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실 1
존 그리샴 지음 / 시공사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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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 매우 민감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사형제도와 인종주의를 교묘히 버무린 존 그리샴의 수작 중 하나이다. 난 개인적으로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서평을 봐주시길.

민주주의와 인권이 (그래도) 발달한 미국에선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기현상들이 있다. 죄수들을 수용하고 교화시키는 교도소제도에서도 그런 점을 엿볼 수 있는데, 감방에서 TV를 볼 수 있고, 신문 등 정기간행물을 받아볼 수 있으며, 행실이 착실한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외박도 가능하다(물론 주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리고 교도소 내에 도서관을 비롯해서 영화관, 체육시설, 오락실을 마려해놓은 곳도 있고 남녀 죄수가 정기적으로 만나 교제하고 섹스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미국에서 '호텔급' 교도소 운영 때문에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화제가 됐을 정도다.

소설 '가스실'도 논의의 소재는 다르지만 주제는 같은 것이다. 즉, '죄는 밉지만 죄수도 인간이다. 따라서 죄수도 인간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있는가' 하는 매우 첨예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제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소설을 진행시키기 위해서) 그리샴은 또 다른 민감한 문제를 터치한다. 인종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으로서 가스실에 초대될 것인가 아닌가로 독자들의 마음을 조이게 하는 샘 케이홀은 한때 그 유명한 KKK단으로 활동하면서 살인을 하는 데 관여한 것이다.

인종갈등과 사형제도의 찬반 문제는 소설의 두 축이다. KKK단의 무모하고 야만적인 편견과 폭력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백인(특히 남부)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자랑스런 긍지였지만 이미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악덕이 돼버렸다. 그러면 죄 지은 지가 오래되어 충분히 회개하였고 이미 늙어버려 사회에 나온다고 해도 다른 죄를 지을 힘도 없는 사람을 법이 그러하기 때문에, 제도가 있음으로 해서 구태여 죽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소설은 샘이 기어코는 가스실에 초대되어 주 정부가 선사한 가스를 들이키는 것으로 끝난다. KKK단은 과거처럼 왕성하게 '발작(인종우월주의를 나는 일종의 병으로 여긴다)'을 일으키는 경우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듯이, 사형제도가 좋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현재는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이 모순을 시정해나가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은 것이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그리샴의 의도일까?

존 그리샴의 작품은 단순히 오락을 위한 저작물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독자의 흥미를 단번에 사로잡을 만한 현란한 액션도 없고, 환성을 지르며 책을 붙잡고 있게 할 사건도 줄줄이 터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그의 뛰어난 글재간으로 풀어간다. 심각하고 딱딱할 지도 모르는 주제에 독자들을 불러들여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능력, 이것이 그의 매력이 아닐까.

샘 케이홀이 사형당하기 일주일 전에 의사의 검진을 받는다. 이것을 샘이 비아냥거리며 '내가 잘 죽을 수 있는지 검사하는 거지'하고 말한다. 사형제도를 비롯한 모순된 사회제도를 겨냥한 말이 아닐런지......

아, 나는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쪽이라고 했는데, 그 점은 이 책을 읽고 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선량한 사람들은 범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공의 이름으로 죄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 이것은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죄수들에게 요구하는 정당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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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사냥꾼 - 프로필링 기법을 이용한 행동분석의 차세대 수사기법
존 더글러스.마크 올셰이커 지음, 이종인 옮김 / 김영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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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인 '마음의 사냥꾼'은 왠지 낭만시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그러나 책 내용도 그럴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억측이다. 책 내용은 너무도 끔찍하여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심장이 약한 분, 유아, 임산부는 절대 읽지 말 것. ^^

주 저자인 존 더글러스는 프로필링기법이라는 새로운 수사기법을 창안해내고, '연쇄살인'이라는 범죄가 다른 범죄와는 다른 성격을 갖는 다는 것을 규정한 사람이다. 많은 사례를 분석한 자료를 축적함으로써 발생한 범죄의 유형을 규정하고 수사 범위, 수사 대상이 돼야 할 범인을 압축하여 범인을 검거한다는 프로필링기법은 합리적인 서구인들의 '경향'을 잘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은 너무 끔찍한 사건들에 대해서 쓰여져 있기 때문에 매우 혐오스럽다. 이 책을 쓴 사람까지 그렇게 생각될 정도이다. 대체 얼마만큼 끔찍하길래 그러냐고? 그 예를 조금만 든다면,

영화 '양들의 침묵'에도 인용됐던, 저자가 '실화'라고 강조하는 사건의 범인은 여자들을 납치하여 지하실에 가두어놓고 성폭행을 하는 것은 물론 갖은 가혹행위를 하며 희생자들이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즐겼다. 희생자들의 인육을 먹고, 피로 목욕을 했으며 가죽을 벗겨 코트를 만들어 입었다. 또 다른 연쇄살인범은 여자의 몸에 칼집을 낸 다음 그 곳으로 성행위를 했다. 어떤 연쇄살인범에 의해 살해된 시체가 발굴되었는데 한쪽 귀에서 다른 귀까지 기다란 송곳이 꿰어져 있었다......

