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방식 -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홍한별 옮김 / 코쿤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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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보니 지난 8월 2일에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 전문을 나는 완독했다. 이 회상록의 주요한 인물인 수전 손택 얘기다. 완독 후 남긴 짧은 글에서 나는 대담이란 형식이 지닌 '우발성의 미학'이 모종의 진실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물론, 이는 순진한 생각이라기보다는 대단히 상대적인 개념화에 가깝다. 수전 손택은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로 유명한 사람과 결혼할 정도로 조숙한 사람이었고, 우리에겐 비평적 에세이, 소설가, 영화감독 등으로 각인되어 있다.(물론, 그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전통적인 의미의 작가로서 보다 비평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런 사람의 글에서, 다시 말하자면 벤야민과 아렌트를 존경했던 사람의 글에서 페르소나 밑의 맨얼굴을 보는 일은 거의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담의 형식에서나마 아렌트는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때론 그와 전혀 상관없이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질문자가 누구인지, 인터뷰의 시간 등이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회상록이 내게 특별했던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한달 전에 접했던 수전 손택의 인터뷰가 이뤄졌던 시기인 1978년은 회상록의 주요한 시간적 배경인 1976년 봄부터 1978년 겨울까지라는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회적이고 공적인 공간에서 이뤄진 인터뷰가 어디까지나 특정한 지향과 형식 속에서 그 한계를 명확히 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의 목적과 방향 안에서 우리는 특수한 진실을 담보할 수 있을 뿐 그 사실이 한 인간에 대한 전적인 진실로 전화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전 손택 아들의 애인으로 그와 함께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며 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에서 경험한 수전 손택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그를 잊게 만들 만큼 생경하고 낯설다.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작가의 특성 자체 또한 내게 이 회상록에 흥미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수전 손택이 보여주는 예의 그 이성적인 우아함이나 담대한 행동과는 거리가 먼 유형의 사람으로서, 회상록은 수전 손택에 대한 것이지만 표현과 문장 등은 온전히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작가의 개인적 특성이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어렵지 않게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수전 손택과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인간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거리, 강도 만큼 우리는 인간 수전 손택을 더욱 예민하고 깊이있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회상록이 맺고 있는 대담집과의 관계는 아니 에르노가 알츠하이머를 앓던 어머니를 간병했던  시기의 일기를 옮긴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가 <한 여자>와 맺고 있는 관계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자>는 어머니의 죽음이란 사건을 통해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소읍의 소규모 소매상을 운영했던 여성의 삶을 아니 에르노 특유의 '평평한 글쓰기'로 회상하고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이야기할 필요성도 인식하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해 그는 '한 여자'를 바라보는 눈으로 담담하면서도 객관적인 문체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구축된 어머니와 아니 에르노와의 객관화된 거리는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에서는 여지없이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입을 최대한 자제한 글쓰기를 통해서 구축하려고 했던 진실을 자신 스스로가 훼손시키는 결정 앞에서 망설였던 순간에 대해 쓰면서 이러한 강고한 진실의 의지가 드러내는, 아직은 포착되지 않는 문학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자신의 글쓰기가 갖고 있는 성격에 대해서 그 어떤 책에서보다 명확한 입장을 취했던 <한 여자>를 바로 그런 성격과 가장 거리가 멀어보이는 문체를 통해서 배반하는 (결과적으로 사후적) 기획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이는 어머니라는 인물을 통해 특정한 사회 계급 여성의 삶이 지닌 '공통적인 것'을 구축하려는 문학적 기획 속에서도 혈육으로서의 어머니, 친밀한 영역에서 모든 감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고 관계 맺었던 어머니를 바라보는 한 딸로서의 간극을 보여줌으로써, 아니 에르노의 문학적 기획이 지닌 내면적 고통의 강도를 짐작케하면서도 특정한 문학적 기획을 수행하는 자아와 그러한 결심과 상관없이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서 한없이 처절하고 감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자아의 분열된 정체성을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글쓰기 기획을 깨뜨리는 또다른 자아를 노출시킴으로써 진실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가를 메타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고 이해되었다. 자신의 문학적 기획을 철저하게 배반하는 자신 안의 다른 자아를 바라보고, 이를 스스로의 당혹과 타자의 비난 앞에서도 진실의 이름으로 드러내겠다는 태도, 혹은 이를 가능케 하는 어떤 궁극적인 문학적 기획.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가 <한 여자>와 맺고 있는 이러한 구도가 수전 손택의 인터뷰집인 <수전 손택의 말>에 대해 <우리가 사는 방식: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라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회상록이 취할 수 있는 문학적 의미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시그리드 누네즈 회상록이 지닌 문학적 기획은 아니 아르노가 한 개인 안에서 보여주었던 상이한 자아의 표현을 더욱 확장된 형태로 취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수전 손택이 자신의 글을 통해 구축하려 했던 지극히 근대적인 성격의 작가적 정체성(자기동일화)은, 그와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인물인 시그리드 누네즈와 다른 사람은 결코 들여다 볼 수 없는 삶의 공간(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에서의 관찰을 통해 여실히 깨지고 있는 것이다. 그 간극에 대한 반응이 시그리드 누네즈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모종의 문학적 기획이 성공적이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의 회상록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로 한정해서 이해해야 하는 '인간 수전 손택'에 대한 '이야기'이자, 보다 넓은 의미의 문학적 기획의 구도 안에서 '진실'을 구축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수전 손택이 쓴 글과 기자 인터뷰의 반대편 극(pole)을 구성하면서 우리에게 진실의 문제를 끊임없이 묻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가 ‘우리 어머니‘라는 말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아서 나도 ‘너의 어머니‘라고 말하자니 어쩐지 어색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언제나 수전, 셈프레sempre 수전이었다. - P17

