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잘 챙기면서 살고 계신가요?“
누가 물어본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가족들이 있었고 철마다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남들보다 절기에 대해 잘 알고 계절이 지나가는 것에 조금 민감한 편이다 그런 인생을 거듭하면서 계절마다 만들어둔 체크리스트들이 있다 예를 들면 봄에는 원미산 진달래를 꼭 볼 것, 장마에는 꼭 웅덩이를 밟으며 걸을 것, 노랗게 물든 가을 햇살에 열심히 걸을 것, 눈 오는 날은 무조건 밖으로 뛰쳐나갈 것 등등 빼곡하게 쌓인 체크리스트를 반도 채우지 못하고 한 해가 끝나버리면 회고하며 ’으이그! 뭐 하느라 그것도 못했어!‘ 나를 자책하고 ’내년엔 잘 하자‘며 등을 두들겨주게 된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마음 쓰고 있는 것은 바로 ’제철 꽃‘이다 순식간에 피었다가 지는 통에 놓치는 것도 일쑤지만 되도록이면 초봄부터 초여름까지는 자주 걷는 것을 목표로 사진을 많이 찍어둔다 꽃 마중을 나가 피는 꽃을 반기고 지는 꽃을 보내주는 시간들이 나에겐 어쩌면 가장 중요한 행사가 아닐까 싶다 봄을 알리는 봄까치꽃부터 초여름의 수국, 겨울의 동백까지 잘 마주하고 내년을 기약하고 싶다

이 책은 사계절보다 더 세밀하게 나눈 24절기 제철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절기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했던 나조차도 24절기를 다 외우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제철과 묶어 절기를 마주하니 확실히 이해하기 쉬웠다 그리고 역시 절기는 참 신기한 녀석이라는 생각과 옛날 사람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온난화다 뭐다 계절이 이상하다 싶어도 절기에 딱 맞춰 계절의 흐름이 변하고 공기가 달라지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거다 아무튼 그렇게 절기를 경험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달력에 다가오는 절기를 찾아보게 된다 다음 절기는 무슨 이름일까 어떤 뜻일까 하고

작가가 절기마다 추억을 떠올리며 써내린 글에 나도 비슷한 추억을 꺼내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이 많아서 좋았다 여전히 좋아하는 걸 좋아하면서 살고 계시군요 절로 웃음이 났다 일이 바빠서 놓친 걸 생각하면 괴로웠고 생각지도 못한 약속을 마주하면 마치 내 세상이 넓어진 것처럼 기뻤다

우리는 지금 소만에서 망종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소만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가 있고, 망종은 벼와 같이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합한 시기라고 한다 작가는 소만엔 가벼운 안부를, 망종엔 무얼 하든 바깥이 제철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 가벼운 안부를 짙어진 초록 밑에서 하면 어떨까 하지가 오기 전에 부지런히 바깥의 초록과 예쁘게 피어난 장미 구경을 실컷 하자 그럼 뒤이어 능소화가 피어나겠지
그렇게 앞으로 있을 계절의 부지런함을 따라 가장 행복한 방법으로 제철맞이를 하면 좋겠다

한 해를 잘 보낸다는 건, 계절을 더 잘게 나누어둔 절기가 ‘지금’ 보여주는 풍경을 놓치지 않고 산다는 것. 네 번이 아니라 스물네 번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내는 일이겠지. 이래서 지금이 좋아, 할 때의 지금이 계속 갱신되는 일. 제철 풍경을 누리기 위해 이루러 시간을 내서 걷고 틈틈이 행복해지는 일. - P69

어쩌면 좋은 계절의 좋은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을 줄여서 우정이라 부르는 건지도. 우리는 그렇게 잊지 못할 시절을 함께 보낸다. 서로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 된다. - P102

계절마다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사는 일이 좋다. 기쁘게 몰두하는 일을 어쩌면 ‘마음을 쏟다’라고 표현하게 된 것일까. 여기까지 무사히 잘 담아온 마음을 한 군데다 와르르 쏟아붓는 시간 같다. 그렇다면 내게 초여름은 ‘바깥’에 마음을 쏟고 지내는 계절. 좋아하는 바깥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즐기고 그게 곧잘 사는 일이라고 믿으며 지낸다. - P141