'욱!' 예를 몇 개 들지 않았지만 벌써 욕지기를 느끼는 분들이 있으리라. 그러나 책 내용은 더 리얼하고 충격적이다 (물론 저자는 세세히 묘사하지 않고 독자에 대해 '배려'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책의 중반부 정도까지 읽다보면 이런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대체 저자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끔찍한 일을 평생동안 해왔으며, 태연자약하게 이런 것을 다시 생각하며 정리해서 글로 쓸 수 있을까?' 하는.

그러나 저자는 너무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도 수없이 많이 전직을 고민했으며 자신의 일 때문에 이혼까지 하는 아픔을 경험해야 했다 (끔찍한 사건을 수사하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더 비정상적이지 않을까?).

존 더글러스가 그 일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정년을 맞을 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소명의식 때문이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무고한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희생당하는 것을 '내가 막아야 한다'고 하는 사명감말이다. 참혹하게 희생당한 시신을 보고 희생자가 죽어갈 때의 고통이 느껴져서 눈물을 흘리는 존 더글라스, 그러나 그 눈물은 범인을 반드시 잡아서 이 미친 짓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분노로 변하는 것이다.

연쇄살인범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은 머리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십여 건이 넘는 범죄를 때와 장소, 대상, 당시의 상황 등을 한치의 오차없이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그들에게 한 가지 결여된 것이 있는데, 그런 것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태연히 말한다는 것이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이처럼 이 책은 끔찍한 범죄의 소개뿐만이 아니라 범인의 심리적인 면까지 소개하고 있다. '범죄학'에 관심이 있거나 인간의 심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일독을 할만하다. 그러나 단순히 '엽기적인 범죄'에 관심이 있어서 호기심이 끌린 것이라면 읽지 마시라. 절대로. 그건 좋지 않은 취미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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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학고재신서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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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20여 개의 서평이 이미 올라와 있는데, 대개가 우리 것에 대한 저자의 심미안을 평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에 덧붙여 나의 색다른 감상을 올리고 싶다.

우선 제목부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왠지 말줄임표 점을 몇 개 찍고 싶은 여운이 깃들어 있다. 멋지다! 건물의 기둥을 매끈한 원기둥으로 만들 경우 떨어져서 보면 중간이 홀쭉하게, 비정상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일부러 가운데 부분을 두툼하게 만드는 건축기법이 배흘림기법이란 것을 알고 있다. 저자는 이런 우리 조상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기둥에 몸을 기댄 채 말이다.

저자는 평생을 박물관에서 일하며 우리 것을 보존하고 평가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 얼마나 부러운 삶인가. 희대의 호색한이 미인들에 둘러싸여 인생을 보냈다 한들 이보다 부러울 것인가.

문화를 탐미한다는 것은 마르지 않는 샘이요,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새로운 맛이 나는 기쁨이다. 문화라는 것은 강렬한 햇빛처럼 눈에 확 튀어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아궁이에 지펴진 군불이 구들을 천천히 덮히는 것처럼 손으로 짚어보고 몸을 뉘어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은근하며 능동적 활동을 요구하는 한 차원 높은 정신적 멋이다.

저자는 많기도 많은, 우리 옛것의 거의 전부를 탐미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화려하기는 신라의 금관부터, 은근하고 세련되기는 조선시대의 백자를 포함해서, 우리 선조들이 환경에 얼마나 잘 순응하고 이용하고 살았는 지를 알 수 있는 소박한 온돌방문화까지 실로 생활 곳곳에 멋과 지혜가 깃들어 있지 않는 것이 없음을 말한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요즘처럼 기계로 똑같은 것을 수없이 찍어내듯 만들어내기 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아녀자들의 비녀 하나를 만들더라도 갖은 정성과 멋을 불어넣어 만들었던 것이다.

범인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겼던 저자가 부럽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지키는 일을 하며 지낼 수 있었던 저자의 삶이 부럽다. 얼마나 좋았을까.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과 장점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감탄하는 경박함과는 다른 차원의 말이다. 저자와의 탐미적 시선을 가질 때 나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까?

