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 - 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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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모 인터넷 서점사이트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본 영화 (그러고 보니 내게 참 많은 것을 해주는 서점사이트들이다).

1. 생각보단 꽤 괜찮다. 같이 간 선배언니 역시 가기 전엔 '돈 내고 다른 영화 보러가면 안될까?' 하더니 보고 나선 만족스러웠던 모양. 크리스마스 시즌에 딱 마음 가볍게 착한 영화가 보고 싶을 때 볼만한 영화. 특히 아이들 데리고 가기엔 최강. 물론 어른들 보기에 다소 심심한 감은 있지만서도.

2. 주인공 버디 역의 윌 패럴은 우리 나라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배우라서(미국에선 'Saturday Night Live'에 나오는 코미디언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얼굴이 화면에 뜨는 것만으로 관객들이 다 웃기 시작한다고..) 미국에서 같은 효과는 없다. 그냥 다들 뭐 저렇게 생긴 사람이 엘프를 하냐-_-;;; 좀 더 귀여운 배우가 나올 것이지, 라고 생각하는 듯. 뭐 눈가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남자가 5세 아동 레벨의 행동을 하는 언밸런스가 이 영화의 감상포인트라는 기사도 있더라만.

3. 여주인공(..이라기엔 뭣하지만 아뭏든 남자주인공의 애인이니)으로 나온 주이 디샤넬이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북구적인 완벽한 미모랄까. 그런 여자가 왜 저런 어리버리한 남자한테 코꿰는지가 좀 의문스럽긴 하지만;;;; 하긴 아버지의 아내로 나온 에밀리(메리 스틴버겐)도 그야말로 성격이 천사같아서 일만 아는 왕 무뚝뚝한 냉혈한으로 나오는 아버지랑 왜 사나, 싶기는 했다. 그러고보니 뭔가 문제많은 남자들과 지나치게 괜찮은 여자들이 나오는 영화인지도.

4. 버디는 고아원에서 선물 주러 온 산타 할아버지가 차려놓은 과자를 먹는 동안 그 선물자루로 기어들어가버리는 바람에 북극으로 딸려와서 아기없는 노총각 엘프에게 입양되어서 크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당연히 자라면서 엘프의 몇 배는 되는 몸집 때문에 눈에 띈다. 근데 상식적으로 그 마을에 같은 사이즈인 인간(혹은 엘프)가 버디랑 산타 할아버지밖에 없다면, 나같으면 자신의 출생을 의심할 때 일단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아빠가 아닐까를 의심할 거 같은데^^;;;. 하긴 버디는 워낙 아무 생각이 없긴 했지만.

5. 이 영화가 '매트릭스 3'과 같이 개봉해서 거의 밀리지 않고 03년 세계 흥행순위 7위였단다. 굉장히 미국적인 단순함 덕에 오히려 흥행한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간만에 '착한'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20분은 그야말로 '아이처럼 몰입하면서' 봤는데, 울려퍼지는 캐롤이 그야말로 감동적이었다고나 할까..(음, 이 부분은 너무 알고 가면 감동이 떨어지므로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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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일기 - Bridget Jones'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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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사무실 송년회 겸 비슷한 또래의 여자 셋이 가서 본 영화. 나쁘지 않았다. 보는 동안 내내 키득대며 웃었다.

1. 브리짓의 사고뭉치 행각에는 도무지 동조할 수 없지만, 그 심정은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이건 말도 안돼!!(누구 말마따나 그래서 Edge of Reason?) 도대체 저렇게 완벽한 남자가 왜 날 좋아하냐구~"에서 그 모든 트러블이 시작되는 건데, 과연 마크 다시가 쫌 심하게 완벽하긴 하더라.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근데 정말 저 남자는 쟤를 왜 좋아하는건데? 라는 생각이 들긴 든다-_-;;;. 굳이 답을 찾아보자면 이제까지 그 남자가 꽤나 심심한 인생을 살아왔나보다, 라는 거지 뭐. 브리짓이 옆에 있으면 적어도 사는 동안 심심할 일은 없어 보이니.

