A-Z를 보여주고자 한다는 점에서 아베세대르abécédaire 형태의 입문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특정한 문제에 대해 인터뷰어가 한층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변주를 통한 반복적 질문으로 인터뷰이의 답을 강화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구태여 책의 한계로 지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심층적 구체성은 뒤라스의 다른 대담집이 이미 하나의 공간을 확보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상을 그리기 위해 기획된 구조적인 방식의 인터뷰는, 그럼에도 인터뷰어-인터뷰이 간의 상호 친밀성과 신뢰성으로 인해 질문과 답변에 어떠한 불순물도 발견되지 않는 밀도가 지배한다. 억압되어 있고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고 발언하는 뒤라스의 평소 신념대로, 그의 말은 어떠한 거짓 겸손과 위선 등을 허락하지 않는 순도높은 직진성으로, 발언 뒤에 미련을 허용하지 않는 말하기로 일관한다. 이는 어떤 면에서 아니 에르노를 떠오르게 한다.(아니 에르노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사후 2001년에 제정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결코 쓰지 않겠다는 의지로 일관하면서, 지식인 세계에 진입한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인 침묵의 요구에 맞서 자신의 성애 경험(<단순한 열정>, <집착>)과 낙태 경험(<사건>) 등을 건조한 문체로 사실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억압된 것'을 폭로하고자 하는 작가 말이다. 인터뷰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뒤라스 특유의 태도는 사실상 그 이후 프랑스 여성(물론, 뒤라스나 에르노 모두는 '여성'이란 분류를 거부하고 있지만 분류의 편의를 위해 명명)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상속된 문화자본의 어떤 기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말이다.


책의 미덕은 또한 문학-영화-연극이 뒤라스에게 사실상 개념적으로 분리되고 독립된 각각의 예술 영역이 아니라 특정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가는 과정에서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형식이라는 것을 인터뷰 주제의 논리적 배치를 통해 단번에 시야에 들어오게 한다는 점이다. 그에게 발견되는 문학-영화-연극 형식의 상호의존성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뒤라스가 지닌 남성, 여성에 대한 견해, 그가 작가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주제인 열정이나 사랑 등에 대한 견해와 함께 자연스런 담론적 일체가 된다.


이번 대담집이 뒤라스에 대한 일종의 통론을 구성하므로, 각론에 해당하는 다음의 대담집들이 번역출간되기를 바라면서 짧은 스케치를 마무리한다.(본문, 204~205쪽)(본문에서 언급된 『물질적 삶』,『말의 색채』는 이미 번역 출간됨)


- 자비에 고티에,『말하는 여자』(미뉘, 1974)

- 미셸 포르트,『트럭』(미뉘, 1977)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장소들』(미뉘, 1976)

- 세르주 다네 및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부, 『초록 눈동장』(미뉘, 1987)

- 피에르 뒤마예,『텔레비전에 얘기하세요』(EPEL, 1999)

- 프랑수아 미테랑, 『뒤팽 거리의 우체국과 그 밖의 대화들』(갈리마르, 2006)

- 장피에르 스통,『인터뷰』(브랭, 2012)


난 나를 짓누르는 침묵을 말하게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열두 살 때인가, 오직 글쓰기만이 방법인 것 같았죠. - P24

글은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매번 앞서의 문체를 깨뜨리고 새로운 문체를 창조하면서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에요. - P43

난 더는 아무 것도 믿지 않아요. 어쩌면 믿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권력에 대항하는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고, 은행의 과두정치와 우리를 지배하는 가짜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유일한 해답일 거예요. - P47

오직 결여와, 연속되는 의미들 속에 숭숭 뚫린 구멍들과, 빈 공간에서만, 무언가가 생겨날 수 있어요. - P84

내 안에서 글의 재료가 될 언어의 정화와 압축 작용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거든요. 글을 절제하고 싶은 열망, 모든 언어가 벌거벗은 상태로 질서 정연하게 들어선 공간에 대한 열망이죠. - P89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절대 특별하지 않아요. 우리가 바라듯 일정하지도 않고요. 다채롭고, 돌이킬 수 없으며, 우리의 의식 속에서 영원히 반향을 일으키죠. 메아리처럼, 강물의 동심원처럼 퍼져 나가고 시시각각 서로 교차되면서, 우리의 과거에서 미래를 오가는 거죠. - P93

