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장 - 개정판
존 그리샴 지음, 신현철 옮김 / 문학수첩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평생을 법조인으로서 완벽한 원칙주의로 일관했으며, 가족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직무와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던 애틀리 판사.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남자의 자녀들이 대부분 그렇듯 애틀리 판사의 아들인 레이도 아버지의 애정 결핍 속에서 자랐다. 그에게 아버지로부터 출두하라는 '소환장'이 도착한다. 임박한 아버지의 임종을 예상하며, 자신이 자란 옛집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생각하며 집에 도착한 레이의 앞에 뜻밖의 상황이 전개된다.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두었고, 서재에서 311만 달러가 넘는 거금-현찰로-을 발견한 것.

이 소설이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밤을 새워 읽게 만드는 것은 두 가지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돈에 욕심이 없었음은 물론 수입의 많은 부분을 '기부'해 왔던 애틀리 판사. 그런 그에게 이 거금의 현찰이 어떻게 들어왔는가 하는 점. 애틀리 판사의 원칙주의적인 법관활동과 사회사업 등은 모두 위선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는가. 둘째, (이 글을 읽는 사람 스스로도 자문해 보라) 아무도 존재를 모르는 거금을 내가 아무도 모르게 발견했다. 이 돈을 내가 써도 되는가. 그것도 나 혼자. 세금(상속세)도 내지 않고, 동생에게도 주지 않고...

300만 달러를 손에 넣게 된 레이는 돈의 노예가 된다. 그 돈을 숨기고, 안전한가 매일 확인하고, 혹시라도 누구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고... 작가 존 그리샴은 중간중간 레이가 돈에 그다지 욕심이 없다는 식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레이의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돈의 안전과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본능적으로 레이를 지배한다. 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소유되고 만다.

레이는 돈의 출처를 파헤치고, 결말은 의외의 반전으로 마무리된다. 법적 보호와 서비스 제공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돈을 추구하는 변호사들의 행태, 돈에 대한 인간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점들을 제시하면서.

이 작품은 존 그리샴의 이전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전의 작품들은 법적인 사안을 법적으로 해결해가는 것을 위주로 했다면,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과 인간 대 인간의 갈등을 위주로 하고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법적인 테마-세금, 불법으로 조성된 자금 여부 등-가 깔려 있지만. 작가의 새로운 시도인가, 새로운 영역으로의 눈뜸인가. 개인적으론 모두 환영한다. 그의 작품 세계가 더욱 다양해 질 테니까.

존 그리샴은 수다스러운 달변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떻게 이렇게 오밀조밀한 문장을 써낼 수 있는지. 또한 나는 그가 수다스러운 여자들 틈에서 성장했을지 모른다고-맘대로- 추측하고 있다. 남자로서 요렇게조렇게 감칠맛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재능은 그가 성장 후 책을 읽거나 사색으로 얻을 수 없는 천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얘길 왜 하냐고? 이 책도 그러한 작가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기 때문이지.

이 책을 읽고 스스로 상상 속에 빠져 봤다. '311만 달러가 갑자기 생긴다면, 그걸로 뭘하지?' 우선 멋진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서재로 쓸 수 있는 큼지막한 방이 여럿 있는 집을 한 채 사고, 읽고 싶은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야지. 아마 트레일러를 붙인 15톤 트럭이 책을 배달하러 와야 할 거야... 그럼 집 옆에다는 서고 전용으로 쓸 건물을 하나 지어야 할 텐데... 한 5층으로 지으면 될까?... ㅎㅎㅎ

그럼 행복할까?

좀 오래된 일인데, 태국 방콕 시장을 지냈던 잠롱이라는 사람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가진 것이 많으니까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걱정도 많아졌다' 하는. 그래서 잠롱씨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고 시민들에게 봉사의 삶을 살기 위해 정치의 길로 나선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시민이나 정적들로부터의 테러를 걱정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츨퇴근하고, 수행원 없이 거리를 거닐 수 있는 시장이 된다. 잠롱씨는 잇단 사업의 성공으로 큰 부를 축적했던 때보다 검소한 생활을 하는 시장으로서의 생활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눈도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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