2.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가서 그런지, 브리짓의 주책 행각이 영화보면서 괴로울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뭐 실제로 저런 타입이 옆에 있으면 무지하게 피곤할 거라는 건 분명하지만. 거기다 스토리가 작은 에피소드 위주로 빨리빨리 진행되는지라 브리짓이 뭔가 저질러도 오래 화낼만한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전반적으로 아주 2편다웠다고나 할까. 아..제일 반전이었던 건 그 레베카 관련 에피소드였는데, 복선이 쫌 약하긴 하다.

3. 근데 태국 감옥씬은..우리 나라가 저런 식으로 나왔으면 난 분명히 화냈을거다. 저 영화, 태국에선 개봉 안했나? 아님 정말 태국 감옥은 저런 거라서 태국 사람들은 화 안내는 건가?-_-;;(당장 나도 이렇게 생각하니 우리 나라가 저렇게 나왔으면 분개했을거라는 거다). 작년의 러브 액추얼리도 그렇고, 요새 흥행작들, 뜯어보면 은근히 "politically incorrect"한 구석이 많다.

4. 휴 그랜트에 대해서 1편에선 꽤 분개했던 거 같은데, 2편을 보니 아니 뭐 악역이라기엔 좀 약하잖아, 남자들 다 저렇지 뭐-_-;;란 생각이 들어버리는 걸 보니, 그 사이 남자에 대한 내 기대치가 많이 떨어진 건지도...상대적으로 마크 다시는 정말로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아님 휴 그랜트란 배우 자체가 과하게 매력적이라 덜 밉살스러웠는지도...(라고 하면 그새 더더욱 인물 밝힘증이 되어버린 건가-_-;;).

5. 르네 젤위거를 좋아하진 않지만, 저 고무줄 체중은 정말이지 경탄스럽다고 밖엔...1편보다 훨씬 더 쪄 보인다. 1편에선 그래도 오동통 수준이었는데 2편에선 정말;;;;;. 영화를 위해 여배우가 저렇게 망가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텐데, 설경구 아저씨도 아니고;;;.

6. 근데 보다가 엄하게 분개한 건 영국이 저렇게 흡연국가인가 하는 것.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어디서고 담배 피워대는 거 보고 기함했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요새 많이 금연구역화 된 건지는 모르지만, 며칠 있다 영국 갈 사람으로서 좀 걱정스럽다는-_-;;;(결론 참 무지하게 삼천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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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티 페어 - Vanity F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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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친구 만나서 영화 한 편 볼 시간이 날 거 같길래, 이거저거 영화를 찾아보니 예상외로 별 게 없더군요. 그나마 이 영화가 제일 끌렸는데, 약속장소는 강남역인데 영화는 삼성동이랑 종로 쪽 극장에만 걸려서 그까지 가긴 좀 그러네, 하고 신사동 쪽으로 걸어가다가 시네마오즈에 걸렸길래 들어가서 봤습니다. 친구가 영화평이 별로 안좋다고 보기 망설였는데, 보고 나서는 둘 다 대단히 만족.

1. 글쎄..이 영화가 과연 '팜므 파탈 무비'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좀 의심스러워요. 리즈 위더스푼이 맡은 '레베카 샤프'역은 악녀라고 하기엔 좀 뭣하거든요. 그저 별로 좋지 못한 자기 상황에서 최고의 패를 쥐고 싶었던 똑똑하고 야무진 여자, 그리고 당시 여자들의 미덕이라면 미덕이었던 연약함이나 내숭이 전혀 없었던 여자,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처음엔 뭔가를 많이 숨긴 악녀같더니 뒤로 가면 갈수록 그냥 보이는 게 전부더군요-_-. 악녀치곤 지나치게 술수가 모자라고,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입니다. 제 취향은 똑똑한 여자인지라, 저는 '베키' 샤프가 꽤 맘에 들었습니다. 적어도 영화보는 동안 어이구, 속터져. 소리는 안 나오더라구요.

