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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맥퀸 - 광기와 매혹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앤드루 윌슨 지음, 성소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2월
평점 :
모두에게 '빌런'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은 기본이요, 거물과의 미팅도 펑크내기 일쑤. 주변에서 좋은 말로 타이르려고 해도 심드렁하거나 반항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늘 싱글벙글 웃던 선배까지도 쌍시옷 소리를 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 그 사람이 모든 걸 상실했다는 사실, 그래서 매순간 죽음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난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반면에 그 이면의 아픔을 헤아리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많은 경우 어려운 길보다는 쉬운 길을 택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비난하기 전에 헤아려야 할 것은, 상대의 행동방식은 그이 인생이 내린 "최선의 결론"이라는 것,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며, 그 짐의 무게를 우리는 감히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알렉산더 맥퀸』을 읽으며 답답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영국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은 생전 모든 권위에 도전하는 듯한 반항적인 스타일 그리고 여성혐오 논란으로 인해서 많은 비난/비판을 받았다. 확실히 폭력과 강간, 여성을 연관짓는 맥퀸의 쇼는, 여성혐오라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맥퀸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디자이너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영향력에 걸맞는 쇼를 만들라는 요구 또한 정당해보인다.
하지만 맥퀸을 쉽게 비난/비판하던 많은 사람들은, 맥퀸이 유년시절 지속적인 성적 학대로 인해서 마음 속에 어둠을 품게 되었다는 점, 남편에게 학대받던 친누나로 인해 "강인한 여성성"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맥퀸이 자신과 누나의 아픔을 끝까지 비밀로 간직하기 위해 무수한 논란과 비난에 항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가 폭력과 여성을 관련짓는 불쾌한 쇼를 선보이면서도 일상에서는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기회를 마련했다는 이 모순은, 포착되지 않았다.
맥퀸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지독히도 외로웠을 것이다. 죽음 속에서만 평안을 찾을 수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맥퀸은 우리 곁을 떠나가 버렸다.
맥퀸이 선보인 모든 스타일, 쇼, 의상이 윤리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 전에, 내가 욕하는 상대의 인생이 납작하지 않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일시적 만족감을 얻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