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바꾼다 - 집, 도시, 일자리에 관한 모든 쟁점
박인석 지음 / 마티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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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축의 행정과 그 속사정, 그리고 건축이란 한 마리 나비효과

[건축이 바꾼다](마티) - 박인석


   ㅁ 뭘 바꾸는게 그렇게 쉬운일은 아님에도, 제목에서처럼 오직 '건축이' 바꾼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만남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대담한 듯한 그 책의 제목에 이끌려서 구매했고 생각보다 무거운 책이었음에도 금방 읽었다. 뻔하디 뻔한 문장이지만, 건축에 관심을 둔 나에게 건축이 얼마나 세상, 그리고 그 곳에 사는 우리를 바꿀 수 있을지, 그저 궁금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쉽게 읽었다고 생각한다.

   ㅁ 개인적으로 건축이란 분야는 몹시 특별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공학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편인 것 같지만, 사실 건축은 (공학이 중요하지 않는 게 아니지만) 인문학적이고 또는 미적인 요소가 엄청 적용되는 분야다. 건축이란 학문은 공간이라는 곳에 무언가를 만들고 그게 바로 사람, 크게보면 사회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사는 곳에 건축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에 우리는 살게 되므로, 실용성과 심리적 요소도 분명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 관련 책들을 보면, 그런 부분적인 요소 중 주로 다루는 부분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책은 공학적인 요소를 강조하고(주로 전공책이 그렇다.) 또 다른 책은 인문학적 요소를 다루기도 하고, 미적인 요소를 주된 내용으로 삼은 책도 있다. 다양한 영역에 발이 뻗은 학문이라 여러 방면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듯하다.(그래서 건축학을 전공하는게 괜히 다른 학문과 다르게 5년인 게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배워야 하는 게 많을 테니까.) [건축이 바꾼다]는 미적인 요소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학적인 요소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 요소는 책의 서문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책 전반에 걸친 주제였다. 바로 건축의 행정적인 면모였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건축 역시 '건축'이 아닌 '건설'적 방식의 법률·제도·행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로 인해 빚어지는 각종 비합리적인 일들이 건축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책 서문 中(p. 14)
   ㅁ 작가님은 건축학의 결과인 건축물에 대해서도, 그리고 건축적인 기법에 대해서도 대체로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축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 사회의 인식, 그리고 그 기반으로 만들어진 행정과 법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크게 두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의 첫 절반은 국가산업으로서의 건축에 대한 지적이었다. 국내 산업에서 건축산업이 차지하는 규모부터 건축이 소홀히 되는 사회, 현 사회를 반영하지 못하는 오래된 법규 및 제도, 건축산업의 변화가 바꿀 수 있는 사회 모습을 그리면서 '건축'이란 분야가 미칠 수 있는 변화를 하나씩 언급해나간다. 여기서 근거로서 엄청난 양의 공식 자료통계, 데이터를 사용한다. 그 자료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 놓인 건축의 위상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것은 마치 엄청 많은 자료를 들고 온 검사가 '건축이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한 번 보아라.'라고 자료를 하나씩 꺼내면서 피고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느낌이랄까. 물론 근거의 대부분 통계자료였다. 딱 한 챕터만이 사례를 통한 근거였다.(외국의 건축행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근데 그마저도 짧다고 생각한다.) 통계자료만큼이나 적절한 근거가 없긴 하지만, 통계자료가 100% 현실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 근거가 과연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을지는 의심이 된다. 하지만 꽤나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라 대체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건축 분야의 세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 활발한 반론이 가능했겠지만, 그렇지 못한 한낱 일반인에겐, 무척 설득력 있게 '들리는' 절반의 이야기였다.(정말 설득력 있는지는 건축 사회에 살지 않는 나에겐 판단이 불가능한 부분이었다.)

