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아이가 산다 - 5년차 부부의 난임 극복툰
우야지 지음 / 랄라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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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로 이미 오래 전부터 팔로우하고 보고 있는 우야지 작가님의 만화를 책으로 다시 한 번 읽게 됐다.

워낙 쏟아지는 컨텐츠 중에서 내가 꼭 원하는 컨텐츠를 찾아내 꾸준히 보는 것이 어려운 날에 우연히 보게 된 작가님의 만화는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임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진행 중이었는데 왜인지 응원하고 싶어져 팔로우를 시작한 것이 지금에까지 이어졌다. 요즘엔 소망이와 비슷한 개월수의 조카가 있어서 소망이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바라보고 있지만, 막 알게 되었던 즈음의 이야기는 하루하루가 굉장히 어려운 날들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릴 땐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여자에겐 평범하고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결혼하는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지만 아이를 낳는 일, 아니 아이를 갖는 일마저 그냥 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됐다.

다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순리적인 일들을 척척 행하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주변에 은근히 난임으로 걱정하는 지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혼란스러움을 기억한다. 그저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 임신을 미루는 줄 알았던 친구가 사실은 난임이었고 임신을 위해 꽤 오래 노력하다 최근에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을 때, 임신 소식을 전하던 다른 친구 역시 이제사 말하지만 어렵게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눈물을 쏟았던 때 내가 참 무지했구나 반성하게 됐다. 몇 살에 결혼할거야,가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결혼하고 얼마 뒤에 아이를 가질거야,라는 계획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고 임신같은 일천지대사(!)를 계획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과한 욕심이었나 싶기도 했다.

남들 다 쉽게 하는 것 같은 임신이 나에게만 쉽지 않았을 때, 과연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 이야기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감히 상상하다 그만두기로 한다. 만화책에 그려진 그림만 봐도, 기대가 좌절로 바뀌는 순간만 봐도 마음이 무겁고 어려워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으니까.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1부의 이야기가 끝나면 드디어 독자 역시 오랜 시간 기다리고 고대했던 순간이 2부부터 진행된다.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드라마에서 자주 듣던 그 말을 실제로 듣게 되었을 때, 아이가 드디어 내게 찾아왔다는 감격과 나도 해냈구나 밀려드는 안도감과 어쩐지 뭉클한 순간을 만나며 나도 조금 울었다. '임신'이라는 것이 이렇게 감동적이었나? 초음파 사진을 보는 순간이 이렇게 슬플 일인가! 하면서.

그렇지만 임신이 되었다고 일사천리 출산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임신입니다." 하는 순간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되는 일은 참 멀고도 험하구나....

그렇게 아이를 마주하던 날. 나는 아직 경험이 없지만, 조카를 만나던 날을 떠올려보았다. 올케의 뱃속에 있던 아가가 눈앞에서 낑낑-거리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 내 아이도 아니면서 고생했을 올케, 내 동생이 아빠라니! 하는 복잡한 마음, 애쓰고 바깥으로 나왔을 조카 생각에 눈물을 쏟았었다. 고모가 되는 순간도 그렇게 감동적인데 엄마가, 아빠가 되는 순간은 얼마나 더 짠하고 찡하고 감동에 감격에 막 복잡할까.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하는 생활이 그려진 3부. 조카의 크는 모습이 상상되어 아가아가했던 조카의 사진을 꺼내보며 추억 여행을 했다. 이런 날도 있었지, 저런 날도 있었지. 육아는 해본 적이 없으면서 해본 마냥 공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또 웃었다.

3부까지 끝나면 마지막에는 난임부부를 위한 tip도 준비되어 있다. 결혼과 임신을 준비 중이시라면, 난임으로 고민 중이시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나처럼 곁에서 조카를 지켜보는 고모, 삼촌, 이모들 역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누군가에겐 공감을, 누군가에겐 위로를, 또 누군가에겐 감동을 주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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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구원
임경선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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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작가님의 교토 책을 닳도록 읽으며 껴안고 교토로 떠났던 것을 계기로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고 아껴서 다른 책들도 하나씩 읽어가던 중에 신작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운이 좋아서 '임경선 팔로워'가 되었고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가제본의 <다정한 구원>을 읽을 수 있었다.