모든 작가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자기 자신에 관해 써요. 그들 인생의 핵심 사건인 그들에 대해, 마찬가지로 작가가 언뜻 그에게 낯선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건 늘 그의 자아, 그의 강박과 연관돼 있죠. 마찬가지로 꿈도-프로이트가 말했듯-우리의 에고이즘만을 드러낼 뿐이고요. - P95

나는 생각의 편린들을 그때그때, 굳이 바로 서로 연관 지으려 애쓰지 않고 적어둬요. 어느새 알게 모르게, 관계가 작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거예요. - P96

난 나를 평범하게 만들고 무참히 망가뜨리고 이어서 중요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짐을 내려놓기 위해 글을 써요. 텍스트가 내 자리를 차지해서, 내가 덜 존재하도록. 나는 오직 두 경우에만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자살하거나, 글을 쓰거나. - P98

남성적 글쓰기에서는 관념으로 너무 무거워진 문체만이 느껴져요. 프루스트, 스탕달, 멜빌, 루소는 성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에요. - P101

평론가들은 늘 어떤 여성적인 영역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들을 비난했거든요. 사랑의 테마나 고백, 자전적 소재 등. 수년간, 여성의 위반은 시에 국한되어 표현돼왔어요. 내가 그걸 소설로 이동시켰죠. 내가 한 많은 것들은 혁신적이에요. - P114

전통적인 영화로 재현된 현실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모든 것이 너무 말해지고, 너무 드러났죠. 의미의 과잉은 역설적으로, 맥락을 빈약하게 만들어요. - P135

아니요, 빈약한 예산은 내가 묘사하는 현실의 특성에 부합해요. 피폐하고 들쭉날쭉한 현실 말이에요. 영화의 아름다움은 또한 제한된 예산과, 내가 촬영 기간으로 두는 극히 짧은 기간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 P138

전지전능한 전통적인 소설가의 역할을 거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서사를 지배하고 장악하고 객관화하는 카메라의 침입을 거부하는 거예요. 카메라는 사건의 다원성에 중점을 둘 수 있도록 유연해야 하죠. 등장인물들의 시선처럼 드러나지 않게 움직이며, 다양하고 호환 가능한 역할을 수행해야 해요. - P141

내 모든 영화는 본래 정치적이지만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주제를 발전시키지 않죠. 정치적인 의미는 다른 방법으로 성취되어야 해요. - P150

대화와 말이 숨기고 위장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 속에, 대화 속에 섞여 있는 암시적인 우물거림들 속에 체호프의 위대함이 깃들어 있어요. 그런데도 텍스트는 결코 포화 상태가 되는 법이 없죠. 행동이 정지되고 미완인 채로 내버려두는 내 텍스트들처럼. 일종의 침묵의 음악이라고 할까요. 아직 모든 걸 상상해야 하는. - P165

사랑이 비록 모든 예술의 주요 주제일지라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묘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열정은 가장 진부한 동시에 가장 모호하거든요. - P171