   ㅁ 책의 나머지 절반은 건축의 시작에서 건물이 완성될 때까지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지적이다. 흔히 '설계'라고 불리는 과정인데, 거기서 발생하는 여러 사회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앞서 말한 건축 산업에서 근거와 다르게, 여기선 조금 결과론적인 근거들이 엿보이는데, 설계의 결과라 하면 당연히 건축물과 그 주변 공간이다. 대체로 논리과정은 이랬던 걸로 기억한다. 먼저 건축물과 주변환경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런 관점이 언제부터 만들어져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설계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잘못되고 있는지 설명하는 방식이다. 통계자료도 적절하게 있어서 개인적으론 앞서 말한 절반(산업에 대한 지적)보다 더 설득력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잘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의 활발한 반론이 가능해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둘 다 꽤 논리적이지만 굳이 뽑자면 설계과정에 대한 지적이 더 쉽게 설득될 수 있단 의미다. 어쨌든, 설계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감리제도와 계약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둘 다 건축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건축주처럼 실제로 건물의 주인이 아닌 사람이라면 (용어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새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은 설계를 통해, 좋은 건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얼마나 큰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가치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좋은 건축은 얼마나 고급 재료를 사용한 고급 건축인가에 달려 있을 뿐이니, 예산이 많은가 적은가가 문제일지언정 누가 설계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 110
   ㅁ 몇몇 사례중에서 서울시청 신청사과 주차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서울시청 신청사는 작가님이 지적한 설계과정에 대한 문제를 가장 적나라게 보여준다고 생각한 건물이었다. 설계와 다르게 시공되버린 신청사의 이야기를 보면서, '거 참 왜 저러는 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체계나 형식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절차인 걸까. 그런 회의감이 들곤 했다. 물론 그 절차가 생긴 어떤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젠 자정 가능한 형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신청사의 과정을 보면서 생각했다. 단지 건축 뿐만 아니라 모든 행정적인 부분에서 말이다. 많은 것들이 아쉬웠다. 신청사 뿐만 아니라 지금 짓고 있는 어떤 건축들에게도 이런 현실과 맞지 않는? 그런 절차가 진행되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해진다. 점점 더 나아지곤 있다지만, 아직 많은 것들이 부족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ㅁ 두 번째, 주차문제는 그냥 평상시에도 많이 느끼는 이야기였다. 서울 어느 골목을 들어가도 자동차들 때문에 편하게 걷는 곳이 없다는 걸 느끼기 때문인데, 그렇게 많은 자동차들이 돌아다니는데 정작 차를 둘 곳은 별로 없다는 점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골목의 도로는 보통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사용하는 공공재인데도 차들로 주차된 걸 보고 있으면 개인적으로 화가 치민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골목에 차를 굳이 끌고 들어와서 느릿느릿 사람들이 비켜서면 지나가는 차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왜 이런 곳까지 차를 끌고 들어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책이었다. 작가님 역시 우리나라의 주차 현실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해결책은 분명 지금의 주차문제를 해결해주겠지만, 자동차와 관련된 사람들, 가령 제작과 판매 쪽의 입장에선 당연히 이익에 해를 끼치는 제도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필요한 것은 이익이나 편의성이 사회 전반에 오랫동안 부정적인 효과를 준다면 그 방향으로 이익을 보장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유경제체계에서 어디까지를 자유롭게 두어야 하는지 그 경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법한데, 누구도 그걸 먼저 제시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쉽다. 마음 같아선 저 부분만 모두들 읽어서 주차문제를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ㅁ 그래서 책을 덮고 나니 건축이 무엇을 바꾸는지 알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난 '굳이 말하자면' 모든 걸 바꾼다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하필 '굳이 말하자면'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그 효과가 마치 나비효과와 같은 아주 작지만 조금씩 모여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건축이 조금 변한다고 우리 삶이 급격히 바뀌는 건 아니다. 주변만 보더라도 단지 저 땅에 건물이 리모델링을 한다고 내일 내가 해야할 일이 바뀌고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달라지진 않는다. 딱 건축이 그런 느낌이었다. 정말 많은 걸 바꾸고, 심지어 주변환경을 바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태도조차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정말 아주 작은 나비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아무리 바꿔봐야 지금을 사는 우리 눈엔 보이지도, 아니 관심을 갖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손놓고 내버려둘 수는 없는 법. 어쨌건 문제가 있다면 조정해야하고, 사회적 토론을 시작해야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우린 그 작은 '나비'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걸 책은 말한다. 건축이 바꾼다라는 아주 대법한 제목처럼 우리 삶의 건축, 즉 작은 나비의 효과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바쁘고 살기 어려운 이 와중에도 우리가 지금 놓아버린다면, 그 끝은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이 곳, 이 공간들은 결국 우리가 사는 공간이고 건물이고 세계니까 말이다.


건축이란 작은 나비의 날개짓에 우리는 조금의 관심을 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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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8일의 문장


결정했으면 더는 생각하지 말아야지.


