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티 페어 - Vanity Fai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0. 친구 만나서 영화 한 편 볼 시간이 날 거 같길래, 이거저거 영화를 찾아보니 예상외로 별 게 없더군요. 그나마 이 영화가 제일 끌렸는데, 약속장소는 강남역인데 영화는 삼성동이랑 종로 쪽 극장에만 걸려서 그까지 가긴 좀 그러네, 하고 신사동 쪽으로 걸어가다가 시네마오즈에 걸렸길래 들어가서 봤습니다. 친구가 영화평이 별로 안좋다고 보기 망설였는데, 보고 나서는 둘 다 대단히 만족.

1. 글쎄..이 영화가 과연 '팜므 파탈 무비'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좀 의심스러워요. 리즈 위더스푼이 맡은 '레베카 샤프'역은 악녀라고 하기엔 좀 뭣하거든요. 그저 별로 좋지 못한 자기 상황에서 최고의 패를 쥐고 싶었던 똑똑하고 야무진 여자, 그리고 당시 여자들의 미덕이라면 미덕이었던 연약함이나 내숭이 전혀 없었던 여자,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처음엔 뭔가를 많이 숨긴 악녀같더니 뒤로 가면 갈수록 그냥 보이는 게 전부더군요-_-. 악녀치곤 지나치게 술수가 모자라고,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입니다. 제 취향은 똑똑한 여자인지라, 저는 '베키' 샤프가 꽤 맘에 들었습니다. 적어도 영화보는 동안 어이구, 속터져. 소리는 안 나오더라구요.

그러니 이 영화는 누가 같이 나오건 확실히 리즈 위더스푼의 영화가 맞아요. 다른 등장인물들은 그녀에 비하면 상당히 흐릿하죠. 리즈, 처음 클로즈업 될 땐 아..역시 얘는 시대물엔 안 맞아, 싶더니 딱 10분만 더 보고 나니 배역이랑 융화되면서 이뻐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좋은 배우라고 느꼈습니다(그런데 리즈의 스펠링이 Liz가 아니라 Reese더군요).

2. 사실 예쁘긴 친구 아멜리아 역을 맡은 로몰라 가레이 쪽이 더 이뻤어요. 아주 영국적이기도 하지만 티티안의 초상화에 나올 법한 얼굴이라 어딘가 이태리적이기도 하고..늘씬하게 큰 키와 몸매까지, 아주 매력적이더라구요. 물론 이런 외모에 비해 극중 성격은 사람 속 터지게 하는 전형적인 빅토리아시대 처녀라 불쌍해하되 좋아해주긴 힘들었지만-_-;;.

제임스 퓨어포이가 맡은 로든 대위 역은 극 전개상의 비중으로 볼 때 좀 더 부각되어도 좋을 역인데 뭔가 철저한 조연으로만 남은 듯..이쪽도 뭔가 나쁜 놈, 으로 보였다가 알고보니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점에선 베키 샤프와 부창부수인지도 모르겠네요(역시 닮은 사람끼리 만나는 건가..). 아뭏든 참전하면서 이것도 저것도 다 당신 팔아서 써, 할때는 친구랑 둘 다 감동했다는..베키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남편을 사랑했다는 건 진실이었다고 봐요. 조금만 운이 좋았으면 좀 더 행복한 부부였을텐데 말이죠.

3.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가 맡은 조지 오스본이야말로 일찍 죽어서 그렇지, 정말 진정한 악역이었을지도-_-;;;. 철딱서니라곤 하나 없고, 이래저래 다른 사람들 인생에 도움준 거 하나 없고 폐만 끼치고 가버린 캐릭터. 미모라도 있었길래 망정이지...그런데 나중에 극중 아들을 보니 슬프게도 미모와 싸가지가 같이 유전되더라는-_-;;;.

'배니티 페어'의 우리나라 메인 포스터는 에러예요. 베키 샤프와 조지 오스본 사이엔 정말 별 거 없는데 왜 저런 포스터가 나왔는지, 배우의 유명세에 기대보려는 거겠지만요.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는 이름도 익숙하고, 나중에 찾아보니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벌써 봤던 배우였는데 처음 보는 거라 착각하면서 봤습니다. 미모는 미모더군요. 왜 '벨벳 골드마인'에 캐스팅되었는지 백번 이해.

4. 스토리에 주목한다면 이 영화는 진심과 엇갈림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지만 진심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사람이 진실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그래도 이 영화의 어설프다면 어설픈 해피엔딩이 마음에 들었던 건 내가 베키 샤프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겠죠. 언제 어디서나 허리를 세우고 머리를 꼿꼿이 쳐들 수 있는 여자는 보기 드무니까요. 자기 손 안의 패가 보잘것 없을 때 조차도 말이죠.

5. 하지만 내러티브만 따서 보면, 이 영화가 혹평을 받는 것도 다소는 이해가 갑니다. 영화 만드는 도중에 제작비도 떨어지고 시간도 모자라서 부랴부랴 마무리한 거라고 해도 할 말이 없긴 해요..(원작이 새삼 궁금해지는군요).

이 영화의 장점은 내러티브보단 영상이고, 그 영상을 만들어내는 의상과 배경입니다. 여행 다녀온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19세기 런던의 풍경은 더 실감나고, 의상에 대해서는 감탄할 수 밖에 없군요. 저야 워낙 취향이 취향인지라, 141분이라는 시간과 영화비가 전혀 아깝지 않더군요. 내러티브가 확 튀는 것도 마지막에 가서고 그 전까진 아주 흥미진진했는데..뭐 아쉬운 점은 있다 해도 제 취향으론 별 다섯개 만점에 세개 반 정도는 기꺼이 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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