어떻게 그런 걸 알아? 묻는 말에 좋아하면 알게 돼, 대답하는 일.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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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가 데뷔 20주년을 지나 한국 독자를 만난지 12년이 되어간다고 한다.
그럼 나는 마스다 미리와 만난지 얼마나 됐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다.
무려 10년 전으로 돌아가 2013년에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로 수짱을 처음 만나 그 뒤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와 <주말엔 숲으로>를 연달아 읽으면서 마스다 미리 덕후가 됐다. 그 뒤로 신작은 물론이고 마스다 미리 타이틀이 붙은 모든 이벤트에 참여했었다. 북클럽, 모의고사, 손글씨, 그리고 '차의 시간' 출간에 맞춰 진행됐던 마스다 미리 카페 이벤트까지...!! 덕후로서 참여할 수 있는 건 다 했을 만큼 나는 마스다 미리를 정말 좋아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스다 미리의 신작을 무려 동창회라는 이름으로 미리 만날 수 있었다.
동창생이라 불리우며 얼마나 신났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

이번 마스다 미리 신작은 2권으로 출간되는데,
1편은 마스다 미리의 인생론을 담은 <누구나의 일생>, 2편은 행복론을 담은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1편은 오늘을 사는 30대 일러스트레이터 나쓰코의 일생을 들여다보며 다시금 평범한 일상이 주는 힘에 대하여 생각하게 됐다. 코로나 시절을 겪으며 우리가 한 번쯤은 해봤던 생각들과 너무 소소해서 스치듯 지나가는 많은 순간이 차곡차곡 컷으로 쌓여 오늘이 되어가는 과정이 좋았다. 일상에서 하지 못한 말은 밤에 만화 속 인물들이 대신해주고 만화에 담지 못한 말풍선은 결국 컷 밖의 우리 몫이 되어 완성해 나가는 하루가 어찌나 다정하고 따수운지!

2편은 그동안 사와무라 씨 댁의 이야기를 만났던 사람들이라면 반가워 할 사와무라 히토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앞서 나온 사와무라 씨 댁의 이야기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나의 일상에서 바라봤다면, 이번 히토미의 이야기는 40대를 앞두고 있는 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됐다. 마흔에도 정말 괜찮은가요 히토미상? 그렇게 물었던 질문은 나는 나일 뿐 변하지 않는 나를 믿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답변으로 돌아왔다. 흘러가는 일상에 감동하고, 친구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곁에 계신 부모님과 보내는 일상, 그리고 여전히 사랑에 설레고 절망하는 모든 순간에 여전히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게 행복이 아닐까.

소책자에 짧게 담긴 이야기에도 이미 마음이 크게 위로받았는데 출간되는 새 책에는 또 얼마나 마음을 따숩게 하는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기대도, 절망도 없이 오늘을 사는 것.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
소책자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는 또 얼마나 따뜻하고 오래 머물고 싶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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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라차차 라면 가게 작은 곰자리 59
구도 노리코 지음, 윤수정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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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아직 정식 수입이 되기 전부터 구도 노리코 팬이었던 나는

일본 츠타야 한가운데에서 지나가는 직원을 붙잡고 구도 노리코를 외쳤었다!

츠타야를 돌고 돌아 구도 노리코 책을 발견하면 원서를 이고지고

바다 건너 내 방 책장에 꽂아두고 오래오래 꺼내봤었다.

그렇게 보던 구도 노리코 책을 이렇게 한글로 잘 번역되어 만나게 될 줄이야.

덕후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자주 출간되어주시니 더욱 감사하다💛





아무튼!!!!!

그동안 멍멍씨네 가게를 그렇게 털어먹던(!) 우당탕탕 야옹이들이 또 나타났다.

빵, 아이스크림, 카레, 케이크, 도깨비숲을 지나 이번에는 라면가게를 털러온 야옹이들!!!!