옥상달빛 김윤주


ㅁ 그래. 이미 정해진 거라면 더 생각해봐야 뭐가 달라지겠니?


그만 끝! 이라고 크게 외치며 다신 돌아 보지 말아야지.


정말 이때까지 붙잡던 고민들 모두


다 끝! 이미 끝난 일! 정말정말 끝!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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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7일의 문장


우리 교육은 미래 사회에 적합한 인재들을 기르고 있을까?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창비) - 이범


ㅁ 지금 보니 이 책도 창비 출판사였다. 지난 번에 본 [공부논쟁]도 같은 출판사인데


여기는 이런 책을 자주 만드는가 보다 싶었다. 물론 두 책만으로 그런걸 판단해선 안되겠지만...


어쨌든,


문장 그대로 질문을 모두에게 던질 수 있다. 그 누구도 지금 교육이 적합한 인재를


기르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다들 우리 교육을 받아서 성인이 된 사람들일테니까.


잘 알고 있으리라... 그렇다고 무작정 나쁘다곤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 어떤 시대에선 효과적인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시대가 변해서 이젠 좀 맞지 않는 옷을 걸쳐 입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미래 사회가 어떨지 아무도 모르면서, 과연 우리는 교육을 논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맞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눈에 띄게 잘 드러난다.


그 누구도 잘 알면서, 어떻게 바꿔야할지 명확한 답을 내지 못하고, 적어도 답이 있더라도


바꾸려는 뚜렷한 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 지금 현실에서,


질문을 무진장 던져봐야, 바뀌는 건 없다. 해답이 없다면 찾아야하고, 답이 나오면


추진력있게 진행해야할텐데, 매번 질문만 던지고 전혀 달라지는 건 없다.


달라지는 것이라면 때에 따라 바뀌는 혼란 뿐.


사람들은 혼자보단 다 같이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걸 보면 무작정 다 같이 하는 게 과연 항상 좋은 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옛 속담에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지금 현실은 산으로 가지도 못하고 그저 한 곳에 머물러서 빙빙 도는 나날.


서글퍼진다.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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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6일의 문장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려 버릴지도 모르니까.


[수레바퀴 아래서](민음사) - 헤르만 헤세


ㅁ 유명한 책에 유명한 어구.


아니 유명한 책은 맞을텐데, 유명한 어구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장이었고,


노트에 적어둔 문장인데, 사실 저게 확실한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기억은 유한해서 가물거리는 책들이 있다.


분명 임펙트있게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릴 적 저 책은 문구만이 내 다이어리에 남아 있고,


책에 대한 전반적인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쉽다.


어릴 땐 뭔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세계문학전집이란 이유로 책을 읽었다.


그래서 그 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시 이 문구를 본 오늘은... 이제서야 다시 읽을 때가 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


그리고 요즘 주변의 교육에 대해 느끼는 바가 이 문장처럼 위태위태한 느낌이라 그런걸까.


다시금 손에 잡힐 듯한 책의 한 문구가 머릿속에 멤돈다.


책을 펼칠 때가 온 것 같다.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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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5일의 문장


창의성은 근본적으로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다.


[공부논쟁](창비) - 김대식 & 김두식 中 김두식 교수님의 말


ㅁ 창의성에 대한 말은 정말 사방에서 들을 수 있다. 창의성이 그만큼 필요한 사회라서 그런걸까.


과거에도 이런 특징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했을까.


아니면 지금 시대가 시대라서 창의성이 참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창의성은 예나 지금이나 있어왔다.


하지만 창의성에 대한 수많은 말들 중에서, 위 문장처럼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지금 시대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보가 넘쳐나서, 어떤 일이든 순식간에 퍼지고 이리저리 휩쓸리기 쉬운 세상에선,


창의성은 문장처럼 다르게 주장할 수 있는 용기와 동치가 아닌가 싶었다.


모두가 가는 길로 가고, 모두가 조금은 안정된 걸 원하고, 마지막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위태로워지는 이 세상에선 정말로 남과 다를 수 있는 굳센 의지가 필요한데, 


거기서 창의성이 발현되는 것 같다.


나는 그럼 창의성이 있는가. 물어본다.


용기와 같은 창의성이 우리 사회엔 아직 보이지 않는 건,


어쩌면 그렇게 만들 수 없는 시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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