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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찌책방은 다 계획이 있지 - 책과 사람을 엮는 다정한 책방의 기록
조예은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5년 6월
평점 :
1
이 년 전, 대전에서 만난 후배는 식사 후 어딘가를 가고 싶어했다. 자신의 의중을 잘 내비치지 않는 그의 성향상 적극적인 움직임에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와 내가 공유하는 세계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것들은 책이나 사회학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기에, 아마도 소개해 주고 싶은 장소가 서점일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는 '버찌책방'에 가보자고 했다. 나 역시 얼마 전부터 SNS를 통해 눈여겨보던 장소였는지라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지하철역이 있는 대로를 벗어나 차가 마침내 멈춰선 곳은 우산봉 아래 고즈넉한 분위기의 작은 마을이었다. 국립대전현충원이 근거리에 있는 아주 조용한 곳이었다. 3층 규모의 개인주택 1층에 달린, 작고 심플한 다홍색 서점 간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버찌책방을 상징하는 색상과 로고가 가슴에 새겨졌다. 아마도 그 간판을 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책방 내부로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어떤 분위기가 펼쳐질지, 앞으로 어떤 대화를 그곳에서 나누게 될지가 상상이 되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부분을 드러낼 때조차 정체성의 예리한 필치를 우리에게 선사하는 법이니까. 스콜라 철학과 고딕 건축 간의 상관성을 추상적인 수준이 아닌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자 했던 미술사학자와 사회학자를 열심히 읽은 나로서는, 부분에서 전체를 보는 일이 그렇게 다시 즐거운 일이 되어 있었다.
2
후배는 버찌책방에서 사람들과 아니 에르노 문학을 함께 읽고 있다고 했다. 통창을 동쪽으로 냈기에 빛이 한낮에도 그리 강하지 않게 들어오는 긴 테이블에 앉아서 사람들과 아니 에르노 문학을 매개로 대화를 이어 나가는 모습이 자연스레 상상이 되었다. 테이블 안쪽의 서가는 할로겐 조명빛 아래 책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책에 다가서는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 적정한 규모의 책들이, 누군가의 확고한 취향과 기준에 따라 고유한 질서의 배열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런 내부 풍경 자체가 서점에 들어선 누구든지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서인지 나 역시도 조만간 다시 방문해 보리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후배와 장시간 대화를 나누느라 책방지기님과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은 것도 재방문을 기약하게 만든 이유였다면 이유였으리라.
3
재방문에 대한 기대와 여지만을 남겨 놓았을 뿐 다른 해결해야 할 일들에 묻혀 버찌책방 방문은 미뤄지게 되었는데, 그러던 차에 책방지기님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버찌책방을 재방문하게 된다면, 책방지기님의 책에 사인을 받고 책방 토트백도 구입하리라 마음 먹었다. 얼마 전 재방문하여 사인 받은 책과 토트 백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책방 공간이 주는 편안함은 물론 책방지기님과 책방에 들른 손님들이 보여주신 보이지 않는 배려 덕분에 마음 편히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방지기님이 책에 쓰신 표현, "살롱"이란 말이 더 없이 어울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 활동을 매개로 다양한 삶이 교차하는 공간이 만들어 내는 환대의 분위기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니까. 나 역시도 그 공간의 열렬한 매혹자로서 당분간 인생을 보내게 될 것 같다.
4
지난 주말 아침,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읽는 것 자체가 즐거운 사람에게, 독서 활동을 어디서 어떻게 공유할까를 생각하는 시간은 때론 즐거움이기보다는 고통스러워질 때도 있는 것 같다. 요즘이 그런 시기인 듯하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해서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책방지기님의 책은 그가 좋아하는 헤밍웨이의 글쓰기를 닮아 있는 듯했다. 진실하게 쓸 것. 그보다 나은 글쓰기 원칙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글 읽는 중간 중간 나를 멈추게 했던 공명의 순간들은 다음의 밑줄 친 문장들로 대신할까 한다.