아니, 이 책 읽으면서 어떻게 라면 안 먹을 수가 있죠?!

바로 라면부터 끓여서 나도 한 사발 후루룩 마셨다.





이 시리즈의 포인트는 멍멍씨네를 염탐하는 것으로 시작해 가게를 일단 털고,

그러다가 사건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모험을 떠나고,

아무렇지 않게 도망치다 멍멍씨에게 붙잡혀 부서진 가게를 수습하며

열일하는 야옹이들이라는 이 시리즈만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다.

반복되는 스토리라인이 자칫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느낄 수 있을텐데

볼 때마다 어른인 나도 웃게 만드는 이 책의 힘은 아무래도 귀여움이 아닐까 싶다.

페이지를 가득 채워 구석구석 귀여움으로 가득 채워넣어서

야옹이들과 멍멍씨네 외에 엑스트라를 찾아보는 귀여움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처음 읽을 때는 이야기 흐름에 따라 쓱쓱 넘기면서 한 번 보고

두 번째는 구석구석 그려진 그림들을 차근히 더 살펴보면서 보는데

그게 숨은 그림 찾는 느낌이 들어서 늘 재밌다!!!



구석구석 엑스트라 찾는 재미!!

온천에 앉아 라면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같이 앉아 먹고 싶어져서

또 라면을 끓이러 가야 할 것 같다......

다음 시리즈는 또 어떤 가게를 털어먹을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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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호라이 사계절 그림책
서현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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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호라이>는 태초의 반란 호라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면, "나는 호라이. 밥 위에만 있고 싶지 않아." 밥 위에 우뚝 선 호라이는 선전포고를 하고 길을 나선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 채, 길을 걸으며 나는 왜 호라이인지, 왜 하얗고 노란 것인지, 톡 하면 터질 것 같이 연약한지, 매끈하고 둥근 생김새까지 들먹이며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호라이는 마치 사춘기 시절의 나같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답이 딱히 뭐라도 상관없는 질문을 해가며 방황하는 모습이 말이다.

그저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지, 반숙이 최고라고 외칠 줄만 알았지, 호라이의 존재나 행방같은 것을 떠올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 고개를 숙인다. 그러는 사이 호라이는 끝없이 훨훨 자유롭게 날아 내가 모르는 세상을 유영하고 있겠지. 아니면 우주적 존재가 되어 이미 우리 곁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호라이의 세계는 끝이 없구나!! 호라이!! 호라이!!!



도망치는 호라이...



태양이 된 호라이...



호라이 왕국에 도착한 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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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 사계절 그림책
서현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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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는 기발하고 엉뚱하고 유쾌한 호라이의 대모험을 그린 그림책이다.

우리가 예상한 계란후라이의 행방은 어디까지일까? 내가 아는 계란후라이의 행방에 대하여 적어본다. 밥 위에 올라간, 도시락 밥 밑에 숨겨진, 짜장면 위에 올라간, 후라이팬에 올려진, 바닥에 떨어진, 햄버거 사이에 끼워진, 함박 스테이크 위에 올라간 등등 사실과 경험에 의존한 행방만 줄줄이 읊게 된다. 아마 대부분의 어른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계란후라이의 형태를 상상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책에서 계란후라이의 모습을 한 '호라이'는 매우 자유롭다. 앞서 내가 적은 곳은 물론이고 친구네 집에도 놀러가고, 운동회, 하늘나라, 장례식까지 상상 이상의 곳에서 자리하고 있는 호라이를 만날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며 다음의 호라이는 어디에 있을까 괜스레 궁금해지기도 하고 맞춰보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조카도 궁금한지 빨리 넘기라고 성화를 부려 순식간에 호라이의 마지막 순간까지 만나게 됐다. (표지에 무릎 꿇고 앉은 호라이의 모습을 보고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시종일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마주한 호라이를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다가도 내 주변에도 호라이가 존재하는 곳이 있을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정도 상상력이면 내 주변에도 호라이는 분명히 존재할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평범한 일상이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다.



환생하는 호라이...



죽은 호라이...





친구 가방에 숨어있는 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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