다정한 구원, 발음할 수록 뭉클하여 다정하다는 말이 이토록 따뜻하고 애틋하였나 새삼 놀랐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떠났던 리스본을, 이제는 부모가 되어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여전히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모르는 부모님을 만나고 기억의 장소를 만나는 시간은 괜히 울컥하면서도 지금 바다를 향해 달리는 아이를 향한 따스한 시선만으로 안심이 되는 리스본의 시간이 참 좋았다. 다정한 것들이 주는 애틋함이나 위로나 안심이 나를 구원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리스본의 풍경을 떠올리며 산책하는 시간이 그저 좋았다. 가제본에 없는 이야기들을 기다리며 여러번 반복해서 읽는 동안 이미, 너무 행복했다.



리스본에는 이렇게 세월의 더께를 그대로 짊어진, 한때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조심스럽게 방치된 장소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방치되었다고 결코 소멸한 것은 아니다. - P74

이렇게 더디게 시간을 따라잡는 것 혹은 얼마간 그냥 놓아두는 자세는, 주말에 스스로 눈이 떠질 때까지 마음껏 느긋하게 자도록 허락하는 것처럼,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한 지혜일지도 모르겠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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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이 되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여권을 만들어 놓고도 일부터 구하라던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기듯 넣은 이력서가 단번에 붙어 취업에 성공! 10년짜리 여권을 만들어서 다행이야 농담처럼 말했지만 내내 그게 마음 한 켠에 한처럼 남았다. 취업을 조금 미루고 떠났더라면 지금 내 인생은 좀 달라졌을까.

그랬던 나와는 다르게 곧장 여행에 오른 그녀의 선택이 통쾌했다. 페이지마다 밝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볼 때마다 덩달아 웃었다. 그녀의 여행이, 걸음이, 만남이, 이별이 나의 스물을 떠오르게 했다. 스물의 무모하지만 당당하고 좌절해도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긍정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더운 건 딱 질색이라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은 '동남아'라는 곳을 이토록 매력적이게 보이도록 만든 것은 그곳의 푸르른 풍경이라던가 친절하고 순수한 사람들이라던가 단짠단짠의 동남아라던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스스럼없이 적어내린 그녀의 이야기와 계획보단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여행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내가 동남아에 가게 되면 이런 여행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녀의 여행을 쫓는 일이 즐거웠다. 동남아의 열기가 느껴져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에도 그녀를 놓칠까봐 눈으로는 쉬지 않고 그녀를 쫓고 혹시나 나와 공통되는 부분을 만나게 되면 과하게 놀라면서 소녀처럼 웃었다. 그녀의 여행을 쫓다보니 마치 나도 스물이 된 것 같아서 그래서 재밌었다.





