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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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되자마자 30여 개 언어로 번역이 되고 전세계의 독자를 사로잡은 책이라는 말에 속았다. 뭐가 그리 대단한지 난 솔직히 아직 모르겠다.

냄새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냄새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냄새에 이끌려 사람이 정복당할 수 있을까? 사람의 냄새를 채취해낼 수 있을까? 사람의 냄새를 채취하기 위해서 25명을 죽일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너무도 황당하지 않은가. 그래도 '일단 손에 잡은 책은 완전히 읽고야 만다'는 나의 주의 때문에 중간에 집어던지려던 생각을 억누르며 읽었다. 그리고 다 읽고 마침내 집어던졌다. 쓰레기! 광고와 마케팅이 전세계의 독자를 속였어! 하고 외치며.

그래도 속은 것이 아까워 책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려 애썼다. 비참하게 탄생한 그루누이(아비가 누군지도 모른 채 생선가게의 한 구석에서 생선칼로 탯줄이 잘리며 태어난다!)는 냄새가 없다. 그래서 남과 다르며, 이 남과 다른 치명적인 결점 때문에 타인과 섞이지 못한다. 그래서 그루누이는 냄새에 집중한다. 냄새를 개보다 잘 맞고 원하는 냄새(향수)는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는 능력까지 소유하게 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다르다고 생각하는 방향은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과 반대로 '열등하다'고 하는 쪽이 있을 수 있다. 그루누이는 후자 쪽이다. 자신에 냄새가 없음으로써 인간세상에서 철저히 소외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점을 보완하고자 초인적인 노력을 하며 남과 같게 되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됐을 땐 남을 지배하려 한다.

그리고 지배하게 됐을 땐 영원히 그것을 소유하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미 정상이 아니다. 미친 것이다. 미친 생각은 광기의 행동을 낳는다. 자신 한 명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의 생명 빼앗는다. 다른 사람의 인생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독소적 존재이지 않은가. 쥐스킨트는 이것을 풍자적으로, 우회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일까?

이상이 내가 '향수'에서 억지로 건진 것이다. 소설은 독자가 그것을 읽으며 재미를 느꼈다면 일차적인 소임을 완수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대단한 명성'엔 그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그 대단한 명성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책을 읽는 내내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정직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발한 데서 소재를 찾을 줄 알며, 이야기 전개가 뛰어나다는 점은 쥐스킨트의 뛰어난 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작가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책에 대한 나의 혹평은 어쩔 수 없다. 가볍게 읽되 책의 명성을 생각하며 무언가를 구하려 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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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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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특유의 과학과 인간에 대한 안목과 이색적이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정보, 진행형의 빠른 전개 등이 녹아 있는 작품.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하는 근원적인 질문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의식의 확대'라는 요소를 그 '무엇'에 추가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잡지사 여기자인 뤼크레스와 전직 경찰, 기자였던 이지도르가 컴퓨터와 체스를 두어 승리함으로써 인간의 우수성을 입증했으나 그날 밤 복상사로 죽어버린 의사 사무엘 핀처 박사의 사인을 조사하면서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하는 질문을 풀어가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이 필요했을까?)

소설은 다소 황당한 면이 없지 않다. 뤼크레스가 바다에서 쫓기고 있을 때 갑자기 열기구를 타고온 이지도르 일행에게 구출된다든지, 그 열기구가 정신병자들이 던진 돌에 맞아 어처구니없게도 구멍이 난다든지 하는 극적 장면에서 오히려 만화 같은 진행으로 현실성이 결여되어 읽는 사람의 김을 사정없이 빼는 대목도 있다.

베르베르의 출세작인 '개미'를 '쓰레기'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미가 TV를 보고 인간 세계를 이해하며 '감히' 인간을 교화시키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황당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그 황당함만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개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그것에 눈을 돌려보라. 거기에 작가의 의도가 있는 것이며, 돈을 주고 책을 산 가치와 여러 시간 그 책을 읽은 수고의 보람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뇌'에서도 만화영화 같은, 어린애들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요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어렵고 복잡한 과학에 얽힌 메시지를 TV드라마 같은 쉬운 방법으로 보다 많은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쯤으로 이해했으면 싶다. 같은 대상을 놓고 '가치'를 발견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은 황당함을 상쇄시킬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본다.