그러니 이 영화는 누가 같이 나오건 확실히 리즈 위더스푼의 영화가 맞아요. 다른 등장인물들은 그녀에 비하면 상당히 흐릿하죠. 리즈, 처음 클로즈업 될 땐 아..역시 얘는 시대물엔 안 맞아, 싶더니 딱 10분만 더 보고 나니 배역이랑 융화되면서 이뻐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좋은 배우라고 느꼈습니다(그런데 리즈의 스펠링이 Liz가 아니라 Reese더군요).

2. 사실 예쁘긴 친구 아멜리아 역을 맡은 로몰라 가레이 쪽이 더 이뻤어요. 아주 영국적이기도 하지만 티티안의 초상화에 나올 법한 얼굴이라 어딘가 이태리적이기도 하고..늘씬하게 큰 키와 몸매까지, 아주 매력적이더라구요. 물론 이런 외모에 비해 극중 성격은 사람 속 터지게 하는 전형적인 빅토리아시대 처녀라 불쌍해하되 좋아해주긴 힘들었지만-_-;;.

제임스 퓨어포이가 맡은 로든 대위 역은 극 전개상의 비중으로 볼 때 좀 더 부각되어도 좋을 역인데 뭔가 철저한 조연으로만 남은 듯..이쪽도 뭔가 나쁜 놈, 으로 보였다가 알고보니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점에선 베키 샤프와 부창부수인지도 모르겠네요(역시 닮은 사람끼리 만나는 건가..). 아뭏든 참전하면서 이것도 저것도 다 당신 팔아서 써, 할때는 친구랑 둘 다 감동했다는..베키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남편을 사랑했다는 건 진실이었다고 봐요. 조금만 운이 좋았으면 좀 더 행복한 부부였을텐데 말이죠.

3.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가 맡은 조지 오스본이야말로 일찍 죽어서 그렇지, 정말 진정한 악역이었을지도-_-;;;. 철딱서니라곤 하나 없고, 이래저래 다른 사람들 인생에 도움준 거 하나 없고 폐만 끼치고 가버린 캐릭터. 미모라도 있었길래 망정이지...그런데 나중에 극중 아들을 보니 슬프게도 미모와 싸가지가 같이 유전되더라는-_-;;;.

'배니티 페어'의 우리나라 메인 포스터는 에러예요. 베키 샤프와 조지 오스본 사이엔 정말 별 거 없는데 왜 저런 포스터가 나왔는지, 배우의 유명세에 기대보려는 거겠지만요.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는 이름도 익숙하고, 나중에 찾아보니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벌써 봤던 배우였는데 처음 보는 거라 착각하면서 봤습니다. 미모는 미모더군요. 왜 '벨벳 골드마인'에 캐스팅되었는지 백번 이해.

4. 스토리에 주목한다면 이 영화는 진심과 엇갈림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지만 진심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사람이 진실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그래도 이 영화의 어설프다면 어설픈 해피엔딩이 마음에 들었던 건 내가 베키 샤프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겠죠. 언제 어디서나 허리를 세우고 머리를 꼿꼿이 쳐들 수 있는 여자는 보기 드무니까요. 자기 손 안의 패가 보잘것 없을 때 조차도 말이죠.

5. 하지만 내러티브만 따서 보면, 이 영화가 혹평을 받는 것도 다소는 이해가 갑니다. 영화 만드는 도중에 제작비도 떨어지고 시간도 모자라서 부랴부랴 마무리한 거라고 해도 할 말이 없긴 해요..(원작이 새삼 궁금해지는군요).