만약 20대에 그녀를 만났더라면 나도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을까. 나도 스물에 지금처럼 조금 확실한 취향과 좋아하는 것이 있었더라면 강요가 아닌 당당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책을 읽을 수록 이미 흘러간 내 인생에 만약이 차곡차곡 쌓여 후회스러운 장면들을 많이 만나게 됐는데 그게 딱히 싫지는 않았다. 상상 속 후회스러운 장면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어도 그때의 나라면 분명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전혀 괴롭지 않았다. 20대에 읽었으면 조금 괴로웠을지도 모르겠지만 30대에 만나는 그녀의 이야기는 좋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스무 살처럼 살고는 싶지만 다시 스무 살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지금의 내가 좋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어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부러 소리내어 대답해 봤다. 네, 지금의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성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여전히 어린 아이들에게 어른을 요구한다거나 겨우 스무 살인 아이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는 참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날의 나 역시도 그런 강요와 압박 속에서 떠밀리듯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번복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도대체 뭐길래, 이럴 바엔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매일같이 일기에 그런 말을 적어내리며 울었다. 그저 친구들과 같이 뛰어놀고 밥먹고 수업받다보니,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생활하다보니 스물이 된 것인데 마치 내가 스물이 되기 위해 지금껏 살아온 마냥 치부되는 것이 매일 곤욕스러웠다. 그런 스무 살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스물에는 뭔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거나 스물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착각했다거나 스물이면 뭐든 스스로 해야한다고 믿는 그런 스무 살이 처음인 친구들이 읽으면 좋겠다. 단순히 나이의 앞자리 숫자만 바뀌는 것 외에는 스물이고 서른이고 여전히 좋아하는 것을 찾아헤매고 찾았다면 꾸준히 이어갈 방법을 갈구하고 내가 잘 하는 것을 더 노력해서 발전시켜야 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적어도 내 삶에서만큼은 내가 북쪽이라 믿는 곳이 진짜 북쪽이 되어줬음 좋겠으니까. - P26

하지만 고집으로 시작한 여행은 대개 용기로 바뀌어간다. 두려움은 내가 만든 마음이란 걸 알아차리는 순간 그 마음은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 - P34

마음이 시켜서였을까.

마음이 불러서였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내 행동이 배신이라면

나는 완벽하게 나쁜 배신자일 거야. - P151

내 삶 곳곳에도 작은 초코바 하나쯤 숨겨놓는 게 좋겠다. 나의 허기짐을 달랠 수 있도록, 도저히 참지 못할 것만 같을 때 가방 깊숙한 곳에서 꺼낼 수 있는 여행의 조각, 나의 사람들, 고양이나 노래쯤은 달콤한 초코바로 만들어 숨겨놓는 게 좋겠다. - P155

얼렁뚱땅 막무가내 휘청휘청, 하지만 끝내 반짝일 거라고 굳게 믿어요.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우리 모두 스무 살은 처음이잖아요! - P162

따지고 보면 여행도 똑같다. 깊게 생각하면 인생도 마찬가지다. 무섭다고 느낄 때마다, 해낼 수 있을까 의심이 들 때마다 그래도 일단은 해보겠다며 한 걸음 내디뎠기에 마음에 드는 풍경을 볼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른다.

걷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고, 머물러 있으면 아무 것도 만날 수 없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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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퇴사, 열 번의 남미 - 칠레, 볼리비아, 쿠바, 아르헨티나, 페루 여행 필독서
허소라 지음 / 하모니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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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오는 책들은 제목이 너무 좋아서 서점에서 자주 걸음을 멈추게 된다. 한 번의 퇴사 열 번의 남미. 이 책도 그랬다. 근데 왜인지 나에게는 자꾸만 한 번의 남미 열 번의 퇴사로 기억이 남아서 저자가 열 번의 퇴사 끝에 드디어 남미로 떠나게 된 것인가! 나도 열 번쯤 퇴사를 하면 남미에 갈 엄두가 날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건 다 내 착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책을 펼치고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세계 여행이라는 타이틀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주변의 누군가가 유럽 배낭 여행을 다녀와 너도 꼭 한 번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고 입이 닳도록 말해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어디를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사진을 꺼내서 아무리 자랑을 해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자꾸 좋았다고 가보라고 말하는 여행지는 반감을 느끼고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선물을 받았던 소설 겸 에세이가 담긴 여행책을 읽게 되었고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게 되었다. 워낙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이라서 막바지 두 페이지 가득 담겨있던 이과수 폭포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우는 원포토와 함께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저 그것, 이과수 폭포 앞에서 울게 될 날 때문에 남미는 한 번쯤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고 어느덧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 중인 여행지가 바로 남미인데 퇴사를 하고 훌쩍 남미로 떠난 그녀의 결단이 부러웠다. 퇴직은 있었지만 나는 대기업을 다니지 않아서인지 퇴직금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을 핑계 삼아본다.