살면서 종종 내가 존재하지 않는-어떤 모델도 레퍼런스도 전무후무한-듯한 기분을 느껴요. 늘 내가 있고 싶은 곳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곳을 찾아 헤매고, 늘 지각하고, 늘 남들이 즐기는 걸 즐기지 못하는 기분. 그런데 이제는 이 복합성이 마음에 들어요. 우리는 늘 우리 본연의 모습인 단일성에 도달하기 위해 기를 쓰지만, 우리의 풍요로움은 바로 그 범람에 있는 거예요. - P1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보 로망, 누보 시네마 동문선 현대신서 143
클로드 뮈르시아 지음, 이창실 옮김 / 동문선 / 200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클로드 뮈르시아는 '프랑스 근현대 문학', '문학과 영화'의 관계를 살피는 전문가로서 현재 파리7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본서는 누보 로망과 누보 시네마에 대해 "비교연구적 관점에서 동일한 심미적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기반으로 결합시킨 첫 시도"(10쪽)라는 점에서 연구의 독창성이 있으며, 누보 로망에 대한 총론격의 분석서/이론서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중요한 입지를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영역의 예술이라 여기며 누보 로망과 누보 시네마에 대한 비교연구가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 누보 시네마를 누보 로망의 문학적 탐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이행'으로 해석하는 점이 비교연구가 가능했던 중요 포인트라 여겨진다. 이는 단순히 누보 시네마의 작가로서 마르그리트 뒤라스, 알랭 로브그리예, 알랭 레네 등이 대표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존재의 불가능한 통일성, 불가능한 진리, 삶의 불가능한 파악"(151쪽)을 위해 문학의 글쓰기로는 불가능한 지점을 영화 언어를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가 그들에게서 발견되었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이는 영화 매체가 지닌 예술적 잠재성의 중요한 부분을 다시 고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책에 따르면, 이러한 누보 로망과 누보 시네마는 새로운 세상과의 관계를 탐구했던 사회학자인 에드가 모랭의 이론적 작업(예컨대, <복잡성 사고 입문 Introduction à la pensée complexe>(에코리브르,2012[1990]))과도 관련성이 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단편화된 진술, 다양한 관점, 세상의 직접성 속에 침몰된 주관성이야말로 제어력을 상실케 함으로써 인간을 미혹에 빠뜨리는 표지들이다. 이질성과 불연속성에 기초한 누보 로망의 이야기들에서 사용되는 텍스트상의 전략들은, 일반적으로 세상을 그 당혹스런 복잡성 속에서 포착하도록 한다. 복잡한 사고는 현실의 신비를 고갈시키지 않고 그 불확실성과 모순들을 떠맡으면서 "오로지 앎을 풍부히 하고 인지의 무의식적인 모든 훼손에 맞서 싸우고자 한다."라고 에드가 모랭과 마우로 체루티는 밝힌다."(142쪽)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회는 기존의 전통적인 의미의 근대사회를 지나 다른 차원의 근대사회로 변모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변화의 축적은 60~70년대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풍경으로 세계사에 기록되어 있다. 바로 그 변화를 예민하고 정확하게 인지하면서 출현한 누보 로망과 누보 시네마는 '현재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모든 이가 반드시 한번쯤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필수통과지점'이 되었고, 본서는 바로 그러한 통과 지점에서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본서의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누보 로망과 누보 시네마라는 다른 영역을 비교 분석하면서 총론을 제시한다는 책의 목적에 비할 때 압축적인 서술과 변주이되 반복적인 내용, 다소 길지 않은 분량(150쪽 내외) 등을 들 수 있겠으나, 정확한 이해에 바탕한 훌륭한 번역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부분을 잊게 만들지도 모른다.


"텍스트는 세상이 생기는 장소가 된다"고 한 블랑쇼의 말은, 문학에서 모더니티가 이루어 놓은 대변혁을 강조하다. 이제 택스트는 텍스트에 앞서 존재하는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 자조적 세계,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는 세계를 창조할 책임을 진다. 허구는 이제 자체만을 준거로 삼음으로써 지시 대상은 힘을 상실하고, 작품은 재현의 성격을 상실한다. 이렇게 해서 누보 로망과 누보 시네마에 의해 형식에 대한 상당한 작업이 이뤄지며, 문체에 큰 중요성이 부여된다. 또한 이렇게 해서 로브 그리예는 본질주의 문학의 ‘진지성‘에 ‘유희의 이데올로기‘를 대치시킨다. 이 이데올로기는 작가를 ‘세상으로부터의 피신처‘에 데려다 놓기는커녕 그 창의성에 의해 양자를 모두 변모시킨다. - P103

누보 로망 작가들은 지난 세기의 사실주의 미학 자체-그 미학을 산출한 사회와 완벽한 일치를 이루었던-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비난하는 것은 변화된 사회 및 지식에 걸맞지 않는 이데올로기 체계에 따른 소설 미학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글쓰기 형태가 그 애초의 활기와 힘, 격렬함을 잃었을 때, 또 그것이 천박한 처방이 되어 버렸을 때, 즉 추종자들이 그 필요성에 대한 질문조차 제기하지 않으면서 단지 일상의 습관이나 게으름으로 존중하는 아카데미즘이 되어 버렸을 때, 이제 죽은 형식들을 고발하는 현실이 되돌아온다. 그리고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새로운 형식들을 추구하게 된다." ‘예술은‘ 끊임없는 탐구이자 ‘꾸준한 문제삼기‘의 ‘삶이기‘ 때문이다. - P104

인과 관계의 연속성에 지배되는 선형의 이야기, 사건의 연대기적 나열, 이데올로기적 전제에 따른 사건의 보존과 위계 질서화, 이 모두를 몰아내고 누보 로망 작가들과 누보 시네마 영화인들은 자신들의 세계 이해와 부합하는 불연속적이고 단편적이며 파열된 이야기를 들려 주게 된다. - P108