자동차 책방의 마지막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공간이 있지만 공간을 벗어난 또 다른 형태의 책방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포기할 수 없다. 자유로운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건 ‘버찌책방‘이 단지 특정 장소만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트렁크를 열고 책을 담을 때마다 한결같은 모습으으로 이동식 책방이 나를 맞이한다. - P50
책방지기에게 1년 반이라는 시간은 왜 내가 책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지, 왜 책을 팔고 싶은지 끊임없이 되묻는 ‘질문‘의 시간이었습니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마음이 움직이면 결과는 따지지 않고 작은 행동으로라도 옮겼던 ‘경험‘의 시간이었습니다. ‘오래오래 하고 싶다‘, ‘책이 좋고 사람이 좋다‘ 1년 반 동안 책방을 향한 제 마음을 거듭 확인했던 ‘발견‘의 시간이기도 했답니다. - P81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남편의 치료는 별빛집으로 이사 온 마무리되었다. 남편은 새 책방을 도와서 은행 대출이자를 같이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고 했다. 자기 자신 조차 이해할 수 없어 길길이 날뛰거나 싸늘하게 마음을 닫던 감정의 고삐를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불안과 강박이라는 감정의 면면을 마주하며 더 이상 숨거나 피하지 않는다. 대신 나와 함께 책방에 출근하거나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낸다. 이제 보이지 않는 밤바다의 일렁이는 파도 같은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안다. - P102
일주일에 서너 번쯤은 책방 밖에서 커피를 마시는 작은 선물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 책방에서 직접 내린 커피로 비용도 들지 않고 편안하게 마실 수 있긴 하지만 일터와 ‘거리두기‘ 하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기 위해서다. 단 30분이라도 아우런 계획 없이 읽는 기쁨을 누려본다. - P109
세상에 수많은 형태의 책방이 있지만 나에게 책방은 ‘살롱‘이다. 버찌책방이 단순한 책 읽를 넘어서 예상 밖의 독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열린 공간이길 원한다. 취향 공유에서 출발해 문화, 사회적 담론이 오가고 느슨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곳. 경험을 기억으로 켜켜이 쌓아가는 문화공간 말이다. - P154
별빛집에서 버찌책방을 다시 열고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전시‘였다. 선정 도서가 공간의 스토리가 되기까지 단조로운 독서에서 한 걸음 나아가 책의 한 페이지를 좀 더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책과 예술 감상의 문턱을 낮추어 애써 작은 책방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예술적인 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서점은 바로 그런 공간이었으니까. - P175
오르한 파묵의 <먼 산의 기적>에서 "우리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는 세상을 떠올리기 때문이 아니라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듯, 책과 커피 이외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그 시간 속에 머물다 보면 어느새 나의 삶을 관조하게 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새벽 시간에 오롯이 마주했던 책, 책이 낳은 사유, 반성과 다짐, 새벽하늘과 새소리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 - P207
책방을 하기로 결심한 후 그림책은 여러모로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폴 빌리어드의 <이해의 선물>을 읽고 위그든 씨의 사탕 가게 같은 책방을 상상하며 책방 이름을 ‘버찌‘로 정했고, 데이비드 스몰의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를 읽을 때는 오지를 다니며 아이들에게 책을 배달하는 책 아주머니처럼 책으로 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다짐했다. 걱정과 불안, 좀처럼 바닥에서 올라올 생각이 없는 빈약한 자신감으로 책방에 대한 마음이 흔들린 때마다 다정하고 단단한 그림책 세상과 주인공을 떠올리곤 했다. - P242
읽는 동안 항상 함께하는 필기구가 있다. 부드럽게 써지는 2B연필, 0.5 미만 굵기의 파랑 또는 초록 계열의 펜, 형광이 아닌 개나리색 형광펜 그리고 인덱스, 새로 장만한 분홍색 만년필까지. 카페 테이블에 그날의 책과 노트, 좋아하는 필기구를 아침 식탁 차리듯 펼쳐 놓고 모닝커피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 안도감이 든다. 제자리를 찾았다는, 무사히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안도감. - P259
그날 펼친 책 속 문장들로 하루치의 고립과 불안을 견딜 수 있었다. 완독과 정독의 부담에서 벗어난 읽는 시간은 나에게 기댈 곳이자 숨을 곳이었다. 행간에서 힘을 쫙 빼고 숨을 뱉어낸다. 뱉은 자리에 ‘이야기‘라는 다시 새로운 숨을 불어 넣는다. 저자의 이야기에서 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이야기였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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