언제부터인지 매체들도, 도서들도, 하물며 주변 사람들도 남미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덕분에 방에 앉아서 남미를 마주하게 되는 일이 참 많아졌다. 남미의 열정을 누구보다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아름다운 풍경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볼 수 있었다. 내가 꼭 가고 싶었던 이과수 폭포도 맑은 날, 흐린 날, 그저 그런 날까지도 모두 구경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굳이 가지 않아도 여행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좋았던 것은 뻔한 남미 사진이 아니라서, 감정으로 호소하는 글이 아니라서 좋았다. 여행의 힘든 여정과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여행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좋았다. 남미를 여행한다면 꼭 필요한 정보들을 빼먹지 않고 적어주는 책이라서, 만약 남미로 떠나게 되면 가볍게 이 책과 함께 하고 싶을 정도로 든든한 여행의 동반자가 될 것 같아서 좋았다. 페이지 중간중간 가득 채운 사진은 특히 더 좋아 그 페이지에서 자주 넋을 놓았다.

이 책에는 칠레, 볼리비아, 쿠바, 아르헨티나, 페루를 여행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칠레 ,볼리비아는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읽게 된 것이라 재밌는 정보를 얻게 되어 좋았고 쿠바는 예능 때문에 익숙한 지명과 눈에 익은 장소가 나와 마치 다녀온 냥 읽게 되어 재밌었다. 가장 관심있는 아르헨티나는 생각보다 짧아서 아쉬웠고, 페루 역시 아는 지역과 이야기가 나오면 맞아, OO의 SNS에서 봤어! 하며 반가워 했다. 이제는 그만 공부하고 너도 남미로 얼른 떠나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내 안의 또다른 내가 소리치는 것을 조용히 모르는 척했지만 어쩌면 더이상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일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곤 한다. 특히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남미에서는 낯선 것들 투성이에 둘러싸여, 일상에 존재하던 ‘나‘를 내던질 수 있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쿠바 아바나의 말레꼰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페루의 알지도 못하는 라틴 클럽에 가서 미친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평소에 시도하지 못했던 과감한 패션을 시도하기도 하고! 여태까지의 네모 반듯한 나를 벗어나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찰흙처럼, 여행자로 살아내는 나만의 시간들, 떨림을 간직한 일. 여행. - P112

"걷는 것만 생각해. 남은 거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 P126

여행을 하다 보면 언어를 뛰어넘는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사랑, 음악, 예술, 아름다운 것들.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답답할 때도 있을지언정, 언어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에 나의 감정을 온전히 열어버리는 것이다. - P132

나는 침묵이 사랑의 필수 요소라는 점에 동의한다. 언어는 너무나 많은 것을 파괴한다.
그럼 점에서 여행도 사랑도,
가끔은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 P133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 묻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런 거 없다. 그래도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빛나는 순간들이, 나를 이루는 또 하나의 빛나는 파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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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김지영 지음 / 푸른향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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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방한 '트래블러'를 보면서 형형색색으로 꾸며진 쿠바의 예쁨에 반하고, 지금도 방송 중인 '스페인 하숙'을 보면서 혼자 묵묵히 걷게 되는 순례길을 상상하기도 했다. 쿠바에 가보고 싶다, 스페인을 가고 싶다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면서도 사실 떠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혼자 먼 길을 떠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혼자 떠나온 길 위에서 전혀 걱정과 두려움 없이 걸을 자신도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주눅 들어 오롯이 풍경과 마주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좀처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책을 펼쳐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두가지 마음이 있었는데, 첫번째는 생기지 않는 용기를 대신하여 대리만족하기 좋을 것 같아서, 두번째는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같은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의 여행은 어땠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제목이 너무 좋아서 괜히 읽기 전부터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를 소리내어 여러번 읽었다. 그것이 용기를 만들어내는 주문이라도 되는 냥.