작가가 열거한 우리가 이끌려 행동하게 하는 그 '무엇'은 모두 13개이다. 그런데 그 열거한 항목들의 순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고통, 두려움, 생존, 안락함 등(다 쓰면 책 읽는 재미가 덜 하므로 생략)의 원초적이고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사항들에서 '의식의 확대'라는 지적 성숙과 만족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작가가 우리-인간이 행동하는 즉,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뇌'라는 책제목을 보고 이 책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이끌렸다. 혹시나 뇌에 관한 최신의 정보가 있을까-저자는 전직 과학부 기자였으므로. 뇌에 대한 어떤 새로운 개념, 이론 등이 있을까'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측면에서는 쉴~망했다. 뇌의 부분적 명칭, 부위별 기능 등 이미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린 지식이었기 때문.

그러나 책을 읽고 얻은 소득도 많았다. 가장 큰 소득은 우선 '나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하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아직도, 계속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대할 때 '이 사람은 무엇에 이끌려 행동할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진정 가치있는 것에 이끌려 행동할 때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상대방이 이끌려 행동할 만한 것을 상대에게 제시할 수 있을 때 원만한 대인관계, 나아가 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닐까?

한마디로 서평을 마무리한다면. 책의 진행은 엄청 돈을 쏟아붓는 화려한 헐리우드 식이 아닌 프랑식의 아기자기한 모험 액션 스타일, 책의 내용과 주제는 철학적. 한마디 덧붙인다면, 글이 '~한다' 등의 진행형, 현재형 일색으로 번역되어 있던데(개미에서도 그랬다), 프랑스어로 된 원문을 제대로 옮긴 것인지. 어울리지 않는 부분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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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1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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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상상력에 의해서 창조되지 않은 사건, 인물들이 조합된 소설은 얼마나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망감을 안기는가. 소위 말하는 순수소설인가 대중소설인가도 헷갈리는 책. 손안에 쏙 들어갈 만한 독침 발사장치를 이용해서 사람을 살상했던 것은 과거 러시아 첩보원들이 사용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 그리고 또 글 읽는 사람의 시선을 잡을 만한 것은... (두리번두리번) 없다!

부자집 외아들로 태어나는 행운을 잡긴 했는데 애꾸눈인 망나니. 오입질 좋아하는 애비, 영화배우였던 화려한 과거 속에서 사는 애미 사이에서 그런 애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리 없다. 그래서 연쇄살인을 일으키는 괴물이 된다. 전생에 붙잡혀 사형당하는 것 등은 미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독일 뿐 환상적이지 못하다. 이 괴물이 주인공 같긴 한데 별로 활약이 없다. 도식적인 배경, 어디서 한 번쯤은 본 듯한 등장인물, 소설의 재료와 요리방법이 구태의연하다고나 할까?

많은 주인공 같은 '비중 있는 사람들'이 책 속에 등장한다. 처음엔 교사(난 첨에 이 사람이 주인공인 줄 알았다) 그리고 심리학자, 철가방 박경서 등등 그러나 그 사람들은 결론도 없이 사라진다. 심리학자와 철가방들은 왜 나와서 그리도 많은 지면을 잡아먹었는지 미스테리다.