그 구조와 이데올로기적 토대가 파괴된 이야기는 자체의 확신과 형식적 의미론적 통일성 및 종합적인 관점을 상실한다. 여러 모순된 담론의 유희로 상대화된 모든 진실은 무효화되고, 대신 활짝 열린 감각이 들어선다. 그렇다고 구조적 파편화가 구조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보 로망과 누보 시네마의 이야기들은 일반적으로 아주 튼튼한 구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왜곡된 논리적 모델들과, 기꺼이 다른 표현 양식들로부터 취해진 비논리적 원칙들을 따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 P119

고전적인 사고는 시간에 대한 체계적이고 위계질서화된 표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누보 로망 작가들과 누보 시네마 영화인들은 이처럼 합리적인 시간 개념-이야기의 연대기적 전개와 시간의 카테고리화(과거,현재,미래)를 포함하는-을 거부하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들은 그와 맞서는 주관적 시간성을 받아들였다. 심리적 동기가 거의 동시에 받아들이는 인상들의 풍요로움과 부조화 및 그에 따르는 인식의 혼란을 존중하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보다 진정한 현실의 이름으로, 시계가 알려 주는 확고한 시간이 해체되고 당혹스러운 ‘사적인‘ 시간성이 구축된다. - P131

오직 신에게만 가능한 포괄적인 관점을 흉내냄으로써 세상에 대한 제어력을 확보하는 총체적 인식의 부재로 인해, 소설은 이제 일의적인 충만한 의미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시간과 공간에 위치한 개별적 의식과 연관되어 현실은 단편적이고 구멍이 숭숭 뚫린 이질적 못브으로, 손에 잡히지 않고 달아나는 모습으로만 드러날 따름이다.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총체적 면모를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142