이 영화의 장점은 내러티브보단 영상이고, 그 영상을 만들어내는 의상과 배경입니다. 여행 다녀온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19세기 런던의 풍경은 더 실감나고, 의상에 대해서는 감탄할 수 밖에 없군요. 저야 워낙 취향이 취향인지라, 141분이라는 시간과 영화비가 전혀 아깝지 않더군요. 내러티브가 확 튀는 것도 마지막에 가서고 그 전까진 아주 흥미진진했는데..뭐 아쉬운 점은 있다 해도 제 취향으론 별 다섯개 만점에 세개 반 정도는 기꺼이 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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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 - Mala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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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문없이 조용히 찍은 영화지만 평이 워낙 좋아서 보러 갔었는데, 기대하고 가서 기대 이상을 얻어오기도 오랫만이다. 두말 할 필요 없는 올해, 아니 요 즈음 본 영화 중에서 최고의 영화. 어지간해선 잘 안우는 내가 영화 마지막엔 숨이 막힐 정도로 많이 울었다.

2. 한국영화건 외국영화건 요즘 영화에 제일 아쉬운 건 내러티브였다. 어딘가 어색하고 도무지 주인공들에게 완벽한 감정이입이 안되는 스토리 라인의 영화들이 판을 치던 가운데, 이 영화는 어찌 보면 작고도 사소한 이야기를 거의 완벽한 내러티브로 구성해냈다. 물론 구태의연한 부분도 있고 뻔한 복선도 있지만, 그 모두가 서로 깔끔하게 연결지어지는 솜씨는 일류다. 직접 쓴 각본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어낸, 장편영화로는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는 정윤철 감독에게 찬사를 보낼 수 밖에.

3. '자폐증'은 병이 아니라 장애라고 했던가. 1000명에 한명 꼴이라 지금 우리나라엔 4만명의 자폐아가 있다고 한다. 하긴 지난번 살던 아파트에도 윗층 어느 집엔가 자폐아가 살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쳤는데, 그 엄마는 아이를 항상 정상적인 아이들보다 더 깔끔하고 단정하게 입혀서 학교에 데려가곤 했다. 자주 만나는지라 인사를 건네면 아들에게도 항상 '인사해야지'하고 시켰는데, 그애는 기분이 좋을 때면 인사하는 시늉을 내고 컨디션이 별로인 날은 공격적으로 삐죽대거나 엄마 뒤로 숨어버렸다. 얼굴이 참 많이 닮은 모자간이었는데, 아들의 장애에 대해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평온하고 맑은 얼굴로 사람들과 소통하던 그 엄마는 참 인상적이었다. 웃으면서 '인사해야지, 아는 사람이잖아' 하고 아들에게 말하는 그 엄마의 얼굴을 보면 나 역시 그 아이에 대해 놀라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말을 건넬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 그 엄마가 걸어왔던 길은 얼마나 험하고 멀었을까. 영화에서의 김미숙이 말했듯(역시 자폐아가 등장하는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에서 김희애도 같은 말을 한다), '저 아이가 나보다 하루만 먼저 죽기를' 소원해야 하는 자폐아 엄마들의 마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한다 말하기도 미안하다. 자폐아에 대한 모든 짐을 엄마에게만 지우는 우리 사회의 제도도, 현실도 미안하다.

4. 그렇지만 영화 속의 초원(조승우)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물론 영화가 좋은 쪽을 많이 보여주었다는 것은 알지만, 초원이만큼 사랑스럽고, 애처롭고, 짠한 캐릭터를 나는 보지 못했다. 다리를 쓰지 못하는 것처럼,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자폐증은 감정적인 장애인데, '소통'을 기본으로 하는 이 사회에서 '소통'이 힘든 그 아이들이 살아가는 것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망막에 어스름히 비치는 빛처럼, 초원의 '소통'은 감동적이다. 코치에게 내민 물 한병,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초원이 심장이 콩닥콩닥 뛰어요'라는 말 한 마디, 내일 할 일에 '말아톤'이라 적어놓은 그림 일기...나름대로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이 모든 방식을 보면서 관객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울어라'라고 강박하는 최루성 영화가 아님에도, 이 영화가 무엇보다 많은 눈물을 자아내는 까닭이다. 거기다 마라톤 대회 중간에 초원이가 초코파이를 받아가는 장면처럼, 엉엉 울다가도 피식 미소짓게 하는 장면까지 끼어 있음에야.

