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사는 즐거움
어니 젤린스키 지음, 문신원 옮김 / 물푸레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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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에휴, 뭘 다 아는 얘기를 이렇게 구구절절히 해주냐'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나는 확실히 대한민국 성인 치고는 드물게 '느리게' 살고 있는 사람이 맞나보다. 이 책에 나온 교훈들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아주 바쁜 직업을 가지고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일 것 같은데, 아마도 그 사람들은 이 책을 읽을 시간도 없는데다 읽는다 해도 실천할 만할 상황도 아닐 것 같긴 하지만.

그닥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자주 나오던 '인생, 이렇게 살아라' 류의 총집합이라고나 할까. 좀 더 느긋해지고, 좀 더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제대로 구별해서 소비를 하고, 돈보다는 시간의 소중함을 자각하고...이런 내용인데, 미국에서도 실천하기 어려우니 이런 책까지 나오는 거겠지만 슬프게도 대한민국에서는 더 실천하기 어려울 듯 하다. 이미 '느리게 살자'고 생각하고 있는 나도 이 책에서 하라는 대로 다 하다가는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생길 정도니까.

제일 마음에 들었던 귀절은, 60세 이상의 노인들이 해주는 다음과 같은 조언에 귀를 기울이라..는 부분이다.

* 책임질 준비가 되기 전에는 결혼을 하지 말아라
* 인생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까지 시간을 충분히 가져라
* 더 많은 모험을 해라
* 마음을 가볍게 가져라! 삶을 너무 진지하게 살지 말아라
* 인내심을 더 많이 가져라
* 지금 이 순간을 더 충실히 살아라

거의 나 자신의 인생모토라서, 아,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니구나, 하고 순간 안심하긴 했는데, 다음 순간 드는 의문, 정말 미국 노인분들은 저런 충고를 해주는 걸까? 우리 나라 60세 이상의 노인들은(당장 우리 부모님부터) 대부분 저런 태도와는 아주 거리가 머시던데.

책 자체는 꽤 산뜻하게 나왔지만, 기묘하게 군데군데 번역이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유감. 특히 233페이지의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새로운 여가 활동을 추구할 시간이 없다고 확신함으로써 당신의 마음이 당신을 속이게 하지 말라. 당신이 매일 7시간씩을 자고 있다고 가정할 때, 당신은 깨어있는 동안 1020초를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당신은 그 1020초동안 보다 느긋하게 지내기 위해 30초나 60초, 또는 심지어 90초 정도도 찾아낼 수 있다'라는 귀절에서, 원문을 보지 않아도 '초'는 '분'의 명백한 오역이다. 17시간 * 60분 = 1020분인데다,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서 겨우 30초, 60초, 90초를 내다니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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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귀한 선물 - 행복쌓기 4단계
제임스 헤리엇 / 일월서각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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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제임스 헤리엇의 글을 처음 접하고 좋아하게 된 후, 학교 도서관에서 이 시리즈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당장 구입해서 취향이 비슷한 몇몇 친구들과 참 아끼면서 읽던 책인데, 최근 웅진에서 김석희씨의 번역으로 다시 나오면서 꽤나 알려진 책이 된 모양이다.

이 '행복쌓기' 시리즈의 1,2권(사랑은 기적의 묘약, 우리 결혼합시다)은 헤리엇 시리즈의 1편이라 할 수 있는 'All Creatures Great and Small', 3,4권(그때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음을, 무엇보다 귀한 선물)은 그 다음 책인 'All Things Bright and Beautiful'의 번역본이다. 수의사 자격증을 막 딴 풋내기 헤리엇이 요크셔의 시골 대로우비에서 개업하고 있는 수의사 지그프리드 파논의 병원에 취직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그가 요크셔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지에서 거칠지만 마음 따뜻한 농부들이 키우는 동물들을 돌보면서 겪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역 농부의 딸인 아름다운 헬렌과 사랑에 빠지고 마침내 그녀와 결혼해서 안정된 가정 생활 속에서 지역 수의사로 뿌리를 내리던 차에 2차대전으로 인해 군대의 징집 영장을 받아드는 부분이 4권의 끝부분. 그 다음 권이라 할 수 있는 헤리엇이 군대로 징집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All things wise and wonderful'이 김석희씨의 번역으로 웅진에서 나온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그 다음에 나온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는 이 시리즈에서 3,4권으로 번역된 바 있는 'All Things Bright and Beautiful'을 재번역한 것이다.

번역가로서의 김석희씨의 명성이야 이미 확인된 바 있지만, 무엇이건 처음 접한 것이 익숙해지기 마련이라 나는 이 행복쌓기 시리즈의 번역자인 전덕애씨의 번역 쪽이 더 마음에 든다. 대화체가 더 섬세하고, 사투리 표현도 더 실감나고, 헤리엇 특유의 유머도 이쪽이 더 제맛이 난달까. 옮긴이의 말에서 밝혔듯 전덕애씨 자신이 이 시리즈의 열렬한 애독자인 덕이겠지만 역자 자신이 굉장히 재미있어하며 번역한 느낌이 전해져서 읽으면서 더 즐거웠다.