시공간적 좌표의 해체, 등장인물의 마멸, 인간적 속성의 부수화, 인과 관계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서술 원칙의 폐기, 형식에 대한 탐구의 우선시 등에 의해 누보 로망의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의미의 공백이라는 실망스런 느낌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 전통적 이야기에는 독자가 기대하는 바들이 여기선 좌절되고 만다. 독자는 효율적인 서술이 가져다 주는 쾌락을 맛볼 수 없으며, 심리적 정치적 도덕적 형이상학적 차원의 ‘진실‘에 접근할 수도 없다. 텍스트가 궁극적인 의미의 제시를 거부하면서 그저 하나의 자생적인 물음으로 제시됨에 따라, 누보 로망은 필연적으로 실망을 야기한다. "예술의 기능은 결코 이미 알려진 하나의 진실-혹은 하나의 물음-을 예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여러 물음들(어쩌면 대답)을 세상에 던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더 이상 유혹하거나 안심시키거나 확신시키거나 증명코자 하지 않으며, 반대로 불안에 빠뜨림과 동시에 수많은 의미를 향해 작품이 개방되도록 한다. - P1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사는 방식 -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홍한별 옮김 / 코쿤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록을 보니 지난 8월 2일에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 전문을 나는 완독했다. 이 회상록의 주요한 인물인 수전 손택 얘기다. 완독 후 남긴 짧은 글에서 나는 대담이란 형식이 지닌 '우발성의 미학'이 모종의 진실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물론, 이는 순진한 생각이라기보다는 대단히 상대적인 개념화에 가깝다. 수전 손택은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로 유명한 사람과 결혼할 정도로 조숙한 사람이었고, 우리에겐 비평적 에세이, 소설가, 영화감독 등으로 각인되어 있다.(물론, 그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전통적인 의미의 작가로서 보다 비평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런 사람의 글에서, 다시 말하자면 벤야민과 아렌트를 존경했던 사람의 글에서 페르소나 밑의 맨얼굴을 보는 일은 거의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담의 형식에서나마 아렌트는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때론 그와 전혀 상관없이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질문자가 누구인지, 인터뷰의 시간 등이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회상록이 내게 특별했던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한달 전에 접했던 수전 손택의 인터뷰가 이뤄졌던 시기인 1978년은 회상록의 주요한 시간적 배경인 1976년 봄부터 1978년 겨울까지라는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회적이고 공적인 공간에서 이뤄진 인터뷰가 어디까지나 특정한 지향과 형식 속에서 그 한계를 명확히 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의 목적과 방향 안에서 우리는 특수한 진실을 담보할 수 있을 뿐 그 사실이 한 인간에 대한 전적인 진실로 전화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전 손택 아들의 애인으로 그와 함께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며 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에서 경험한 수전 손택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그를 잊게 만들 만큼 생경하고 낯설다.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작가의 특성 자체 또한 내게 이 회상록에 흥미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수전 손택이 보여주는 예의 그 이성적인 우아함이나 담대한 행동과는 거리가 먼 유형의 사람으로서, 회상록은 수전 손택에 대한 것이지만 표현과 문장 등은 온전히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작가의 개인적 특성이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어렵지 않게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수전 손택과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인간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거리, 강도 만큼 우리는 인간 수전 손택을 더욱 예민하고 깊이있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회상록이 맺고 있는 대담집과의 관계는 아니 에르노가 알츠하이머를 앓던 어머니를 간병했던  시기의 일기를 옮긴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가 <한 여자>와 맺고 있는 관계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자>는 어머니의 죽음이란 사건을 통해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소읍의 소규모 소매상을 운영했던 여성의 삶을 아니 에르노 특유의 '평평한 글쓰기'로 회상하고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이야기할 필요성도 인식하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해 그는 '한 여자'를 바라보는 눈으로 담담하면서도 객관적인 문체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구축된 어머니와 아니 에르노와의 객관화된 거리는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에서는 여지없이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입을 최대한 자제한 글쓰기를 통해서 구축하려고 했던 진실을 자신 스스로가 훼손시키는 결정 앞에서 망설였던 순간에 대해 쓰면서 이러한 강고한 진실의 의지가 드러내는, 아직은 포착되지 않는 문학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자신의 글쓰기가 갖고 있는 성격에 대해서 그 어떤 책에서보다 명확한 입장을 취했던 <한 여자>를 바로 그런 성격과 가장 거리가 멀어보이는 문체를 통해서 배반하는 (결과적으로 사후적) 기획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이는 어머니라는 인물을 통해 특정한 사회 계급 여성의 삶이 지닌 '공통적인 것'을 구축하려는 문학적 기획 속에서도 혈육으로서의 어머니, 친밀한 영역에서 모든 감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고 관계 맺었던 어머니를 바라보는 한 딸로서의 간극을 보여줌으로써, 아니 에르노의 문학적 기획이 지닌 내면적 고통의 강도를 짐작케하면서도 특정한 문학적 기획을 수행하는 자아와 그러한 결심과 상관없이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서 한없이 처절하고 감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자아의 분열된 정체성을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글쓰기 기획을 깨뜨리는 또다른 자아를 노출시킴으로써 진실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가를 메타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고 이해되었다. 자신의 문학적 기획을 철저하게 배반하는 자신 안의 다른 자아를 바라보고, 이를 스스로의 당혹과 타자의 비난 앞에서도 진실의 이름으로 드러내겠다는 태도, 혹은 이를 가능케 하는 어떤 궁극적인 문학적 기획.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가 <한 여자>와 맺고 있는 이러한 구도가 수전 손택의 인터뷰집인 <수전 손택의 말>에 대해 <우리가 사는 방식: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라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회상록이 취할 수 있는 문학적 의미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시그리드 누네즈 회상록이 지닌 문학적 기획은 아니 아르노가 한 개인 안에서 보여주었던 상이한 자아의 표현을 더욱 확장된 형태로 취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수전 손택이 자신의 글을 통해 구축하려 했던 지극히 근대적인 성격의 작가적 정체성(자기동일화)은, 그와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인물인 시그리드 누네즈와 다른 사람은 결코 들여다 볼 수 없는 삶의 공간(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에서의 관찰을 통해 여실히 깨지고 있는 것이다. 그 간극에 대한 반응이 시그리드 누네즈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모종의 문학적 기획이 성공적이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의 회상록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로 한정해서 이해해야 하는 '인간 수전 손택'에 대한 '이야기'이자, 보다 넓은 의미의 문학적 기획의 구도 안에서 '진실'을 구축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수전 손택이 쓴 글과 기자 인터뷰의 반대편 극(pole)을 구성하면서 우리에게 진실의 문제를 끊임없이 묻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가 ‘우리 어머니‘라는 말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아서 나도 ‘너의 어머니‘라고 말하자니 어쩐지 어색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언제나 수전, 셈프레sempre 수전이었다. - P17