심리학자가 10여 명이 죽은 후에야 그 사람들을 죽인 독소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도 그렇고... 괴물이 어렸을 때 무예를 익힌 청소년에게 한 방에 간다는 것도 어쩐지 맥 빠진다(사건의 해결이 형사나 경찰이 아니다. 역시 우리나라 경찰력은 뒤떨어진다 ^^). 천불상의 마지막을 불상이 아닌 ㅇㅇ으로 채우는 것도 그렇다(사실을 밝히면 책 읽을 분들이 김빠지므로 생략). 그것은 완전히 윤두수(? 이름을 잊었다) 개인의 의지가 아었던가. 결코 괴물의 이모의 청탁이 없었다. 확실하다. 이모가 천불상에 깃들어 있는 사연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끝부분엔 기어코 실소를 터뜨렸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중견작가가 TV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데, 자신은 태작을 가장 염려한다고 했다. 게으름이 얼룩진 작품을 쓰는 것을 저어한 말일 게다.
그러나 '괴물'이 이외수씨의 태작이란 것은 아니다. 그가 얼마나 이 작품에 공을 들였는가 하는 증거는 곳곳에 차고도 넘친다.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무수히 빛을 발하고 있는 매끄럽고 기지에 찬 비유와 댓구의 글들은 독자의 눈을 사정없이 붙잡는다. 단지 스릴러물로서는 곳곳에 헛점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공포물, 괴기물, 범죄 스릴러물 등을 읽어야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선택하지는 말란 뜻이다(난 지금 이 책을 홍보하고 있는 광고물을 '까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픽션이다. 허구라는 뜻이다. 그러나 리얼리티가 결여된 허구는 첫마디에 듣는 사람이 '구라'임을 눈치채버린다. 더는 거짓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다소의 긴장감과 참신함이 더해졌더라면 좋았다'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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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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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대목동종합병원에 다녀왔다. 내일모레면 50살이 될 큰누나가 암이라고 한다. 여자들에게 많이 걸리는 종류인데, 암인 것은 확실하고 다른 곳으로의 전이 여부를 확인하는 단계라고 한다. 그래, 사노라면 주위 사람들이 병으로, 사고로 한두 명씩 죽어가고 나의 형제들도, 나도 이제 암에 걸릴 나이가 된 것이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았던 것이다.

구본형씨가 쓴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는 읽은 지가 오래 된 책이다. 그러나 다시 책을 꺼내 읽었다. 왠지 눈물이 흐른다. 그땐 이 책이 머리로 읽혔는데, 오늘은 가슴으로 읽히는 까닭일 것이다.

이 책이 눈물을 자아내는 슬픈 책은 결코 아니다. 마음을 열고, 저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대로 생각을 맡기고 읽다보면 자신의 지나온 시간이 후회스럽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우러나게 하는 (좋은, 썩 잘 씌여진)책이다. 그렇다 이 책은 마음을 열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몇 개월 전만해도 나는 몰랐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디를 가기 위해 어느 거리에 있는 것, 그리고 그 거리를 걷는 것 역시 내 삶의 어떤 풍경이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함으로 절정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지만 지도를 펴놓고 계획을 잡는 것, 그리고 기차를 타고 혹은 버스를 타고 가 거기서 배낭을 메고 걷는 것 역시 여행의 진미다.'

'감사하라. 이 세상에 있음에 대해. 오늘 세상을 등져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은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특별한 날임을 또한 생각하라.'

이 구절들에 밑줄이 쳐져 있다. 처음 읽을 때 친 것인가 보다. 왠지 좋았었나 보다. 지금 그 부분을 다시 읽으며 난 울었다. 주책없이...

누님은 힘들게 살아왔다. 경제적으로 그만하면 '안정'을 꿈꿀 수도 있을 때가 되었을 텐데 사는 모습이 언제나 아둥바둥거렸다. 애들도 피아노, 첼로 등을 배우라며 몰아붙였고 학원을 세네 군데씩 보냈다. 시댁 식구들과 비교가 돼서 그랬을까? 병실에 누워 있는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살아온 나날이 만족스러울까? 아쉬움은 없을까?

우리는 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빨리빨리'를 외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왜 사는 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책은 최소한 그런 물음들을 스스로에게 해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역시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행동 지침을 내리는 것은 자신일 수밖에 없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심사숙고하지 않은 사람은 행동으로 이끌어내기 어려운 책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뜻있는 삶을 살기 위한 것만도, 사회생활을 잘 해나가기 위한 처세술만도 말하고 있지 않다. 두 가지가 뒤섞여 약간 어중간한 느낌도 준다. 그러나 읽어보라. 꼭 마음을 열고. 살면서 가장 중요한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인생은 별것 아닐지 모른다. 단지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이 되는 것이다. 뭔가가 있을 줄 알고 내일을 기다렸는데 오늘처럼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을 눈부시게 맞이하고 끝낸다는 것이 인생을 그렇게 산다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다음' '내일'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지금'이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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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장 - 개정판
존 그리샴 지음, 신현철 옮김 / 문학수첩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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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법조인으로서 완벽한 원칙주의로 일관했으며, 가족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직무와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던 애틀리 판사.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남자의 자녀들이 대부분 그렇듯 애틀리 판사의 아들인 레이도 아버지의 애정 결핍 속에서 자랐다. 그에게 아버지로부터 출두하라는 '소환장'이 도착한다. 임박한 아버지의 임종을 예상하며, 자신이 자란 옛집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생각하며 집에 도착한 레이의 앞에 뜻밖의 상황이 전개된다.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두었고, 서재에서 311만 달러가 넘는 거금-현찰로-을 발견한 것.