그의 시선을, 그의 삶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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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상의 그림자 사이언스 클래식 23
칼 세이건.앤 드루얀 지음, 김동광 외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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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의식할 줄 아는 유일한 인간이 이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계속하고 있는 질문,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러한 궁금증은 인간에게 종교를 가져왔고 자연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불러왔다.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 과학에 흥미를 가진 사람, 지적 읽을거리를 찾고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누군지 궁금한 철학도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칼 세이건은 아다시피 '코스모스'라는 책을 저술하여 우리에게 우주가 얼마나 신비로운 지 알려준 바 있는 너무도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의 조상 얘기를 통해서 우리가 누구인지 말하고 있다. 자신의 땀이 배인 연구 결과와 놀라운 상상력과 풍부하고 세련된 표현으로 우리를 지적 세계로 인도했던 사람, 그런데 그도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이 자리(여기가 어딘데? ^^)를 빌어 그가 우리 곁을 떠났음을 애도한다.

이 책은 지구의 탄생 시기부터 시작해서 생명이 생겨난 유래, 그리고 다른 생명체와는 별다른 인간이 어떻게 태어나게 됐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 내용이 실로 광범위하다 (책의 두터움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동물들의 생태학적 관점에서 이뤄진 많은 연구 사례를 통해 우리 인간의 특성을 설명한다. 이를 통해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별다르지만 역시 같은 조상에서 나온 단지 '좀 더 발달한' 하나의 생명체임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과학적 호기심을 해결해주는 효용뿐 아니라 지적 텍스트를 읽는 기쁨도 동시에 선사한다. 저자 자체가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훌륭한 정신활동의 결과를 담고 있는 예문들을 인용함으로써 많은 위인들을 이 책에 참여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과학을 다룬 교양서이지만 학교에서 교과서로 다루는 과학책처럼 딱딱하지 않다. 많은 과학적 사실을 담고 있지만 교과서처럼 단순 암기를 강요하는 듯한 요약식, 나열식이 아니다. 저자가 알리고 싶고, 독자가 알고 싶어 할 사항들에 대해서 대화식으로 독자의 이해를 촉구하며 친절히 설명한다 (이 점이 세이건의 뛰어난 점이 아닐까).

광대한 우주에서부터 생물의 분자단위까지 생각하고 연구했던 칼 세이건도 골수암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병'으로 죽었다. 그도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 죽는다는 것은 존재가 영원히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주의 일부가 되어 어디엔가는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명체가 나고 죽는다는 것은 단순한 물질의 형태가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세이건은 자신의 독자의 한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생명체의 시작과 끝이 궁금한 사람, 생명체의 연속성의 가운데 자신도 있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시라. 책을 덮은 후에는 자신을, 생명체를, 우주를 보는 눈이 사뭇 달라졌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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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그
스티브 앨튼 지음, 신현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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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자이언트한 것, 슈퍼맨틱한 것(표현이 적절한가? ^^)을 엄청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상어, 악어 같은 동물도 엄청 좋아한다. 귀여운 애완동물로서가 아니라 그 거대한 폭력적인 공포를 즐기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을 다룬 많은 책과 영화가 나오기만 하면 흥행에 성공하니 말이다.

소설 '메그'는 한술 더 뜨는 책이다. 이미지는 거대한 백상아리인데 이미 지구상에서 멸종한 10만 년 전의 동물이다. 독자의 상상을 뛰어넘는 신비함과 공포가 연상되지 않는가.

소설 '메그'는 플롯이 굉장히 연구되어 치밀하게 쓰여진, 영화 같은 소설이다. 현생 생태계를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멸종된 굉장한 괴물의 출현, 고고학자이자 심해잠수정 조정사인 주인공과 애인의 애증문제, 역시 여자를 둘러싼 삼각관계의 갈등 등 가벼운 흥미본위의 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요소를 다 갖춘 안성맞춤의 책이다.

한가지 흠이라면 메그의 처치 방법이다. 메그의 출현은 굉장했다. 책이 출판될 당시만해도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심해의 과학적 환경 소개와 함께 그야말로 상상을 뛰어넘는, 과학에 근거한, 실제 있을 법한 우연성 등등. 이런 이유 때문에 소설 중반부까지는 독자를 쏘옥 빨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후반부를 글로 읽기에는 어쩐지 맥이 빠진다. 영화 스크린으로 봤다면 모르지만 방법이 구태의연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수십 척의 배로 메그를 탐색하고, '노인과 바다'처럼 처절한 사투를 벌여 드디어 메그의 등에 작살을 꽂는다...... 이런 장면은 이미 익숙한 장면 아닌가. 영화 조스도 3탄까지 나왔었나?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흠을 잡으려는 것은 나의 못된 버릇이리라. 소설로서 관대히 보자. 으음, 괜찮은 책이다. 영화 조스가 나오지 않았다면 영화 찍자고 제작자, 감독들이 줄을 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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