그런데 작가 레지던시는 왜 가려는 거야? 수전이 궁금해했다. 자기라면 그런 데는 절대 안 갈 거라고 했다. 한동안 어딘가 틀어박혀 일을 해야 한다면 호텔로 가겠다고 했다. 몇 번 그렇게 했는데 아주 좋았다고, 룸서비스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하고 신들린 듯이 일했단다. 하지만 시골 휴양지 같은 곳에 고립되어 지낸다니 너무 우울하게 들린다고 했다. 게다가 시골에서 무슨 영감을 얻겠다고? 플라톤도 안 읽어봤냐고 했다(<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가 파이드로스에게 "나는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나무와 시골 풍경은 나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 P40

그리고 많은 여자들이 그러듯 몸무게에 연연했다. 담배를 얼마나 피우는지 글을 얼마나 쓰는지에 따라 수전의 몸무게는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곤 했다. 글을 많이 쓸 때는 보통 암페타민도 먹었다. 마흔 살이 넘은 뒤에는 마른 쪽보다는 과체중에 속할 때가 많았다. 또 많은 여자들이 그러듯 선호하는 다이어트법이 있었다. 여섯 끼를 굶고 6파운드 줄이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 P47

나는 수전 특유의 과장법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마음에 든 예술 작품은 모두 걸작이고, 감동을 준 예술가는 모두 천재이고, 용감하게 행동한 사람은 모두 영웅이고,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헬레네 아미녀 아도니스가 있었다. - P49

수전은 생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자들을 미심쩍어 했다. 본인은 월경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취급했고 불편을 과장하는 여자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여자들이 여자의 신체가 연약하고 섬세하다는 낡은 믿음에 빠져 있는 거라고 했다. 사실 수전은 사람들이 신체적 감정적 고통을 과장하거나 과잉 반응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 P51

수전은 페미니스트였지만 여자들을 성에 안 차 했다. 수전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있는데, 아주 똑똑한 남자라 그 사람 말을 듣기를 좋아했다. 유부남이었지만 단둘이 만날 때가 많았다. 가끔 그 사람이 아내를 대동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늘 만남이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아내가 옆에 있으면 이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이 하는 말이 어째서인지 따분해진다고 수전은 말했다.
수전은 아주 똑똑한 여자와 대화할 때조차도 똑똑한 남자와 같이 있을 때만큼 재미있지 않다는 사실에 답답해하기도 했다. - P53

수전을 추모하는 글에서 나는 수전이 오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글이 발표되고 격렬한 반응이 있었다. 수전 손택이 얼마나 오만했는데! 내 말은 수전은 어떤 사람의 출신이 아무리 별 볼 일 없고 빈한하다고 하더라도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수전은 계급에 기반해서 다른 사람을 멸시하지 않았다. - P62

수전은 타고난 멘토였으나... 가르치기를 싫어했다. 될 수 있으면 가르치지 말라고 말했다. 아예 안 할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라고 했다. "내 세대 최고의 작가들이 선생질하다가 망가지는 걸 봤지." 수전은 작가의 삶과 학계의 삶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기는 스스로 학계에서 물러난 사람이라고 했다. - P73

수전이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는 유머 감각이 없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성깔 있는 사람으로 비칠 때가 많았다. 특히 청중과 질의응답 시간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를 잘 냈고(눈빛으로 여기 바보들만 모여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쉽게 모욕감을 느꼈다(수전은 늘 같은 것 한 가지가 불만이었다. 미국인들은 유럽인들과 달리 교양이 없고 무지하고 보통 쓰잘데기없는 질문을 한다는 것). - P85

20쪽짜리 글을 쓰기 위해 책장 한 칸을 다 채울 만큼 많은 책을 읽고, 몇 달을 들여 글을 쓰고 또 고쳐 쓰고, 타자 용지 한 묶음을 다 털어 쓰고야 비로소 완성했다고 하는 것. 진지한 작가에게는 이게 보통이었다. 물론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그러는 것도 아니다("보통 어떤 글이든 다 쓰고 나면 쓰레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거든."). (독서처럼) 즐거워지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혹은 특정한 청중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니다. 문학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수전은 말했다. 작가가 결과물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오히려 주기적으로 회의감에 시달리지 않는 작가의 글은 아마도 쓰레기일 것이다). - P96