이 소설이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밤을 새워 읽게 만드는 것은 두 가지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돈에 욕심이 없었음은 물론 수입의 많은 부분을 '기부'해 왔던 애틀리 판사. 그런 그에게 이 거금의 현찰이 어떻게 들어왔는가 하는 점. 애틀리 판사의 원칙주의적인 법관활동과 사회사업 등은 모두 위선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는가. 둘째, (이 글을 읽는 사람 스스로도 자문해 보라) 아무도 존재를 모르는 거금을 내가 아무도 모르게 발견했다. 이 돈을 내가 써도 되는가. 그것도 나 혼자. 세금(상속세)도 내지 않고, 동생에게도 주지 않고...

300만 달러를 손에 넣게 된 레이는 돈의 노예가 된다. 그 돈을 숨기고, 안전한가 매일 확인하고, 혹시라도 누구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고... 작가 존 그리샴은 중간중간 레이가 돈에 그다지 욕심이 없다는 식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레이의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돈의 안전과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본능적으로 레이를 지배한다. 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소유되고 만다.

레이는 돈의 출처를 파헤치고, 결말은 의외의 반전으로 마무리된다. 법적 보호와 서비스 제공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돈을 추구하는 변호사들의 행태, 돈에 대한 인간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점들을 제시하면서.

이 작품은 존 그리샴의 이전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전의 작품들은 법적인 사안을 법적으로 해결해가는 것을 위주로 했다면,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과 인간 대 인간의 갈등을 위주로 하고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법적인 테마-세금, 불법으로 조성된 자금 여부 등-가 깔려 있지만. 작가의 새로운 시도인가, 새로운 영역으로의 눈뜸인가. 개인적으론 모두 환영한다. 그의 작품 세계가 더욱 다양해 질 테니까.

존 그리샴은 수다스러운 달변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떻게 이렇게 오밀조밀한 문장을 써낼 수 있는지. 또한 나는 그가 수다스러운 여자들 틈에서 성장했을지 모른다고-맘대로- 추측하고 있다. 남자로서 요렇게조렇게 감칠맛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재능은 그가 성장 후 책을 읽거나 사색으로 얻을 수 없는 천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얘길 왜 하냐고? 이 책도 그러한 작가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기 때문이지.

이 책을 읽고 스스로 상상 속에 빠져 봤다. '311만 달러가 갑자기 생긴다면, 그걸로 뭘하지?' 우선 멋진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서재로 쓸 수 있는 큼지막한 방이 여럿 있는 집을 한 채 사고, 읽고 싶은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야지. 아마 트레일러를 붙인 15톤 트럭이 책을 배달하러 와야 할 거야... 그럼 집 옆에다는 서고 전용으로 쓸 건물을 하나 지어야 할 텐데... 한 5층으로 지으면 될까?... ㅎㅎㅎ

그럼 행복할까?

좀 오래된 일인데, 태국 방콕 시장을 지냈던 잠롱이라는 사람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가진 것이 많으니까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걱정도 많아졌다' 하는. 그래서 잠롱씨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고 시민들에게 봉사의 삶을 살기 위해 정치의 길로 나선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시민이나 정적들로부터의 테러를 걱정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츨퇴근하고, 수행원 없이 거리를 거닐 수 있는 시장이 된다. 잠롱씨는 잇단 사업의 성공으로 큰 부를 축적했던 때보다 검소한 생활을 하는 시장으로서의 생활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눈도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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