5. 초원과 엄마의 관계가 영화의 눈물을 자아낸다면 코치(이기영)의 등장 덕에 영화는 무거움을 떨쳐내고 유머를 더한다. 이 영화에서의 이기영이 황선홍과 너무 닮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듣고 가긴 했지만, 원래 닮은 외모에다 노상 트레이닝 웨어만 입고 나오는 복장까지 비슷하니 정말 어찌나 황새를 연상시키는지. 거기다 성격까지 너무나 황새스럽다(그 배째라 모드란...거기다 자두와 짜장면 장면에선 거의 기절했다). 인간적인 약점을 마구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또 너무나 인간적이라 도무지 미워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는 내 머릿 속의 황새를 닮았다. 황새의 팬인 입장에서,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재미있기도 했었고.

6. 영화 마지막에서 초원이는 춘천 마라톤의 코스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뛰어간다. 엄마의 손을 놓고, 마트를, 지하철역을, 아프리카의 초원을 뛰어 건넌다. 손을 놓는 것이 아쉬웠던 건 초원이보다 엄마였지만, 장애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엄마의 손을 놓고 혼자 자신의 세계를 건널 수 있는 힘을 이미 가지고 있다. 뛰어가는 초원이의 뒷모습을 보면 인간이란 참으로 불완전해서 슬픈 존재지만, 그 슬픔으로 인해 아름다운 존재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말아톤', 모두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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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 Pride & Prejud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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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4. 07. 스타식스 정동

* 그닥 호평이 아니라서 별 기대없이 봤는데, 예상외로 아주 재미있었다. 엄청나게 영국적이었고 그래서 유쾌했다.

* 키이라 나이틀리는 어딘가 균형잡히지 않은 얼굴인데, 그래서 더 매력적. 표정이나 장면에 따라 예뻤다 덜 예뻤다 하는데,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몸 전체에서 풍기는 생명력과 활기가 화면을 압도해버린다.  

* 정말 고전적인 로맨스. 그런데도 설득력이 있다는게 놀라운데, 뭐 베넷 부인의 태도는 좀 과장되었을 뿐, 요새도 나이찬 딸 둔 엄마 대부분 저렇긴 하다;; 근데 역시 결혼 아니면 대안이 아무것도 없었던 저 시절은 한결 더 끔찍하긴 하네. 근데 누구말마따나 다아시한테 성이 없었으면, 연수 만 파운드가 아니었으면 저 로맨스가 성립이 안된다는 걸 생각하면, 순수한 로맨스-_-가 맞나 싶기도 하고. 

* 엄마 쪽과 그 동생들은 좀 한숨나오는 존재들이긴 한데, 아버지 쪽을 보면 어찌 보면 멋지지만 어찌 보면 역시 무책임하다. 엄마가 저렇게 되어버린 걸 이해할 것도 같아;;; 

* 근데 다아시의 처음 고백은 정말 생뚱맞았다;; 그 전까지 도무지 뭐가 없잖아...도대체 엘리자베스가 왜 좋았던 거지? '나한테 대드는 여자 니가 처음이야'하는 순정만화 구도도 아니고-_-;;; 

* 배경이나 의상은 다소 초라하다 싶을 정도인데, 그게 더 고증에 맞을 것 같긴 하다. 난 BBC판을 제대로 본 건 아닌데, 그거 본 사람들은 좀 쇼크였던 것 같지만..^^ 

* 결국 이런 영화는, 아무리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취향이라는 거다. 예전엔 스토리가 취향이었다면 요새는 배경과 화면 때문에 더 취향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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