친구들도, 중요하거나 위압적인 사람이 아닌 한, 수전의 위협과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수전은 "잘못된 것을 지적"라거나 "바로잡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그게 진실의 문제라는 듯이 말하곤 했다. 사람들에게 말을 해줘야 한다고. 하지만 수전은 사정없이, 다른 사람이 옆에 있건 없건 가차 없이 지적하곤 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 앞에서 더욱 신랄해지는 것도 같았다. - P1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 지음 / 열림원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제외하곤, 김이듬 시인의 이전 두 산문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난다 출판사의 '걸어본다'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총서임에도, 파리라는 어찌보면 클리셰가 되어버린 도시에 대한 국내 작가의 글을 더 이상 읽기가 꺼려졌다. 슬로베니아란 도시는 내 관심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너무도 간단한 이유로 그의 글은 아직 저편에 머물러 있다.


시대는 달라졌고, 세상은 변한다. 전국에서 하나 둘 늘어가면서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동네책방' 혹은 '독립서점'은 김이듬이란 시인을 통해 '책방 이듬'으로 탄생하였고, 그는 파리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셰익스피어앤컴퍼니' 같은 서점을 꿈꾸며 '책방 이듬'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 산문집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책방 이듬' 시즌1을 마치며" 그가 기록해나간, 시인이 아닌 '책방주인' 김이듬으로서의 일상 분투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애초 그의 예상보다 훨씬 버거운 현실 속에서 그는 거짓 긍정이나 자기 위안 등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의 시가 그렇듯, 현실을 그다운 문체로 철저하게 우리의 인식 위에 아로새긴다. 그것은 예의 어떤 관조나 성숙을 가장하지 않는다. 그의 감각을 뚫고 지나가는 현실은 그대로 그의 언어를 통해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언어로, 하지만 아름답게 우리를 눈뜨게 한다. 그의 문체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연상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TV 대담에 나와서 글인지 말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결을 지닌 표현을 하고, 그 표현은 다른 누구에게도 듣기 힘든 종류의 것임을 직감하게 하는.


그가 철저하게 기록한 실패의 목록들은 '전기적 환상'에 사로잡힌 글이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성공적인 삶에 대한 반테제이자 사람이 곧 글인 형식의 어떤 경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그는 말한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많이 바뀌었다고. 원형 탈모와 남모를 도움 같은 현실적 어려움의 증상을 겪으면서도, 결코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어느새 사람을 좀더 향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이런 기록이 문학적이지 않다면 무엇이 문학적일 수 있을까.



일종의 자기 파괴일까? 시 창작을 등한시한 채 문학을 말하는 거, 낭독회와 북 토크, 인문학 특강 등을 여는 거, 동네 사람들과의 소소한 독서 모임을 이끄는 거. 심지어 책을 팔고 차를 팔다니. 어쩌면 문단에서 미끄러져 창작을 폐기하고 문학과 예술을 향유하는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나를 작동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다. 하지만 나는 후회나 자기 연민의 시기를 통과했어. 고귀하고 관능적이며 황홀한 문체도 잊어버렸어. 무력감의 잉여적인 느낌이 든다. - P125

한 인간은 우주 같아서, 서로 부딪힐 때 그 내면에 팡팡 터질 준비를 하는 위선과 오만, 광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안다. - P266

책방이 성장 혹은 발전하는 것까지는 바랄 수 없다. 모쪼록 꾸준히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위태롭지 않게, 기왕이면 신나게,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하고 싶어질 만큼. - P270

누군가를 만나 자신이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 한 편의 시를 읽고 예전과 다른 사람을 꿈꾸는 것. 마치 드라이아이스가 하얀 연기로 변하는 것처럼 물리적 변화를 경험하는 것. 그것이 가능할까? 나는 그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 P278

시인은 말한다. 오늘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아름다운 언어, 감동적인 말, 자유로운 소통이 불가능했던 어린 시절의 탓으로 돌리기엔 무참하다. 아직 나는 시인이 아니다. - P295

노점상에게도 일용직 노동자에게도 독서할 여유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과속하고 추월해서 우리를 사고로 몰아가는 세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버스를 운전하다가 신호에 걸렸을 때, 떠오르는 시 구절 하나를 메모하는 패터슨이 나오려면 일한 만큼 최소한의 휴식과 임금은 보장되어야 한다. - P3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