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 프랑스 음악의 한 정신 음악의 글 4
클로드 드뷔시 지음, 이세진 옮김 / 포노(PHONO)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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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드뷔시는 음악 뿐 아니라 문학, 미술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어쩌면 그는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가 열어놓은 가능성의 공간을 환희에 찬 채로 열심히 돌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그의 이런 경향을 단박에 방증한다. 물론, 이 책의 제목인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씨>도 스테판 말라르메와 친밀한 사이였던 폴 발레리가 그의 단편소설들에서 불러온 가상의 인물 '테스트씨(Monsieur Teste)'를 오마주한 것이다.


여기에 실린 글은 학술적인 차원의 엄격한 음악 비평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언론 지면에 실린 음악 평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글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을 막힘없이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을 가졌으며, 그것이 떠받치고 있는 그의 진실을 말하고자 용기 덕분이다. 글이 인정사정 보지 않고 한없이 신랄할 때, 그것은 마치 철학자 조르주 캉길렘(Georges Canguilhem,1904-1995)의 발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시대를 달리한 다른 분야의 두 사람이 유사한 태도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 임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시대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이유가 아마도 존재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닌 음악 이해능력, 혹은 섬세하게 벼려진 취향을 다음처럼 증명한다.(95~96쪽)


그[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현대 독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독창적인 음악가다.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기술로 보자면 그 놀라운 비르투오시타가 리스트를 방불케 하고, 문학으로 음악을 떠받치려는 자세는 우리나라의 베를리오즈를 닮았다. 이 점은 <돈키호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같은 그의 교향시 제목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확실히 R. 슈트라우스의 기법이 늘 그렇게까지 분방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색감 있는 이미지들로써 사유하고 오케스트라를 수단 삼아 작품의 윤곽선을 그리는 것 같다. 그러한 작법은 평범하지 않거니와 아주 드물게만 쓰인다. 게다가 R. 슈트라우스가 작품을 전개하는 방식 또한 완전히 개인적이다. 그 방식은 바흐나 베토벤의 엄격한 건축적 설계가 아니라 리드미컬한 색채들의 전개다. 그는 말도 안 되게 동떨어진 음들이라도 그의 요구대로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주기만 한다면 '듣기 싫은 소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없이 냉철하고 자신만만하게 겹쳐 놓는다.


또한, 그는 자신이 유럽 음악인에 국한되지 않는, 좋은 음악을 향한 개방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러준다.(151~152쪽)


무엇보다도, '딜레탕트 잡아끌기'에 불과한 체계들을 삼가자.

문명이 몰고 온 무질서에도 불과하고 과거에는, 아니 아직도, 숨 쉬는 법을 배우듯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우는 매혹적인 사람들이 있다. 바다의 영원한 리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정성스레 귀 기울여 듣는 오만 가지 미세한 소리들, 이것이 그들의 음악학교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논문 따위를 들여다보는 일이 없다. 그들의 전통은 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오래된 노래들에만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전통에 조금씩 자기 몫을 보탰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 음악이 준수하는 대위법은 팔레스트리나의 대위법이 애들 장난처럼 보이는 수준이다. 유럽인의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매혹적인 '타악'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의 타악은 상스러운 장터 여흥거리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런 '안티 딜레탕트' 드뷔시를 통해 당대 음악장을 논쟁, 주제, 인물 등을 통해 속속들이 활보해 보는 건 무척이나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신께서 호의를 베푸는 일요일에는 음악을 일절 듣지 않습니다. 선생께는 미안한 얘기지만요...... 정말이지, 부디 ‘인상(impression)‘이라는 단어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쓸데엇이 들러붙는 미학으로부터 내 감정의 자유를 지켜주니까요. - P25

음악은 흩어진 힘들의 총합입니다. 그런 힘들로 사변적인 노래를 만드는 거죠! 나는 이집트 목동이 피리로 불어대는 음들이 더 좋습니다. 그는 풍경에 협력하고 당신들의 평론에서 다루지 않는 화음들을 듣습니다...... 음악가들은 교묘한 손으로 쓴 음악에만 귀를 기울이고 자연에 아로새겨진 음악은 들을 줄 모릅니다. - P27

나는 과감하게 로마대상이 어떤 부류들에게 미신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그 제도가 맹위를 떨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로마대상을 받았는가 못 받았는가로 그 사람이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종결난다. 아주 확실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편리한 방법이기는 하다. 여론에 작성하기 편리한 장부를 마련해준다고 할까. - P32

로마대상은 일종의 게임입니다. 차라리 국민스포츠라고 해야 할걸요. 이 게임의 규칙을 가르치는 곳을 음악원, 예술학교, 기타 등등으로 부릅니다. - P33

바흐 음악에서 감동을 낳는 것은 멜로디의 성격이 아니라 멜로디가 진행하면서 그려내는 선이다. 실제로는 동시에 진행되는 여러 선율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연으로든, 의도적으로든, 그 선들의 만남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문양 중심의 구상에 힘입어 음악은 거의 기계처럼 틀림없이 청중에게 특정한 인상을 자아내고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 P56

일부 예술가는 이 무관심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들도 한때는 싸울 줄 알았다. 시장에서 한자리 얻기 위해 필요했던 바로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싸웠다. 하지만 일단 장사가 자리 잡히면 그들은 무섭게 퇴보한다. 마치 대중에게 자기네들을 받아들이느라 수고했다고 사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젊은 날에 결연히 등을 돌리고 성공 속에 웅크리고 눌러앉는다. 그들은 복된 영광의 경지에 결고 오르지 못한다. 그러한 경지는 언제나 새로워지는 감각과 형식의 세계를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자들에게만 허락된다. - P62

이 위대한 거장[베토벤]의 작품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훨씬 더 심오하게 표현한 다른 대목들이 있다. 그 대목들이 한결 심오한 이유는 단지 풍경을 직접적으로 모사하지 않고 자연 속의 ‘보이지 않는 것‘을 감정적으로 옮겨냈기 때문이다. - P85

음악은 자연을 다소간 정확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 상상의 신비로운 상응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아마 그 어떤 분야보다도 자유가 풍부한 예술일 것이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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