그런데 작가 레지던시는 왜 가려는 거야? 수전이 궁금해했다. 자기라면 그런 데는 절대 안 갈 거라고 했다. 한동안 어딘가 틀어박혀 일을 해야 한다면 호텔로 가겠다고 했다. 몇 번 그렇게 했는데 아주 좋았다고, 룸서비스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하고 신들린 듯이 일했단다. 하지만 시골 휴양지 같은 곳에 고립되어 지낸다니 너무 우울하게 들린다고 했다. 게다가 시골에서 무슨 영감을 얻겠다고? 플라톤도 안 읽어봤냐고 했다(<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가 파이드로스에게 "나는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나무와 시골 풍경은 나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 P40

그리고 많은 여자들이 그러듯 몸무게에 연연했다. 담배를 얼마나 피우는지 글을 얼마나 쓰는지에 따라 수전의 몸무게는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곤 했다. 글을 많이 쓸 때는 보통 암페타민도 먹었다. 마흔 살이 넘은 뒤에는 마른 쪽보다는 과체중에 속할 때가 많았다. 또 많은 여자들이 그러듯 선호하는 다이어트법이 있었다. 여섯 끼를 굶고 6파운드 줄이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 P47

나는 수전 특유의 과장법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마음에 든 예술 작품은 모두 걸작이고, 감동을 준 예술가는 모두 천재이고, 용감하게 행동한 사람은 모두 영웅이고,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헬레네 아미녀 아도니스가 있었다. - P49

수전은 생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자들을 미심쩍어 했다. 본인은 월경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취급했고 불편을 과장하는 여자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여자들이 여자의 신체가 연약하고 섬세하다는 낡은 믿음에 빠져 있는 거라고 했다. 사실 수전은 사람들이 신체적 감정적 고통을 과장하거나 과잉 반응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 P51

수전은 페미니스트였지만 여자들을 성에 안 차 했다. 수전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있는데, 아주 똑똑한 남자라 그 사람 말을 듣기를 좋아했다. 유부남이었지만 단둘이 만날 때가 많았다. 가끔 그 사람이 아내를 대동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늘 만남이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아내가 옆에 있으면 이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이 하는 말이 어째서인지 따분해진다고 수전은 말했다.
수전은 아주 똑똑한 여자와 대화할 때조차도 똑똑한 남자와 같이 있을 때만큼 재미있지 않다는 사실에 답답해하기도 했다. - P53

수전을 추모하는 글에서 나는 수전이 오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글이 발표되고 격렬한 반응이 있었다. 수전 손택이 얼마나 오만했는데! 내 말은 수전은 어떤 사람의 출신이 아무리 별 볼 일 없고 빈한하다고 하더라도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수전은 계급에 기반해서 다른 사람을 멸시하지 않았다. - P62

수전은 타고난 멘토였으나... 가르치기를 싫어했다. 될 수 있으면 가르치지 말라고 말했다. 아예 안 할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라고 했다. "내 세대 최고의 작가들이 선생질하다가 망가지는 걸 봤지." 수전은 작가의 삶과 학계의 삶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기는 스스로 학계에서 물러난 사람이라고 했다. - P73

수전이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는 유머 감각이 없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성깔 있는 사람으로 비칠 때가 많았다. 특히 청중과 질의응답 시간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를 잘 냈고(눈빛으로 여기 바보들만 모여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쉽게 모욕감을 느꼈다(수전은 늘 같은 것 한 가지가 불만이었다. 미국인들은 유럽인들과 달리 교양이 없고 무지하고 보통 쓰잘데기없는 질문을 한다는 것). - P85

20쪽짜리 글을 쓰기 위해 책장 한 칸을 다 채울 만큼 많은 책을 읽고, 몇 달을 들여 글을 쓰고 또 고쳐 쓰고, 타자 용지 한 묶음을 다 털어 쓰고야 비로소 완성했다고 하는 것. 진지한 작가에게는 이게 보통이었다. 물론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그러는 것도 아니다("보통 어떤 글이든 다 쓰고 나면 쓰레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거든."). (독서처럼) 즐거워지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혹은 특정한 청중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니다. 문학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수전은 말했다. 작가가 결과물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오히려 주기적으로 회의감에 시달리지 않는 작가의 글은 아마도 쓰레기일 것이다). - P96

친구들도, 중요하거나 위압적인 사람이 아닌 한, 수전의 위협과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수전은 "잘못된 것을 지적"라거나 "바로잡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그게 진실의 문제라는 듯이 말하곤 했다. 사람들에게 말을 해줘야 한다고. 하지만 수전은 사정없이, 다른 사람이 옆에 있건 없건 가차 없이 지적하곤 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 앞에서 더욱 신랄해지는 것도 같았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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