'아름다운 이야기'쪽은 이미 가지고 있는 이 시리즈의 후편이라 기꺼이 샀지만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처럼 이미 썩 괜찮게 번역된 부분이 굳이 재번역되어서(뭔가 굉장히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새 책으로 나오는 것은 좀 유감스럽다. 알려지지 않았던 이 시리즈가 웅진 쪽의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알려진 것은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 나와도 적극적으로 광고나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묻혀버리는 현실이 좀 안타깝기도 했다. 나로서는 솔직히 일월서각의 이 시리즈가 그대로 재판이 나와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했는데...판권이나 기타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겠지만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아쉽지 않은가.

헤리엇의 광팬임을 자처하면서도 최근 새로 나온 '수의사 헤리엇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개 이야기' 등등을 구입하지 못하는 것도 이 시리즈를 다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는 내용의 상당부분이 겹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4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The lord god made them all'이나 빨리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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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노 2010-08-10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동감하네여.... 예전에 출간되었던 책이 번역이 참 맛깔났던 기억이 새록.... 근데 대체 마지막 권은 왜 번역이 안되는건지....
 
러시아, 상상할 수 없었던 아름다움과 예술의 나라 - 타산지석 5 타산지석 5
이길주·한종만·한남수 지음 / 리수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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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나는 이런 류의 책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기행문도 좋지만 현지에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좀 더 호감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같은 경우는 동경하면서도 한번도 가보지 못했고, 서유럽에 비해서는 내가 러시아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적다는 자각도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여러모로 반가웠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여러 모로 화가 났다. 기대를 가지고 집어들었던 책 치고는 너무 실망스러운 구석이 많았고, 그것이 내 개인의 취향 문제라기보다는 책의 완성도에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고 이 책을 통해서 러시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이 책의 장점이 그 단점들을 상쇄하지는 못했다.

첫째, 이건 유일하게 개인 취향 탓으로 돌릴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서문을 읽으면서부터 껄끄러웠던 부분은 한국인들의 러시아 인식이 아직도 공산주의 소련에 대한 것과 비슷하다고 저자들이 착각하고 있었던 점이다. '우리는 러시아인들이 노동하는 기계이며...엄격한 사회 규율 속에 억압되어 살았던 사람이며..서로 감시와 고발을 하는 냉정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라는 것이 서문의 주된 내용인데, 소련이 해체된 지도 이미 10년이 훨씬 넘은 이 시점에 과연 이런 고정관념이 아직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적어도 나 자신은 러시아에 대해서 저런 식의 고정관념은 가지고 있지 않다.

둘째, 오타라는 것이 잡아도 잡아도 나오는 거라는 건 나도 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이제까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오타가 제일 많다. 그것도 워드작업을 하면서 실수로 나온 오타가 아니라 쓴 사람의 국어 맞춤법 실력을 의심스럽게 하는 오타다. 몇 가지만 지적하자면 42페이지, '어의'가 아니라 '어이'가 없는 게 맞다(인터넷에서 볼 때마다 치를 떠는 이 오류를 인쇄된 책에서까지 보게 되다니!). 109페이지,'후한'이 아니라 '후환'이 두려운 것이며(이런 식의 맞춤법으로 책을 내면 정말 후환이 두렵다), 192페이지, '구릎'을 꿇은게 아니라 '무릎'을 꿇는거다(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오타가 나는지 이해가 안간다). 237페이지, '괴씸'한 게 아니라 '괘씸'한거다(이게 그대로 나온 건 정말이지 괘씸하다). 크게 눈에 띄는 것만도 이 정도다. 소위 박사며 교수인 이 책 필진들의 국어맞춤법 실력도 개탄스럽지만, 도무지 원고를 받은 출판사에서는 교정을 보긴 본건지가 의심스럽다. 이 책은 표지도 잘 나왔고 지질도 좋으며 들어간 사진의 질이나 편집도 만족스럽다. 그러나 그러면 뭐하는가. 가장 기초적인 교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판에.

셋째, 교정만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프게도 내용에도 오류가 있다. 러시아 초기 역사에 대한 서술에서(184페이지) 저자들은 '기독교'와 '카톨릭'을 각각 다른 종교인양 이야기하면서 블라디미르 대공이 '카톨릭'을 거부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기독교'와 '카톨릭'이 그런 식으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카톨릭이 기독교의 여러 갈래 중 하나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얘기 아닌가. 그리고 블라디미르 대공이 당시 러시아의 국교로 받아들인 것은 기독교의 또다른 갈래인 '그리스 정교'였고 이처럼 동방정교를 받아들인 것이 러시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얘기다.