근데 막상 책을 펼치니 나의 첫번째 마음이 와장창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행복해지기 위해 현실을 내던지고 비행기에 오른 그녀의 여행은 상상처럼 반짝이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실패와 그로인한 좌절 앞에서 나는 무릎을 탁! 치며 역시 혼자는 무섭잖아!!! 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일이었다면, 하고 상상하다 이내 그만두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짊어진 나의 전부보다 닥쳐온 현실이 더 무겁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도망치고 도망쳐도 어쩜 이렇게 삶은 무겁기만 한걸까. 비약이 과해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자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더니 어떻게 된거야! 그녀를 붙잡고 따져묻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버거움이, 힘듦이 눈 앞의 예쁨을 자주 잊게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책을 덮고 무거워진 마음에 올려다본 하늘은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날이었다. 그게 또 위로가 된다.


김영하 작가님이 '여행의 이유'에서 그런 말을 했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의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라고.

같은 맥락으로 나는 실패하고 좌절하는 그녀의 여행 이야기가 무거워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음에도 소소한 이야기에 웃고 다정한 한마디에 코끝이 찡했다. 제 3자의 입장에서도 짠하고 찡하고 감정의 변화로 바쁜데 여행의 중심에 있었을 그녀의 감정은 얼마나 오르내렸을지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인가 중반부터는 여행의 동지가 되어 함께 걷고 함께 화를 내고 함께 당황스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초반에 따져묻고 싶었던 마음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힘들게 하는 수많은 것들에게도 화살이 돌아갔다. 완벽하지 않아서, 원하는 것은 늘 내게 오지 않아서, 그럼에도 너를 만나서 다행인, 그런 여행이라 좋았다.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마음이 꼭 나 같아서 눈물이 났다. 상처가 될 줄 알면서도 가시돋힌 말을 쏟아내던 그 끝에도, 외로움을 자처하고 떠난 여행에서 도무지 외롭지가 않아 글을 한 자도 쓰지 못하고 돌아오던 여행에도 그가 있었다. 아무 것도 자신이 없던 내게 따뜻하고 다정한 그가 나타나 모든 것이 괜찮아진 덕분일지 예쁜 것만 보면 그가 떠올랐다. 그래서 외롭지가 않았다. 무서움과 두려움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그 때문에 용기가 생길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닐까.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쁜 것은 어차피 다 너인데 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와 떠난 후의 나는 분명히 다른 존재일테다. 여행 후에 여전히 같은 삶을 살아도 나는 이미 달라졌다고 믿는다. 여행에서 만난 수많은 것들이 나를 조금 더 멀리 뛰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여행이 좋았던 나빴던 상관없이 말이다. 설사 꿈처럼 기억이 아득할지라도.

다시 우물 안으로 돌아왔다고 끝맺은 그녀의 이야기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 혼자 상상을 한다. 그녀의 우물 안은 얼마나 더 넓어졌을까 하고.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겨내고, 위험하고 두려운 모든 상황을 버텨내고 절대로 답이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을 풀어나가며, 나는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일을 배웠다. - P64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면 ‘그래도 괜찮지 않은 나이‘가 아니라 ‘좀 더 잃을 게 많은 나이‘일 뿐이다. 나는 추억과 행복 같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을 얻는 대신, 돈과 직장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잃었다. 나는 그것이 괜찮다. 그래도 괜찮은 나이다. 더 잃어도 난 괜찮다. - P111

"세계일주를 할 거야! 돈이 다 떨어지면 돌아올 거고,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을 다 가볼 거야!"

이렇게 말한 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자 꿈은 현실이 되었다. 내 모든 걸 걸었더니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부터 나는 꿈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 P143

어떤 세상인지 모르는 곳보다 어떤 세상인지 잘 아는 곳이 더 두려웠다.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새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보다, 예상 가능하고 그 예상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을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더 끔찍하고 무서웠다. - P155

내가 누군가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을 결정하는 주체성을 가지게 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내가 내 삶을 책임지게 되자 나는 자유로워졌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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