넷째, 공동으로 책을 쓰려면 서로 충분한 합의가 필요하고 책의 체제 역시 정리가 되어야 한다. 세 사람의 저자 중 누가 어느 부분을 집필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책 중간에 '나'라는 일인칭 표현이 자주 등장하면 독자로서는 어리둥절해진다. 그리고 3장 '러시아로의 초대' 부분의 일부 내용은 명백하게 2장의 내용과 중복되는데, 서로 다른 저자가 썼다는 건 알겠지만 더 조율되어야만 했다.

리수의 이 타산지석 시리즈를 호감을 가지고 지켜봤기에 더 유감스럽다. 여러 모로 개선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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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10 - 언제까지나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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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Anne 시리즈에 중독되어 소녀시절을 보냈던 나로서는, 동서문화사의 이번 완역 판본이 고맙기도 하고 조금 섭섭하기도 하다. 새로 예쁜 옷을 갈아입고 나와주어서 많은 사람이 읽어주는 거야 당연히 고마운 일이지만, '최초 완역본'이라고 선전문구에 척하니 박혀 나오는 건 껄끄럽다. 내가 기억하는 Anne 시리즈의 완역본은 역시 동서문화사에서 하얀 하드커버로 나왔던 '박순녀'씨 번역의 12권 시리즈이고, 익숙한 게 좋아보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새로 나온 김유경씨의 번역보다는 확실히 그쪽이 더 '몽고메리의 스타일'을 잘 살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데 왜 새로 번역하는 수고를 했는지(미묘하게 몇 부분이 달라졌을 분 전체적인 번역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각 책의 한국어 소제목은 왜 이전 시리즈의 것들을 그대로 갖다 붙였는지...이번 앤 시리즈는 내게는 여러 모로 미스터리다.

이번 시리즈에서 아마도 유일하게 이전의 12권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바로 마지막 10권 후반부의 '앤의 크리스마스' 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는 14편의 단편이다. 제목 그대로(그러나 앤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잉글사이드라는 집이 단편 중 하나에 등장하는데, 거기 사는 가족들마저 앤의 가족은 아니라서 조금 당황스럽긴 하다)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짧은 단편들을 모아놓았다. 어렵고 힘든 크리스마스를 맞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뜻밖의 선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데, 조금은 싱겁고 단순하기도 하지만 아기자기하고 따뜻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함께 마음 따뜻해질 수 있는 내용이니, 크리스마스 케잌과 함께 이 책 한 권쯤 같이 준비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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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필립 빌랭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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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단순한 열정>과 함께 묶여서 거론되던 소설이었고, 대강의 내용을 다 알고 집어들었음에도 이 책을 읽다가 꽤나 화가 났다.

<단순한 열정> 역시 아니 에르노, 작가 자신의 사랑의 기록이고, 대단히 내밀한 구석까지 고백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는 그 열정의 기억에 공감했을 뿐, 조금도 기분 나쁘거나 화나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의 기억을 스스로 드러내는 행위였고, 상대 남자 A는 그냥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람일 뿐, 그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아니 에르노가 사랑한 상대였다는 의미 외에 A가 가지는 의미는 없고, 우리가 A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도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다르다. 필립 빌랭은 책 속에서 아니 에르노라는 여자를 완전히 발가벗겨 버리고, 그녀의 연인이었기에 알 수 있는 그녀의 사생활, 행동, 바보스러운 장난끼까지를 모두 대중에게 노출시켜버린다. 빌랭은 그것이 자신의 기억을 공개하는 것이라 말할 지 모르지만, 읽는 쪽에서 보면 이것은 빌랭의 기억을 엿본다기보다는 아니 에르노라는 여류 작가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이 되어버린다. 기법까지 철저하게 <단순한 열정>을 흉내내서 쓰여진, 소설이라기보다는 기록인 이 책은 명백하게 빌랭의 일기로만 남아있거나 혹은 아니 에르노에게만 공개되었어야 할 내용이고, 이런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이 솔직히 불쾌했다.

그는 에르노를 사랑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에르노와 연인 사이로 지내는 동안도 열등감과 치졸함으로 그녀를 꽤나 괴롭했다는 것 역시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다. 이런 것이 과연 사랑인가? 애초부터 빌랭이 사랑한(혹은 사랑했다고 생각한) 상대는 '단순한 열정'의 작가였던 것이고, 심하게 말하자면 그녀를 이용해서 스스로의 문학적 명성을 쌓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옛 사랑의 아련함을 지켜주는 것은 추억과 기억인데, 그 기억이 이런 불쾌한 방식으로 공개된 것에 대해서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런 남자와 5년을 연인으로 지냈다는 아니 에르노를 진심으로 동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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